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5. 08:17ㆍ유용한 정보/군사소식
대한민국 주월 한국군 파병 최초, 최대, 최후의 맹호부대 안케패스
638고지 탈환 전투 참전(실전) 수기 연재 (1-139화)
'안케의 눈물'
안케의 눈물 (4)
내 피를 빨아 먹어라 (81), /638고지에 융단폭격을 하다 (88), / 네이팜탄 작전이 불가능하면
화공작전이라도 (89) /정말 불가사의한 기적 같은 일이야 (95)
내 피를 빨아 먹어라 (81)
때문에, 아군은 전략과 전술적으로 적들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이 같은 무모한 작전 때문에, 아군은 씻을 수 없는 최악의 작전이 되고 말았다. 또, 미군의 항공폭격 및 무장헬기 폭격과 주 월 한국군의 우세한 화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앙케 작전 지휘부는 연대작전에서 사단작전으로 급히 전환하였다. 하지만, 아군은 정보력에 밀려 주먹구구식 작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적 월맹군들에게 계속 밀리기만 하였다.
이처럼 전세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제1대대장이 638고지 공격작전을 지휘하던 3개 중대가 638고지를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후퇴하였다. 그리고 그들, 제3대대도 19번 도로 개통 작전에 투입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제2대대 6중대가 적진에 랜딩하자마자 적들에게 곧바로 고립되었다. 때문에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제5중대를 급히 투입하였다. 제5중대는 제6중대 그들, 구출작전을 벌였다. 하지만 적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제2대대도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2대대 6중대를 적진 깊숙한 곳에 랜딩 작전을 명한, 이 작전이야 말로, 앙케 작전에서 최악의 작전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앙케 전투를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 작전이 치욕스런 작전이 되고 말았다. 또, 앙케 전투에서 최고로 중요한 638고지 탈환 작전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638고지 공격작전에 큰 차질을 빗고 말았다.
그리고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된 제6중대를 구출 작전이 최우선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고립된 제6중대 구출 작전에 급히! 제5중대를 투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앙케 작전 모든 전력을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차라리 제6중대를 적진 깊숙한 곳에 투입하지 않고, 제6중대와 제 5중대를 638고지 공격작전에 투입 하였더라면, 아군이 이처럼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 항공폭격과 무장헬기 폭격도 발이 묶이게 되었다. 또,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원들에게 보급품과 물을 공수하는 작전을 전개하다가, 미군 헬기 두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때문에 미 헬기 조종사 두 명이 전사하고, 또 미 조종사 두 명이 중상을 당하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정말 아름답고 진정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들은 적진 깊숙한 곳에 헬기로 랜딩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적들에게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 포위되고 말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참호 속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 같은 아주 극한 상황에서 보급과 물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또 그들은 전투식량(C-레이선)과 물 한 방울 먹어 본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들은 갈증이 극도에 달했다. 갈증이 극도에 달한 그들, 부상병들은 상처의 아픈 고통과 심한 갈증에 더 이상 견딜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빨리 총을 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그들은 물! 물! 물을 하며, 물만 찾고 있었다. 또 그들은 물을 달라고 외치다가 하나 둘씩, 이역만리 앙케 협곡에서 이렇게 죽어갔다.
중대장 그는, 단말마와 같이 절규하는 한 생명을 지켜보는 순간,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아주 참담한 심정을 참아내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젠, 중대장 본인도 더 이상은 갈증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 입안에 침이 말라붙고 혀가 굳어 들어가는 아주 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저 앞쪽에서 높은 포복으로 접근해 오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이 검은 물체는 다름 아닌, 사랑스런 부하인 제2소대 소속 이 만 직 병장이었다. 그는 이 절박한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비상용으로 아끼고 아껴 두었던 C-레 이선에 들어 있는 피보다 더 귀중한 B-1물 한 개를 중대장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목과 입술이 다 타 들어가는 갈증과 혀가 굳어가는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인간 한계에 다다라 정신마저 혼미한 상태였다. 중대원 모두가 심한 갈증에 아우성치는 아주 절박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부하인 이 만 직 병장의 이 충정어린 충성심에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너무나 감격해서 목이 메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고마워 눈물까지 흘렸다.
중대장 그는, 그가 건 내 준 그 B-1물로 갈증에 타들어 가는 목을 조금만 축였다. 그리고 그는. 충성스런 그 부하 이 만 직 병장에게 다시 그 B-1물을 돌려주었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이처럼 인내하며 행하기란 정말 힘든 행동이었다. 이 같은 행동이야 말로 모든 병사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전우애의 발로이었다.
그 이후,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되었던 제6중대는 수많은 희생과 피해를 내고서 천신만고 끝에 본국에서 4년간 함께 근무한 제5중대장 안 영소 대위가 이끄는 제5중대의 구출작전으로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이 같은 충성스런 부하, 이 만 직 병장에게 아름다운 전우애의 귀감이 되었다는 교훈을 삼기 위해 훈장을 상신하였다. 이 공로로 이 만 직 병장은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게 되었다. 그 훈장이야말로, 진정한 전우애의 B-1물 훈장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앙케 전투에서는 수훈자보다 전상자에게 훈장을 먼저 상신하였다. 이것이 그 당시 관례였다. 이 B-1물 훈장은, 이앙케 전투에서 수여한 242개 훈장 중, 최고로 고귀하고 값진 훈장이었다. 그리고 이앙케 전투에서 수훈 없이 만들어 준, 두 개가 수여된 태극무공훈장 보다 몇 백배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훈장이었다.
