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5. 08:41ㆍ유용한 정보/군사소식
대한민국 주월 한국군 파병 최초, 최대, 최후의 맹호부대 안케패스
638고지 탈환 전투 참전(실전) 수기 연재 (1-139화)
'안케의 눈물'
*이전에 월남전 안케패스 전투 혈맹의 전우님의 요청으로 Google Site Korea Daily Blog에 게재한
수기를 Kakao Tistory Site에서 다시 게재하여 독자님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안케의 눈물 (1)
그 당시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말한다 (1화), 앙케 작전의 배경 (3화)
클레모아 터지는 신호로 앙케 전투가 시작되다 (6화), 수색중대의 비극이 시작되다 (8화)...
앙케의 눈물 연재
관리자님 안녕 하세요?
처음으로 이 사이트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나의 저서, 앙 케 의 눈물을 연재를 한 번 해 보려고 이렇게 테 스트 를 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이 사이트에 연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 그럼 귀 사이트의 무궁한 발전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당시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말한다 (1)
지금부터 그 처절하고 치열했던, 한 많은 앙 케 전투에 대한 글을, 이 구글 사이트에 연재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막상 연재를 하려 하니까, 이 구 글 사이트에는 처음 하는 연재라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군요. 그 당시 말하지 못했던 앙 케 전투의 진실을 이 구 글 사이트에 연재를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
이렇게 이 구글사이트에 연재를 할 수 있게 되어 저자는 무한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같아 감회가 새롭습니다. ‘노력을 뛰어넘는 재능은 없다는 말처럼 전투 체험을 뛰어넘는 전략과 전술 작전을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자는, 앙케 의 눈물이란 저자의 작품을, 이 구글사이트에 연재하고자 합니다.
월남 전사에서 단일전투로서는 최대 격전지 앙케 전투에서, 저자 본인이 직접 체험한 전투상황을 중심으로 하였다. 또, 앙케 전투에 참전했던 수많은 전우들이, 각자가 직접 보고 느낀 생생한 전투 체험을 기본 바탕으로 하였다. 그리고 앙케 전투에 대한 저자의 체험수기가 월남전과 한국군 인터넷 사이트에 약 일 년 반 동안 75회에 걸쳐 연재되기도 했다. 때문에 그들이 직접 체험한 그 당시의 치열하고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논픽션으로 엮어, 앙케 의 눈물이란 작품으로 이 세상에 내 놓게 되었다.
앙케 전투, 저자의 체험수기가 폭발적인 조회 수와 열띤 댓글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물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네티즌들의 열렬한 박수와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었다.
또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베트남전쟁 연구총서 제3 논문집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 제 16회 베트남 참전 유공전우회 울산 정기총회의 홍보책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방전우신문에 연재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리고 미국 헐리웃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 참전전우님의 자제분, 아놀 전이 아버지의 일대기를, 제작비 약 $20,000,000불을 투입해 월남전사의 주 월 한국군의 전투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제작해 보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때문에 저자는 그와 강남 르네상스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서, 앙케 전투에서 저자가 직접 체험한 전투상황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때문에 그는, 아주 값진 조언을 듣게 된 보람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앙케 전투를 중심으로 영화를 제작해 보겠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체험수기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인간적 고뇌와 애환을 담은 드라마를 제작해 보겠다는 드라마 제작자의 제의를 받았을 때, 저자를 비롯해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학생들의 이르게까지, 대단한 관심을 갖고 드라마가 빨리 제작되기를 잔뜩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국내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베트남 참전 전우들이 저자의 글을 접하고서 그 당시 정글 속에서 울려 퍼진 총성과 폭음이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것 같다고 회상하면서 저자에게 격려의 국제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
그 전우들은, 나이가 많아 컴퓨터를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베트남 참전 전우들과 각계각층의 독자들로 부터 전쟁 수기를, 컴퓨터가 아닌, 종이 책으로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열화 같은 성화에 무척 고심하였다. 그런데, 마침! 저자의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 주며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던 KBS 방송작가 (필명) E M B C 407이 앙케 전투, 저자의 체험수기가, 역사의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앙케 전투 저자의 체험 수기를 소재로 해서 소설을 한번 써 볼 테니, 저자에게 다큐멘터리를 한번 써 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겠나? 하는, 생각하고, 무척 망설이기도 하였다. 저자는 그렇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었다. 저자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앙케 의 눈물이란 작품을, 이 세상에 내 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생애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 처절하고 치열했던 생지옥 같은 한 많은 앙케 전투에서 불가사의하게 기적처럼 살아서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날부터 저자의 생은 제 2의 삶을,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때문에 이날이 저자의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이 되었다.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앙케 전투에서 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저자가 살아있다는 것이 꼭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실미도’ 란 영화가 온 장안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저자의 마음은 한 없이 착잡했다. 그 실미도란 영화에서 혹독하고 무자비하게 훈련하는 장면이었다. 또, 그들은 난동을 부리며 교관과 경찰관을 잔인하게 사살하는 장면이 말썽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이 영화가 관람객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미도란 이 영화는 온 국민들의 진실이란 호기심을 유발하였다. 때문에 이 영화는 천 만 명이란 관람객을 동원함으로써 흥행에 크게 성공한 화제의 영화였다.
아무리 혹독하고 무자비한 훈련이라 하지만, 단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리는 총알이 빗발치는 앙케 전투의 실체! 정규전쟁과 비교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이 글은 가상의 드라마틱한 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제 상황을 진솔하게 엮은 논픽션이기 때문이었다.
훈련과정이 영화화 되어서 온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데, 역사 속에 영구히 기록 보존 되어야 할 앙케 전투가, 진실이 왜곡되어 굴절된 역사 속에 묻힌 채,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뿐만 아니라, 앙케 전투가, 일부 평가 절하되고, 왜곡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 처럼 서투른 글로서나마, 집필하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뼈를 펜을 삼고, 또 자신의 피를 잉크로 삼는 심정으로, 이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 앙케 전투에서도, 실미도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뻔 했던 일이 있었다. 그들 수색중대는, 월맹군으로부터, 세 번 씩이나 기습공격을 받고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 수색중대는, 하늘의 도우심과, 끈질긴 생명력, 애국애족에 불타는 희생정신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 수색중대는,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철통같이 방어 작전을 하고 있는, 앙케 패스 638고지를 인해전술 작전으로, 두 번 씩이나 공격하였다.
때문에 그들 수색중대는 천신만고 끝에, 638고지를 탈환하였다. 그들은 91명의 적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마침내 수색중대 그들은, 앙케 전투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런데, 약 15일 동안, 드라마틱한 전설과 같은 사실들이, 수색중대 그들이 세운 전공은 어이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또, 수색중대의 전투상보(전투일지)마저 누락 시켜 버렸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단 몇 시간 만에 피해와 희생 하나 치르지 않고, 적 사살 한 명도 없이, 또 적과 교전 한 번 없이 무혈입성한 기갑 제4중대 특공대원 그들에게, 수색중대 그들이 세운 앙케 전투 승리의 주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때문에 수색중대원 그들은, 전공을 빼앗긴 사실에, 너무나 억울해 하였다.
앙케 전투 지휘부는, 이 같이 앙케 전투의 진실을 왜곡하였다. 그리고 앙케 전투의 주역과 전공을 뒤 바꾸어 놓은 사실을 시정하고자 지휘관들을 찾아가서 단판을 짓자고 M-16자동소총을 난사하였다. 그리고 그들 수색중대원들은, 몹시 흥분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성을 잃고 설쳤다. 그러다가 그들은,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누워있는 먼저 간 전우들의 시신 앞에서 분을 삼키며 자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명령에 죽고 사는 전쟁터에 있는 군인의 몸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끝내, 앙케 전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때문에 이앙케 전투에서의 승리의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하지만, 한 많은 이앙케 작전이 진실이 왜곡된 것을 알면서도 보안사항이라는 빌미로, 앞으로 십 년 동안은, “이 비밀을 발설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강요 때문에 한 마디 말도 못하고 42 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앙케 의 눈물’ 이란 이 작품을 통해서 진실을 낱낱이 밝히려고 한 것이다. 이 같은 앙케 전투의 진실을 묻어 둔 채, 왜곡된 역사를 후대에 남김으로써, 거룩하게 장렬히 전사한 전우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마는 역사적 죄인이 결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
월맹 특공대 장교의 증언 (2)
주 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철수한 지 약 2 년여 만인 1975년 4월30일 10시 20분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월남군은 공산월맹군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민주월남공화국은 ‘패망’하여 역사의 무대 뒤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민주월남공화국이 ‘패망’한지 약 17년이 지난,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과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은, 국교 수교에 합의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MBC-TV방송국에서는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국교 수교를 경축하는 기념으로 월남 전사에서 최대 격전지였던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 로 불렀던 638고지 전투현장에서 특집 방송을 방영 하였다.
지금도 앙케 전투에서 산화한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때문에 치가 떨리는 것 같다. 또,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그리고 수많은 젊은 목숨을 빼앗아 간 원혼이 서린 한 많은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638고지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 TV화면에 뜨는 것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때, 동료 전우가 수류탄을 투척하다가 실수하여 그 전우가 은폐 엄폐해 있던 구덩이 속으로 그 수류탄이 굴러들어 갔다. 그 수류탄은 그 구덩이 속에서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 전우는 배 바깥으로 튀어 나온 창자를 움켜잡고 엄마, 엄마, 엄마, 세 번을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죽어갔다.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가던 그 전우의 모습과 시신들이 쌓이고 피로 물들여 졌던 그 전쟁터, 몸서리 쳐졌던 한 많은 앙케 패스 638고지, 그 악몽 같은 참상이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우들의 모습이 새삼 클로즈업 되어 왔다.
약 42 년 전 그때, ‘피의능선, 죽음의고지’ 라 부르던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 참호 속에 엎드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절망과 공포에 떨며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또, 전우들의 마지막 숨져가는 모습들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고국에 계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피맺힌 절규가 생생히 떠올라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당시의 절박한 순간을 생각할 때, 지금도 저자가 살아 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당시 주 월 한국군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많은 피를 흘리며 공격을 감행하였다. 반면에 월맹 특공대들은 638고지를 사수하기 위해서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방어 작전을 펼쳤다.
그 당시 적이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가 638고지 정상에서 MBC-TV 방송과 인터뷰를 하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때 “한국군(따이한)들은 쓰러지고 쓰러져도 끈질기게 인해전술작전으로 계속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증언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 들, 주 월 한국군 병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병사보다 용감하고 강했다. 하지만 앙케 전투에서의 전략과 전술작전은 월맹군이 한국군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의 증언이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적군으로서 서로가 총부리 겨누며 죽고 죽이며 싸웠던 사이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는 그 월맹군 특공대 장교에게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앙케 작전 지휘부는, 앙케 전투 승리의 주역을 수색중대에서 제 4중대 3소대로 바꾸어 버렸다. 또, 앙케 작전에서 수색중대의 작전기록(전투상보)을 완전히 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주 월 한국군 지휘부는 앙케 작전의 진실을 왜곡하였다. 반면에 그 당시에 서로 싸웠던 적이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가 앙케 전투에서 수색중대가 펼쳤던 작전을 진실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당시 적이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는 앙케 전투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앙케 전투를 지휘했던 지휘관 그들은, 지금까지 앙케 작전에 대한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그리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 앙케 작전 상황실에 근무 했던 몇몇 전우들도 그 당시 무전기를 통해 보고된 전투 상황을 중심으로 하여, 작성된 앙케 전투 전사기록은 정사이고, 그 당시 638고지를 방어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의 증언과 또, 그 당시 638고지를 공격했던 병사의 생생한 증언은 야사라고 우기고 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638고지를 방어 했던 월맹군 특공대 장교의 증언과 그리고 그 당시 638고지를 공격했던 수색중대 그들의 증언은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그 당시 전투상황은 이랬다. 적 월맹군들은 한국군 장교들만 특별히 노렸다. 그들은 A K-47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하였다. “따 콩!~”하는 A K-47소총 한 발에 한국군 장교 한명씩 쓸어 졌다. 때문에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와 또, 기갑연대 제2중대 3소대장 임 동춘 중위가, 그들 저격수가 쏜 총을 맞고 희생 되었다.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는 저격수의 총에 철모 바로 밑, 이마를 맞고 허연 골이 머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기갑연대 제2중대 3소대장 임 동춘 중위는 638고지 정상, 바위틈 속에서 구축해 놓은 적 월맹군들의 벙커를 내려다 보다가, 저격수의 A K-47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 하고 말았다. 그는 철모를 쓰고 바위틈 속에서 고개만 조금 내밀고 있었다. 바위와 철모 사이는 일센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센지 사이로 그의 이마에 명중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한국군 위관 급 장교, 그들은 계급장과 지휘관 마크 견장까지 다 떼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적 저격수들은 한국군 장교들을 찾아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전병의 움직임을 보고 한국군 지휘관 장교들을 찾아내어 저격을 하였다. 때문에 한국군 위관 급 장교 그들은 기겁을 하였다. 그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격수에 대한 아주 심한 노 이 로제에 걸려 있었다.
그들은 고육지책으로 무전병을 자신들 옆, 가까이 오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그들 장교들은 무전병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다. 본관인 나를 저격당하게 하려면 내 옆으로 오라고 하 기도 하였다.
때문에 참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벙커 속 상황실에 있는 영관급 지휘관들은 전투 현장에 있는 위관 급 지휘관들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 하 기 위해, 무전병에게 지휘관을 빨리 바꾸라고 큰 소리로 독촉을 한다. 하지만, 무전병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무전기 감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되고, 재송, 재송 하다가 입장이 난처해지면 무전기 스위치를 꺼버린다.
때문에 전투 현장과 벙커 속 상황실과 괴리가 생겼다. 전투 현장에 있는 지휘관들과 무전병은 상부에서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면 무조건 무전기 스위치를 꺼버리는 것이 일수였다. 때문에 무전기를 통해서 상황실에 보고된 상황은 신뢰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 대표적인 사례가 임 동춘 중위의 전사 기록이다.
첫째 : 전투 상보에는, 그의 소속이 제2중대 1소대장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제2중대 1소대는, 1972년 4월13일 오전, 맹호 기갑연대 제2중대, 중대 전술기지를 출발하였다. 그들은 캄보디아 국경 쪽 플레이쿠의 수송도로인 19번 도로상 16번 교량 위, 제2중대 책임 전술기지인 진달래 고개를 넘었다.
때문에 그들은 (4월13일에서 4월18일까지) 약 6일 동안에 제2중대 1소대 작전인원 30명중 전사자와 전상자를 포함한 17명이란 많은 부하를 잃고 중대 본부로 철수 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대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2소대와 화기소대, 또 16번 교량을 담당하고 있던 제3소대장 임 동춘 중위는, 4월20일 638고지 2차 공격에 투입되었다. 때문에 그 당시, 임 동춘 그의 소속은 제2중대 3소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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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케 작전의 배경 (3)
둘째 : 그는 638고지 9부 능선 적들의 벙커 앞에서 적들이 쏜 포탄에 대퇴부를 맞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대퇴부에 상처를 입고 수류탄으로 적들의 벙커 5개를 파괴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전사 기록은 상식 밖의 기록이다. 어떻게 해서, 적들이 자신들의 벙커에 포 사격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그 당시 그 곳에는 적들의 벙커는 한 개도 없었다. 또 수류탄으로는 벙커를 파괴할 수 없다. 그리고 대퇴부에 큰 중상을 입고 혼자서 수류탄으로 적 벙커 5개를 파괴 했다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참고로, 수색중대는 벙커 속에 있는 적 2-3명과 약 20-30m 거리를 두고 하루를 대치하고 있었다.
이 같은 임 동춘 중위의 실제 전사기록과 맞지 않은 엉터리 전사 기록으로 기갑연대 제2중대 3소대장 임 동춘 중위에게 일 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처럼 전투현장과 전사기록이 맞지 않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전투현장 지형과 전투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 병이, 무전기를 통해서 보고 받은 것만 가지고, 고 임 동 춘 대위의 전사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뿐이다.
따라서 앙케 전투에 수여된 태극무공훈장은 빛을 바라게 되었다. 적 사살 한명 없고, 전공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대한민국 최고무공훈장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고도 장군으로 승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앙케 전투 지휘관들 중에서 장군으로 승진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때문에 이것이, 앙케 전투의 진실을 왜곡 하였다는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는 셈이다.
앙케 작 전 배경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1번 도로의 중부지역에서 갈라져 나온 19번 도로는 캄보디아 국경과 인접한 내륙지방 플레이쿠에 주둔한 월남군 제 2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였다. 퀴논 항에서 식량, 탄약, 유류, 장비 등 각종 보급품을 적재한 대형차량이 매일 1백여 대 이상이 통과하는 주요 군사도로였다.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앙케 고개에는 원래 미 제101 공수사단의 예하부대가 장악하고 있던 책임 전술지역이었다. 미 제101 공수사단이 1971년 7월에 본국으로 철수함에 따라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1중대가 인수하여 지키고 있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1중대는 19번 도로의 산악능선에 나있는 급커브를 Q-커브라고 명명하였다. 남서쪽 600고지에 제1중대 책임 전술기지로 점령하고 있었다. 이 19번 도로는 약 7.5km에 달하는 고개로서 이 통로는 해발 500m 내외의 산악지역인데다 원시림이 무성한 정글지역이었다.
그 일대의 주요지역은 앙케 고개의 정상인 638고지를 비롯하여 553고지, 544고지, 무명고지, 240고지, 168고지 등으로 높고 낮은 고지 군으로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638고지는 Q-커브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이 638고지는 앙케 패스 일대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다. 19번 도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역할을 해왔던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의 중대본부를 비롯한 전 작전지역을 감제 관측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 638고지에는 미 제101 공수사단이 장악하고 있을 때는, 약 1개 소대규모가 파견되어 주둔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제1중대가 인수하면서 그만 폐쇄해 버리고 말았다. 1971년 8월 주 월 사령부의 소대훈련 강화지시로 폐쇄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638고지는 제1중대 소도산 아군전술기지 보다 약 38m나 더 높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아주 중요한 책임 전술기지였다.
전술 상, 월남전에서 주 월 한국군이 부대전술기지를 방어하는 작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였다. 부대와 중대의 전술기지 주변에 높은 고지나 적의 박격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는 지역이거나 취약한 지역에는 아군병력을 주둔시켜 부대전술기지 방어 작전을 하는 것이 월남전에서는 무엇보다도 기본 전술전략상 대단히 중요하였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앙케 패스 기갑 제1중대 책임 전술기지에서는 전략과 전술작전의 기본 방침을 무시하였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아군 전술기지 보다 약 38m정도가 높고, 적들의 직사포와 박격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있었다. 이처럼 중요한 638고지의 전술기지를 폐 쇠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매복 작전과 경계를 하지 않고 방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약 1개월 동안 방치를 하였다. 때문에 월맹정규군 제3사단 12연대와 제95B연대 63대대 제450특공대대 등 증강된 1개 연대 병력이 638고지 밑에 있는 350고지 능선으로 뻗어 내린 개활지 저지대로부터 638고지 뒤쪽 능선을 따라 올라오다가 능선 중간쯤 천연동굴에 월맹정규군 제12연대 본부 상황실을 설치하였다. 그들은 계속 능선을 따라 올라오면서 638고지 정상과 그 주변 19번 도로의 일부분을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주인 없는 빈집에 들어오듯 무혈입성, 점령하게 되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전우들이 638고지 뒤쪽에 경계와 매복 작전을 하 기 위해 벙커 두 개를 구축해 놓았다. 그들은 한국으로 철수준비와 소대 강화 훈련을 하느라 경계와 매복 작전을 나가지 않고 방치하였다.
때문에, 월맹군들이 무단으로 이 두개의 벙커도 점령하게 되었다.
적들은 이 두개의 벙커를 천혜의 요새처럼 이용하였다.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는 미군들이 버리고 간 자재를 이용하여 벙커를 보강하고 참호와 거미줄 같은 교통호를 구축하였다. 그들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 속에서 철통같이 방어 작전으로 638고지를 사수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군은 난공불락과 같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막대한 전비와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발생했다. 주 월 한국군 맹호용사들과 지원 나온 백마용사들과 미 항공 폭격과 무장헬기 폭격의 지원을 받으면서까지 천혜의 요새와 같은 638고지 탈환작전과 차단된 19번 도로를 개통하기 위한 物量戰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때문에, 적들에게 아군의 허점을 노출시킴으로써 아주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 상 오판의 결과,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는 앙케 패스 638고지 방어 작전에 중대 실책과 허점을 적들에게 노출시키고 말았다. 월맹정규군의 대공세 감행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지 않아도 될 앙케 전투로 피아간에 수많은 전사자와 전상자가 발생했던 처절한 전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도, 패할 수도 있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피아간에 공방전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해와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지휘관들은 방어 작전에 실패한 것은 반성은커녕, 진실을 강요된 침묵 속에 숨긴 채 역사는 왜곡되고 미화된 드라마와 조작된 영웅담으로 대신 채워짐으로써 인류 전쟁사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만 것이다.
