"대한민국 애국가 변천사", 애국가는 찬송가로 만들어졌다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이었다, "애국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첫 애국가 음반", 애국가 작사자는 누구인가? 끝나지 않..

2023. 7. 2. 07:16역사의 연구/한국역사

 

1. 애국가(愛國歌)와 국가(國歌)는 다른가

 

‘애국가’라는 말은 나라 사랑의 노래라는 뜻이다. 애국가는 본래 고유명사였으나, 구한말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즉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사랑하자는 노래가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애국가란 어느 한 노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나라 사랑의 뜻을 지닌 모든 노래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중의 한 곡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로 남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므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가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國歌)라는 이름이 붙어야 국가는 아니다. 

 

미국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s & Stripes Forever)는 1896년 미국 작곡가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미국의 애국가이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도 프랑스 혁명 당시에 불린 <마르세유(Marseille)의 노래>라는 애국가가 국가로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고종 황제 시절 국가를 제정하자는 움직임에 의해 당시 군악대장으로 조선에 와 있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가 1902년에 만든 국가가 있었다. 

그 제목을 <대한제국 애국가>(大韓帝國 愛國歌)라고 하였으니 우리나라 공식적인 최초의 국가조차 애국가의 일종인 셈이다. 에케르트는 우리나라에 건너오기 전 일본에서도 군악대를 지도하며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작곡하였는데, 이 또한 ‘군주의 치세’라는 제목을 가진 일본의 애국가였다.

 

그러므로 애국가와 국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며,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국가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녹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애국가는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가로 준용하였고,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공식 연주되고 국가로 공인된 노래이다.

에케르트가 만든 <대한제국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번 개작되었는데, 에케르트가 사용한 1902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上帝)는 우리나라를 도으쇼셔 / 반만 년 오랜 역사 배달민족 / 영원히 번영야 / 해달이 무궁하도록 / 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 /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 반만 년 오랜 역사 배달민족 / 영원히 번영하여 / 해와 달이 무궁하도록 / 성지동방의 원류가 곤곤히 /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2.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의한 애국가

 

<애국가> 가사가 만들어진 것은 약 110년 전의 일이다. 애국가 가사는 1935년 11월 안익태가 지금의 멜로디를 작곡하기 전부터 불렸는데, 이때의 곡조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에 맞춘 것이었다. 

이 멜로디는 현행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곡조이다. 1914년 7월 독립운동가 이동휘, 계봉우 선생에 의하여 세워진 북간도 소재 광성중학교에서 등사본으로 만들어져서 음악교재로 사용된 『최신창가집』(最新唱歌集)에는 이 곡조에 의한 애국가 악보가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주목할 것은 이 애국가의 제목을 <국가>라고 한 것이다.

 

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우리나라 음계와 마찬가지로 5음 음계로 되어 있어서 부르기 편하고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없다. 그래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3·1운동 때에도 애국가는 이 곡조로 애창되었다. 스코틀랜드 방언 올드 랭 사인은 영어로 ‘Old Long Since’이며, 우리말로는 ‘오랜 옛날부터’라고 할 수 있다.

 

3. 현행 <애국가> 가사가 수록된 최초의 책 『찬미가』

 

현행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는 최초의 책은 윤치호 역술(譯述)로 1908년(융희 2년)에 발행된 『찬미가』(재판)이다.2) 이 책에는 제1, 10, 14장에 각각 다른 가사의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다. 『찬미가』는 공식적인 찬송가는 아니었지만,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제1장은 “우리황상폐하”로 시작하는 애국가인데, 제목은 ‘KOREA’로, 곡명(Tune Name)은 ‘AMERICA’로 기록되어 있다. 멜로디는 현행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의 곡조와 같은데, 이는 영국 국가의 멜로디이다.

 

제10장은 “승자신손 천만년은”으로 시작한다. 제목은 영어로 (애국가)라고 하였고, 곡명은 ‘AULD LANG SIGN’이다. 애국가의 일종인 이 노래가 예전에는 <무궁화가>로 알려졌는데, 이는 후렴 부분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였기에 붙은 이름이다.