“이 훈장이야 말로 진정한 전우애의 발로였다!” 그가 받은 이 훈장이야 말로, 월남 전사에서 최고로 고귀하고 값진 훈장이었던 것이다. 앙케 전투에 참전한 전우들은 누구나 다 인정하였다. 또,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일화가 있는가 하면, 물 보급을 받지 못하고 638고지를 공격하던 어느 병사는 소대장이 물을 마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입안이 다 타 들어갔다. 또 그는 침이 말라붙어 혀가 굳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갈증을 견디다 못해 포성과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물 한 목음 얻어먹기 위해 높은 포복자세로 소대장 앞으로 겨우 기어갔다.
“소대장님! 물 한 모금만 주 십 시 오 하였다.” 그는, 소대장 그에게 물 한 모금 달라고 이렇게 애걸을 하였다. 하지만, 이 무지막지한 소대장은 물은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뽑아 그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팔을 내 밀며 자, 내 피를 빨아 먹으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한 마디로 부하의 물 달라는 애걸을 뿌리쳤다는 씁쓸한 소문도 있었다.
그 만큼 물이 사람의 피만큼 중요하고 귀하다는 것을 이 지긋지긋한 앙케 전투에서 뼛속깊이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 계속 -
미군 헬기가 추락하다 (82)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숨을 쉬고 살아오는 이십 몇 년 동안, 공기의 중요함을 잘 모르고 살아왔듯이, 물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무심히 지내 왔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앙케 전투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심한 갈증을 겪으면서 난생 처음으로 물에 대한 고마움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물과 공기가 없으면 인간이 잠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움으로써 대자연의 위대함을 이앙케 전투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같은 대자연의 진리를 마음속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 물!~” “물을 달라!” 제6중대는 적진 깊숙한 두 개의 능선이 흘러간 350고지와 무명고지 사이에 있는 저지대 갈대 숲 속에 고립되었다. 그들에게 며칠째 물과 보급이 중단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목과 입술이 바짝바짝 다 타들어 갔다. 또 그들은 혀까지 굳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갈증의 고통 속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그들은 물을 달라고 외치는 부상당한 부하들의 생명은 짚불처럼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심한 갈증에 입에 게거품을 물며 히죽히죽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미쳐가고 있었다. 인간이 물을 먹지 못하여 갈증이 극에 달하면 미쳐버린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선 것 같았다.
때문에 그들은, 곧 꺼져버릴 듯, 풍전등화와 같은 생명줄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들은, 겨우 기어 들어가는 모기 소리만한 가냘픈 목소리로 물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그들은 이 같은 소리가 심장이 멎어버릴 듯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미군 헬기조종사들은 638고지 뒤쪽 적진 속에 며칠째 고립되어 고통과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제6중대원들에게 물 보급을 하 기 위해 출격하였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앙케 패스 600고지에 위치에 있는 아군 전술기지 상공에서 적들이 점령하고 있는 638고지 뒤쪽으로 기수를 낮추며 서서히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638고지에서 쏜 월맹군들의 대공포를 맞고 물과 보급품을 공수해 가던 미군 보급헬기가 638고지 3부 능선에 추락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그 미군 헬기는 큰 나무위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무전기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미 공군 측은 즉각 무장헬기 수십 대를 출격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적들이 추락한 헬기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무장헬기에 장착된 로켓포와 M-60기관총으로 무자비하게 폭격과 사격을 가하였다. 그들은 마치! 월맹군들에게 보복이라도 하듯이 폭격과 사격을 퍼부었다.
포탄과 실탄을 다 소진한 무장헬기는 미 공군 전술기지로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폭탄과 실탄을 가득 실은 수십 대의 무장헬기가 638고지 상공에 나타나 적들에게는 고개도 내 밀지 못하도록 교대로 선회 비행을 하면서 포탄과 총알을 토해내었다.
미군 무장헬기는 이렇게 638고지에 있는 적 벙커와 참호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 월맹군들의 벙커와 참호를 폭격하였다. 때문에 적 월맹군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638고지 넘어, 천년 동굴(월맹군 제3사단 12연대 상황실) 속으로 급히 철수하였다.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고 있는 무장헬기들이 마치! 가을 하늘 까마귀 떼처럼 앙케 패스 638고지 상공을 새카맣게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투!~투!” “타!~다 따!” 하는 헬기들의 굉음소리가 귀고막이 찢어질 것 같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글자그대로 목불인견이었다.
그 뒤를 이어 따라 들어온 적십자마크가 크게 새겨진 병원헬기 두 대도 굉음소리를 내면서 전상자의 구출작전과 전사자의 시신 수습작전이 완료되기를 기다리며,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고 있었다.
미군 무장헬기 엄호를 받으며 보급품과 물을 싣고 가던 미군 보급헬기가 추락한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병력은, 맹호 기갑연대 제2중대 1소대 병력이었다. 그들은 추락한 헬기 조종실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스럽게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부상당한 생존자가 있는 것 같다고 상황실에 무전으로 급히 타전했다.