주 월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한 지 약 7여 년이 경과한 1972년 3월초, 청룡 마지막 부대와 육군 철수 1진이 퀴논 항을 떠났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미국과 월맹 대표들이 평화 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전쟁은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가운데, 주 월 한국군 본진도 차분히 한국으로 철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까지 주 월 한국군에게 계속 밀리기만 하던 월맹군과 베트콩들도 1972년이 접어들자 전력을 비축하여 구정공세에 버금가는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였다.
- 계속 - (3511)
그 놈의 고래잡이 때문에 (4)
같은 해 3월말 경, 그들은 미군들도 더 이상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드디어, 월맹군 그들은, 15개 사단 중 12개 사단을 투입해 춘계 대공세를 감행하였다. 바로 그 시점에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는 1972년 4월8일, 연대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악명 높은 킬러계곡으로 작전개시 하루먼저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로켓포와 M-60경기관총을 장착한 무장헬기 두 대가 굉음소리를 내면서 앞뒤로 엄호를 하였다. 지상에서는 선두에 A PC-장갑차에 탑재된 중기관총이 금방이라도 총알을 토해낼 기세로 칸 보이를 하였다.
그 뒤를 이어 작전 병력을 실은 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후미에도 캐 레 바-50 중기관총을 탑재한 무장트럭이 삼엄한 경계를 하면서 줄을 잇고 있었다.
포장된 도로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때는 꼭 고국의 시골 농촌 풍경과 같았다. 마치! 고향 길을 걷는 착각에 잠시 노스탈쟈 의 환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같이 펼쳐진 이국풍경은 신비의 절정이었으며, 야자수 그늘 밑에서 물소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과 마을 어귀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은 전쟁의 상처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월남 빈딩 성 빈 케 지역에 주둔해 있는 맹호 기갑연대 책임 전술기지에서 킬러계곡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헬기로 한꺼번에 랜딩작전을 하 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때문에, 시간 단축을 위해 하루 먼저 제1단계 작전으로 차량으로 킬러계곡 근처까지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하루 밤 숙영을 하고, 다음날 1972년 4월9일 제2단계 작전으로 헬기를 타고 킬러계곡 작전지점에 랜딩 하여 연대작전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바로, 이 때였다.
연대 전술기지에서 악명 높은 킬러계곡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 중, 오전 10시경 중대본부에서 무전기를 통해 전달이 왔다. 중대 병력은 현 위치에서 휴식하라는 전달이었다. 작전병력을 싣고 이동하고 있던 차량들이 비포장도로가에 일제히 길게 주차를 하였다. 작전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수색 중대원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산개하여 경계를 하였다.
그들은 전통과 관례에 따라, 이번작전에 처음으로 참전하는 월남 신참들을 본대에서 약 50-100m 양 옆 좌우측 전후방으로 청음초(작전 중에 본대가 휴식을 취하거나 혹은 대기할 때, 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본대 양 옆 좌우측 전후방으로 몇 명만 나가서 적의 동태를 살피며 적들이 기습공격을 해 오거나 은밀히 침투해 오면 본대에서 즉시 전투태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본대 지휘부에 긴밀하게 연락과 보고를 하며, 적에게 발각되지 않게 은폐 엄폐하여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관측하는 것)를 내 보내었다.
다른 곳 작전과는 달리 휴식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출발하라는 전달이 없었다. 때문에 중대원 모두들 궁금해 하였다. 그들, 중대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모두들 웅성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중앙에 위치해 있는 중대본부에서 무전기를 통해 또다시 전달이 왔다.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현 위치에서 계속 대기하라는 전달이었다.
그 때까지 계속 지상과 무전교신을 하면서 선회 비행을 계속하고 있던 무장헬기 두 대도 하늘 저 멀리 사라져 갔다.
공중에서 선회하며 대기하고 있던 무장헬기 두 대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수색중대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의 야해 하며 쑥덕거렸다.
“이번 작전은 끝난 것 같다.”
“무장헬기 한 대에 보병 1개 중대 화력보다 몇 배 우세하다는 무장헬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이번 작전은 취소 될 것이야,” 서울대학을 나왔다는 최 지원 병장이 나름대로 추측하여 뇌까렸다.
그들은 전쟁의 긴장감에서 벗어났는지? 소대 내에서 나름대로 영향력 있고 입담이 좋다는 김 종일 하사와 최 지원 병장, 권 준 병장, 김 영진 병장, 한 기석 병장 등 소대 핵심멤버 몇 명이 모여 앉자, 한국으로의 철수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고 있었다.
“이제 월남전은 종 다 쳤는데 ……”
귀국일자가 얼마 남지 않은 느림보 한 병장은 무엇 때문에 작전을 하러 가는지 모르겠다며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월남전은 이제 종, 다 쳤다는 대화에 끼어드는 수색중대 제2소대의 대변인 격인 점박이 상병(얼굴에 검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점박이 상병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의 성과 이름이 영 기억이 나지 않아 앞으로 점박이로 호칭을 하겠다.
이 점박이 상병은 잘 떠벌리고 부지런한 성격 탓으로 대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점박이그는, 꽁 비산 삼거리 매복 작전에서 수훈을 세웠다. 그는 그 공로로 월남전에서만 한시적으로 수여했던 포장 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는 고국으로 휴가를 못 간 대신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호치민)시에 휴가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점박이 상병은 사이공에 휴가 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하고 포경수술을 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휴가를 가게 되었던 것이다. 점박이 그는, 고래를 잡았다는 것을 망각한 채, 잠깐의 쾌락과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이공의 유흥가 붕붕 센터에서 프랑스 남성과 베트남 여성이 결합하여, 혼혈아로 태어난 이국적으로 잘 생긴 빼어난 미모의 아가씨와 하룻밤 낭만을 즐기며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아물지도 않았던 그 자리가 실밥이 터지는 통에, 한 밤중에 병원으로 후송되어 또다시 재수술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놈의 고래잡이 때문에 이번 휴가는 영 망쳐버리고 말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우리 일행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꽁 까 이 하고 끝까지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는 점박이 상병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가 포경수술 한 사실은 의무중대 위생병이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정말 붕붕 센터에서 꽁 까 이 와 잠자리를 하다가 실밥이 터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실려 가서 재수술을 받았는지 우리 일행은 반신반의하였다.
이 떠버리 점박이 상병은, “이제, 월남전 종도 너무 많이 쳐서 종이 다 부서져 버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 부서진 종도 한국으로 다 가지고 가고 없다고 혼자 떠들어 댔다.
이때, 작전지역에서 소대원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던 전북 부안출신 장 성춘 상병이 대기시간을 이용하여 일제 야 시 카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촬영 영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소대장과 고참병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중대에서 인기가 좋고 말발이 센, 권 병장 곁으로 다가가서는 마치 자신이 종군기자라도 된 것처럼 알랑거리면서 하는 소리가 걸작이었다.
“그는 나중에 추억으로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부추기면서, 권 병장에게 사진 촬영할 것을 은근히 권했다. 권 준 병장은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이렇게 대꾸했다. “야!, 장 상병! 여기는 배경이 별로야! 하며, 내일 킬러계곡 작전 때, 헬기에서 랜딩 하는 장면을 멋지게 한방 박아줘”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는 사진 촬영은 하지 않겠다고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애걸복걸 했다.
- 계속 -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 (5)
“권 병장님!
헬기에서 랜딩 하는 촬영은 순간 포착을 해야 하는 고도의 촬영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무척 힘도 들고, 실패 확률이 높은 관계로 돈을 몇 배 많이 받아도 손해납니다. 그 대신 여기서는 아주 싸게, 아니! 권 병장님에게는 무료로 한 장 박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은근히 권 병장 그를 부추기자, 마음 약한 권 병장도 못이기는 척 하였다.
그러면서 그도, 도로가에 주차해 놓은 트럭위에서 사진 한 장을 선착순으로 찍고 나니까, 구경하고 있던 중대원들도 뒤따라서 가까이에 있는 트럭과 맨 앞 선두에 중기관총을 장착한 A PC-장갑차와 맨 후미에 있는 캐 레 바-50을 장착한 무장트럭을 배경삼아 사진촬영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권 병장은 중대 내에서는 신임이 두텁고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는 연대 인사과에 있는 고향선배 홍 하사가 수색중대 서무에게 잘 봐 주라는 부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든든한 힘이 되는 배경은, 수색중대 제1소대 향도였던 서 영 학 하사와 초등학교 동창생인 관계로 분대장인 김 종일 하사와도 더욱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또,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때문에 그는, 자연스레 그들과 잘 지낼 수가 있게 되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제1소대 향도 서 영 학 하사와는 군 입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먼 친척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막역한 친구사이라고 했다.
제 2소대 향도이지만, 실제 선임하사 역할을 대행하는 신 민주 하사는 연대 앞 촌락에 있는 사랑하는 꽁 까 이 때문에 귀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 민주 하사 그가 귀국을 하려고 하면, 그 꽁 까 이 아버지가 빈딩 성장을 찾아가서 귀국을 하지 못하게 연대장에게 압력을 넣었다. 때문에 귀국을 하지 못하고 월남에서 근무한지가 3년이나 지났다. 때문에 그는, 연대 내에서는 월남 땅에 말뚝 박은 특별한 케이스이었다.
연대장과 중대장도 특별히 배려해 준다는 신 민주 하사도 권 병장과 서 하사와 초등학교 동기생이라는 것을 알고 잘 대해 주는 처지었다. 그리고 신 민주 하사는 연대내 수송부 정비고 옆에 있는 급수장에서 수색중대 식당과 샤워장에 물을 공급하는 물차를 인솔하는 것이 그 의 업무였다. 쉬게 말해 물차 선임 탑승자였다.
수색중대가 하는 임무는 연대 전술기지 내에서 유일하게 수색 정찰 및 매복 작전을 하는 전투중대이다. 때문에 전투식량인 C-레 이선이 수색중대에만 단독 지급되었다. 그에 반해, 작전이 없는 비전투 중대에는 A-레 이선과 K-레 이선만 지급되고 전투식량인 C-레 이선은 지급되지 않았다.
때문에, 비 전투중대인 근무중대 고참병들은 수색중대에 물 운반 지원 나가는 급수차 운전병에게 전투식량(C-레이선) 을 얻어 오라고 시키는 게 일쑤였다. 급수차 운전병은 선임 탑승자인 신 민주 하사에게 C-레 이선을 달라고 조르다 주지 않으면 숨어서 급수차 운행을 하지 않고 그를 골탕 먹이기도 했다.
이럴 때는 보통1종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고국에서 대대장 2호차 운전병으로 근무했던 권 병장이 급수차를 대신 운행해 주었던 관계로 신 민주 하사에게 신임을 더욱 두텁게 얻게 되었다.
이처럼 소대원들에게는 악명 높은 군기반장이었던 신 민주 하사도 이런저런 관계로 권 병장에게는 잘 대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소대장에게도 펜팔편지 대필과 소대 내무반 환경정리를 잘해서 중대장으로부터 칭찬을 자주 받는 관계로, 권 병장은 소대장과 소대원들에게도 능력을 인정받고 두터운 신임을 얻는 등, 그의 인기가 대단했다.
서울대학을 나왔다는 아는 게 많고 총명한 최 지원 병장이 이렇게 말했다. ‘빨간 명찰만 보면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그친다.’ 는 그 용맹스런 청룡부대 전우들이 한국으로 철수할 때, 베트콩들이 월남 민병대로 위장하여 공격하는 바람에 많은 피해와 희생이 있었다고 했다.
이런 사정에 깜깜했던 귀국길에 들떠있던 청룡전우들은, 그들이 월남 민병대인 줄로만 알고 아무 의심 없이 안심하고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청룡 전우들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는 척 하였다. 그 순간, 그들은 갑자기 돌변하였다. 그들은 총부리를 청룡 전우들에 들이대며 공격하는 바람에 부대를 엄호하고 지원할 야포와 중화기들까지 미리 한국으로 다 보내버린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 월 한국군 본진도 얼마 안 있으면 한국으로 철수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던 소대원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때문에 그들은, 월남 민병대로 위장한 베트콩들이 철수하는 우리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공격해 오면 어떻게 대처할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모두들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옆에서 소대원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제2소대 3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청룡부대 전우들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 이번 마지막 주 월 한국군 본진이 철수할 때는 미, 군용 수송기로 철수할 수 있도록 미군 당국과 협의 중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이 말을 들은, 김 영진 병장이 “잘하면 나도 비행기 한번 타 보겠구나.”하고 좋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평생에 비행기 한 번 못 타보고 죽는 줄 알았다 고 떠들어 댔다. 그러면서 그는, 저 높은 고관대작들도 타기 힘들다는 비행기를, 이 시골 촌놈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다.”며 들떠 있었다.
송아지 값과 일제 아 까 이 전축 사건을 피해서, 월남으로 도망 오다시피 온 것이 오히려 이처럼 비행기를 타 볼 수 있는 전화위복의 행운을 얻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그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계속 재잘거리고 있었다.
사실, 고국에서는 별을 단 장군들도 타 보기 힘든 비행기를 일개 병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때문에 본국으로 철수를 앞둔 주 월 한국군장병들을 어린애처럼 흥분케 하는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제 월남전은 종 다 쳤다.”고 불평불만을 터뜨렸던 느림보 한 병장은 탈기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하루 빨리 고국으로 철수 하게 되면 나도 잘하면 비행기 타고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척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비행기 타고 귀국하고 싶으면 철수할 때까지 여기에 말뚝 박으면 그 소원은 이룰 수는 있겠지만, 괜히 팔자에도 없는 비행기 한 번 타 보려다가,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월남 땅 어느 계곡에서 구천에 맴도는 원귀가 될 수도 있다.”
작전은 나가기 싫고 비행기는 타보고 싶어, 갈등과 고심에 빠져있는 한 병장에게 군번이 비슷한 동기생 권 병장이 은근히 핀잔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월남에서는 병사들이 비행기 타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헬기 타는 것은 한국에서 마치 시내버스 타고 다니듯, 다반사였다. 그런데, 병사들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이제 현실이 될 것 같은 느낌에, 전쟁의 긴박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데다 더군다나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도 극소수였다. 하물며 대규모 병력이 해외에서 비행기로 귀국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계속 - (3551)
클레모아 터지는 신호로 앙케 전투가 시작되다 (6)
수색중대 그들 모두는,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있은 지 약 2시간 쯤 지났을까, 또 다시 중앙에 위치해 있던 중대본부에서 무전기를 통해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번 연대작전은 취소하고, 빈딩 성 빈 케 지역에 있는 연대전술기지로 철수하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수색중대원 모두가 안도의 한 숨을 길게 내 쉬었다. 재 파월한 선임고참 서 종철 병장 말에 따르면, 그 악명 높은 ‘킬러 계곡’은 일본의 패망으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독립을 선포하고 월남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켰던 민족지도자로 추앙받는 월맹군의 지도자 호찌민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인도차이나를 식민통치했던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재상륙하자, 프랑스군과의 독립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월맹군들에게 프랑스군 일개 군단규모 병력이 몰살당한 곳이며, 지금도 베트콩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적색지역으로 아주 위험한 지역이라고 했다.
상부의 철수명령에 따라 그들은 수색중대 본부가 있는 연대전술기지에 도착 하였다. 그 들은 도착하자마자, 다시 상부에서 무전기를 통해 즉시 작전에 출동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연대 상황실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배낭도 풀지 않고 중대본부와 각 소대 내무반에서는 무전기를 24시간 개방해 놓고 상부의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5분대기조처럼 정글화를 신은채로 취침을 하여야 했다.
그들은 킬러계곡으로부터 연대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던 첫 날은, 긴박한 전운이 감도는 것 같아 무척 긴장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한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중대원 모두들 이것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안도한 수색 중대원들은 긴장이 확 풀렸다.
수색중대 그들 모두는, 내무반에 모여앉아 배낭 속에 들어있는 전투식량 C-레 이선을 꺼내 먹어 가며 펜팔편지에 대한 잡담으로 무료함을 달래다.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 불편하고 답답했던 정글화(신발)도 벗어 던진 채로 평소와 같이 취침을 하며 내무생활을 하였다.
수색중대는 킬러계곡으로 연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출동하던 중, 갑자기 작전이 취소되었다. 그들은 연대 전술기지 내 중대본부로 철수했던 날로 부터 약 3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앙케 지역에 주둔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세 이파(특공대)로 침투해 베트콩 5명을 사살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빈딩 성 빈 케 지역에 주둔해 있는 연대 책임전술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 월 한국군 최북단지역,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서 19번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앙케 패스 지역에는 예전 같지 않은 불길한 전운이 중대 책임전술기지를 감돌고 있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와 19번 도로 상공을 비행 중이던 미군 헬기조종사들이 638고지 정상과 19번 도로 일대에도 적들의 침투흔적이 보인다는 적정보고를 지휘부에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부에서는 이 같은 보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묵살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앙케 패스 지역은 중부 월남의 허리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였다. 앙케 협곡에 나있는 이 19번 도로는 약 7.5Km에 달하였다. 앙케 고개의 정상은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였다. 아군 전술기지가 있는 600고지는 638고지보다 약 38m정도가 낮고, 거리상으로는 약 300-400m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600고지에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가 위치해 있었다. 이 600고지가 위치해 있는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는 짙은 안개 속에서 그 치열하고 처절했던 앙케 전투 서막이 눈앞에서 긴박하게 펼쳐질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1972년 4월11일 새벽 04시경, 뿌연 새벽안개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짙게 내리 깔려 있었다. 그날 밤 순찰하사 박 태 균 하사는 평소와는 달리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바짝 긴장을 하였다. 또, 그는 더욱 더 근무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그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순찰을 자주 돌았다.
638고지 좌측에 위치해 있는 무명고지 쪽,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초소 앞이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그 곳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지뢰가 갑자기 터졌다. “그 주위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벌거벗은 수 명의 적, 세이 파(특공대)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박 태 균 순찰하사는 전방을 향해 설치해 놓은 전술 클레모아 격 발기 안전핀을 침착하게 풀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클레모아 격 발기를 힘껏 눌렀다.
그 순간, “과~과 쾅!~”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뜨렸다. 그 폭발음소리가 앙케 패스 협곡이 떠나갈 것 같이 그들의 귀전을 울렸다. 제 3선 전술 철조망과 함께 전술기지 앞에 설치해 놓은 수 백발의 전술 클레모아 산탄이 침투해 오는 적을 향해 비 오듯 쏟아졌다. 연이어 홍 문 희 일병의 M-16 자동소총과 M-60 기관 총구에서 “텅! 텅! 드르륵~탕! 탕!~”무수히 총알을 토해내었다. 또, 적들을 향해 시뻘건 불을 내 뿜고 있었다.
“이렇게 그 치열하고 처절했던 앙케 전투의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칠 새라, 아군들은 수류탄 1, 2번의 안전핀을 제거하였다. 적이 있는 지점을 향해 계속수류탄을 힘껏 투척했다. 아군의 기습에 기급을 한 베트콩들도 A K-47자동소총과 B-40 적 탄통으로 대응사격을 해왔다. 이렇게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아군 피해와 희생은 없었다. 그러나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 설치되어 있는 관망대가 날아가 버리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아군들의 맹공으로 “과~과 쾅!~ 드르륵~”탕! 탕!” 폭발음소리와 함께 적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소리도 가냘프게 들려오고 있었다. 연이어 뿌연 안개 속에서 바람을 타고 메케한 화약 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베트콩 세이 파(특공대)들은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주변에 3중으로 설치된 전술철조망을, 제2선까지 뚫고 침투하였다. 때문에 적, 수 명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2차 공격조로 대기하고 있던 4-50명의 적들이 도주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중대 책임 전술기지 내에 급히 비상을 걸었다.
그들은 곧바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동시에 그는, 대대상황실에 침투해 오는 세이 파(특공대)들과 지금 치열한 교전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무전기로 숨 가쁘게 대대상황실에 타전하였다. 제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주변을 계속 감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81mm 박격포를 적들의 예상 도주로에 집중 투하 하였다. 동시에, 4.2인치 박격포로 중대전술기지 상공에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조명탄 불빛은 세이 파(특공대)들이 침투하다가 사살된 시체들이 즐비한 중대전술기지 상공을 환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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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도 전황의 확대를 원치 않고 있다. (7)
날이 새면서 점점 시야가 밝아졌을 때였다. 그들은 주변지역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그 주변에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적들의 시체 5구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사살된 적 시체를 보고 모두들 몸서리를 쳤다.