 

제14장은 제10장과 제목(Patriotic Hymn)이나 곡명(AULD LANG SIGN)이 동일하다. 그리고 후렴 부분(무궁화 삼천리…)도 일치한다. 그러나 가사의 첫머리가 지금의 <애국가>와 같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한다. 즉 현행 <애국가> 가사의 원형인 셈이다. 옛 가사대로 소개한다.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2. 남산 우헤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

3.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 업시 높고 /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긔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 괴로우나 질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위의 가사 중 현행 <애국가> 가사와 다른 부분은 1절의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2절의 “남산 우헤”와 “바람이슬”, 3절의 “구름 업시 높고”, 4절의 “님군을 섬기며 괴로우나 질거우나” 등이다.

 

4. 찬송가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애국가>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찬송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찬미가』가 찬송가라는 것은 그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실린 찬송가의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기독교 예배를 위한 찬송가책(冊) 임이 증명된다. 총 15장의 찬송가 가사를 현행 찬송가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윤치호의 찬미가 가사 현행 찬송가 가사 곡명 또는 영어 가사

1장 우리 황상 폐하 피난처 있으니 AMERICA

2장 나 사랑하난 예수 비바람이 칠 때와 JESUS LOVES OF MY SOUL

3장 성재 성재 성재 거룩 거룩 거룩 HOLY HOLY HOLY

4장 서라 십자가 군사 십자가 군병들아 STAND UP FOR JESUS

5장 벳네헴 새벽별은 천사 찬송하기를 HARK THE HERALD

6장 아참 날이 도드니 아침 해가 돋을 때 THE MORNING LIGHT IS BREAKING

7장 일하세 밤 되나니 어둔 밤 쉬 되리니 WORK FOR THE NIGHT IS COMING

8장 내 믿고 발아난 못 박혀 죽으신 하나님 MY FAITH LOOKS UP TO THEE

9장 그리스도 군사 앞서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ONWARD, CHRISTIAN SOLDIERS

10장 승자신손 천만년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AULD LANG SINE

11장 귀하다 우리 맘 주 믿는 형제들 BLEST BE THE TIE

12장 쥬를 밋난 자의 견고한 터가 (한국 찬송가에 없음) HOW FIRM A FOUNDATION

13장 해는 지고 밤은 갓가오니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ABIDE WITH ME

14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AULD LANG SINE

15장 끄릴난 어름산과 저 북방 얼음산과 FROM GREENLAND'S ICE MOUNTAIN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라는 가사를 담은 애국적 찬송가로 만들어졌고, 『찬미가』에 처음 수록되었다.

 

5. 남의 나라 국가는 부르고 <애국가>는 안 부르는 한국교회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찬송가에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예배 시간에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의 나라 국가는 찬송가로 열심히 부르고 있는 현상은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남의 나라 민요나 국가도 가사를 달리하여 얼마든지 찬송가로 전환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의 민요로 찬송가를 만들어 부를 줄 모르고, <애국가>를 찬송가로 활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현행 한국의 찬송가에는 영국 국가와 독일 국가가 포함되어 있다. 영국 국가는 앞서 말한 대로 70장 <피난처 있으니>이고, 독일 국가는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곡명: AUSTRIAN HYMN)이다. 

 

『통일찬송가』(1983)에는 이 멜로디에 <시온성과 같은 교회>라는 가사 외에도 <예수님의 귀한 사랑>(127장)이라는 가사가 따로 실려 있었다.

 

또 『통일찬송가』에는 러시아 국가도 있었는데, 77장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멜로디이다. 이 러시아 국가는 원래 찬송가로 먼저 만들어진 것이고, 나중에 “전능의 하나님 왕 되신 주님”(God the Omnipotent! King, who ordainest)이라는 가사를 그대로 하여 러시아 국가로 불리게 된 애국가의 일종이다. 

 

이 노래는 러시아의 헨리 콜리(Henry F. Chorley, 1808-72)가 1844년에 쓴 가사와 후에 존 엘러튼(John Ellerton, 1826-93)이 1871년에 첨가한 가사가 합쳐진 것이고, 멜로디는 1833년 러시아의 음악가 알렉시스 페오도로비치 르보프(Alexis Fyodorovich Lvov, 1798-1870)가 붙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49년에 발행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연합의 『합동찬송가』에는 위의 국가들 외에 379장 <믿음의 좋은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는 찬송가의 제목과 가사 첫줄이 달랐는데 가사는 “보아라 십자가의 군기 높이 번득거리는 것을”로 시작한다. 이 곡은 프랑스혁명 당시 대위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1760-1836)이 1792년에 작사, 작곡한 애국적 군가였다.