큰 나무위에 걸쳐있는 추락한 헬기 조종석에는 중상을 입은 조종사 한 명이 피범벅이 된 채, 고통스럽게 신음을 하고 있는 것이 목격 되었다. 그는 살려달라는 시늉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숲 속 이곳저곳에 핏자국과 함께 전사한 미군 헬기조종사들과 한국군 통역 병의 시신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미군 보급 헬기가 싣고 가던 보급품과 부서진 헬기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무위에 큰 부상을 입은 헬기조종사 한 명이 생존해 있다고 또다시 무전으로 일방 타전하였다. 그를 안전하게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구출작전은 우리 제1소대로선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구조 장비를 가지고 전문구조요원들이 와야 되겠다고 무전으로 긴급 타전했다.
얼마 안 있어 추락한 헬기와 같은 기종의 헬기가 앙케 패스 아군전술기지 상공으로 날아 왔다. 그 헬기는 638고지 밑에 있는 논바닥에 곧바로 착륙하였다. 구조장비를 가지고 구조대원들이 헬기에서 랜딩과 동시에, 그 헬기는 큰 굉음소리를 내면서 하늘 높이 이륙하였다. 급히 이륙한 그 헬기는 계속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였다.
그 헬기는 구조대원들의 구조 활동이 완료될 때까지 계속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 비행을 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상에서는, 미군 전문구조요원들이 나무위에 걸쳐 있는 부상당한 헬기조종사를 구조하고 있는 동안, 638고지 상공에서는 수 십대의 미군 무장헬기들이 구조요원 그들을 엄호 하였다. 지상에서는 기갑연대 제2중대 1소대원들이 추락한 헬기주변을 삼엄하게 경계를 하였다.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그들 모두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 미군 전문구조요원들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크게 중상을 입은 헬기조종사를 무사히 구출하였다. 즉시 그들은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고 있는 병원헬기 조종사에게 구조작전이 완료 되었다고 무전으로 급히 타전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헬기 착륙지점 논바닥에 연막탄을 급히 터뜨렸다.
지금까지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비행을 하며 대기하고 있던 적십자마크를 단 병원헬기 두 대중 한 대가 연막탄이 피어오르는 논바닥에 신속히 착륙하였다.
논바닥에 신속히 착륙한 그 병원 헬기는 방금 구조한 부상당한 헬기조종사를 싣고 즉시 이륙하였다. 동시에, 구조대원들을 태워 가려고 공중에서 시끄럽게 굉음소리를 내며 선회하고 있던 헬기도 신속히 착륙하였다. 구조대원들이 헬기에 탑승하자마자 헬기는 급히 이륙하였다.
구조대원들을 실은 헬기는 하늘 저 멀리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이렇게 생존한 헬기조종사 구조작전은 성공리에 끝을 맺게 된 셈이었다.
그 다음은 전사한 헬기 조종사와 한국군 통역 병, 시신을 수습해야 하였다. 그들은 시간을 조금도 지체할 새도 없었다. 추락한 헬기 잔해와 핏자국이 범벅이 되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헬기조종사들의 시신을 영현 백에 집어넣어 황급히 수습하였다.
- 계속 -
온다는 보급헬기는 오지 않았다 (83)
따라서 주 월 한국군 통역 병의 시신도 그들과 함께 수습하였다.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던 제2중대 1소대원들이 그들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638고지 상공에서 선회하고 있던 마지막 한 대 남은 병원헬기가 연막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신호에 따라 논바닥에 신속히 착륙하였다. 그들은 수습한 그 시신들을 황급히 헬기에 실었다. 헬기는 급히 이륙하였다. 헬기는 곧바로 미 공군 전술기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이렇게 상황을 종결하였다.
앙케 패스 638고지 상공에서 적들이 고개도 내밀지 못하도록 로켓포와 M-60경기관총으로 엄호사격을 하던 수십 대의 무장헬기는 돌아갔다. 그리고 전상자와 전사자들을 후송하러 왔던 적십자마크를 단 병원헬기와 전문구조요원을 태워왔던 헬기들이 모두 다 돌아갔다. 때문에 앙케 패스 638고지 일대는 쥐 죽은 듯 정적만 감돌았다.
정말 무장헬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진즉! 이렇게 수십 대의 무장헬기를 출격시켜 638고지를 공격하는 주 월 한국군에게 오늘처럼 적극적으로 폭격을 지원해 주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이면 주 월 한국군은 638고지를 거뜬히 탈환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군 보급헬기도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아쉬움이 많은 작전이었다.
추락한 미군 보급헬기는 바위나 땅으로 추락하지 않고, 큰 나무위로 추락한 것이 그나마 불행 중 천만다행이었다. 이 보급헬기가 바위나 땅으로 추락하여 폭발해서 불이 붙었더라면, 헬기 조종사들과 M-60경기관총 사수와 주 월 한국군 무전 통역 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불행 중 천만다행으로 헬기는 바위나 땅에 추락하지 않았다.
보급 헬기는 638고지 3부 능선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쪽, 큰 나무위에 추락하고 말았다.
헬기는 큰 나무 가지에 간신히 걸쳐 있었다. 때문에, 그 헬기는 폭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급헬기에 탑승한 M-60경기관총 사수와 헬기조종사, 주 월 한국군 무전 통역 병, 세 명은 헬기가 추락할 때,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땅으로 내동댕이쳐져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헬기조종사 한 명만이 안전벨트에 매달려서 큰 중상은 입었다. 그 헬기 조종사만이 기적적으로 겨우!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무에 걸쳐 있던 부상당한 헬기조종사 구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때문에 미 공군 측은 즉시 수십 대의 무장헬기와 병원헬기 2대를 출격 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전문구조요원들을 보내어 그 위험한 적진 속, 638고지 밑에 있는 논바닥에 착륙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중상을 입은 미군 헬기조종사를 먼저 구출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중상을 입은 헬기조종사 그를 급히 후송 조치하였다.