순간, 그 들의 뇌리를 스쳐가는 광경이 소름끼치게 했다. ‘적들은 아군 전술기지 바로 코앞에 있는 전술철조망 3선 중 2선까지 침투하였다. 만약 적들이 나머지 1선 남은 철조망 밑에다 T NT 폭약을 꽉 채운 약 3-4m 길이의 대나무 폭 파 통(대나무 속을 파내고 그 속에다 T NT 폭약을 꽉 채운 것)을 넣고 뇌관을 이용하여 폭파시키는 것을 신호로 하여,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40-50명의 공격조가 물밀듯이 쳐들어 와서 교통호를 누벼가며 벙커(내무반)와 초소에 방망이 수류탄을 투척했더라면 ……’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아찔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시점에 미국과 월맹과의 파리 평화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 월 한국군 그들에게는 탄약이 제한 공급되고 있다. 미군도 전황의 확대를 원치 않고 있다. 항공기 출격도 제한한다는 정보를 월맹군 그들은 교묘히 이용하였다.
적들은 주 월 한국군 최북단에 위치한 앙케 패스 일대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지로서 19번 도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역할을 해왔던 아주 중요한 지역에 위치해 있는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를 괴멸할 목적으로 1차 세이 파(특공대)작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때까지는 세이 파(특공대) 공격으로 인한 아군의 피해는 없었다. 아군은 침투해 오는 적 5명을 사살하였다. 또, 많은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도 올렸다. 이 같은 새벽의 짧은 상황은 그 치열하고 처절한 앙케 전투의 서곡을 예고했다.
하지만, 아군은 적들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 또, 아군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정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였다. 또 그들은, 불길한 전운이 감도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또, 아군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는 638고지에 경계와 매복 작전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줄이야 …….
그러나,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와 멀리 떨어져있는 빈 케 지역에 위치해 있는 기갑연대 책임 전술기지 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색중대 장병들은 새벽에 일어났던 교전상황과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곳 앙케 지역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첩보를 몰랐다. 때문에, 그들은 그때까지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 월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 중, 최북단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적들이 침투해 왔다. 때문에 적, 세이 파(특공대)들과 치열하고 처절한 피아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전날 미명에 교전상황이 있었던 다음 날인 1972년 4월 12일 아침이었다. 내무반에서 작전 출동을, 대기하고 있던 수색중대원들에게 작전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그 한 많은 앙케 패스 19번 도로 옆, 죽음의 계곡으로 불렀던 앙케 패스 협곡으로 작전 출동 명령이 상부로부터 하달된 것이다.
여느 작전 출동할 때와는 달리, 상부에서는 보안을 유지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부에서는 연대 전술기지 연병장 한 가운데를 피해서 연병장 한 쪽 구석, 외부에서 볼 수 없는 건물 뒤에 집합해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헬기를 기다리며 잡담과 장난을 치며 대기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연대정보과 정보장교[대위]가 와서 현지상황설명을 해 주었다. 평소, 다른 지역 작전출동 할 때와는 달리, 해주지 않던 현지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때문에 이번 앙케 작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해주는 현지상황 설명이 어쩐지 개운치가 않았다. 또,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수색 중대원들은 이 같은 긴박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 정보 장교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월남군과 미군으로부터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제1중대 책임전술기지 주변, 앙케 패스 협곡에 베트콩 3-5명 정도가 출현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들은 무적의 수색중대만 출동한다면 지레 겁을 집어먹고 급히 도망칠 것이라고, 그는 현지 상황설명을 이렇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수색중대가 앙케 협곡에 랜딩 하여 베트콩들을 쫒아 버리면 작전은 간단히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기갑연대 정보장교[대위]는 수색중대가 헬기에서 랜딩 할 앙케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이렇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런 현지 상황설명을 전해주고 돌아갔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늘, 다른 지역 작전에서도 정보장교 그의 설명처럼 최정예 수색중대가 출동하면 수색중대의 용맹성에 베트콩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 바빴던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이번 작전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헬기로 작전지역에 랜딩하면, ‘지난번 킬러계곡 작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찍지 못했던 사진 촬영이나 하면서 하루정도 몸이나 슬슬 풀고 갔다 오면 되겠구나.’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큰 불찰이었다.
그들은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앙케 전선에서 전운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도 모른 채 …….
수색중대 그들은, 그 악명 높은 킬러계곡 작전보다는 이번 앙케 작전이 훨씬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앙케 작전 출동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또, 그들은 킬러계곡 연대작전을 취소된 뒤, 돌아와서 배낭 속에 그대로 남겨 두었던 전투식량(C-레이 선) 3일 분의 기본 작전 식량도 2일분은 반납하라고 하였다. 하루 작전이기 때문에 하루분만 지급한다는 것이다. 다들 하루 작전이 틀림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약 3일 동안 내무반에 대기하면서 배낭에 그대로 있는 전투식량(C-레이 선)을 야금야금 꺼내 먹다보니 정작 반납할 C-레 이선이 모자라게 되었다.
씨-팔!
한 번 지급했으면 그만이지?, 어디 마 박(부정)치려고 반납하라는 거야 뭐야 하며, 그들은 이렇게 투덜대었다. 몇 몇 고참병들은 이렇게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중대 보급계와 실랑이를 벌였다. 이미 C-레이선 포장지를 다 뜯어 버렸으니, 마 박을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다 고, 참다못한 중대 보급계는 짜증스럽게 해명했다.
여기서, 수색중대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야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파월 장병들이 강원도 오 음 리 훈련소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월남에 도착하게 되면 또다시 월남 전투에서 필수 과정인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랜딩훈련과 클레모아 설치와 분리 및 레 콘 도 교육과 훈련을 약 2주간 받게 된다.
약 2주간에 걸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교관은 수색중대 부관이며 숙달된 조교는 수색중대 고 참 병사들이다. 그들은 교육과 훈련을 시키면서, 약 10분간 휴식시간에는 어김없이 수색중대에 대한 홍보를 한다.
“수색중대는 번개부대(기갑연대) 내 하나밖에 없는 특수중대이다.” 또, “최고로 용맹스러운 자부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는 수색중대이다.” 그리고 “연대장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중대이다.” 수색중대를 이렇게 신병들에게 자랑과 홍보를 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 되다시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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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중대의 비극이 시작되다 (8)
특히!
수색중대는, 연대전술기지 내에 주둔해 있으니까. 고국에서 오는 위문공연도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또, 번개극장에서 위문 공연할 때도 수색 중대원들이 무대를 독차지하다시피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목숨 걸고 힘들게 정글 속을 빡빡 기며 고생 한다고, 고국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인기연예인들과 같이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는 시간과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특별히 수색 중대원들에게만 배려해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색중대는, 용맹무쌍한 부대라고 긍지를 심어 준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곤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훈련병들에게 축구나 배구, 기타 각종 운동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거수하라 해서 손드는 훈련병들의 관등 성명과 군번을 메모하여 연대 인사과에 제출하면 대부분 그들은 수색중대로 특명이 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색 중대원들은 작전에 출동하고서도 남은 요원만으로도 작전 나가지 않은 연대 전술기지 내 다른 중대원들과 축구시합을 할라 치면 수색중대가 늘 이기는 게, 따 놓은 당상이었다.
수색중대의 주요임무는 수색과 정찰, 탐색과 매복이다. 그들은 작전을 마치고 연대전술기지 내 수색중대 본부에 돌아오면 체력단련을 위해서 운동만 주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중대원들 보다 운동을 비교적 잘 하는 편이다.
“수색중대는 연대작전을 수행할 때 항상 선발대로 작전지역에 투입된다.” 수색중대 제3소대에 배속되어 있는 공수특전단 전우들이 제일 먼저 작전지역에 헬기로 날아가 약 20-30m 상공에서 로 푸를 타고 랜딩 하여 1차로 평정하면, 그 뒤를 이어 수색중대원들은 로 푸 없이 2-3m 높이에서 랜딩 하여 주변 지역 사주 경계를 펼쳤다.
미군 헬기조종사들도 적들이, 헬기를 향해 쏘아 대는 대공사격에 불안해한다. 또,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떴다. 때문에 그들은 헬기를 착륙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공수특전단 전우들과 수색 중대원들이 밑에서 사주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을 공중에서 관측하고 난 다음부터는 안심하고 랜딩 지점에 헬기를 착륙시킨다. 헬기가 착륙하게 되면, 병력이 안전하게 랜딩 할 수 있다. 그 임무를 수색중대가 수행하곤 했다.
이제 월남전도 막바지에 이르러, 수색중대에 배속되어 있던 공수특전단 전우들도 청룡 마지막 부대와 함께 한국으로 철수하고 없는 관계로 수색 중대원들이 제일 먼저 작전지역에 투입되어 랜딩작전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 번 작전에서는 헬기사정이 여의치 않아 헬기가 3대밖에 오지 않았다. 평소 다른 지역 작전출동 할 때면 으레 5-6대 정도의 헬기가 와서 중대 병력을 실어 나르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헬기는 예정시간 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였다. 그것도 3대만 마지못해 도착한 것이 무언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출동준비 군장 검열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수색 중대원들은 헬기 한 대에 6명씩 탑승하고 1번 기를 선두로, 2-3번 기 순으로, 한 많은 앙케 패스 상공으로 날아가 한 참을 선회 비행을 하였다.
그들은 공중에서 안전한 랜딩지점을 물색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무전기를 통해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랜딩지점(B R 578447)이 확보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제1중대소속 일 개 분대규모의 삼엄한 사주 경계와 엄호를 받으며 랜딩작전이 시작되었다.
랜딩 지점은 앙케 고개 19번 도로 옆 개활지 근처였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앙케 협곡에 제1번 기부터 제3번 기까지 랜딩작전을 무사히 끝났다. 랜딩작전을 무사히 끝마친 미군 헬기조종사들은 기상악화로 더 이상은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황급히 미 공군 제7전술기지로 돌아가 버렸다.
한 참이나 지났을까, 헬기 한 대만 다시 돌아왔다. 헬기 한 대로 수색중대 병력을 실어 날랐다. 오전이 다 지나도록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었다. 나중에야 돌아온 헬기 조종사와 옆에 있는 M-60경기관총 사수들은 상냥했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 역역했다. 때문에 헬기 조종사와 M-60사수들은 적들에게 위협을 느껴서인지?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미군헬기 조종사 그들은, 수색 중대원들을 앙케 고개에 랜딩 작전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미 공군 제7전술단기지로 돌아가 버렸다.
“기상 악화는 미 헬기 조종사 그들의 핑계에 불과하였다.” 적 월맹군들이 앙케 패스 19번 도로 일대와 638고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미 헬기 조종사 그들은 공중에서 관측하고서는 위험을 느낀 나머지, 그들은 기상 악화 핑계를 구실삼아, 미 공군 제7전술기지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수색중대 제2소대가 맨 마지막으로 랜딩을 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앙케 패스 협곡은 잔뜩 흐린 날씨에 태풍 전야처럼 겉으로는 평온이 유지 되고 있었다. 먼저 랜딩한 중대원들은 마지막 병력이 랜딩 할 때까지 철저한 주변 경계 속에 사진 촬영을 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랜딩한 제2소대 3분 대원들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앙케 고개 19번 도로를 기준으로 하여 플레이쿠 쪽에서 방칸 쪽을 바라보았을 때, 도로 저 밑에 바짝 붙어있는 작은 고지가 하나 있었다. 그 고지가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이었다. 바로 우측에 경사가 완만하게 계속되고 있는 600고지는 제1중대 본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였다.
그 위쪽에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보다 약 38m가량 더 높은 고지가 바로 638고지라고 했다. 그리고 반대편 19번 도로 건너 좌측 편에는 월남 민병대 통신대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보다 약간 낮게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지리와 전황을 잘 알고 있는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로부터 19번 도로 주변의 특징으로 보아 적들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므로 수색중대 만의 공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갑연대장에게 무전기를 통해서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일단 적과 접촉을 유지하는 의미에서 공격을 시도해 보라는 연대장의 지시에 따라, 수색중대 그들은 무장헬기(UH-I H 및 건 쉼)두 대의 지원 하에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 쪽으로 공격 명령을 하달 받았다.
먼저 랜딩 한 수색중대 본부와 제1소대는 아래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 쪽을 향해 일렬 전술종대작전으로 19번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공격을 하였다. 또 제3소대는 19번 도로 밑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역시 일렬 전술종대작전으로 공격을 하였다. 그리고 제2소대는 19번 도로 위, 월남 민병대 통신대가 있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일렬 전술종대 작전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아 작전에 임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이 월남 민병대 통신대 밑에 있는 능선에 올라가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배낭에서 전투식량 (C-레이선)을 꺼내어 막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저 아래쪽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에서 “드르륵!” “탕 따 따따따!” “따다닥!” “따다닥!” 적들의 기관총소리와 함께 A K-47총소리가 콩 볶듯 요란하게 귓전을 울렸다.
기겁을 한 제2소대원들은 능선위에서 점심을 먹으려다 말고 일어나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9번 도로 옆에 주차장 모양의 공터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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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땡이가 부은 베트콩들(9)
19번 도로 옆, Q커브 비포장 황토색 그 공터에는 검은 물체가 5-6개 정도가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곳에 나뒹굴고 있는 5-6개의 검은 물체는 다름 아닌 제1소대 전우들의 시신이 틀림없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제2소대원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소름이 쫙 끼쳤다.
바로, 이때였다.
중대 본부 무전병한테서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이 날아왔다. 수색중대 본부와 제1소대의 희생과 피해가 크다고 하였다. 중대 무전병의 숨 가픈 목소리로 지원사격을 요청해 왔다. 제2소대원들은 먹으려던 전투식량(C-레이선) 깡통을 정글 속에 내팽개치고, 황급히 19번 도로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M-60기관총과 M-16자동소총으로 적들을 향해 일제히 지원사격을 실시했다.
“탕! 다타 탕!” “쉬 쉬쉬-쾅!”
공중에서는 미군 무장헬기 두 대가 로켓포와 M-60경기관총으로 포탄과 총알을 무수히 토해 내었다. 또, 로켓포구와 M-60기관 총구에서 시뻘건 불을 내 뿜고 있었다.
지원사격 요청을 받은 제2소대원들은 19번 도로 아래쪽 바위틈 속에 숨어있는 적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사격을 가했다. 또, 공중에서도 미군 무장헬기에서 로켓 폭격과 M-60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지상과 공중에서 무자비한 사격에 적들도 기가 질린 모양이었다. 때문에 그들도 사격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앙케 패스 19번 도로 Q-커브로 명명된 지역은, 우리나라의 영동 고속도로에 나있는 진부령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대관령과 같은 험준한 산악 도로처럼 급경사와 급커브였다. 때문에, 보급품 수송차량이 속력을 낼 수 없는 지역이었다. 또, 이곳은 베트콩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아주 위험한 지역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래 쪽 19번 도로 옆 Q-커브지점 바위틈 속에 숨어서 기관총과 A K-47소총으로 수색중대 본부와 제1소대원들에게 기습공격을 해 왔던 적들이, 바위 틈 속에서 두 놈이 고개를 살짝 내 밀었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두 놈은 B-40적 탄통 사수와 부사수였다. 이 베트콩, B-40적 탄통 사수와 부사수놈들은 겁도 없이 수색중대 제2소대가 있는 위쪽으로 B-40적 탄통을 발사했다.
예상치 못한 적의 기습공격에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어! 어!~ 저것 봐라! 저-어 개새끼들이 도망가지 않고 겁 대가리도 없이 우리한테 기어 붙어, 당장 내려가서 저 개새끼들을 작살을 내겠다고 김 영진 병장이 화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흥분했다.
최정예, 우리 수색중대에게 기어 붙는 것을 보니까. 이 곳 앙케 에 있는 베트콩들은 간땡이가 부어도 한참 부은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옆에 있던 권 준 병장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야, 무언가 심상치 않아!” 평소에는 우리들만 보면 삼십육계 줄행랑치기 바쁘던 베트콩들이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우리와 맞장을 뜰 기세로 기습 공격을 해 오는 대담성을 보니까. 그들은 베트콩이 아닌 고도의 특수 훈련을 받은 월맹정규군 특공대로 짐작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 종일 분대장이 나름대로 이렇게 추측하였다. 또 그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진단했다.
천만다행으로 적들이 쏜 B-40적 탄통은 수색중대 제2소대가 있는 곳까지는 도달하지 못 하였다.
제2소대원들은 B-40적 탄통에 대하여 오 음 리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기로는, B-40적 탄통은 직사화기이기 때문에 아래쪽에서 위쪽으로는 발사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래쪽에서 우리가 있는 위쪽으로 B-40적 탄통을 발사하였다. 때문에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무척 당황하였다.
저 개새끼들이 겁 대가리도 없이 우리한테 기어 붙어, 또 B-40적 탄통을 우리 쪽으로 발사해, 저 개새끼들은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모두들 흥분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도로 옆에 바위 틈 속에 숨어있는 Q-커브지점, 적들을 향해 M-60기관총과 M-16자동소총으로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바로, 이때였다.
19번 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 쪽에서 민간차량으로 보이는 흰 픽업 자동차가 바로 코앞에서 주 월 한국군과 베트콩들 간에 치열하고 처절한 공방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흰 픽업 자동차는 머플러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 뿜으면서 "왱~"하는 엔진 굉음소리가 숨이 차다는 듯이 베트콩들이 숨어있는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 급경사 길을 힘겹게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차량을 발견한 베트콩들이 느린 속도로 힘겹게 기어 올라오고 있는 흰 픽업 자동차 타이어를 향해 설치해 놓은 기관총과 A K-47자동소총으로 집중 사격을 가했다. 난데없이 베트콩들의 집중 사격으로 기습 공격을 받은 자동차는 몇 번 좌우로 기우뚱거리더니 도로가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반바지와 반팔차림의 민간복장을 한 운전기사가 차에서 급히 내려섰다.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차를 한 번 힐끗 쳐다보는가싶더니, 차는 그냥 도로가에 버려둔 채, 오던 반대 방향으로 조금 뛰어 내려가다가, 그는 무엇을 두고 그냥 내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다시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되돌아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차 속에 있는 카메라로 보이는 물건을 찾아 메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다시 지리산 전술기지 쪽, 아래로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적들은 앙케 협곡 19번 도로 옆 바위틈 속에 숨어서 A K-47자동소총과 기관총으로 수색중대 본부요원들과 제1소대원들에게 기습공격을 해왔다. 그들은 아군들에게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공중에서는 그 적들을 향해, 무장헬기 두 대에 장착한 로켓포와 M-60기관총으로 포탄과 총알을 쏟아 부었다. 또,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도 미군 무장헬기와 협공작전으로 M-60경기관총과 M-79유탄발사기, M-16자동소총으로 무자비하게 사격을 가하였다.
“아군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적들의 기를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아군의 맹공에 기가 꺾인 적들은 아군의 우세한 화력에 겁을 집어먹고 상황을 관망하는 듯, 잠시 잠잠하더니 또다시 기관총과 A K-47소총으로 사격을 가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피아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공중에서는 미군 무장헬기 두 대가 계속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무장헬기 조종사는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때, 미군 무장헬기 조종사가 카메라를 메고 19번 도로 Q-커브지점, 제1중대 지리산전술기지가 있는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가고 있는 흰 픽업 운전기사를 목격하게 되었다.
무장헬기 한 대는, 공중에서 로켓포와 M-60기관총으로 엄호 사격을 하였다. 나머지 한 대의 무장헬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19번 도로에 착륙하였다. 겁에 질려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치고 있는 흰 픽업 운전기사를 무장헬기에 태웠다. 무장헬기는 급히 이륙하였다. 급히 이륙한 무장헬기는,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아군 전술기지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그를 아군전술기지인, 안전한 이곳에 내려놓았다.
미군 무장헬기는 다시 19번 도로 Q커브 상공으로 돌아왔다. 두 대의 무장헬기는 협공작전으로 남아있는 포탄과 실탄을 다 쏟아 붓기라도 하듯이 무자비하게 천지가 떠나갈 덧 한 굉음소리와 함께, “탕! 다 타 탕!” “쉬 쉬쉬-쾅!” 폭음소리를 내면서 맹폭을 가하였다.
- 계속 -
중대 무전 망이 두절되었다(10)
무장헬기의 투!~투 투! 다타따! 하는 굉음소리, 로켓포 폭음소리, M-60기관총소리,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의 M-79유탄발사기와 M-16자동소총소리, 소대원들의 토해내는 탄성과 감탄사, 안타까워하는 비명소리와 왁자지껄한 욕지거리가 뒤섞인 앙케 패스 골짜기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실상을 방불케 했다.
‘이제는 적들도 아군의 막강한 화력에 기가 질렸는지?’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깊숙이 숨었는지?’
그렇게 시끄럽게 쏘아대던 사격도 멈추고 전선은 잠시 정적에 빠졌다.
미군 무장헬기 두 대도 마침내 실탄과 포탄을 다 소진한 모양이었다. 임무를 완수한 무장헬기들은 미 공군 제7전술기지 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때문에 다시 앙케 계곡 19번 도로 주변은 언제 그러한 생사를 거는 공방전이 있었느냐는 듯,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잠시 숨을 돌린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그동안 행방을 알 수 없는 제1소대와 중대본부 전우들을 찾아 목이 터져라 손나팔을 만들어 불러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더군다나, 수색 중대 무전 망 도 두절되어 교신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쯤 지나고 나서야 제1소대와 함께 중대본부 요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19번 도로 밑에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수색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제3소대원들이 그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초죽음이 되다시피 탈진한 모습으로 도로 아래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제2소대 3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권 준 병장은 제1소대 향도 서 영 학 하사가 무사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수색중대 제1소대 향도 서 영 학 하사는 제2소대 3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먼 친척간이며, 막연한 친구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권 준 병장과는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마침, 이때였다.