 

6. <애국가>를 찬송가로 불러야 한다

 

우리의 <애국가>는 찬송가로 만들어졌고, 『찬미가』에 처음 실렸고, 예배시간에 불렸다. <애국가>를 불렀던 당시의 교회는 많은 민족지도자들을 배출시켰으며, 3·1운동의 주역으로 독립을 외쳤다. 교회는 민족이 기댈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는 교회 안팎에서 울려퍼진 민족의 믿음이요 소망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현장에서 <애국가>가 불리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애국의 정신이야말로 신앙의 기본이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신앙의 발로이다. 교회와 민족이 점점 유리되어 가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애국가>를 부르며 민족혼을 일깨우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문성모 | 독일 뮌스터 대학(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에서 예배학을, 오스나브뤼크 대학(Universität Osnabrück)에서 음악학을 연구(Dr. Phil.)했다. 대전신학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초빙교수이다.

 

"대한민국 애국가 변천사"

https://youtu.be/kvZf-hFcAzA

 

 

 
Feb 11, 2022
 
모든 국가는 최대한 오래됐거나 편곡하지 않은 원곡을 사용하였습니다.
+소비에트 민정청 시기의 국가를 수정 후 재업했습니다.
00:00 대한제국 - 대한제국 애국가 (1902년 버전)
00:53 일본제국령 조선 - 기미가요 (1932)
02:32 대한민국 임시정부 - 애국가 (19??)
03:27 재조선 미군 육군사령부 군정청 - 애국가 (19??)
04:05 소비에트 민정청 - 소비에트 연방 찬가 (1946)
05:01 북조선인민위원회 - 애국가 (1948)
06:00 대한민국 - 애국가 (1942)
07:03 북조선인민위원회 - 애국가 (1950)
08:5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애국가 (201?)
10:00 대한민국 - 애국가 (2022)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이었다 /

KBS 2011.9.22 방송

https://youtu.be/YBsm2f-gKys

 
Sep 7, 2020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대한제국 애국가’
 
독립기념관에 보관돼있는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금박과 청홍색의 실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겉장을 넘기면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등 18가지의 악기가 사용된‘대한제국 애국가’ 악보가 펼쳐진다.
 
110년 전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최초의 서양음악이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황제를 보위하던 당대 최고 석학들이 작사에 참여했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초빙해 온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했다. 1901년 한국에 초빙된 독일인 왕실악장 프란츠 에케르트. 쌀 한 가마가 5~6원 하던 시절 그의 월급은 3백 원이었다. 에케르트에게는 단순한 군악대장이 아닌 애국가 제정이라는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고 그에 따라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런 특급대우 속에 에케르트는 1902년 7월 1일 애국가의 작곡을 완성했다.
 
- 최초의 군악대 탄생하다 1901년 3월, 에케르트는 본격적으로 군악대원을 선발한다. 50명의 군악대원은 에케르트가 가져온 오보에, 클라리넷 등 총 52점의 낯선 악기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4개월 후 애초에 뽑았던 50명 중 27명이 신식복장과 악기를 갖춘 정규 군악대가 된다. 이들의 데뷔는 1901년 9월 7일 고종 황제의 만수성절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다. 당시의 영문 잡지에선 악대의 데뷔 무대는 신선하고 강렬했고 그들의 연주는 청중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 대한제국, 독립국가를 꿈꾸다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이 근대 서양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당시 조선은 국기는 있었으나 애국가가 없었다. 조약식 현장엔 양국의 애국가 대신 미국 민요인 양키 두들이 울려 퍼졌다. 미국이 자국의 국가 대신 민요를 연주하는 것으로 조약에 필요한 격식을 맞추고자 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국가 상징물 즉, ‘애국가’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1902년 마침내 애국가를 완성한 대한제국은 국기와 애국가를 가지고 근대국가로서 당당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 막 내린 근대화 프로젝트, 애국가 금지사건 한일의정서 체결 이후, 사실상 고종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막을 내린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작업을 중지시키고 그 성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왜곡하기 시작한다. 대한제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성과물이었던 대한제국 애국가도 불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인 채널들을 통해 애국가 금지가 보도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14년 각급 학교에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창가집이 전달된다. 창가집 앞면에는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자리 잡고 있었고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은 일본의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배우고 익혀야 했다.
 