다음에 장렬히 전사한 M-60경기관총 사수와 헬기조종사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주 월 한국군 상황실과 미군 헬기조종사와 통역을 맡은 주 월 한국군 무전 통역 병, 시신까지 수습하여 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한국군 그들은, 미군 그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였다.
헬기를 보유하여 막강한 전투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부자나라 미군들의 활약상에, 한국군 그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군 그들은 비참하게도, 헬기 한 대 없이 오로지 미군들의 지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국군 그들은 작전상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세계 평화유지와 자유의 십자군으로 똑같이 먼 이국땅 월남전에 한국군과 미국군이 참전하였다.
미군 그들의 전상자와 전사자는 즉각 수십 대의 무장헬기와 병원헬기를 출격시켜 신속하게 구출하였다. 동시에 전사한 그들 전우들의 시신도 즉시 수습 하였다. 그런데 주 월 한국군 그들은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고 전상을 당하여, 미 공군에 병원헬기를 요청할 때마다 일각이 여삼추인데도 왜, 그렇게 굼뜨게 애를 태우든지? 주 월 한국군 그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약소국가로서의 모멸감과 비애를 실감하게 되었다.
또 같이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이 월남전을 치르면서, 주 월 한국군들이 미군들에게 이 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정말 슬픈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앙케 전투에서 미군 그들의 전상자와 전사자는 신속히 구출하고 수습하는 반면, 주 월 한국군은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들은 그때까지 손도 대지 못하고 수습도 못한 채, 파리 떼와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 한국군 그들은 한없이 슬퍼다. 이처럼 차별을 받고 있는, 한국군 그들의 처지를 스스로 달래가며 약소국의 병사로 태어나게 된 비애와 열패감에 가슴 아파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설상가상으로 미군헬기 추락사고 이후부터는 헬기사정이 좋지 않았다. 헬기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자연히 보급사정도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 대씩 여러 차례 오가던 미군보급헬기가 사보타주를 하는 것인지? 미군 보급헬기는 오지 않았다. 그들 미군 보급헬기는 온다고 해 놓고는 취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다시,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는 물 보급이 중단되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갈증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다 타 들어갔다. 때문에 그들은, 입안에 침이 다 말라붙었다. 그들은 고통을 참다못해 상부에다 빨리 물 보급을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군들의 헬기지원이 되지 않았다.
상부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둥, 남의 일처럼 태연한 대답만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이고 어떻게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며칠 전 638고지 3부 능선에서 미군헬기 추락사고로 전사한 M-60경기관총 사수와 헬기조종사, 두 명의 장례식을 치르며 조의를 표하는 날이어서, 앙케 작전에 주 월 한국군을 지원하는 모든 미군 헬기조종사들의 헬기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미군 그들은 모든 것을 기상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미군 그들은 이 같은 핑계를 대고 헬기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 또, 미군 그들이 이 같은 기상 핑계를 대고 헬기 지원을 해 주지 않아도 주 월 한국군 그들로서는 뭐라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미군 보급헬기 추락사고 이후, 미군 헬기조종사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그러는지? 그도 아니면! 앙케 전투 한국군 지휘부에 대한 지휘 잘못으로 그들의 동료 헬기가 추락하여 동료 조종사의 희생 때문에 그러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고의로 주 월 한국군을 골탕 먹이려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들 미군들은 온갖 핑계로 구실을 삼았다. 그들의 우방에 대한 태도가 도를 넘을 정도로 미군들의 헬기지원은 지극히 비협조적이었다.
어쩌다 미군 보급헬기가 물과 보급품을 싣고 오는 경우에도, 낮게 비행하면서 정확하게 아군 전술기지 떨어뜨려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군에게 무슨 감정이 있는지? 저 높은 상공에서 닭 모이 주듯이 무성의하게 보급품을 떨어뜨리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므로 그 보급품은 주 월 한국군 전술기지에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색중대원들은 미군 보급헬기 조종사에게 개 새끼, 소 새끼, 돼지 새끼 하며 걸쭉한 욕지걸이를 퍼 부었다.
- 계속 -
적진에서 진짜 사나이 군가를 부른 중대장 (84)
아니! 시팔, 보급품을 제대로 떨어뜨려 줘야지, 이렇게 아무데나 떨어뜨려 놓고 날아 가 버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고, 그들은 불평불만은 대단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군 보급헬기 조종사들이 한없이 야속 하였다. 또 그들이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저 미군 헬기 조종사 놈들은 아군 전술기지에 보급품을 투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군들에게 보급품을 투하 하는 것인지? 아니! 저네들이 정신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권 준 병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우 동 거리며 투덜거렸다. 권 병장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이렇게 한마디 거들었다.
“이앙케 전투에는 고약한 징크스가 하나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월남군 포병 놈들은 적군 진지에 포 사격을 요청하면, 아군 전술기지에 포를 쏘아대고, 그리고 또, 미군 보급 헬기 조종사 놈들은 아군 전술기지에 떨어 뜨려할 보급품을 적들이 우굴 거리는 적군 지역에 보급품을 투하 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힌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군들끼리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으니까, 정말 황당하고 기가 찰 노릇이라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긴 한숨을 토해 내었다. 모두들 적진에 보급품을 떨어뜨려 놓고 날아간 미군 보급헬기 조종사에게, 이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수색중대 그들은 분노하고 흥분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진에 보급품을 투하한, 미군 보급헬기 조종사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내 뱉었다.