서 영 학 하사가 제1소대 맨 후미에서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19번 도로 아래쪽에서 귀 밑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힘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김 종일 하사와 권 준 병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힘없이 올라오고 있는 서 하사에게 급히 달려가 부축을 하였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나?”
그들은 그가, 미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그에게 다그쳐 물었다. 피가 흐르고 있는 서 영 학 하사의 귀 밑을 가리키며, “피가 나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권 병장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걱정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서 영 학 하사는, “나는 괜찮아!” 하였다. 다만, A K-47소총 탄환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야.” 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서 하사 그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두 사람은 연신 서하사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전우들과 우리 소대장님이 전사하고 말았어, 하고 그는 울먹이었다.” 그는 꽃다운 젊은 청춘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아 어 하며, 또다시 울먹이었다. 앞날이 촉망되는 우리 소대장님과 전우들이었는데 하며,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말을 꺼낸 서하사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같은 고향 대구출신, 제1소대장 임 진우 중위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우들의 전사소식에 권 병장도 망연자실하였다. 그는 목 놓아 슬프게 울고 있는 서하사와 함께 북받쳐오는 서러움에 슬프게 울었다.
갑자기 그 주변은 사나이들의 진하고진한 눈물바다로 변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중대원들도 한동안 숙연해져 눈시울을 적시며 오열했다.
초죽음이 되다시피 해서 기진맥진한 몸으로 돌아온 서하사는 19번 도로 수색, 정찰, 공격작전임무 수행 중, Q-커브지점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기다리고 있던 베트콩들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기습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그는,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는 적들의 기관총에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106병원으로 후송조치 되었다고 했다. 또, 제1소대장 임 진우 중위와 소대원 5명이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2-3명의 중대원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에 살아남은 중대원 모두들 망연자실하였다. “때문에 그 들은 적개심에 불타 분노의 이빨을 부드득 부드득 갈았다.”
서 하사 그의 자초지종 전하는 말에, 중대장 혼자만 106 병원으로 후송조치 되었다는 것을 고 참 병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는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 간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중대 본부와 제1소대를 일렬 전술종대로 19번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공격작전을 지휘하던 중, 매복해 있던 적들의 기관총사격으로 기습공격을 받아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중대장 전령이었던 천안출신 김 강산 병장과 옆에 있던 경주출신 이 인형 상병과 함께 압박붕대로 급히 지혈을 시켰다. 힘이 장사였던 김 강산 병장이 얼른 그를 등에 들쳐 업고 위험지역에서 급히 빠져나왔다. 그때 마침,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원중대에서 파견 나온 106mm무반동총을 탑재한 짚 차에 태워 교전지역인, 19번 도로에서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로 신속히 이동하였다.
“그는 급히 병원헬기를 요청해서 106병원으로 후송조치 시켰다고 했다.”
당시, 수색중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는 특공대를 조직해서 다시 공격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는 중대 전원이 다 함께 재공격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의 의견에 동의해 특공대 작전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특공대 규모는 1개 소대에서 1개 분대규모로 조직하기로 하였다.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는 비장한 각오로 소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19번 도로 위에서 도로 밑으로 먼저 내려갔다. 그는 도로위에 서 있는 소대원들을 향해 제1분대장 송 하사를 먼저 지명하고 김 영진 병장, 장 상병, 그 옆에 서있는 이 병장, 이런 식으로 지명하였다.
“제2소대장은, 그 들을 도로 밑으로 불러 내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공대로 명하였다. 차출된 특공대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대장 김진흥 중위의 의도대로 특공대 9명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출동할 특공대 선봉에는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 자신이 앞장선다고 했다.”
특공대 명을 받은 대원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묵묵히 제2소대장 뒤를 따라 제3소대장 정종 태 중위가 이끄는 제3소대 특공대원들과 합류하였다. 그들은 처음 교전이 있었던 19번 도로 Q-커브공터로 내려갔다. 그들 특공대원들은 행방불명된 전우들의 구출작전과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회수작전에 들어갔다.
한참을 지난 후, 수색중대 특공대가 Q-커브지점 공터 밑에 있는 배수로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때, 19번 도로 위쪽에 남아 있던 수색 중대원들은 M-60기관총과 M-16자동소총으로 아래쪽 Q-커브 공터지점 적들을 향해 일제히 엄호사격을 실시했다.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와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가 이끄는 특공대원들은 19번 도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배수로에 몸을 바짝 낮추었다.
- 계속 -
그 여대한테서 편지가 오면 무어라고 쓸 가요(11)
특공대 그들 모두는, 숨을 죽여 가며 엄폐은폐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Q-커브공터를 바라보니까!” 제1소대장을 비롯한 6구의 전우들 시신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처절하게 널브러져 있는 전우들의 시신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 특공대원들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극도로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들은 몸을 부르러 떨었다.
극도의 분노를 감추지 못한 김진흥 중위는 특공대원들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 회수작전에 들어간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김진흥 중위는 자신이 앞장을 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절반의 대원들은 나를 엄호하라고 하였다.” “또, 나머지 대원들은 내 뒤를 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김진흥 중위는 엄폐은폐하고 있던 배수로에서 Q-커브공터로 올라갔다. 그는 맨 앞 선봉에 서서 비장한 각오로 앞을 향하여 용감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19번 도로 옆, 바위 뒤에 숨어있던 베트콩들이 투척한 방망이 수류탄이 수색중대 제2소대장 앞에 날아와서 뚝 떨어졌다. “그 수류탄은 쩌~정!~과 꽝!”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였다. “그 순간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뒹굴면서 수류탄 파편은 무사히 피했다.”
그런데, 큰 바위 쪽에서 “따 으 으 럭!~따 콩! 따 콩~”하는 요란한 기관총 소리와 함께 A K-47총소리가 들려왔다.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의 머리 앞에 먼지를 일으키면서 총알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 이후부터 김중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 그는, 중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길로 장렬히 전사하고 만 것이다.” 그는 유달리 부하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자애로웠던 한국군 장교였다. 그는 평소 소대원 부하들에게 존경받는 용감한 군인이었다.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는 꽃다운 젊은 청춘의 꿈을 미처 이루어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저 세상길로 떠나고 만 것이다.
먼저 전사한 제1소대장과 그 전우들의 슬픔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앙케 패스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에서 전우들의 시신회수 작전에 들어가던 제2소대장 김중위는, 맨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들의 쏟아지는 탄우 속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수색 중대원들은 망연자실 했다. 또, 그들은 슬픔에 젖어 오열했다.
“때문에 앙케 패스 계곡은 전우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졌다.” 바로, 눈앞에서 적들의 흉탄에 벌집처럼 온 몸이 한 군데 성한 곳 없이 낭자한 피로 흥건하게 젖은 시신을 대책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참담한 현장을 바라보는 수색 중대원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특공대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소대장 전령 류 상병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큰소리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며 오열 하였다. 또, 그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아래 쪽 소대장 시신이 있는 곳으로 울면서 뛰어 내려오는 것을, 저 앞에 서있던 권 병장이 그를 가로막았다. “가면 안 돼! 저기는 너무 위험해!” 내려가지 못하게 그를 제재 하였다.
“권 병장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 자락으로 훔쳐가며 꺼이꺼이 울었다.” 권 병장 그는, 한 때, 소대장 김진흥 중위에게 펜팔편지를 대필해 주었다. 때문에 그는, 그의 집안 내력과 인품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전남 해남출신으로 칠 남매 중 막내라고 했다. 6남매 모두 다 대한민국 국군 현역장교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누님 한 분도 현역간호장교로 복무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그의 집안은 대단한 명문가로서 칠남매 모두를 대한민국 국군장교로만 배출한 보기 드문 군인 집안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단한 명문가로서, 애국자 집안이었다.’
그때, 그 여대생에게 펜팔 편지를 대필 하였을 때, “김진흥 소대장의 모든 장점을 다 나열하였다!” 그를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미남형의 유능한 군인’이라고 약간 과장을 하여 소개하였다.
그러나 상대가 중앙대 연극학과에 재학 중인 빼어난 미모의 탤런트 지망생이란 정보에 혹시 편지 답장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였다. 그 여대생이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연대 전술기지 내 수색중대가 내무반으로 사용하고 있는 벙커 옆, 미니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공작새 깃털을, 밤에 몰래 가위로 잘라 와서 편지 봉투 속에 넣어 보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지혜를 총동원하였다.
또, 그는 온갖 정성을 다 드려서 편지를 보냈는데, 제 아무리 빼어난 미모의 여대생이라도 이 귀하고 신비한 공작새 깃털에 새겨진 정성과 그의 지혜에 감탄하여 틀림없이 편지 답장을 보내 올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그 빼어난 미모의 탤런트 지망생, 여대생한테서 편지 답장이 오면 무엇이라고 편지답장을 쓸까요?” 권 병장 그는, 소매 자락이 흥건하게 젖도록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또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오열하였다.
그 이후, 빼어난 미모의 그 여대생한테서 편지답장이 왔다. 김중위님의 편지 첫 구절에 ‘폭음만이 귓전을 울리는 전선의 밤입니다.’ 라는 사연이 전혀 실감을 못 느낄 만큼, 이곳 고국의 밤하늘에는 평화롭게 별들만이 속삭이듯, 반짝거리는 밤입니다. 내 침실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과 국립묘지에 외로이 서 있는 가로등은 게슴츠레 졸고 있습니다.
지금 MBC 라디오에서는 한밤의 음악편지의 시그널 방송이 감미롭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파월장병들에게 보내는 사연을 낭랑한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듣고 있자니, 문득 김중위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내 폐부에 사무쳐 와,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이 밤도 김중위님의 늠름한 모습을 그리면서 M B C-문화방송 ‘한 밤의 음악편지담당자에게 김중위님에게 보내는 사연을 신청했다는 내용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받아본 귀하고 귀한 신비스런 공작새 깃털과 편지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탤런트 시험에 무난히 합격했다는 절절한 내용의 편지 답장이 왔다.
권 병장은 차마, 그 녀에게 소대장님이 전사했다는 답장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쓰서도 안 될 일이었다.
지금, 동작동 현 충 원 국립묘지 그의 묘비 뒷면에는 ‘1972년 4월12일 월남에서 전사’ 했다는 그 글귀만이 그의 무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그의 묘비 앞 돌 판에는 칠 남매의 애절한 글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장하다, 막동아!’
너의 불사조의 넋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
- 칠남매 -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특공대작전으로 시신수습을 하러 들어가다가, 김진흥 중위가 장렬히 전사한 그 이후부터는 19번 도로는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다. 이제, 수색중대에는 지휘관(장교)이 한 명도 없었다.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는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106병원으로 후송되어 갔다. 또, 제1소대장 임 진우 중위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는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리고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는 특공대로 Q-커브 공터지점으로 내려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계속 늘어나는 지휘관들의 피해와 희생에, 살아남아 있는 중대원들은 슬픔에 젖어 비통해 하고 있었다.
- 계속 -
이 새끼들은 말로는 안 되겠어 (12)
지금,
수색중대가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Q커브 위쪽 19번 도로에는, 월남지도상에서 허리라고 불리는 서쪽 플레이쿠에서 동쪽, 퀴논 쪽으로 갈 월남민간인 차량들이 약 300m 정도 길게 19번 도로 옆에 차를 세워놓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온 운전기사 그들과 능선 위에 있는 월남 통신대 민병대 그들이 도로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월남말로, 무어라고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따이한이 어쩌고저쩌고”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도로가 개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수색중대가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난 것을 통쾌하다는 듯이 고소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색 중대원 그들은, 엄청난 희생과 피해에 모두들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또 그들은 아연실색 하며 비통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남 민간인 그들은, 슬픔에 젖어 비통해 하고 있는 수색중대원들을 바라보며, 잘 되었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또 그들은, 소대장 전령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어가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월남 민간인 그들은,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월남민간인 복장을 한, 두 놈 이 조금 덜 익은 바나나와 캔 콜라를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전우들의 희생에 마음아파서 비통해 하고 있는 수색 중대원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제 2소대 3분대장인 김 종일 하사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저 개새끼들이 겁 대가리도 없이 어디를 기어 들어와”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돌아가! 돌아가!” 하고 소리쳤다.
“그들, 월남 민간인들은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그들은 계속 싱글벙글 웃음 띤 얼굴로 따이한 이러쿵저러쿵 월남말로 씨부렁거리며 다가오던 월남민간인 복장을 한, 두 놈 은 김 종일 하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둘은 도로가에 엉거주춤 서서 이쪽 수색중대원들이 있는 곳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다시 운전기사들과 월남 통신대 민병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동료들과 무어라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까지도 소대장 전령 류 상병은 행방불명된 전우들과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 회수작전을 하러 들어가다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가 전사하는 장면에, 아연실색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었다. 그들은 이 모습을 보고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다가, 다시 돌아갔던 두 놈에다, 한 놈이 더 가세를 하였다.
이 세 놈은 삿대질을 해대며 “따이한 제들이 뭐인데, 우리 땅에 우리가 다니는 도로를 자기들 멋대로 차단해 놓고 돌아가라 마라하는 거야?” 따이한들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뭐 있어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수색 중대원들 앞으로 불평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또다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에 맞서, 제2소대 3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또다시 앞으로 나섰다. “오지 마! 돌아가! 돌아가! 더 이상 다가오면 발포한다.”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 세 놈들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그의 통제와 경고를 무시한 채, 그들은 계속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때문에 분대장 김 종일 하사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를 보다 못한 펜팔 편지를 대필해 주던 관계로, 소대장 김진흥 중위의 전사에 그 누구 보다 마음 아파하며 비통해 있던 권 준 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대장님!
저 개새끼들은 말로는 도저히 안 되게 습니다. 권 병장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는 자리에서 벌 덕 일어나면서 M-16자동소총 자물쇠를 풀고 노리쇠를 후퇴전진 시켜다. 그리고 그는, 실탄을 장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빨갱이 새끼들 다 쏴아 죽여 버리겠다.” 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 옆에 있던 최 지원 병장도 “저 개새끼들 VC가 틀림없어! 우리 전우들을 죽인 놈들과 같은 적군이니까 사살해 버려도 괜찮아” 하면서 서슬이 퍼레져 소리치니까, “사살하면 안 돼!” 하며,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깜짝 놀라서 황급히 만류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는, 일단 위협사격부터 먼저 하라고 지시했다!” 위협사격으로 겁을 주어도 우리들의 통제와 경고를 따르지 않으면 그때 사살해도 늦지 않다고 그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들은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M-16자동소총 단발에 놓여 있던 보 턴을 자동연발에 놓고 권 준 병장과 최 지원 병장이 이쪽으로 히죽거리며 다가오는 세 놈의 머리 위를 향해 “더~으 럭! 더~으 럭!” “탕!~탕!” 연발로 20발들이 한 탄창을, 그들의 머리 위 공중을 향해 다 갈겨 버렸다.
김 종일 분대장의 돌아가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히죽거리면서 계속 이쪽으로 다가오던 세 놈은 권 병장과 최 병장의 위협사격에 혼비백산이 되어, 차량과 운전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급히 뛰어가서 무어라고 월남말로 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도 시끄럽게 떠들며 웃고 있던 월남 민간차량 운전기사들은 굳어진 표정으로 우리들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차에 오르더니, 차량을 돌려 플레이쿠 쪽으로 모두 되돌아가 버렸다. 또, 같이 떠들며 웃고 있던 월남 민병대들도 위에 있는 그들의 통신대 전술기지로 다 올라가 버렸다.
“주객이 전도 되어도 유분수지!” 자신들 정부가 도와 달라는 요청에 의해서 물도 설고 낯도 설은 이역만리 전쟁터, 이곳까지 달려와서 전투를 하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중대원 전우들을 보고, 통쾌하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들을 보니까. 수색중대원 그들은 속이 확 뒤집어졌다. 수색중대원들은 총으로 그들을 확 쏴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어느덧 해는 플레이쿠 쪽 서산으로 기울었다. 앙케 패스 19번 도로 깊은 계곡에는 일찍부터 어둠이 서서히 내리 깔리기 시작했다. 수색중대 그들은 중대를 지휘 할 지휘관도 없이 이역만리 월남 땅, 앙케 패스 낯선 산골짜기에 밤은 서서히 깊어가고 있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하였다.
그 들은 무척 당황해하였다.
또 그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밑에 있는 적들은 지도와 나침반 없이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이곳 지리를 훤히 잘 아는 이곳 출신들만 선발하였다. 또, 그들은 주 월 한국군 최전방, 앙케 지역 19번 도로를 감제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를 괴멸할 목적으로 총 공세를 감행하였다.
따라서 적들은 D-데 이 날짜를 달이 없는 캄캄한 그믐(음력2월28) 밤으로 정해 놓고, 오랜 시간 동안 철저한 정신교육과 고도의 특수훈련을 받은 최정예 월맹 특수부대가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매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군은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평소에 수색중대만 출동하면 삼십육계 줄행랑치던 지방 게릴라 베트콩 줄로만 착각한 나머지, 깊고 험준한 이곳 앙케 협곡에서 적들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때문에 살아남은 수색 중대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수색중대 제2소대는 선임하사 정 규 삼 중사가 소대를 통솔하기로 했다. 그는 나이가 어리게 보이고 귀티가 나는 귀공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겨 보였다.
- 계속 -
앙케 협곡에 고립된 수색중대 (13)
때문에 정 규 삼 중사는 이 와일더하고 거친 수색중대 임시 소대장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 나!
제2소대 선임하사 정 중사 그는, 고국(한국)에서 근무할 때, 대간첩 작전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그는,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 공로로 일 계급 특진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그는, 진급이 대단히 빨랐다고 했다. 그는 월남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선임하사 정 규 삼 중사의 명령에 따라 도로 뒤쪽 배수로에 바짝 붙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따 콩!~”따 콩” 하는, 638고지 중간 능선에서 적들의 A K-47총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 왔다. 기분 나쁘게 들려 온 그 총소리는, 앙케 계곡의 고요한 적막을 깨뜨렸다. 그뿐만 아니었다. 저 아래쪽 Q-커브 공터지점에서 행방불명되고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이 있는 곳에서도 적들의 A K-47총소리가 요란하게 들여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위쪽에 위치해 있는 638고지 중간 능선에서 총을 쏘고 있는 적들과 아래쪽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 쪽에서 총을 쏘고 있는 적들이 서서히 압박을 가하면서 수색중대가 고립되어 있는 19번 도로 배수로 쪽을 향해, 협공해 오는 것만 같았다. 그 들에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또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온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소름이 쫙 끼쳤다.
수색중대 그들 모두가 겁에 질려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앞쪽에서 누군가가 잔뜩 겁 먹은듯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이렇게 울먹였다. “이제 우린,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것 같다. 적들에게 포로가 되면 어떻게 해” 하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씨 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로는 되지 말아야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던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겠지!” “마지막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 해서 싸우며 버티다 보면, 살아날 수 있는 구멍도 생기겠지 뭐!” 하며, 마치! 남의이야기 하듯, 권 준 병장이 자포자기 하 듯, 독백을 쏟아내고 있었다.
‘과연! 우리가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최 지원 병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적들보다 우리가 훨씬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항상 지휘관들 보다 명석한 두뇌회전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잘 예측하는 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어디로부터도 이 캄캄한 낮선 계곡에 고립되어 있는 수색 중대원들을 구출하러 온다는 연락이나 보장도 없었다. 서서히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에 그들은 떨고 있었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이렇게 이역만리 월남 땅 앙케 패스 계곡에서 억울하게 죽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엄습해오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도 워낙 깊은 골짝이라 교신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 조명탄이라도 좀 띄워주면 어디 덧나나 씨 팔 새끼들, 다른 지역 매복 작전 나가, 전과 좀 올리면 조명탄을 요청하지 않아도 호들갑을 떨면서 밤새도록 155mm 조명탄을 띄워 대낮같이 밝혀 주더니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는 조명탄을 왜, 안 띄워주나? 씨 팔! 개새끼들 하였다. 그는 군 입대 전, 부산에서 조직의 보스 노릇을 하였다. 때문에 그는, 겁이 없고 담력이 세고 배짱이 두둑하였다. 부산에서 조직의 최연소 보스 노릇을 했다는 제3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구시렁구시렁 욕지거리를 해대며 계속 불평을 터트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특공대로 떠났던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와 김 영진 병장이 돌아왔다. 나머지 특공대원들도 그 뒤를 따라 초죽음이 되어 돌아왔다. 애석하게도, 특공대의 선봉에 서서 함께 떠났던 수색중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길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수색 중대원들은 캄캄하고 낯선 앙케 패스 깊숙한 산속 골짜기에 고립되고 말았다. 그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구출 작전을 연대 상황실에 요청하였다. 중대 무전병 그는, 초조한 심정으로 연대 상황실을 호출하였다.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연대 상황실 호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앙케 패스 계곡은 워낙 깊은 골짝이라, 연대 상황실의 응답은커녕 P-25무전기에서는 “쒜! 쒜!~”하는 소리만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처럼 무전교신이 연대 상황실과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그들은 정말 답답하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전병!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 호출해 봐!”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 회수작전으로 특공대로 내려갔다가 초죽음이 되다시피 해서 방금 돌아온, 유일하게 장교로서 혼자 살아남은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가 무전병을 다그치며 독촉하였다. P-25무전기의 “쒜!~쒜!”하는 소리와 함께 무전병의 연대 상황실을 호출하는 소리가 뒤섞여서 계속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수로 쪽에만 모여 있지 말고 도로를 중심으로 해서 산개하여 두 명씩 서로 등을 붙이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한쪽은 한 사람이 180도를 담당할 수 있으니까 두 명이면 360도 방향을 다 경계가 가능하다. 상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최정예 수색중대답게 너무 겁먹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서 철저히 경계를 하라”고 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제2소대 임시 소대장인 정 규 삼 중사가 분대장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하달했다.