- 부르지 못한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 부르지 못한 노래 애국가는 그러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겨 부를 수 없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노래는 이어졌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애국심과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때로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국강병의 꿈을 노래하고자 했던 대한제국애국가는 힘든 시기를 지탱하는 진짜 애국가가 되어있었다. 신역사스페셜 82회
 
–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이었다 (2011.9.22.) http://history.kbs.co.kr/

 

 

 

"애국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https://youtu.be/YfpPi6OojMM

Dec 18, 2018
 
 
'애국가의 변신' 딱딱함 벗은 새 애국가 음원 배포 저작권위원회, 이용자들 요구에 자유롭게 이용할 음원 제작 새롭게 제작된 '애국가 음원' 어떻게 달라졌나? ※자세한 내용은 뉴스TOP10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첫 애국가 음반"

https://youtu.be/w2HDL-TUIbo

 
Jun 13, 2021
 
Mar 1, 2021 
 
 

 

 

 

"[국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가 애국가"

https://youtu.be/FZ9L1G_TlSE

 
Feb 28, 2019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려 인류 평등의 대의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노라.
 
(후략) 己未獨立宣言書 中 기미독립선언서 중 大韓獨立 萬歲. 大韓民國 政府樹立 百周年 萬歲.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주년 만세.
 
 
 
 
 

가장 오래된 애국가 음원 찾았다…1942년 7월 6일 VOA 방송

미주중앙일보 [Los Angeles]

입력 2023.03.10 20:22 수정 2023.03.10 21:22

한국인 추정 소프라노가 불러
"실질적 국가로 대접받은 것"

안익태 작곡 애국가의 가장 오래된 음원(音源)이 발견됐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7월 6일 미국 단파라디오 방송인 ‘미국의 소리(VOA)’  전파를 타고 미국 국내외로 송출된 이 애국가는 한국 독립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한국어 및 영어 육성 연설 앞뒤에 수록됐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소프라노 여성이 부른 이 음원은 KBS 현대사 아카이브팀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방송테이프에서 찾아내 디지털 파일로 만든 뒤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제공했다.
 
음원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1942년 당시 임시정부 요인 자격의 이승만 연설과 함께 안익태 작곡의 현행 애국가가 미국 방송을 탄 것은 실질적인 ‘국가’ 대접을 받았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형석 전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원장은 “이승만의 육성 연설을 단파라디오로 들으면서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가슴 벅차했다는 기록은 여럿 있지만, 연설에 애국가가 붙어 있었다는 기록은 없었는데 이번에 그 실물을 찾은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때 국내의 공개 석상에서 애국가를 부를 순 없었고, 그나마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가사를 붙인 ‘구 애국가’만 부를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제작된 방송에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방송된 것은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충분히 공감된 곡이라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안익태는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1935년 교민들이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지금의 애국가 곡조를 만들었다.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 요인들도 공식행사에서 안익태의 애국가를 불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불려지지 않았고 1945년 8·15 이후 귀국한 백범 김구가 애국가 보급 운동을 펼침으로써 올드 랭 사인 버전의 구 애국가를 대체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 방송 음원은 1946년 경성방송국(현 KBS)에 의해 수록된 것이다. 음반으로는 1942년 8월 29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LA 시청에 태극기 게양식을 거행하면서 기념으로 발매한 1달러짜리 음반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2012년 8월 독립기념관이 발굴해 공개한 이 음반에는 미주 교포들이 합창으로 부른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와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부른 구 애국가 2곡이 수록돼 있다.

서정민 기자
 
 
 
 
 
 

"독립운동가 이승만 연설 육성 (1942년 6월 13일)"

https://youtu.be/caKmd0hKkZk

듣는 월드뷰 42편- 대한민국 건국 기념사- 이승만 초대 대통령-

월드뷰 매거진 2021년 3월호

https://youtu.be/93-Z4gbaXAI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행한 기념사 전문이다.
 
 
 
 
 
 

[#제헌절특집]“대한민국 제헌국회 첫 시작은 기도였다”

https://youtu.be/fF2IZ12lBjY

 
Jul 16, 2020

 

 

 

 

 

 '자존심이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 [낭만논객] 81회

2015.09.20

https://youtu.be/5QtmcHmsWXw

 
Sep 22, 2015
 
낭만논객 81회 20150920 TV조선
 
이승만은 당시 약소국의 대통령이었지만 외국의 지도자들은 이승만 박사를 만날 때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낭만논객_81회] [Ch.19] 세상에 없는 TV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