권 병장과 분대장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최 지원 병장이 이렇게 말했다. 미군 보급헬기 조종사들만 나무라고 원망할 일만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 미군 헬기조종사들도 앙케 작전 한국군 지휘부를 한없이 원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38고지 넘어 적진 깊숙한 곳에 랜딩작전 명령에 따라, 랜딩을 하다가 헬기가 추락하여, 동료 조종사들이 피해와 희생이 났다. 그리고 또, 고립된 제6중대 그들에게 보급품을 투하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헬기가 추락하여 동료 조종사들이 전사하고 전상을 당하였다. 때문에 그들도 감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도 전우들의 희생에 몹시 마음이 아 풀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제5중대 그들은, 무전교신을 통해 적진 깊숙이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은밀히 침투해 온다던 그들은 오지 않았다. 제5중대장 안 영소 대위가 이끄는 제5중대의 레 콘도가 08시가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때문에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원들과 정 태경 제6중대장은 불안하고 초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국에서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와 4년간 함께 근무한 안 영소 대위가 이끄는 제5중대는 새벽 04시부터 여명을 기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11시30분까지 적들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638고지 뒤쪽 390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적진 깊숙한 곳에 포위되고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를 구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6중대는 앙케 패스 638고지 뒤쪽 낙타봉우리의 깊은 개활지에 헬기로 랜딩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350고지와 무명고지에 배치된 월맹군들로부터 기관총과 A K-47자동소총으로 집중사격을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들은 어쩔 수없이 적들의 기관총과 A K-47소총 최대사거리에서 벗어나려고 무작정 깊은 계곡으로 내려 가다보니, 도리어 그들은 더욱 더, 적진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더 깊은 수렁으로 고립되고 말았던 것이다. 제6중대원들과 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월맹군들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상황에서 82mm 박격포탄과 75mm 무반동총 직사포에 집중 공격을 받았다. 때문에 그는, 수십 명의 부하들이 전사하고 전상을 입은 몸으로, 이제 이 수렁에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과 허탈감에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제5중대가 천신만고 끝에 390고지를 탈환하여,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적진 깊숙한 곳에 포위되고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를 구출 하러왔다. 제6중대를 구출하러 온 그는, 고국에서 4년간 같이 근무한 다정한 친구이기도 하고 전우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제6중대장 그는, 제5중대장 안 영소 대위에게 무전으로 호출하였다.
“야! 안 대위 고맙다.”
“자네가 와 주다니 정말 다행이다.”
“부탁 한다, 꼭 부탁한다.”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남아있는 여력이 다해가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그는 여기서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그는 생을 포기한 듯, 아주 애절한 목소리로 제5중대장 안 영소대위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여기서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흐느끼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그는 결혼 100여 일만에 본국에 두고 온 아내에게 전해 달라고 이렇게 부탁했다. 그는 정글 복 상의가 피로 얼룩진 채로 죽어가면서도 ‘대한민국 육군대위 태 경이는 세계 평화와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대한 남아답게 용감히 싸우다 이역만리 월남 땅, 앙케 패스 638고지 뒤쪽 낙타 봉 깊은 계곡에서 장렬히 전사했노라’ 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 들은, 상부명령에 의해 적진 깊숙한 곳에 뛰어들어 적들에게 포위되는 ‘독안에 든 쥐’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적들의 82mm박격포와 75mm직사포로, 그들은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는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부하들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광경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억장이 무너지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먹이면서 살아남은 중대원들과 함께 진짜사나이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기갑연대 제 6중대원들이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되어 울먹이면서 진짜사나이 군가를 부르는 소리를, P-25무전기를 통해 T AC-CP에서 듣고 있던 각급 지휘관들과 장병들, 모두가 숙연해 지며 눈시울을 적시며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제 6중대가 적진 깊숙한 심장부에 랜딩 하였다. 수많은 부하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갈증에 시달렸다. 때문에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부상당한 몸으로 울먹이면서 ‘나는 대한 남아답게 싸우다 갔노라’ 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해달라며 아주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제 6중대장 정 태경 대위의 이 한 마디가 앙케 전투에서 최고로 가슴 찡하고 유명한 일화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 낙타 봉우리는 앙케 전투에서 이처럼 일화와 애환이 많이 서린 곳이기도 하였다.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 그는, 이 유명한 일화 때문에 앙케 의 영웅들이란 영화에 주연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앙케의 영웅들, 영화 내용은 대충 이랬다.
기갑연대 제6중대원들과 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되었다. 그는 적들의 82mm 박격 포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하였다.
- 계속 -
앙케의 영웅들 영화에 출현하다 (85)
그리고 그는, 피범벅이 된 채 죽어가면서도 대한민국 국군 장교답게 살아남은 중대원들과 함께 울먹이면서 ‘진짜사나이’ 군가를 불렀다. 제6중대장 정 태경 대위 그는, 이 유명한 일화 때문에, 수색중대장 배역으로 앙케 의 영웅들이란 영화에 주연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제목 : 앙케 의 영웅들.
감독 : 김 묵.