바로, 이때였다.
앙케 고개 19번 도로 좌측 캄캄한 숲 속 어둠 속 너머에서 “부 시 럭 부 시 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적들이 다가오는 줄 알고 쥐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누군가가 나지막한 한국말로 수색중대를 부르고 있었다.
“수색중대!”
“수색중대!”
“대답하라!”
그 다급한 소리는 상대가 누구이든 한국말이란 그 자체가 구원의 소리였다.
“여기다, 여기야!”
어둠 속을 빠져나와 다가온 사람은 제1중대 전술기지에 파견 나와 있는 지원중대 소속 천사와 같은 전우들이었다. 그들은 고립된 수색 중대원들을 해발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아군 전술기지까지 길 안내를 해주려 내려 왔다고 했다.
수색중대 그들에게 길 안내를 해 주려 내려온 천사와 같은 그 전우들은 지원중대소속으로 안면이 있는 잘 아는 전우들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길 안내 임무는 제1중대의 담당 임무인데도 불구하고, 기갑연대 책임 전술기지에 근무할 때 인접해 있었던 수색 중대원들과 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를 들어, “수색 중대원들을 잘 아는 사람이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제1중대장 그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길 안내를 하러 내려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의 부당한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수색 중대원 그들은 안면이 있는 지원중대 소속 전우들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만나자, 마치 장렬히 전사한 전우들이 살아 돌아온 만큼이나 반갑고 기뻤다. 이런 분위기의 반전으로 지금껏 공포에 떨며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도 좀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수색 중대원 그들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그 천사와 같은 길 안내원 전우들이 안내하는 대로 해발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Q-커브 공터지점에 행방불명되고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그곳에 그대로 남겨 두고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행방불명 된 전우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또,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 계속 -
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하다 (14)
“그러나 그들은 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때, 앞에서 전달이 왔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지원중대 전우들의 안내를 잘 받으라는 전달이었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주변에는 부비트랩과 지뢰가 많이 매설되어 있으니까. 각자 조심하라는 전달이었다.
그리고 또, 앞 사람이 전달해 주는 전달을 정확히 잘 받아 라고 했다. 안내하는 앞 전우가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지점을 뒤따라오는 수색중대 전우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앞 전우가 전달해 주는, 지뢰와 부비트랩을 피하여 한 발짝씩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느라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천만 다행인 것은 먹구름 속에 숨어있던 십자성이 수줍은 듯 얼굴을 반쯤 내밀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희미하게나마 앙케 협곡을 밝혀주었다. 때문에 수색중대 그들이, 철수작전을 수행하는데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는 천신만고 끝에 해발 600고지에 위치한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벌써,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그 때까지 그들은, 점심과 저녁을 먹지 못해 허기가 지고 배가 몹시 고팠다.
그때서야 그들은, 가지고 있던 전투식량 (C-레이선) 한 통으로 대충 허기진 배를 채웠다.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가 우리 수색중대원들이 사용 할 벙커(내무반)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일 개 소대병력이 사용하던 벙커를 수색 중대원들에게 임시로 사용하라고 했다. 일 개 소대병력이 사용하는 벙커를 일 개 중대 병력이 사용하려니까. 말 할 수 없이 불편하고 복잡하였다.
비록, 어제 19번 도로 Q-커브전투에서, 수색중대원 약 7명이 전사하고, 후송 1명과, 행방불명 3명으로 열 한명이란 인원이 줄었다 하지만, 일개 중대가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불편하였다.
그들은 내일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마음이 착잡하여 긴장과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들은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가 지워지곤 하였다. 때문에 잠자리까지도 몹시 불편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뒤척이다가, 전날 낮에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때문에 그들은, 눕지도 못하고 배낭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은 채로 그대로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손목시계는 1972년 4월13일 08시 3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벌써, 아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연대전술기지 내에 있는 중대본부를 떠나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수십 년이 지난 기분이었다.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는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를 제외한 수색중대 지휘관들이 전원 전사하고, 중대장마저도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가고 없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불편하고 비좁은 벙커 속에서 바깥으로 나와서 멍청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엄습해오는 불안과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기도 뚝 떨어져 의기소침해 있었다. 고 참 전우들의 말을 빌면, 월남전에서 이처럼 비참하게 당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바로, 이때였다.
군 입대 동기생이며 월남에도 같이 온 고향친구 제1중대 화기소대소속 안 승열 병장이 권 준 병장을 찾아왔다. 어제, 19번 도로 Q커브 전투에서 수색중대의 피해와 희생이 너무 커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고 하면서, 권 병장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도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어제 오후 17시경에, 제1중대 책임 전술기지에서도 638고지로 특공대를 출동시켰다고 했다. 일 개 분대규모의 특공대를 조직해서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600고지보다 약 38m 정도 더 높고, 거리가 약 300-400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638고지로 출동시켰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안 병장 그도, 걱정스럽게 권 병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1소대장 임 만철 중위가 지휘하는 특공대 9명은 638고지 정상을 향해 기동하던 중, 638고지 7부 능선에서 적과 조우하였다. 때문에 피아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때문에 첨병인 부 인호 상병이 순식간에 적에게 둘러싸였다. 안타깝게도 부 인호 상병 그는, 생포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부 인 호 상병이 생포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월맹군 적들이 뿌린 삐라에는, 어제 생포되어 포로가 되었다는 부 인호 상병 그는, 잔뜩 겁먹은 사진과 함께, 이런 섬뜩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따이한(한국군) 나쁘다.”
“전우를 사지에 버리고 모두가 도망갔다.”
“그래서 우리가 잘 보호하고 있다.” 모두들 부 인호 상병이 적들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이 삐라를 보고 망연자실 하였다.
부 인호 상병의 형님도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전사했다. 때문에, 그의 부모님께서는 고향인 제주에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 음 리 파월장병 훈련소에 까지 면회 오셔서 월남 전쟁터에는 제발 가지 말라고 간절히 만류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월남에 온지 얼마 안 돼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부 인호 상병은 첨병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작전 출동 직전, 첨병이 내무반에 두고 온 BT제거용 칼 구리를 찾으러 간 사이, 빨리 출동하라는 상부의 독촉에 부 첨병이었던 그가 얼떨결에 첨병임무를 수행하다가 안타깝게도 그는, 적들에게 생포되었다는 것이다.
1972년 4월 24일 부 인호 상병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러나 앙케 패스 전투 발발 다음 날인 1972년 4월12일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1소대의 특공대 첨병으로 638고지에서 적과 조우하여 교전 중 행방불명으로 처리하였다. 또다시 무슨 이유인지 시신 확인도 없이 전사 처리하였다. 따라서 동 작동 현충 원 국립묘지에 부 인호 상병의 묘비를 세워 놓았다.
그런데 뒤늦게 전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부 인호의 묘비를 급히 제거하였다. 그 묘비가 제거된 흔적이 지금까지도 현충 원 국립묘지에 이렇게 남아 있었다.
첨병이었던 부 인호 상병이 전사했다는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와 같이 전투에 임했던 전우들은 적에게 포로로 생포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전사했는지? 아니면 그가, 생포되어 포로로 끌려갔는지? 42여 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적으로 확실히 밝혀진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MBC TV 방송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와, 또 SBS TV 방송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에서, 두 방송사가 취재해서 방송을 했다. 하지만 그가, 포로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의문과 심증만 있을 뿐, 이 사건은 아직껏 계속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부 인호 상병은 포로가 되었는지? 전사 했는지? 미스터리로 계속 남아 있는가 하면, 부 인호 상병과는 반대로, 앙케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다가 약 11개월 동안 온갖 수모와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살아 돌아온 전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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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15)
단일 전투로서는 월남전 사상 최대격전지 ……. 그 치열하고 처절했던 앙케 전투에서 적과 맞닥뜨려 피아간에 교전 상황이 벌어졌다. 유 종철 병장 그는, 적과 교전 중, 팔과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말았다. 그 엄청난 충격으로 그는 의식을 잃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 졌다가 깨어난 유 종철 병장은 월맹군들에게 그만 생포되고 말았다. 생포 된 그는, 적들에게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간 그는, 약 11개월 동안 온갖 수모와 갖은 고초를 다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한편!
주 월 한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한 지, 약 8여 년 만에 한국으로 철수하였다. 이 세 호 주 월 사령관은 주 월 한국군 본진을 마지막 철수작전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상 첫 해외원정으로, 월남 땅에서 항공기로 철수를 하였다.
1973년 3월말 경, 이 세 호 주 월 사령관은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전 국민들과 박정희 대통령각하께 귀국 신고를 하였다. “월남전에서 포로와 낙오자 한 명도 없이 임무 수행을 완수하고 무사히 귀국했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주 월 한국군의 마지막 본진이 약 8여 년 만에 해외원정 사상 처음으로 항공기로 월남에서 철수를 완료한 지, 약 5일후에 유 종철 병장이 살아 돌아왔다.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패스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라고 불렀던 638고지에서 적과 교전을 하다가 전상을 입고, 월맹군들에게 생포되어 포로가 되었던 유 종철 병장이 구사일생으로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유 종철 병장의 시신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는 이미 전사 처리되어 있었다. 또, 유 종철 병장 가족에게도 월남 전 앙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통보를 한 상태였다.
적 월맹군들에게 포로로 끌려간 유 종철 병장을, 엄연히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사 처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 작동 현 충 원 국립묘지에 다른 사람의 뼛가루가 아이러니하게도 유 종철 병장 유골로 안장되어 있었다. 또, 현 충원 국립묘지에는 월남전 앙케 전투에서 유 종철 병장이 전사했다는 묘비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전사자 처리에 신중을 기하지 못하고 엉터리가 많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 세 호 주 월 사령관은 월남전에서 주 월 한국군은 포로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 국민들과 박정희 대통령각하께 보고를 하였다. 전 국민들과 박정희 대통령각하께 보고를 끝내자마자, 월남 전 앙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유 종철 병장이 유령처럼 살아 돌아 왔으니 …….
이에 당황한 국방부에서는 현 충 원 국립묘지에 세워져 있던 유 종철 병장 그의 묘비를 급히 철거 하였다.
그리고 유 종철 병장, 호적등본에서도 굵게 붉은 두 줄로 엑스선으로 진하게 그어서 ‘사망’이라고 등재되어 있었다. 그의 호적등본에 사망이라고 등재되어 있던 그의 기록을 다시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문구로 정정하였다고 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 아닌가?”
약 2,000여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 그리스도 예수님이 장사한지 3일 만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외아들 주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활했던 사도행전에 기록된 신비스럽고 기적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기적이 2,000여 년이 지난 20세기에서도 호적담당 시골 면서기에 의해 부활이라는 기이한 일로 재현되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뼛가루가 그의 유골로 둔갑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유 종철 병장이 살아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 버릴 뻔 했던 사실이 밝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전사자 기록이 사실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세상에 잘못 알려지는 일이 많은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히 한 가지 남는 의문은, 유 종철 병장의 유골이라고 현 충원 국립묘지에 안장했던 그 뼛가루는 짐승의 것인지? 죽은 적들의 것인지? 아니면, 전사한 아군의 유골인지? 누구의 유골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뼛가루를, 이 신성하고 엄숙한 현 충원 국립묘지에 묘비까지 만들어 놓았다.
엄연히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유 종철 병장의 유골이라고 국립묘지에 안장해 놓은 것을 반추해 볼 때, 그 당시, 앙케 전투에서 전사한 전사자들의 신원만 확인하고 합동으로 화장을 하여 뼛가루를 조금씩 나눠 담아 현 충원 국립묘지로 보냈다는 당시의 무성했던 소문들이 헛소문이 아닌 듯싶다.
그리고 앙케 전투 때, 기갑연대 인사과 소속으로 영현(6종) 담당이었으며, 전업 작가인 김 xx는 “현 충원 국립묘지 앙케 전투 묘역에는 적들의 뼛가루가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지금도 술좌석에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수색중대 모두들 부 인호 상병이 생포되었다는 동남쪽에 우뚝 솟은 638고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벙커 주위에 모여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C-레 이선에 들어있는 양담배 한 대씩 꼬나물고 흰 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이렇게 침통하게 말했다. 부디, 부 인호 전우가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긴 한숨을 토해 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소도산 전술기지에는 부 인호 상병이 생포된 사건으로 초상집 같은 분위기와 다름없다고 안 승열 병장이 말 하였다. 권 준 병장도 고향 친구인 안 승열 병장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속에 가득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푸!~ 하며 길게 내 뿜었다. 죽지는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살아 돌아오겠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고향 친구인 안 병장에게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침울한 분위기를 깨고,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가 수색중대 선임 지휘관을 찾았다. 수색중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교인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가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의 상부 지시를 전달받아 수색 중대원들에게 하달했다.
“지금, 사단장[정 득만 소장]과 주 월 부사령관[강 원채 소장]이 시찰을 나오고 있으니까, 수색중대원 전원은 벙커 속에 들어가 있으라고 명령했다.”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은 1972년 4월11일 새벽에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세 이파(특공대) 공격으로 침투해 오는 베트콩 5명을 사살하고 많은 노획물과 전과를 올린 것을 격려해 주기 위해서, 이곳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를 방문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가지고 있는 식량이라곤 비상식량 (B-레이선) 한 톨 밖에 없었다. 하루만 계획된 작전으로 전투식량도 하루 분밖에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상 전투식량 (B-레이선)이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컵라면과 비슷하였다. 수색중대 그들은 배는 몹시 고팠다. 하지만, 여기에다 찬물을 부어서 먹으려니까 비위에 거슬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수색 중대원들은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말았다.
“이 비상 전투식량 (B-레이선)은 정말 먹기가 역겨웠다.”
어제도 급박하게 전개되는 전투상황과 앙케 계곡에 고립된 채,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기로에 섰던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식사도 못하였다. 오늘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하였다.
수색중대 그들은 아침 식사도 못하고 굶주린 채, 벙커 속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상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방칸 상공에서 “투! 투투!~다타!”하는 헬기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 계속 –
어머니의 애통한 사연 (16)
수색 중대원들이 있는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 거센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헬기가 착륙하고 있었다. “곧 이어,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이 헬기에서 랜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맹~호!”~ 하는, 우렁찬 구호와 함께,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사단작전참모와 그 수행원 일행들은 제1대대장과 제1중대장 등, 여러 장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시찰단 그 일행들은 상황실 벙커에 들어가지 않고,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상황실 벙커 앞에서 638고지 쪽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면서 상황에 대한 보고와 작전에 대한 의논과 지시를 하느라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 계속되고 있었다.
만인이 우러러 본다는 드높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 4개의 은빛 계급장이,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리며, 앙케 패스 600고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상황실 입구에 떠 있었다. 또, 대나무 잎사귀 9개로 뭉쳐진 푸른 절개를 상징하는 것과, 대쪽 같은 정의심의 판단으로 부하를 이끌어 나가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8개의 영관급 은빛 계급장도 월남의 태양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땅속에 영원한 금속인 변치 않는 꿋꿋한 절개를 상징하는 수십 개의 다이아몬드 계급장들이 4월의 태양빛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이곳 수색중대가 집합해 있는 벙커 창문을 통해 이 같은 모습들이 중대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몇 몇 중대원들은 벙커 바깥에 나가서 높은 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벙커 속에 있는 수색 중대원들에게 자세히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시찰단 일행이 타고 온 전용헬기는 곧 바로 프로펠러를 세차게 돌렸다. 전용 헬기는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헬기는 급히 이륙하였다. 그리고 전용 헬기는 동쪽 하늘 저 멀리 사라져갔다.
맹호 사단장과 같이 온 사단 작전참모[대령]이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포진지를 점검하였다. 그는 포반장에게 포 화집점이 잘못 설정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638고지 쪽에서 적 월맹군 82mm 박격 포탄이 사단 작전참모 코앞에 떨어졌다. “과~광!~” 사단 작전참모는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앙케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큰 전상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때문에 바로 옆에 같이 있던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은 급히 벙커 속으로 대피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들은 무사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맹호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가벼운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는 적 박격포탄의 작은 파편에 가벼운 전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 순간, 맹호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부대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아픈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끝내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인이 우러러본다는 별 넷과 영관급, 다이아몬드 계급장들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계속 적들의 82mm박격포탄과 75mm직사포가 산발적으로 소도산 전술기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아군은 정보가 너무나 어두웠다. 지금, 대적하고 있는 적이 베트콩인지, 월맹정규군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들의 병력규모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이후, 월남군 44연대에서 제공해 준 정보에 의해서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 당시 638고지 일대와 19번 도로 주변에는 월맹정규군 제3사단 제12연대, 특공대대로 편제된 1개 연대 규모가 점령하고 있었다고 했다.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보다 약 38m 정도가 높고, 적의 박격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있는 소도산 전술기지를 방문한다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고 무모한 방문이었다.
결국, 월맹군들에게 정보전에서 뒤진 주 월 한국군에게는 엄청난 치명타였던 것이다.
사단 작전참모(대령)가 큰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지경이었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은 오도 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실정이었다. 적들에게 정보전에서 밀린 아군의 희생과 피해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었다.
어제 당했던 19번 도로 Q-커브지점에서 수색중대의 엄청난 희생과 피해뿐만 아니라, 제1중대소속 부 인호 상병이 생포되어 행방이 묘연하였다. 오늘은 적의 82mm박격 포탄에 맹호 사단장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또, 사단 작전참모(대령)는 아주 심한 중상을 당하였다. 그리고 사단 작전참모를 안내하던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의 전령이었던 한 건 철 병장이 애석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한 건 철 병장 그는, 적들의 82mm박격포탄 파편에 목을 맞아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앙케 전선의 정황은, 아군들에게 지리멸렬 상태이었다.
한 건 철 병장은 한양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앞날이 촉망되는 엘리트였다. 그리고 그는, 꽃다운 젊은 청춘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 먼 길, 저승길로 떠나고 말았다.
“한 건 철 병장 그는, 어머니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애절한 사연이 동작동 현 충원 국립묘지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자식에 대한 애통함을 토하는 피맺힌 절규가 배어있는 글이 지금도 고, 한 건 철 병장의 묘비앞 돌 판에 이렇게 아로새겨져 있다.
철아!
이제 그 다정한 음성과 모습을 잃어 버렸구나.
그 무엇이라 말 한 마디도 없이
영원히 올 수없는 머나먼 길을 가 버렸구나.
철아!
이 어미의 애통함을 듣고 있느냐?
무정한 자식아!
허나, 나라에 바친 짧은 생애는
오직 자유 평화 행복만이 있으니
모든 걸 잊고 넓고 하얀 길을 …….
- 엄마가 -
앙케 전투에서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안에서 첫 전사자가 발생했다.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스승을 뵐 면목이 없다고 울먹이었다. “어떻게, 무슨 낯으로 스승님을 뵈어야 할 지?”
그는 스승의 아들인 한 건 철 병장의 전사에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그는, 높은 분들 앞이라 내색도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한 없이 울었다고 했다.
류재욱 병장 증언에 의하면, 한 건 철 병장과 류 재 욱 병장은 오 음 리 훈련소에서부터 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내던 친구사이였다고 했다. 류 병장은 청주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엘리트였다. 류 재 욱 병장은 채 명신 주 월 맹호1대 사단장 후임으로 주 월 맹호2대 사단장과 합참의장을 지낸 예비역 대장 류 병 현 장군의 조카였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강원도 오 음 리 훈련소에서부터 월남 맹호 기갑연대 제3중대에서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고 했다.
R O T C 학군단 출신인 제3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한양대 교수이신 한 건 철 병장 아버지의 제자였다고 하였다. 그 인연으로 72년 4월1일 제3중대에서 제1중대로 전출되어 올 당시, 김 종식 대위는 스승의 아들인 한 건 철 병장을 중대장 전령으로 발령을 내어 같이 제3중대에서 제1중대로 전출되어 왔다.