출연 : 김 진 규 . 윤 양 하 . 이 대 엽
내용 : 맹호부대 용사들은 앙케 패스 638고지를 무단으로 점령한 월맹군들의 진지와 고지 수색을 위하여 무명고지 옆 350고지에 수색중대를 투입 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수색중대원들과 중대장 정 태경 대위는 적 후방 (옛날 아군기지로 쓰던 곳)에 헬기로 적의 안방에 랜딩 시켰다. 수색중대는 적진 깊숙한 곳에 고립되고 만다.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직속 부하인 소대장들은 전사내지는 전상을 당한다. 그는 중대병력 약 6-70%를 잃게 된다.
그도 부상당한 채,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에서 정신마저 혼미해져 간다. 그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직속상관인 대대장에게 무전으로 타전한다. “이 아버지는 대한 남아답게 용감하게 싸우다가 갔노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그러면서 그는, 남은 중대원들과 함께 울먹이면서 진짜사나이 군가를 부른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구절에 이어, 직속 상관인대대장이 정 대위 하고 무전기로 그를 호출한다. 대대장 그는, 정 대위에게 ‘아군이 곧 합류할 테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하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정 대위 그는,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겠나 하며 혼자서 독백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주 으 럭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답답한 대대장 그는, 무전기로 그를 다시 호출하여, ‘내 얘기 듣고 있지?’ 하는 장면과 함께 진짜사나이 군가, 노래가사가 클로즈업 되었다가 화면이 사라져간다. 또다시 스크린 화면에 나타난 정 태경 대위와 살아남은 중대원들은, 계속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이 마지막 구절을 부르는 장면으로 앙케 의 영웅들, 영화는 종료된다.
이것이 ‘앙케 의 영웅들’ 영화의 대강 줄거리이다.
앙케 의 영웅들, 이 영화는 최저의 제작비로 최단 시일에 제작되어 1973년 초, 전국 각 . 시 . 도 일류극장에서 개봉되었을 때는, 인기가 대단 하였다.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구름처럼 몰려오게 한 동기는,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에서 드럼통을 굴려 올라가며, 638고지를 탈환했다는 영화 흥 보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계전사에서 최초로 드럼통작전으로 앙케 패스 638고지를 탈환 했다고 영화 홍보를 하였다.
그런데, 실제 앙케 전투에서 사용하지도 않았던 드럼통에 흙을 가득 채워서 2인 1조로 밀고 올라가면서 638고지를 탈환했다는 장면을 본 관객들이, “저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하며 휘파람 소리와 함께, “우!~우, 우!” 하는 야유를 마구 쏟아내었다. 그리고 함께 관람하던 앙케 전투에 참전한 참전 용사들도 저건 현실에 맞지 않은 엉터리이라고 증언 하였다. 드럼통 작전을 전개하려고 드럼통에 흙을 가득 채워 밀고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급경사와 포 맞은 구덩이와 나뭇가지에 걸려서 도저히 그 드럼통을 밀러 올릴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드럼통 작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앙케 작전 참전용사 그들은 앙케 전투에서는 드럼통 작전은 없었다고 한 결 같이 이렇게 증언하였다.
이 같은 이유로 앙케 의 영웅들 영화관객들이 갑자기 확 줄어들고 말았다.
그들 관객들은 잔뜩 기대를 걸고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 그런데 그 관람객들은 너무나 실망했다고 투덜거렸다. 실전에 사용하지도 않았던 전술작전을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앙케 의 영웅들’ 제작진들까지도 드럼통 전술작전을 재현하는 촬영에 들어가서야 현실적으로 맞지 않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이 부분은 빼 버리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세계 전사에서 처음으로 드럼통 전술작전으로 638고지를 탈환하여 승리’ 운운하면서 드럼통 전술작전이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앙케 의 영웅들’ 이란 영화에서 최고로 극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고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앙케 전투의 주역에서 배제 시킨 기갑연대 수색중대를 부각시킨 것이, 앙케 의 영웅들 이 영화로 인해 앙케 작전의 진실을 역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앙케 의 영웅들, 이 영화를 개봉 약 2-3개월 만에 상영을 급히!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 이후부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에 영원히 기록 보존되어야 할 독보적인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그리고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럽다.
이 영화가 상영이 중단된 이유는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줄거리와 진실을 왜곡한 앙케 전투 상보와 맞지 않았다. 때문에, 서둘러서 앙케 의 영웅들 이 영화를 상영을 중단 시켜 버리지 않아나 하는 의혹이 든다. 그리고 앙케 의 영웅들 모든 영화필름을 폐기하지 않았나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들 수색중대는 앙케 작전 출동, 45일 만에 연대 전술기지로 철수하였다. 그들이 앙케 작전에서 철수 한지, 약 한달 쯤 지나 을 때였다.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 제2소대는 ‘앙케 의 영웅들’ 영화 촬영을 지원하기 위해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들은 출연하지 않는 여러 전우들로부터 많은 부러움도 받았다.
마치! 그들은 유명 영화배우라도 된 것처럼 모두들 우쭐대었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 촬영을 하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들은 약 30~40도를 오르내리는 그 무더운 여름 날씨에, 연대 신병 교육훈련장에서 약 1개월 동안 각개전투 장면을 반복하여 촬영 연습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앞모습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고, 뒷모습만 멀리서 나왔다.
처음엔 그들은, M-60경기관총에 공포탄을 쏘면서 촬영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공포탄으로는 탄환 떨어지는 자욱한 먼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들 제작팀에서는 위험하지만 실탄을 사용하여 찰 영에 협조해 줄 것을, 수색중대 그들에게 주문했다.