이렇게 전출되어 온 지, 약 13일 만에 한 건 철 병장이 적들의 82mm 박격포탄에 애석하게도 전사하고 말았다.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스승의 아들인 그를 아낀다고 한 것이 오히려 사지로 몰아넣은 결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 계 속 -
후송 간 중대장의 목소리 (17)
“그 누가 ‘인생사 새옹지마’ 라 했던가?” 김 대위는 스승을 생각해서 적들이 우글거리고 부비트랩이 수 없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한 정글 속을 매복과 수색작전을 나가는 것보다 중대장 자신의 전령으로 있으면 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 같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아깝게 전사할 줄이야!”
김 대위는 한 병장의 주검 앞에서 망연자실하였다. 또, 그는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만일, 한 병장이 제1중대로 전출해 오지 않고 제3중대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도, 아니! 중대장 전령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처럼 애석하게 전사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면서 모두들 눈시울을 적시었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이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를 방문했을 때,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있는 모든 장병들은 벙커 속에 들어가서 꼼짝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때문에 명령에 따랐던 장병들은 무사하였다. 하지만, 시찰단 일행을 안내하던 한 병장은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은 일초라도 빨리 사단사령부로 귀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상을 당한 사단 작전참모를 한시라도 빨리 106후송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중대위생병의 소견이었다.
맹호사단장의 전용헬기는 월맹군의 포탄이 빗발처럼 쏟아져 착륙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단장 전용 헬기는 계속 공중에서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상황실과 공중에서 선회중인 전용헬기 조종사와 무전 교신을 통해 착륙 할 기회를 엽보고 있었다.
따라서 사단장 전용헬기는 공중에서 적들과 마치! 숨 박 꼭지를 하듯, 아군 전술기지 상공을 벗어났다 들어왔다 계속 선회비행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 월맹군들은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도 헬기 소리만 나면, 어김없이 포탄을 퍼부어댔다.
그래도 사단장 전용헬기조종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몇 번씩이나 착륙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적들은, 638고지 쪽에서 계속 포탄을 아군 전술기지에 투하하였다. 어쩔 수 없이 전용헬기는, 더 이상 착륙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때문에 전용헬기는 퀴논 쪽 사단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수색중대 제 2소대 임시 소대장 정 규 삼 중사가 각 소대의 인원을 파악해서 전투식량(C-레이선)을 운반할 병력을 인솔하여 제1중대 보급계 식량 담당자를 찾아갔다. 수색중대원들이 식량이 떨어져 점심을 못 먹고 있으니, 전투식량(C-레이선)을 좀 차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제1중대 보급계 그는, 소속이 달라서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 임시 소대장 정 중사 그는, 제1중대 보급계에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힘없이 벙커로 돌아오는 모습을 본 수색중대원들은 몹시 분노했다.
“아니! 씹 팔!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닌데……” “같이 전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굶어 죽어도 된단 말이냐? 씹 새끼, 김 영진 병장이 걸쭉하게 욕지거리를 해대며 방방 뛰었다. 저런 인정머리도 없고, 의리라고는 눈을 닦고 보려 해도 새우눈깔만큼도 없는 저 새끼는 총으로 확 쏴 죽여 버려야 된다고,” 흥분했다. 한때, 여수 배 목가지에서 좀 놀았다는 성질이 과격하고 다혈질적인 고영일 상병도 분기탱천하였다.
그러자,
“저런 융통성 없고 머저리 같은 새끼는 연대 군수과 보급관에게 보고해서 혼쭐을 내주어야 해, 평소에 말이 드물고 점잖던 최 지원 병장도 역성을 들었다.” 씹 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어디 있어, 저런 새끼는 마빡(부정) 친 게 있는지, 없는지를 철저히 조사를 해서 사실이 밝혀지면 당장 군법에 회부해서 감방에 쳐 넣어야 된다고 각자 한 마디씩 울분을 토해 내었다. 때문에 벙커 안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해져갔다.
바로, 이때였다.
보급계 그가, 무엇인가 찔리는 곳이 있었는지? 제1중대 보급계 식량 담당자 그가 수색 중대원들이 있는 벙커로 찾아왔다. 그는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위에서 지시가 없으니까, 자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둥, 뭐니 하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돌아가면서 한다는 소리가,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하였다. 지금처럼 포탄이 계속 떨어져서 헬기가 착륙하지 못해, 보급이 중단되면, 자기들도 얼마 버틸 수 없다”고 염장만 질러 놓고 돌아갔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고약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수색중대 그들은, 심한 갈증에 목도 바짝바짝 타 들어 갔다. 그들은 허기에 지쳐 힘도 없었다. 또, 그들은 적과 싸울 용기와 의욕도 다 잃어 버렸다. 그리고 그 들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글자 그대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략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72년 4월13일 오후 3시경, 무전기를 통해 제1중대장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 사단장님과 주 월 부사령관님 일행이 무사히 사단 사령부로 귀대해야 한다. 또 중상을 입은 사단 작전참모를 일초라도 빨리 106후송병원으로 후송 보내는 것이 급하다고 부산을 떨어댔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는 헬기 착륙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차선의 방법으로, 적들의 박격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무전교신으로 헬기를 유도하여 연막탄 신호로 하여, 헬기 착륙지점을 알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밑에 있는 19번 도로 옆 개활지에 사단장 전용헬기가 비상 착륙하기로 연락이 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서 적들의 박격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지점,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앙케 고개 19번 도로 개활지까지 경계와 경호작전을, 수색중대원들에게 엄중히 하라고 명령 하였다. 그리고 사단장님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이 헬기에 탑승하여 사단사령부로 무사히 귀대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이었다.
“리 기미 씹 팔! 소속이 다르다고 식량도 차용해 주지 않으면서 뻔뻔스럽게 소속이 다른 수색 중대원들에게 명령은 왜? 내려 씹 새끼!” 재 파월된 서 종철 병장이 볼이 잔뜩 부은 얼굴로 분통을 터뜨렸다.
바로, 이때였다.
적의 기습 공격으로 우측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106후송병원으로 후송 간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가 무전 교신을 해 왔다. 그는 긴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옆에 무전기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하들만 남겨놓고 후송된 후, 약 24시간 여 만에 부하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병상에 누워, 수색 중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앙케 패스 제1중대 전술기지로 무선 교신으로 소식을 물어 왔다.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는, 수색 중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서 적십자마크가 크게 새겨진 병원헬기로 106후송병원으로 후송 되어갔다. 그는 병원에 도착 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수술 팀들에 의해 신속히 수술에 들어갔다. 그는 긴 수술 끝에 성공적으로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고 하였다.
그는 “하늘이 도와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그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의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반가운 소식이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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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을 경호하다 (18)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섞인 임 규 섭 중대장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수색 중대원들은 너무나 반가워 일제히 환호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분위기가 돌변하여 숙연해졌다.
때문에 그들은,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방치한 채, 그대로 두고 철수한 것과, 그리고 행방불명된 전우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곳을 탈출한 죄스런 마음이, 그들에게 착잡하게 얽혀 있었다. 또, 그들은 의기소침해 있는데다가 식량마저 떨어져서 굶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중대원 모두가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들은 격해오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벙커 속은 사나이들의 오열로 진한 눈물바다가 되었다. 무전기 수화기를 잡고 중대장과 무전교신을 하고 있던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도 격해져 있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 자락으로 훔쳤다. 그러면서 그는, 서러움에 북받쳐 오열하고 있는 중대원들을 달랬다.
그는 중대장이 후송 간 이후의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또박또박 보고를 하였다. 어제, 수색 중대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 앙케 패스 깊숙한 계곡에 고립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으로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로 무사히 탈출하였다고 침통한 심정으로 보고를 하였다.
또 그들은, 비좁은 벙커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식량이 떨어져서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식사도 못하고 굶고 있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또,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을 경계와 경호를 하라는 작전 지시가 내려와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가 전상을 당했던 Q-커브지점에서 중대원 약 7명이 전사하고 3명이 행방불명되었다.
그 중 제1소대장 임 진우 중위와 제2소대장 김진흥 중위가 전사했다는 보고를 할 때였다.
중대장도 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 기막힌 소식을 무전기로 통해서 전해들은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같이 전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소속이 다르다고 먹이지도 않고 굶겨놓고, 남의 자식들이야 죽든 말든 힘들고 위험한 작전명령만 내리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그는 흥분했다. 그는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어제, 전사하고 행방불명된 중대원들을 먼저 구출하라!
그러면서 그는,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나 그는, 맹호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만인이 우러러 본다는 별 넷과 다섯 개의 영관급 은빛 계급장이 앙케 패스 600고지에 떠 있다는 사실과 사단 작전참모장(대령)이 적의 박격포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알고나 이 같은 명령을 내리는지? 모르고 이 같은 명령을 내리는지?
수색 중대에서 유일하게 장교로 혼자 살아남은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는 직속상관의 명령에 따라, 19번 도로 Q-커브공터지점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 수습작전을 먼저 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중대원들에게 시신수습과 행방불명된 전우들의 구출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소속이 다르고, 자기 부하가 아니라고 먹이지도 않고 굶기면서 죽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작전명령만 하달하는 제1중대장의 부당한 명령에 임시 수색중대장을 대행하고 있는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와 수색 중대원들은 부아가 치밀어 강력히 반발했다.
“리 기미 씨 팔, 물과 식량을 배불리 쳐 먹어 힘이 넘치고, 이곳 지리도 잘 알고 있는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작전을 하라고 해!” 자기 부하들은 그냥 놔두고 적들과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그대로 방치한 채, 앙케 계곡에 고립되었다가 이제 겨우 사지에서 돌아와 식사조차 몇 끼를 못 먹어 굶주려서 지칠 대로 지친 수색중대원들한테만 왜 개지랄을 떠는 거야! ‘씹 팔 새끼 개새끼들’ 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조금 전, 제1중대 보급계 식량 담당자에게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정 규 삼 중사의 불평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수색 중대원들은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의 경계와 경호 임무보다 어제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에서 전사한 제1소대장과 2소대장, 전우들의 시신과 행방불명된 전우들을 먼저 구출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이며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색중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해있다. 그들은 중대를 지휘할 지휘관도 없었다. 때문에 보급지원과 상부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어제 19번 도로 Q-커브 공터지점에서 전사한 제1소대장과 2소대장, 전우들의 시신과 행방불명된 전우들을 먼저 구출하는 작전수행은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부의 보이지 않는 막강한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후송 간 수색중대장 임 규 섭 대위와 최전선에서 유일하게 장교로 혼자 살아남은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가 독자적 작전을 모색하며 발버둥 쳐보았다. 하지만, 만인이 우러러본다는 별 넷의 은빛 계급장과 아홉 개의 대나무 잎사귀로 뭉쳐진 다섯 개의 영관급 은빛 계급장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는 다섯 개의 다이야 몬드 계급장의 작전명령은 찻잔 속에 태풍에 불과하였다.
수색 중대원들은, 보이지 않는 상부의 온당치 못한 작전 명령에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도 굶은 채, 천근만근이나 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어쩔 수 없이 수색 및 탐색작전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력하게 반발했던 임시 중대장을 대행하고 있는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의 지휘 하에 상부의 명령을 하달 받은 제1중대장 지시를 따 을 수밖에 없었다.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상황실에서부터 19번 도로 옆 개활지까지 수색중대원 전원을 투입하였다. 전용 헬기가 착륙 할 주변에서부터 약 300-350m에 이르도록 샅샅이 수색 및 탐색작전을 마치고 도로 양 옆을 철저히 경계를 하였다. 그리고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상황실에 보고를 하였다.
“수색과 탐색작전이 완료되었다고 보고를 하였다.” 보고를 한 후, 조금 있으려니까. 무전기를 통해서 연락이 날아왔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이 소도산 전술기지 상황실을 출발하였다는 연락이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바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였다. 도로 양옆에 도열해 서서 삼엄하고 물샐틈없는 경계근무에 충실히 임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은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위쪽에서 경계를 하고 있던 수색 중대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수행원들과 함께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맹호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은 무겁고 불편한 신형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만인이 우러러본다는 투 스타 은빛 계급장 표시가 없는 철모를 쓰고 내려오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온 일행들도 신형 방탄복과 계급장 표시가 없는 철모를 쓰고 뒤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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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가면서 무슨 전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19)
그 뒤를 따라 중상을 입은 사단 작전참모가 들것에 실려 4명의 제1중대 소속 전우들에 의해 내려오고 있었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은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은빛 별 두개가 유난히 번쩍이는 계급장을 단, 전투복에 전투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앙케 전투 상황실에서는 무전기를 통해,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의 일행이 지나갈 때, “맹호!” 하는, 구호와 경례는 생략하라는 지시가, 수색중대 그들에게 하달되어 있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말고 돌아서서 전방만 바라보면서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행동요령을 잊지 않았다. 이 같은 구호와 경례를 생략하라는 지시는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이 이동하는 것을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려는 보안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색 중대원 그들은 무척 긴장이 되었다.
그들은 한 치라도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에게 불상사가 발생할까 봐, 경계와 경호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수색중대 본부에서는 19번 도로 옆 개활지 헬기착륙 지점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에게 무전 연락을 하였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이 곧 도착할 것이다.
‘화랑도’(수색중대 제2소대 무전 호출 명)는 연기를 피우라는 무전 연락이 왔다. 소대 무전병으로부터 무전 연락을 받은 김 영진 병장은 준비해 있던 연막탄을 급히 터뜨렸다. 따라서 공중에서 선회하고 있던 사단장 전용헬기와 적십자마크가 선명한 병원헬기가 연막탄이 피어오르고 있는 지점을 향해 차례로 신속히 착륙했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이 무사히 헬기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맹호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전용헬기에 막 탑승 하려다가 다시 뒤돌아 나왔다. 그는 헬기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수색중대원 권 준 병장에게 점심은 먹었냐? 고 물었다. 식량이 떨어져서 점심을 아직 먹지 못했습니다. 라고 권 병장은 큰 소리로 또박또박, 솔직하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단장님의 갑작스런 물음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권 병장은 얼떨결에 그만 솔직하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단장님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권 병장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또 그는,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게 이렇게 말 하였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사령부에 가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약속을 남기고, 급히 전용헬기에 올랐다.
중상을 입은 사단 작전참모는 병원헬기에 급히 실려 사단장 전용헬기보다 먼저 이륙하였다. 병원 헬기는,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자마자 직선 비행으로 106후송 병원 쪽 상공으로 급히 날아갔다. 그리고 바짝 긴장을 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단장 전용헬기 조종사는 사단장이 탑승하자마자 헬기엔진 알 피 엠을 최대로 올려 세찬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전용 헬기는 “투! 투!” “타!”~다 따!~” 하는, 귀 고막이 찌어질 덧 한 굉음을 내면서 이륙하였다. 헬기는 수직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따라서 전용헬기는 앙케 패스 상공을 몇 바퀴 선회 비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앙케 패스 일대,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하루작전 계획에 따라 전투식량(C-레이선)도 하루분만 지급받았다. 때문에 지금까지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굶어가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같은 경계와 경호작전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자, 그들은 마음 조리던 긴장이 풀려 극심한 갈증과 허기로, 그들은 정신마저 혼미해져가고 있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에서 적 월맹군이 쏜 82mm 박격포탄에 입은 상처로 사경을 헤매던 사단작전참모장은 천신만고 끝에 기갑연대 수색중대원들의 경계와 경호작전으로 병원헬기에 구출되어 급히 106후송병원으로 직행하였다.
그 뒤를 이어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일행이 탑승한 사단장전용헬기는 앙케 패스 상공에 정상고도로 진입하였다. 전용헬기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을 되찾은 전용헬기는 곧 바로 선회 비행에 들어갔다. 앙케 협곡 이 일대의 적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서였다. “그들은 공중에서 적들이 점령해 있는 638고지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638고지에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와 9부 능선, 군데군데 참호를 구축해 놓은 흔적과 좁은 땅굴 같은 교통호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또 위장망 속에 적들의 82mm 박격포와 75mm 직사포가 아군 전술기지 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적들이 천혜의 요새처럼 구축해 놓고 방어 작전을 하고 있는 저 638고지에서, 그들은 앞으로 전개될 전투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맹호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은 착잡한 마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맹호사단장 전용헬기는 638고지를 넘어 플레이쿠 쪽으로 계속 선회하여 19번 도로를 따라 제1중대 지리산 책임전술기지 쪽으로 비행을 하였다. 전용헬기는 19번 도로 옆 Q-커브 공터지점, 상공에 진입 했을 때였다.
전날 기갑연대 수색중대가 적들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기습공격을 받아 전사한 전우들의 영현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방치되고 있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맹호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을 비롯한 포 사령관, 전속부관, 헬기에 탑승한 일행 모두가 마음 아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처럼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일행들의 심정은 한없이 착잡했다.”
전용헬기가 제1대대 책임전술기지가 있는 방칸 상공을 선회하여 다시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상공에 이르러 을 때였다. 맹호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은 암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 밑에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상황실 벙커 속에서 쏟아지는 적들의 포탄에 전용 헬기가 착륙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고립되어 오도 가도 못했던 고통스러웠던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그들은, 저 상황실 벙커 속에 고립되어, 생지옥 같았던 저 1중대 전술기지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그들이 약 6시간 전인 오전 10시경, 이곳 앙케 패스 상공에 이르렀을 때,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가 앙케 협곡 중대책임전술기지 주변과 638고지에 적들의 침투흔적이 보이니까. 사단장님 전용 헬기가 중대전술기지에 랜딩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므로 재고해달라는 무전보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랜딩을 강행시켰다.
때문에 장래가 촉망되는 특별히 아끼던 부하인 작전참모가 적들의 포탄에 맞아 큰 중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수행하던 병사 한 명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사단장은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그는, 한없이 후회가 되었다.
맹호사단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어떤 전략과 전술작전을 구사해야 아군의 피해와 희생을 최소화하고, 이 전투를 우리의 승리로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뇌와 갈등으로 번뇌하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바로, 이때였다.
헬기 앞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던 한 병사가 식량이 떨어져서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기막힌 대답이, 새삼 그의 뇌리에 클로즈업 되어 왔다. ‘굶어가면서 무슨 전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장병들을 굶기면서 전투를 계속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것은 죄악이란 생각도 들었다.
- 계속 -
전용 헬기를 비상착륙 시켜라(20)
‘그 병사에게 물과 전투식량을 최대한 지원해 주겠다고 내 스스로 했던 약속이 아니던가?’ 비록, 이름 없는 일개 병사에 불과하지만, 부하에게 한 약속을 소홀히 여기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되었다.
무슨 이유로 전투를 하는 장병들에게 물과 전투식량이 공급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서 조치를 취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사단장은, 전속부관을 불렀다.
전속부관!
조금 전 헬기 앞에서부터 중대전술기지 상황실벙커까지 경계와 경호를 담당했던 부대는 어느 부대 장병들인지 알아보라고, 긴급 명령했다.
전속부관 김 대위는, 즉시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상황실에 무전으로 타전하였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일행을, 경계와 경호를 담당했던 부대는, 기갑연대 수색중대 장병이라는 것을 알아내어, 그는 신속히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사단장은 즉시 전용헬기를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 연병장에 비상착륙 시킬 것을 긴급 명령했다.
사단장 전속부관 김 대위로부터 맹호 사단장의 명령을 하달 받은 전용헬기조종사는 각 부대상황실에서 바짝 긴장하며 비상상태로 맹호사단장 전용헬기 무전기주파수에 계속 스탠바이하고 있는 주파수 중에서, 기갑연대 상황실주파수에 연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기갑연대 상황실을 호출 하였다.
“여기는 타이거잠자리다.”
“번개!”(번개는 맹호 기갑연대 무전 호출 명)
“번개!~” 나와라!
“번개는 즉시 응답하라!”
“여기는 번개다!”
“송신하라, 오~바!”
“여기는 타이거잠자리다!”
“현 독점에 타이거잠자리가 난파할 예정이니, 번개는 즉시 연기를 피워라!”
“다시 한 번 더 반복한다!”
“현 독점에 타이거잠자리가 난파할 예정이니, 번개는 즉시 연기를 피워라!”
“알았다, 오 바!~”
맹호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일행이 탑승한 전용헬기가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 연병장에 비상 착륙한다는 무전연락을 받았다. 기갑연대 상 황병, 김 현진 병장은 즉시 상황실장과 주번사령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옆에 있는 강 상병 조수에게 빨리 연막탄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맹호사단장, 주 월 부사령관, 포 사령관 일행이 탑승한 전용헬기가 연병장에 곧 착륙한다는 보고를 받은,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여러 참모들과 함께 급히 연병장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단장 전용헬기 착륙지점 앞에 도열해 서서, 맹호사단장 전용헬기가 착륙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앙케 패스 높은 상공에서 굉음과 함께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 상공에 헬기가 나타났다. 동시에 무전기를 통해 사단장 전용헬기가 랜딩 할 지점에 연막탄을 피우라는 연락이 왔다. 공중에서 맹호사단장 전용헬기가 선회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연대 부상황병, 강 상병은 메고 있던 무전기를 급히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연대장과 여러 참모들이 도열해 있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준비해 있던 연막탄의 안전핀을 제거하였다. 또 그는, 헬기착륙지점 연병장에 연막탄을 급히 터뜨렸다.