그들은 중간 중간에 폭약도 설치해서 터뜨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실제 전투하는 장면을 그대로 재연하려니 정말 위험하고 힘들었다. 수색중대 제 2소대 병력이 하루에 2시간씩 약 한 달간을 고생하고 연습한 끝에, 실제 영화촬영은 약 2시간 반복 촬영하였다. 그런데 실제 영화 장면에는 단 2분도 상영되지 않았다. 그것도 뒷모습만 멀찌감치 보였다. 그동안 들뜬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던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은 낭패감에 허탈해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영화 전투 장면을 재현하느라 그 죽을 고생을 하였는데 …….
그들은 귀국하여 자신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앙케 의 영웅들 영화를 관람하였다.
- 계속 -
취재기자들이 미웠다. (86)
사랑하는 애인과 친구들과 함께 그 영화를 관람하였다. 그들은 친구들과 애인에게 마치! 자신들이 영화배우라도 된 것처럼 우쭐대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들과 애인에게 조롱만 당하고 말았다. 그 영화 장면에는 정글 속에서 각개 전투하는 그들의 뒷모습 장면만 나올 뿐, 그들의 앞모습은 한 장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앙케 의 영웅들이란 영화 내용이 수색중대가 주연으로 제작 된다는 홍보 때문인지? 그 이후부터는 고국(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의 시찰단과 또, 앙케 전투 취재기자들이 수시로 수색중대를 찾아 왔다. 특히! 수색중대원들에게 많이 취재를 해 갔다. 그 들은 앙케 전투에 대한 무용담을 묻곤 하였다. 그리고 그 취재진들은 수색중대가 앙케 전투 주역에서 배제 된 것하고, 또 수색중대의 앙케 전투, 전투상보를 왜 작성하지 않았는지? 하는 아주 곤욕스런 질문을 많이 하였다.
수색중대 그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피가 거꾸로 치솟은 것 같았다.
그랬다.
앙케 전투의 진실은 왜곡되었다. 수색 중대는 앙케 전투에 제일 먼저 투입되어 적 월맹군들로 두 번씩이나 기습공격을 받고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발생했다. 또, 천혜의 요새와 같은 638고지를 두 번씩이나 공격하여 마침내 638고지를 탈환하고 차단된 19번 도로를 개통시켰다. 때문에 수색중대는 앙케 전투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런데 앙케 전투 지휘부는 수색중대를 앙케 전투 주역에서 완전히 배제 시키고 말았다. 때문에 상부에서는 보안 사항이라 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고 수색중대 그들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국회 시찰단과 취재기자들에게 발설 할까봐 상부에서는 전전 긍긍하였다.
때문에 지휘관들은 무척 곤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앙케 투가 진실이 왜곡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부터 고국(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나 취재기자들이 시찰단과 취재를 하러 나온다고 하면 수색중대는 매복 작전을 내 보내었다. 취재진들이 수색중대에 대해 취재를 할 수 없도록 하 기 위해서였다.
그 때도 국회 시찰단과 취재진들이 취재를 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때문에 상부에서는 예정에도 없던 매복 작전을 내보냈다. 마침! 그때가 우 기철이었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수색중대 그들은,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매복 작전을 하였다. 참호 속에는 빗물이 넘쳐 흘렸다. 그 물속에서 겨우 하룻밤 매복 작전을 마치고 철수하였다.
그때까지 취재진들은 돌아가지 않고 취재를 하 기 위해 수색중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누크 헬기에서 랜딩하자마자 취재들이 달려왔다. 수색중대 그들은 취재기자들이 미웠다. 그들은 매복 작전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취재기자들 때문에, 이렇게 생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때문에 수색중대 그들은 취재 기자들에게 취재에 협조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중대원들은 굳은 얼굴로 함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권 병장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한 마디 내뱉었다. 또 왔네! 또 왔네! 무엇하러 또 왔습니까. 뭐! 전우가 총을 맞고 피를 내뿜으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취재하러 와나 무엇을 취재 하려고 왔나하고 투덜댔다. 그러면서 그는 돌담길 돌아보며 또 돌아 아 보며 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그 당시 유행하던 라 훈아 노래 고향의 물레방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편,
앙케 작전 개시 3일 후, 4월 15일을 기해 앙케 패스 19번 도로 개통작전에 투입된 맹호 기갑연대 제3대대는 적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감지하였다. 앙케 패스의 적정이 연대 정보과에서 알려준 것처럼 단순한 베트콩이나 소규모 월맹군의 준동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그들은, 서둘러서 대대작전에서 연대 작전으로 전환하였다.
두 코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명성을 떨쳤던 제9중대를 선두로 제10중대와 함께 주둔지인 방 칸으로부터 헬기로 앙케 패스 정상에 랜딩을 명하였다. 제1대대에 배속되었던 제11중대를 배속 해제와 동시에 제3대대로 복귀시켰다. 이미 작전지역에 투입되어 있는 제2대대소속 제8중대를 제3대대로 배속 받았다.
그들은 모두 4개 중대로 하여금 19번 도로를 개통시키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때문에 제 3대대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즉시 19번 도로 개통작전에 들어갔다. 제 3대대장 최 승 철 중령은 제3대대 지휘부를 이끌고 앙케 패스 19번 도로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앙케 고개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소도산 전술기지와 앙케 패스 하단부에 위치해 있는 한라산 전술기지 중간사이, 19번 도로 옆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에 도착하였다.
그는 도착과 동시에 주변 지역과 전선을 면밀히 관찰하였다.
지리산 전술기지 남쪽에는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넓은 계곡이 멀리 눈 아래에 내려다보였다.