맹호사단장의 갑작스런 비상착륙 명령에 따라, 사단장 전용헬기 조종사는 예정에도 없던 비상착륙을 하 기 위해 헬기기수를 서서히 낮추었다. 월남의 허리로 불리는 캄보디아 국경부근 플레이쿠에서부터 퀴논 쪽으로 가는 19번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전용헬기는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가 있는 빈 케 상공에서 한 바퀴 선회비행을 하였다. 따라서 전용헬기는, 빈딩 성, 빈 케 지역에 위치해 있는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 상공으로 진입하여, 다시 한 번 더 선회비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전용헬기는, 연막탄이 피어오르는 기갑연대 연병장에 세찬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비상 착륙했다.
맹호사단장을 따라 전속부관만 헬기에서 랜딩 하였다. 주 월 부사령관과 그 일행들은 헬기에서 그대로 대기를 하였다. 맹호사단장과 전속부관은 계급장 표시가 없는 철모와 무거운 신형방탄복을 착용하고 헬기에서 내렸다.
그 들은 헬기 뒤 쪽 프로펠러의 세찬 먼지바람 속을 피해서 헬기 앞으로 돌아 나왔다. 맹호사단장은 우렁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받으며 연대장과 여러 참모들이 도열해 있는 앞으로 다가갔다.
맹호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에게 다짜고짜로, “연대장,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 앙케 패스 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나?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휘봉으로 연대장의 어깨를 내려 쳤다. 또 그는, 지휘봉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화를 벌컥 내었다.
“앙케 패스 전선에서는 장병들이 전투식량이 떨어져 굶주리고 있었다. 또 마실 물도 고갈되었다. 우리 장병들이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면서도 적들과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를 수행하고 있던데 ……”
“어떻게 된 사실이냐?” 맹호사단장은 기갑연대장을 아주 심하게 호통을 치며 다그쳤다. 화가 잔뜩 난 사단장은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에게 아주 심한 질책과 문책을 하였다. 사단장은 기갑 연대장에게 지휘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놓아가며 혼쭐이 나도록 호통을 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듯, 갑작스런 사단장의 아주 심한 질책과 호통에,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만 있었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기만 하였다.
“맹호사단장 그는, 기갑 연대장에게 너무 심한 문책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조금 전과는 달리 누그러진 목소리로 돌아와서, 조속히 앙케 패스 전선에서 굶주리고 갈증에 시달리면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물과 전투식량을 충분히 공급해 주라고 명령 하였다. 또 전투에 필요한 탄약과 보급품도 연대장이 책임지고 차질 없이 지원해 주라는 명령을 타이르듯 부드럽게 하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쓰고 있던 계급장 표시가 없는 철모와 착용하고 있던 무거운 신형방탄복을 벗어 버렸다.
그러면서 맹호사단장은, 다시 별 두 개가 번쩍이는 전투모로 바꿔 썼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전용헬기에 탑승하였다. 헬기 프로펠러를 천천히 돌리며 대기하고 있던 전용헬기 조종사는 곧바로 헬기엔진 알 피 엠을 최대로 높였다. 헬기는 힘차게 수직으로 이륙하였다. 전용헬기는 하늘높이 급상승하였다.
사단장과 주 월 부사령관, 그 일행들이 탑승한 전용헬기는, 월남 빈딩 성, 빈 케 지역에 위치해 있는 기갑연대 책임전술기지 상공을 한 바퀴 선회비행을 하고는 19번 도로를 따라 맹호사단사령부가 있는 퀴논 쪽 상공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맹호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의 심한 질책과 문책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기갑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멀어져가는 사단장 전용헬기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A급 태풍이 휘몰아치고 난 후에, 태풍의 후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김 창열 대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연대 군수과장인 이강근 보급관을 급히 호출했다.
화를 참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던 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헐레벌떡 달려온 이강근 보급관에게 화풀이를 하듯 호통을 쳤다. “도대체 보급관은 보급품관리를 어떻게 관리하였기에 전투시작 3일도 되지 않아 식량이 떨어졌단 말인가? 하물며, 본 지휘관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 사단장님이 먼저 알고 있단 말인가?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누가 사단장님께 직접 보고를 했단 말이야?”
- 계속 -
연대장이 졸 나게 깨 졌어 (21)
“연대장 그는, 이 강 근 보급관이 미처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속사포처럼 역정을 쏟아냈다.” 정말로 제 1중대전술기지에 물과 전투식량인, C-레 이선과 비전투식량인 A-레 이선과 K-레 이선이 바닥이 나서 모든 장병들이 다 굶고 있는지? 아니면! 일부 장병들만 굶으면서 전투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 그는, 연대 보급관 이 강 근 소령에게 당장, 확실히 알아서 보고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연대장 김 창열 대령으로부터 혼쭐이 난 연대보급관 이강근 소령은 벌써 식량이 떨어졌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 개새끼들 ‘마빡(부정)’친 거 아니야 하고 혼자말로, 투덜거렸다.
그는 곧바로 주 월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 중에서 최전방인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 상황실,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에게 무전을 때렸다.
“그는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에게 식량이 떨어져서 굶어가면서 전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하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 사단장 전용헬기가 연대 연병장에 비상 착륙하였다. 헬기에서 랜딩 한 사단장님은, 앙케 패스 전선에서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장병들이 굶어가면서 전투를 하고 있더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단장님은 다짜고짜로 연대장님에게 아주 심하게 질책과 문책을 했다고 말했다.
무전기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제 1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보고를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지금까지는 중대전술기지에 비축된 식량으로 전투수행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만 “앞으로가 문제”라고 했다. “그럼! 어느 중대가 굶어가면서 전투를 하고 있다고 사단장에게 보고를 했단 말인가?”
연대장님이 사단장님에게 형편없이 졸 나게 깨지는 바람에, 연대가 발칵 뒤집혀졌다는 연대보급관 이강근 소령으로부터 무전기를 통해 전해 듣고, 제1중대장 김 종식 대위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굳어졌다.
“그는 중대보급계 이 송 우 병장을 급히 호출했다.”
“이 송 우 병장!” “식량이 떨어져서 식사를 못하고 굶고 있다는 사실을 사단장님이 아시고 연대장님이 혼쭐이 빠지도록 졸 나게 깨졌다. 때문에 연대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어디 집히는데 없어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에 경련까지 일으켰다. 그는 중대 보급계 이 송 우 병장에게 이렇게 다그치듯, 따져 물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이 송 우 병장도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면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늘 정오쯤, 각박한 상황에 처하였던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저 밑에 벙커에 주둔해 있는, 연대 수색중대 선임하사가 병사 몇 명을 인솔하여 찾아와서 중대원들이 식량이 떨어져서 식사를 못하고 굶고 있다고 하면서 전투식량을 차용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중대장님도 옆에 안 계시고 마침! 사단장님과 주 월 부사령관님 일행을 사단사령부로의 귀대 조치와 중상을 입은 사단작전참모장을 106후송병원으로 후송하는 임무 때문에 동분서주하고 있으니까, 중대장님께 보고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단 거절하였다고, 자초지종을 보고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중대장님께 보고를 할 참이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끝을 흐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모든 정황을 미루어 보아 수색중대에서 사단장님께 직접보고를 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제 1중대장 김 종식 대위의 보고를 받은, 연대보급관 이강근 소령은 수색중대 임시 중대장을 수행하고 있는 정 종 태 중위에게 식량이 떨어져서 굶어가면서 전투를 하고 있다고 사단장님에게 보고를 올린 사실이 있느냐고 무전으로 타전하여 힐책하였다.
수색중대 정 종 태 중위는 태연하게 식량이 떨어져서 아침과 점심을 굶고 사단장님과 주 월 부사령관님 일행을 경계와 경호작전을 수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우리가, 사단장님께 직접 보고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그는 보급관에게 항의조로 반문했다. 연대 보급관 그도, 정 중위의 말을 듣고 보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은 식량이 떨어져서 점심을 먹지 못했다고 정식보고가 아닌 사단장님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권 준 병장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헬기 옆에 있었던 사단장일행과 몇 몇 분 대원들만이 사단장과 권 준 병장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헬기 굉음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대화 내용은 알아듣지도 못했을 게 틀림없었다.
권 병장 그는, 이 같은 사실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여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수색중대 임시중대장을 대행하고 있는 정 종 태 중위 그로서는 전혀 알 수도 없는 사항이었다.
그들은 하루 분 식량만 지급받아 작전에 출동하였다. 때문에 연대 수색중대만 전투식량이 떨어져서 제1중대 보급계 식량 담당자에게 차용해 달라고 부탁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1중대 보급계 그에게,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은 굶은 채, 사단장님과 주 월 부사령관님 일행을 경계와 경호작전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연대보급관 이강근 소령이 연대장 김 창열 대령에게 보고했다.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은, 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이렇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머저리 같은 자식들! “지금 같이 전투를 하는 마당에 아군끼리 소속 따질 때야? 아니! 평시인지, 전시인지 구별도 못하는 머저리 같은 자식들!” 연대장 김 창열 대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노발대발 했다.
이제부터는 소속 따지지 말고, 지금 당장 굶주리고 있는 수색중대 장병들에게 물과 전투식량을 제공해 주라고 명령했다.
한편!
수색중대 그들은, 이 같은 사실도 모른 채, 임시소대장 정 규 삼 중사는 제3분대장 김 종일 하사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산 아래서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까지 경계를 했던 수색중대원들은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로 이미 다 올라가고 없었다.
맨 밑에 19번 도로 개활지 주변에 남아있던 제 2소대 3분 대원들은 목과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갈증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제 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올라가 봤자,
“그들은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들에게, 먹을 물과 전투식량도 제공해 주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여기에서 물을 찾아보자고 하였다. 물이라도 찾아서 배를 채워보자고 하였다. 그것도 안 되면 나무열매라도 따서 허기를 채워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개구리나 뱀이라도 잡아먹자 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다 찾아보자고 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 3분 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분대장 김 종일 하사를 조르고 있었다.
분 대원들은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과 허기에 지쳐 위험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 주변에 적들이 우굴 거리고 있는 위험도 아량 곳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무조건 먹을 것과 물을 찾아보자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 계속 -
물과 먹을 것을 찾아보자 (22)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권 준 병장, 김 영진 병장은 아무 말도 없이 눈만 꺼 벅 거리고 있었다. 제1중대 저네들은, 적과 전투를 하고 있는 상황에, ‘같은 아군끼리’ 소속이 다르다고 물과 전투식량을 나눠먹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저-어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를 한없이 원망스럽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기에서 물과 먹을 것을 찾아보아야 할지? 아니며! 이대로 저 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로 철수해야 할지? "수색중대 제2소대 3분원들과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고심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꽁 산 작전의 악몽이 새삼 뇌리에 떠올랐다. 따라서 그들은, 무척 고심하였다. 그때, 꽁 산 작전 때도 기상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해 갑자기 보급이 중단되었다. 때문에 분 대원들은 견딜 수 없는 심한 갈증과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물을 구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분 대원들의 빈 수통을 수거해서 저 밑에 있는 깊은 계곡으로 겨우! 월남 신참을 갓 벗어난 김 영진 병장과 권 준 병장 두 명을 물을 구하러 내려 보냈다.
해는 서산마루에 겨우! 메 달려서 곧 떨어질 채비를 하고 있는 꽁 산 능선과 고지에는, 어둠이 안개처럼 서서히 휘감고 있었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캄캄하기 전에 물을 빨리! 떠 올 욕심으로 적들의 위험은 아량 곳 하지 않고 신속히 깊은 계곡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물을 뜨러 내려갈 때, 나뭇가지로 표시를 하고 내려가야 함 애도 불구하고 급한 마음에, 그들은 깜빡 잊고 무작정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목까지 차오르도록 퍼 마시고 나서 분 대원들 빈 수통에 물을 가득 담아서 돌아오려고 하니까, 예상외로 수통의 물이 너무나 무거웠다. 둘이서는 도저히 수통의 물을 다 짊어지고 올라 올 수가 없었다.
‘수통의 물이 무겁기도 했지만!’
벌써!
꽁 산전선의 깊은 골 짝 이는 칠 흑 같은 어둠이 고지와 능선보다 더 빨리! 내려 깔렸다.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어디가, 어딘지?
"한 발 자옥도 띄워놓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는 산 짐승들이 물을 먹으러 모여 드는지?" 기분 나쁘게 울어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끝이 주 볏 주 볏 서며 온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서로 등을 붙이고 M-16자동소총 방아쇠 잠금장치를 풀고 앞을 주시하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물을 뜨러 계곡으로 내려간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급히! 숙영 할 주변에 클레모아를 설치하고 보초 근무자들에게 물을 뜨러 계곡으로 내려간 김 병장과 권 병장이 올라 올 때,
적인지?
아군인지?
잘 지 켜 보고 있다가 분대장에게 신속히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절대!
분대장 지시 없이는 사격과 클레모아 격 발기를 누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졸면’ 큰 일 난다고, 그들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김 병장과 권 병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분대장 그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김 병장과 권 병장을 물을 구하러 깊은 계곡으로 내려 보냈다.
때문에, 더욱 더 분대장 김 종일 하사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김 종일 하사 뇌리에 온갖 상념이 다 떠 올 라다. 물을 뜨러 내려간,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온 계곡을 헤 메고 있지는 않는지? 혹시, 그들이 죽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베트콩들에게 포로로 잡히지는 않았는지?
아니 야! 지금까지 조용한 것을 보니까.
무사한 모양이야?
'무사할 거야!'
지금쯤 다 올라오고 있을지도 몰라!
곧! 도착할 거야?
분대장 김 종일 하사 혼자서 온갖 상상을 다 하였다.
그는 앞으로는 물을 먹지 못해 갈증에 시달리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는 상부에 보고 없이 독자적으로 무모하게 분 대원을 물을 뜨러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 없이 후회도 하였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저 밑 계곡으로 내려가 보기로 결심하고’ 최 지원 병장을 불렀다. 부분대장인 최 병장에게 같이 마중을 나가 보자고 하였다.
최 지원 병장은 지금은 너무나 어두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아니하니, 날이 밝으면 내일 아침에 수색과 탐색을 해 보자고 하였다. 서 뿔이 신참들만 남겨놓고 분대장님과 부분대장인 내가 계곡에 내려갔다 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분 대원들은 "점멸" 당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이라도 상부에 솔직히 보고를 올리자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은근히 "협박"조로 분대장 김 종일 하사를 설득했다. 그러나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오금이 저리고 피가 마르는 것 같아 도저히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상부에 보고는 더 더욱 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최 지원 병장을 반강제적으로 압력을 가해서, 저 밑에 있는 깊은 계곡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김 하사와 최 병장은 칠 흑 같은 어둠속을 클레모아 줄과, 나뭇가지를 꺾어서 표시를 하였다. 그 둘은 천신만고 끝에 물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근처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바로, 이때였다.
"저 위쪽에서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가 등을 붙이고 위쪽으로 바라보고 있던 김 병장이 아래쪽으로 보고 있는 권 병장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야! ‘V C다!’(베트콩) V C가 우리 쪽으로 물을 먹으러 오고 있는 것 같아, 권 병장 그 총 이리 줘! 하며 김 병장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고 있었다. 권 병장도 떨리는 목소리로 야, 김 병장! ‘잘 봐’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봐, 산 짐승인지? 정말 V C면, 실탄이 모자라 큰 일 이야 하며, 그들은 큰 걱정을 하였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실탄, 18발 덜이 한 탄창과 M-16 자동소총 한 자루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권 병장도 온 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출발할 때, 무거운 철모와 거추장스러운 방탄복과 수류탄, 실탄이 가득 찬, 탄 입대와 탄띠는 다 풀어놓고 M-16자동소총과 실탄, 18발 덜이 한 탄창만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만일, VC와 상황이라도 벌어진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저 위쪽 어둠속에서 아주 나지막한 귀에 익은 목소리로 권 병장! 김 병장하는 한국말 소리가 들려왔다.
김 종일 분대장이었다.
분대장님! 여깁니다, "여기!" 하며, 소리 나는 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들은 분대장과 같이 온 최 지원 병장과 기적처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 무거운 물 수통을 넷이서 나누어 짊어지고 칠 흑 같은 어둠속에서 밤새도록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이국땅 낮선 계곡을 헤 메던 그 때의 그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권준 병장, 김 영진 병장, 최 지원 병장 그들은, 무척 망설이며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 계속 -
야, 물이다. 물을 찾았다 (23)
그때 꽁 산 작전 때, 물 때문에 혼 줄이 난 김 종일 하사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물 백 (두꺼운 비닐자루)을 어렵게 하나 구입하였다. 그들은 그 물 백 자루에 물을 넣어 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먼저 솔선수범 하였다.
분대장 그는, 작전 임무를 수행 할 때에는, 물 20리터 정도를 분대장 자신이 배낭위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분 대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전 중에는 수통의 물은, 내 몸속에 피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분 대원들에게 물을 아껴 먹으라고 이렇게 교육을 시켰다.
고로!
"물을 목으로 바로 넘기면 절대 안 된다!" "물은 항 상 입안에 머금고 있어야 한다!" 분대장 그는, 이렇게 물을 아껴 먹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분 대원들에게 강조를 하였다. 그리고 고국에서 신병이 분대에 처음 전입해 오면 제일 먼저 물 아껴 먹는 방법을 교육 시킨다.
때문에, 분 대원들의 피와 같은 이 20리터짜리 물 백과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교육하는 대로 물을 아껴 먹으면 갑자기 돌발 사태나 기상 악화로 보급 헬기가 뜨지 못해 보급이 중단되어도 물 백이 없고 물 아 겨 먹는 교육을 하지 않은 다른 분 대원들보다 제3분대는 약 1~2일 정도 더 버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번 앙케 작전 출동할 때도, 연대 작전과의 하루지원 작전이란 연대장의 명령과 주변에 제1중대 아군 전술기지가 있다는 정보에, 분 대원들의 피와 같은 이 물 백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 큰 불찰이었다.
분 대원들은 지금, 아주 심한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분 대원들은 주변에 적들이 우굴 거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가 고파 허기가 지고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가 없다. 먹을 것과 물을 찾아보자고 계속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그때 꽁 산 작전 때,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김 병장과 권 병장을 깊은 계곡으로 물을 뜨러 내려 보내다가, 그들이 돌아오지 않아, 오금이 저리고 피가 마르던 그때의 고심했던 기억이 새삼 뇌리에 떠올라다.
그때 꽁 산 작전에서 물을 먹지 못해, 갈증에 목이 말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상부에 보고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분대장 자신과 분 대원들에게 수십 번 아니 수 백 번도 더 다짐하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분대장 김 종일 하사 자신도, 더 이상 허기와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허기와 갈증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분 대원들의 아우성에 분대장의 마음도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분 대원들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좋게 어 하였다. 또 그는, 또다시 분 대원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물을 찾아보는 것이 좋게 어!”
아니면!
“바로 제1중대 전술기지로 철수하는 것이 좋게 어 하고, 분 대원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김 영진 병장과 권준 병장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분대에서 내가 제일 믿는 사람은 김 병장과 권 병장 너희 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두 사람에게 비행기를 살짝 태웠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무거운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적들이 곳곳에 들어박혀 우굴 거리고 있다. 그래서 여기 이곳은 엄청 위험한 곳이다. 우리가 여기서 물과 먹을 것을 찾아 분 대원들이 다 함께 움직이면 적들에게 쉽게 노출된다. 때문에 분대가 큰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 분대에서 제일 돌방 돌방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이 두 사람이 제격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군 입대 전, 시골에서 스피커 선로 수리공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마치! 타잔처럼 정글 속을 잘 누비는 김 병장과 그리고 군 입대 전, 경부 고속도로 양산 현장에서 불 도 저 부 기사(조수)를 한 노하우로 불 도 저처럼 저돌적으로 밀어 붙이는 두둑한 배짱을 가진 권 병장이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분대장 그는, 또다시 김 병장과 권 병장을 비행기를 태우는 말로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는 상부에 보고 없이 독자적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분 대원들과 자신과의 수백 번도 더 다짐했던 약속을 이렇게 합리화시켰다. 또, 그는 분 대원들의 먹을 것과 물을 찾아보자는 아우성에 명분을 삼았다. 그리고 그는, 김 병장과 권 병장에게 주변에 물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라고 지시하였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저쪽 산 능선 넘어 보이는 골짜기로 은폐엄폐 하여 살금살금 기어가서 물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다가,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돌아오라고 명령하였다.
분대장 그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였다. 하지만, 물을 꼭 찾아보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가냘픈 희망에 물을 찾으러 출발 하였다.
그들은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약 50m 쯤 들어가서 앞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큰 나무와 정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나무위에 올라가서 물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였다.
야!
김 병장!
나무에 한번 올라 가 봐!
나무와 전주를 오르내리는 것은 원숭이보다 재주가 더 뛰어난다는 김 병장을 나무에 올라가서 물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라고 권 병장은 김 병장을 고두이었다. 심한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권 병장은 물이 있는 곳이 빨리 발견되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김 영진 병장은 군 입대 전, 그 당시 시골에서 앰프 한대에, (군에서 통신선으로 사용하는) 삐삐 선으로 전주와 나무를 이용하여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마을과 마을사이로 삐삐 선으로 가설하여 수백 개의 스피커 선을 연결하여 주파수 채널이 없는 라디오 대용으로 방송을 청취하는 스피커선 수리공을 하였다.
때문에 그는, 나무에는 원숭이 보다 잘 오르내린다고 했다. 정말 그는, 원숭이처럼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나무에 올라가자마자 김 영진 병장이 소리쳤다.
아!
'물이다!'
'물이 있어!'
"그가 물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 살았다 하는 생각에 권 병장은 뛸 듯이 기뻤다!” 나무위에 올라간 김 병장이 물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권 병장은 즉시 분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그는, 물을 찾았다고 소리쳤다.
김 병장은 언제 나무에서 내려왔는지? 그는 벌써 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권 병장도 김 병장의 뒤를 따라, ‘물이다’라고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이어 분 대원들도 물이 있는 쪽으로 그 둘을 따라 일제히 달려 나왔다.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울창한 정글 숲을 헤치고 조금 들어가니까. 정말 넓은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푸른 물이 넓은 논에 우리들의 무릎까지 차오를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분 대원들은 일제히 김 병장과 권 병장이 물을 먹고 있는 논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적들이 노리건 말건 위험 따위는 아량 곳 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은 물에만 정신이 팔렸다.
- 계속 -
적의시체 썩은 물을 마시다 (24)
논으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간 분 대원들은 미친 듯이 물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업 들어서 물을 먹는 분 대원들과, 수통에 담아 물을 퍼마시는 분 대원들이, 정신없이 물을 먹고 있을 때였다.
바로, 이때였다. 논 입구, 둑 방 위에서 갈증을 참으며 분 대원들을 엄호하기 위해, 혼자서 청음초 경계를 하고 있던,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소리쳤다. “권준 병장과, 김 영진 병장은 어서 빨리 논에서 나와 청음초 경계를 하라고 소리쳤다.”
분 대원들보다 먼저 달려와서 정신없이 물을 먹고 있던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얼른 논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정신없이 물을 먹고 있는 분 대원들을 엄호하기 위하여 M-16자동소총에 실탄이 장전된 방아쇠 장금장치를 풀고, 개울가에 몸을 낮추었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옆에 있던 김 영진 병장이 갑자기 입에서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김 병장!
왜?
그래!
권 병장은 걱정스럽게 김 병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김 병장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괜 찬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먹었던 논물 때문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물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랬다.
김 영진 병장은 제일 먼저 달려와서 수통에 물을 담아서 마치! 빈 독에 물을 퍼 담 듯이 입속으로 퍼 넣어 마셔댔다. 때문에 그는, 물이 목 까지 차올랐다. 목까지 차오른 그 물이 다시 입 밖으로 넘쳐 흘러나온다는 것이었다.
권 병장 그는, 김 병장 그에게 에 라이, 이런 미련 곰 탱 이 같은 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김 병장 그에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런 핏 잔을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물 흘러내리지 않게 수도꼭지나 빨리 잠그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하였다. 권 병장 그도, 불안한 심정으로 주의를 두리번거리며 앞을 바라보니까.
조금 전, 우리가 물을 마신, 바로 위쪽 논에서 이상한 시커먼 물체가 살짝 보였다. 권 병장 그는, 김 병장 그에게 나지막한 말로 속삭였다.
‘저게 뭐지?’
권 병장 그는, 김 병장 그에게, 저기 이상한 시커먼 물체가 있다고 말했다. 권 병장 그가, 김 병장 그에게 이렇게 말하니까. 호기심이 많은 김 영진 병장은 몸을 낮추고 조심조심 검은 물체를 향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을 하고 돌아온 그는, 또다시 "웩웩거리며 토악질을 하 기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방금 먹었던 물을 또 다시 토해내기 시작했다."
권 병장 그는, 김 병장 그가, 아까처럼 물을 너무 많이 먹어 다시 토하는 줄 알고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도 수도꼭지가 덜 잠겼나 봐,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또!
그러냐고 그에게 걱정스럽게 따져 물으니까? 그는, '시커먼 물체를 가르치면서 적의 시체라고 하였다!' 권 병장 그도, 김 병장 그의 말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때문에 그도 토악질을 하 기 시작했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은 조금 전 먹었던 물을 토해 내는 것을 보고, “논에서 나온 분 대원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권병장과 김 병장은 위쪽 논에 있는 시커먼 적의 시체를 가르치며, 우리 모두 송장 썩은 물을 마신다고 하니까,
분대장 김 종일 하사만 열외(제외)하고, 나머지 분 대원들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뱃속에 저장된 논물이 힘차게 입 밖으로 분출 하였다.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그들의 입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분대장인 김 종일 하사는 혼자서 둑 방위에서 청음초 경계근무를 서다가 뒤늦게 논에 들어가 물을 얼마 먹지 못 한 탓인지?
아니면!
물을 먹지 않았는지?
분대장 김 종일 하사 혼자만 먹었던 물을 토해내지 않았다.
하지만, 분 대원들은 엄청나게 물을 많이 먹은 탓인지?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뱃속에 있는 물이 힘차게 입 밖으로 분출 되었다. 그러고 나니까. 그들은 힘이 쭉 빠졌다. 분 대원 모두들 아무 생각 없이 논가에 있는 둑 방위에 멍청히 앉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분 대원들이 먹었던 물을 토해내는 것을 보고 잔뜩 긴장을 하였다. 시체 썩은 이 물이 재수 없으면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겁이 덜컥 났다.
이 물이 우리들에게는 피 같은 아까운 물이지만, 콜레라 전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시체 썩은 이 물을 한 방울도 마시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수통에 담아놓은 물도 미련 없이 다 버리라고 단호하게 명령 하였다.
불도저처럼 한 번 미러 부치면 끝까지 미러 부치는 권 병장은,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는 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물욕심이 너무 많아 목구멍에서 입 밖으로 도로 넘어 올라올 때까지 퍼 넣은, 김 병장에게 다 버리지 말고 분대장 몰래 비상용으로 한 수통씩만 짱 박아 놓자고 말했다. 김 병장 그도, 권 병장 제안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권 병장이 군 입 대전에 보고들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가 군 입 대전에, 불도저 부기사로 있을 때였다. 공사현장에 있는 봉군의 표시가 없는 무연고 묘지를 불도저로 미러 을 때, 그 묘지 속에 송장과 함께 노란 물이 고여 있는 송장 썩은 물을, 구경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이 다가와서 약이 된다고 코를 잡고 퍼 마시고 소주병에 떠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권 병장 그는, 거기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물 한 수통씩만 분대장 몰래 짱 박 아 놓자고 하였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라는 옛말처럼, 차라리 시체 썩은 물이라는 것을 몰랐더라면 아무 일없이 무사히 넘어 갔을 테데 ……. 갈증에 견디다 못한 분 대원들은 시체 썩은 물이라는 그 말 한마디에 마신 물을 전부 다 토해 내고 눈이 괴괴 풀린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죽은 적의 시체 썩은 물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그렇게 생기발랄하고 멀쩡했던 전우들이었는데 …….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라는 사실을, 날이 밝은 후에야 알게 된 후로, ‘인생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깨닫고 득도하였다.’ 그 길로 그는 당나라 유학길을 멈추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신라로 가 버렸다는 신라 고승 원 효 대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도 이 피 같은 물이 너무나 아까워 무척 고심하였다. 그러나 미련 없이 다 버리라고 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만약, 이 물을 마시고 콜레라 전염병에 전염 되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콜레라 병균은 전염성이 워낙 강해 순식간에 중대 책임 전술기지 내에 아군들에게 퍼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때문에 아군들은 적들과 전투다운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콜레라전염병과 싸우다가 결국은 전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이 같은 생각 때문에 모골이 송연했다.”
“그는 같이 행동한 너희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야 하였다.” 그러면서, 분대장 그는, 분 대원들에게 잔뜩 겁을 주었다. 그는 상부의 명령도 없이 독자적으로 취한 행동으로 빚어진 엄청난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자기는 곧바로 총살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이렇게 분 대원들에게 겁을 주며 윽 박 질었다.
때문에 권 병장과 김 병장은 분대장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그 둘은, 분대장 몰래 짱 박아 놓았던 물을 정글 속에 슬쩍 버려 버렸다.
- 계속 -
우리 모두 총살감이야 (25)
시체 썩은 물이라도 마음 것 마시고 토해 낸 분 대원들은 주변을 살피다가 또다시 깜짝 놀랐다. 논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적의 시체뿐만 아니라, 둑 방 위쪽, 숲 속에서도 핏자국과 함께 적들의 시체 두 구가 더, 널 부러져 있었다.
저 위쪽 논에서 죽어있는 시커먼 숯검정을 칠한 벌거벗은 시체보다 더 부패되어 파리 떼와 구더기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이 세구의 시체는, 며칠 전 4월 11일 새벽에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에 3선의 전술철조망 중, 2선을 뚫고 세 이파(특공대)로 침투해 왔다. 그날 밤 그들은, 박 태 균 순찰하사에게 발각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클레모어와 수류탄, M-60경기관총, M-16자동소총 실탄 세례를 받았다.
아군의 무차별한 실탄 세례를 받은 적들은 그 자리에서 5명이 사살되었다.
그리고 중대 전술기지 철조망 바깥에서 공격조로 대기하고 있는 약 50-60명의 적들 중, 이 3명은 아군의 81m m 박격포에 큰 중상을 입은 채, 피를 흘리며 도주하다가 이곳까지 와서 물을 먹으려다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제갈공명처럼 지략이 뛰어난 최 지원 병장이 나름대로 추측하며 진단했다.
그리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이 사실을 다른 전우들에게,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도, 이 같은 사실을 절대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만일, 이 같은 사실을 상부에 보고를 하게 되었을 때, 벌어질 광경을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그려 보았다. 갑자기 그의 눈앞이 가물거려오는 현기증이 느껴져 왔다.
‘왜 명령도 없이 적들이 우굴 거리는 위험한 지역에 분 대원들을 데리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했느냐?’
‘정말 물이 있었느냐?’
‘어디에, 얼마나 있더냐?’
‘정말 적의 시체를 보았느냐?’
육하원칙대로 보고를 올리라고 꼬치꼬치 캐물으며 책임 추궁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더군다나, 수색중대 지휘권은 제1중대장 자신에게 배속되어 있기 때문에 제1중대장 자신이 지휘를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틀림없이 이 일대를 수색, 탐색작전을 실시하라고 수색 중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 분명하였다.
그들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제1중대장 명령을 따르자니 최정예 수색중대로서의 명예와 자존심도 상할 뿐더러, 몸과 마음도 고달파질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또, 발견된 적 시체 3구는 자신들의 전과로 챙길 것이 틀림없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그들의 뒤치다꺼리만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중대원 전우들한테 괜히 쓸데없는 짓거리를 했다는 비난과 원성을 들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때문에 분대장은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여기서 그냥 덮어두는 것이 제일 상책이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 기 좋은 말로, ‘죽 쑤어 개 준 꼴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x놈이 챙기는 꼴이 되고 말 것’ 이라고 하였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오늘 있었던 황당한 일을 일체 발설하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더, 분 대원들에게 당부하였다. 또, 이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 우리 모두 총살감이라고 또다시 분 대원들에게 겁을 잔뜩 주었다.
“상부에서 무엇 때문에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으면, 너무나 배가 고파 허기가 지고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 때문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쉬엄쉬엄 올라오느라 늦어졌다고 말하라고,” 분 대원들 끼리 입을 맞추도록 교육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 이곳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는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자”고 분 대원들에게 재촉했다.
지금, 제3분 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이곳, 깊은 계곡에는, 산 능선이 마치!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바로 앞에는 638고지가 제일 높게 우뚝 솟아 있었다. 그 638고지를 기준으로 해서 좌측에는 600고지에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가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측에는 638고지에서 흘러 내려온 600고지 보다 조금 낮은 588고지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는 동쪽 퀴논에서 앙케 고개를 거쳐 서쪽 플레이쿠 쪽으로 가는 19번 도로가 위치해 있었다. 수색중대 제2소대 3 분대 그 들은, 물을 찾아 무작정 따라 들어오다 보니, 좌측에 위치해 있는 600고지와 우측에 위치해 있는 588고지 사이 깊은 골짜기까지 깊숙이 들어오고 말았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플레이쿠 쪽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어둠이 서서히 638고지 밑, 깊은 골짜기를 휘감고 있었다. 어둠이 고지와 능선보다, 더 일찍 제3분 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깊은 골짜기에는, 마치! 안개처럼 짙게 내려 깔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은 기분 나쁘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바짝 긴장을 하였다.
분대장 그는, 더 이상 어둠이 내려 깔리기 전에 이 깊은 골짜기를 빨리 벗어나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불같은 재촉이 성화같았다. 그는 서둘러서 김 영진 병장을 첨병에 지명하였다. 부 첨병에는 권 준 병장이 서고, 중앙에는 분대장 자신이 위치하였다. 그리고 맨 후미에는 부분대장인 최 지원 병장이 주위와 후미를 경계하며 따르게 하였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일렬 전술종대작전으로 사단장 전용헬기와 병원헬기가 이륙했던 장소로 되돌아 나가서 소로를 따라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 정문으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가 떨어지기 바쁘게 최 지원 병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기서 곧장 올라가면 될 것을 구태여 멀리 돌아 갈 필요가 뭐 있어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좌측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책임 전술기지로 여기서 직선으로 곧 바로 올라가자고 제안하였다. 사단장 전용헬기와 병원헬기가 이륙했던 장소까지 갈 시간이면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충분히 도착할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최 병장의 제안에 권 병장이 급히 나섰다. 어디! 첨병 잡을 일 있나? 그렇지 않아도 첨병을 서야하는 김 병장은 계속 물을 찾기 위해 그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때문에 그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이렇게 지쳐있는 김 병장을 또 다시 가시덤불 정글 속을 헤치며 새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무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계속 이렇게 무리한 임무를 그에게 수행하게 하면 김 병장은 과로로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권 병장은 최 병장의 제안에 반대했다.
권 병장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분대장 김 하사도 직선으로 쉽게 올라갔으면 좋기는 하겠지. 하지만, 가시덤불 정글 속을 새로 길을 뚫는 것도 문제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1중대 전술기지 주변에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과 적들의 침투를 막기 위하여 뿌려놓은 M-14 대인지뢰가 더 큰 문제라고 그는 난색을 표했다.
- 계속 -
송장 썩은 물이라도 떠 오겠다. (26)
그러면서 그는, 거리가 조금 멀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처음 들어올 때 개척해 놓은 소로길 을 따라 되돌아 나가서 제1중대 소도산전술기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처음 지시했던 작전 그대로 강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는 굽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최 지원 병장 이론보다 조직을 운영해 본, 분대장 김 종일 하사의 작전이 현실에 잘 부합하는 것 같았다.
분 대원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으로 정신마저 몽롱한 상태였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들은 이제 한 발자국도 떼어 놓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천근만근이나 되는 몸을 이끌고 사력을 다 해, 사단장 전용헬기와 병원헬기가 이륙했던 앙케 고개 19번 도로 옆 개활지에 겨우 도착 할 무렵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분 대원들이 시체 썩은 물을 먹고 토해 내고 난 후, 힘없이 앉아 머물고 있었던 바로 그 둑방길 쪽에서 “따 콩! 따 콩!~” 하는 A K-47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첨병으로 앞에 먼저가고 있던 김 병장이 갑자기 푹 쓰러졌다. 부 첨병으로 그의 뒤를 따라가던 권 병장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얼른 김 병장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큰 소리로 울먹였다.
“김 병장! 왜 그래?”
“김 병장이 총에 맞아 죽은 것 같아!”
“어떻게 해!”
“어쩌면 좋아!”
그는 김 병장이 월맹군의 저격수가 쏜, A K-47자동소총에 맞아 죽은 줄 알았다. 때문에 그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씨 팔! 목이 타 들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곧바로 소도산 책임전술기지로 철수하는 건데, 물을 찾아보자고 했던 분 대원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대성통곡하며 목 놓아 엉엉 울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중앙에 위치해 있던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뜻밖의 사태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다급히 후미에 있는 부분대장 최 지원 병장에게 남은 분 대원들을 청음초 경계를 내 보내 본대를 철저히 경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분대장 그는, 쓰러져 있는 김 병장 곁으로 급히 다가갔다. 또 그는, 김 병장이 A K-47소총에 맞고 쓰러진 줄 알고, 그의 상처부위를 살펴보았다. 그는 김 병장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상처 부위는 발견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초조하였다. 상처부위를 빨리 찾아야 압박붕대로 지혈을 시켜 응급조치를 할 수 있을 테데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상처부위를 계속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의 상처 부위를 찾아보아도 그의 상처 부위는 발견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에게는 총에 맞은 상처부위와 핏자국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분대장 그는, 다 시 한 번 더 상처부위를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에게는 총을 맞은 상처부위와 핏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김 병장은 총에 맞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분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 내었다. 그는 과로로 쓰러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는 좀 안심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한 번 쓰러진 김 병장은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쓰러져 있는 김 병장을 흔들어도 보고, 뺨을 찰싹찰싹 때려도 보았다. 그러나 김 병장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분대장 김 하사는 무척 당황해 하였다. “이럴 때 물이라도 있었으면 얼굴에 확 부어버리면 깨어날 텐데 ……” “어디! 물가진 사람 없어 하였다!” 물가진 사람 없어 하는,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외치는 소리에 옆에서 울고 있던 권 병장이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씨 팔! 물을 버리라고 해서 짱 박아 놓았던 물까지 다 버리고 말았는데, 물이 어디 있게 어 하고 그는 울분을 토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송장 썩은 물이라도 떠 오겠다. 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극도로 흥분한 권 병장은 후미의 최 병장 쪽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분대장 김 하사는 최 병장을 불러서 권 병장이 물 뜨러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못가도록 붙잡으라고 소리쳤다.
최 병장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권 병장 앞을 가로 막으며, 위험한 곳이라고 못 가게 붙잡으며 극구 만류하려고 할 순간이었다. 김 병장이 죽었다는 엄청난 충격에 눈알이 확, 뒤집힌 권 병장은 갑자기 M-16소총을 최 병장에게 들이대면서 비키라고 소리쳤다.
최 병장은 권 병장의 행동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그는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일촉즉발의 순간, 권 병장은 M-16자동소총 잠금장치를 풀고 적들의 A K-47총소리가 들려 왔던 곳을 향해, 개 씨 팔 새끼들! 나와라, 다 죽여 버리겠다. 그는 욕지거리를 섞어 가며 히! 히히!~” 히죽히죽 웃는 모양이 금세 큰일을 낼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탕! 탕!~”드르륵 “텅! 텅!~”M-16총을 마구 쏘아댔다.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하는 권 병장을 보고, 완전히 미쳐 구만 미쳤어! 하고 최 병장이 빈정거리니까
“그래! 나는 미쳤다!”
“나는 완전히 미친놈이야!”
“목이 말라 돌아버릴 것만 같아!”
“내 미 씨 팔!”
“총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목말라 죽으나!”
“죽는 것은 매 마찬가지야!”
횡설수설하는 것이,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김 병장이 전사했어!”
“영진이가 죽고 말았어!”
“어떡해!”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땅에 철썩 주저앉아 또다시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권 병장이 쏘아대는 총소리와 떠드는 소리에 김 병장이 부스스 깨어났다.
분대장 김 하사의 짐작대로 김 병장 그는, 적들의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허기와 심한 갈증에 잠깐 정신을 잃고 과로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분 대원들은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고 있을 때, 김 병장과 권 병장은 물을 찾아서 정글 속을 헤매느라 체력이 바닥이 났었다.
특히, 김 병장은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그 힘들고 위험한 첨병임무까지 수행하느라 너무 과로했던 탓이었다.
분대장 김 하사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분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김 병장과 권 병장을 돌 망 돌 망하다고 부추기어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분대장 그는 자신의 오른팔, 왼팔격인 두 사람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았다. 때문에 분대장은 일면 미안하기도 하고 일면 후회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 병장이 겨우 깨어났다.
“권 병장! 어디 있어?”
그는 제일 먼저 권 병장을 찾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꿈속에서의 그 사람이 저승사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따 콩!” “따 콩!~”하는 A K-47 총소리를 듣고 쓰러지는 순간, 큰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빨리 자신을 따라오라고 재촉을 하였다.
자신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그 사람을 뒤따라갔다고 했다. 이때 갑자기 권 병장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는 ‘그 사람 따라가면 안 된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 사람은 ‘저승사자’라고 소리를 질러 됐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