그 건너편에는 638고지를 정점으로 하여 길게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능선 끝에 아군 지리산 전술기지가 손금 보듯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에 월맹군들은 75mm무반동총 직사포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래에 위치해 있는 아군 전술기지에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사격을 가해왔다 그곳보다 아래에 있는 아군 전술기지 정상에 설치된 관망대 하단에는 적들이 쏜, 포탄 파편이 무수히 박혀있었다.
그러가하면 19번 도로 쪽, 남단으로 향해 설치되어 있는 M-60경기관총 진지에도 적의 75mm무반동총 포탄이 명중되어 아군의 M-60기관총 총열이 파손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군의 81mm박격포의 탄약고가 지리산 전술기지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관계로 월맹군들은 제1중대 지리산 전술기지에 있는 아군의 81mm탄약고를 파괴할 목적으로 끈질기게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해 왔다.
그 중 한 발이 탄약고 벽 중앙에 명중되어 벽두께의 절반 이상이 뚫린 상태에서 또다시 날아온 적의 포탄은 먼저 떨어진 그 위치에 정확히 명중되는 것을 목격하고, 혹시나 여기도 소도산 전술기지 지원중대 106mm무반동총 탄약고처럼 적들의 포탄이 탄약고 속으로 명중되어 탄약고가 폭발할까봐 우려되었다.
그는 불안한 심정으로 좌표를 찍어 주면서 제61포대에 있는 105mm 곡사포로 적들의 75mm무반동총이 설치된 곳에 포를 때려 줄 것을 긴급히 요청하였다. 그런데 전략상 아주 중요한 638고지 포 지원 사격이 우선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리산 전술기지 쪽에는 포 지원 사격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통보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곳 지리산 전술기지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이 수수방관만 하였다.
그럼 포 지원 사격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항공기에 의한 네이팜탄이라도 월맹군 75mm무반동총 포진지에 투하해줄 것을 상부에 건의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네이팜탄 사용은 월남정부의 금기사항이기 때문에 투하할 수 없다는 통보뿐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곧, 638고지에 항공폭격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때, “적들의 75mm무반동총이 설치된 포진지를 항공폭격으로 날려 버리겠다는 것이다.
- 계속 -
638고지에 항공폭격하다 (87)
그 항공 폭격작전을 전개하려고 지금 계획 중이라고 통보해 왔다. 그러면서 상부에서는 638고지에 항공 폭격을 실행 할 때까지 참고 버티어보라”는 이런 답답한 통보뿐이었다. 그러나 항공 폭격보다는, 네이팜탄 투하가 훨씬 위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
네이팜탄 사용은, 그 당시 월남정부의 금기 사항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월남 정부 각 부처와 철저한 반공 주의자였던 티우 대통령 최측근까지도 공산프락치들이였다. 그들 첩자들이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은 금기 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러하므로, “아군 은 그런 금기 사항을 지킬 필요가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군은 그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켰다.
하지만, “아군의 희생과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앙케 전투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이팜탄 투하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했었다!” 따라서, 그들은 공산프락치 그들이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은 금기 사항을 무시 하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공산프락치 그들이 그럴 사 하게 만들어 놓은 금기 사항을 지켰다. 때문에 아군들은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발생했던 전투였다. 따라서 아군들은 이앙케 전투에서 말할 수 없이 고전하였다.
만약에 제3대대장 최 승 철 중령의 전술작전대로 네이팜탄 3발만 투하 하였다면 앙케 전투 상황은 확 달라졌을 것이다.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본부 상황실이 설치되어 있는 638고지 너머 천연동굴에 한발 투하하고, 또 638고지에 있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벙커와 참호에 한 발 투하 하고, 그리고 적들이 접 령 하고 있는 19번 도로에 네이팜탄을 투하했더라면, 적들은 벌써 항복을 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적들의 진지 주변에는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소가 다 타버리고 나면 적들도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은 동굴과 진지 속에서 기어 나와 모두가 도주 했을 것이다.
만약에 도망가지 않으면 바비큐처럼 질식하어 죽는다는 공포에, 그들은 전의를 상실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적들은 항복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군은 큰 피해 없이도 속전속결로 앙케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였을 것이다.
한편!
1972년 4월 20일,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여명의 아침이 어김없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미 제7전술공군의 팬텀기와 정찰기를 지원받아 638고지에 항공폭격을 한다고 하였다.
‘피의능선, 죽음의고지’ 라고 불리던 638고지를 아군 3개 중대가 공격하였다. 그러나 월맹군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루고 후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야 작전을 변경하였다.
‘그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항공폭격으로 적의 벙커를 초토화시킨다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계획은 미 공군 측과 협의하여 D-데 이 날짜를 4월 18일로 잡아두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4월18일 새벽에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파견 나와 있던 지원중대 106mm무반동총 탄약고가 엄청난 위력으로 2차 폭발하는 큰 사고가 발생하였다. 또, 이것뿐만 아니었다. 적진 깊숙이 고립되어 있는 제 6중대 구출작전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있다. 엎친데 더친 격으로 638고지 3부 능선에 미군 보급헬기가 추락하고 말았다. 때문에 항공 폭격이 4월19일로 연기하였다.
그런데 또 다시 4월 20일로 연기가 되었다. 또 다시 연기한 이유는, 헬기에서 앙케 작전 상황실과 미 제7전술공군의 정찰기 조종사 사이에 통역을 맡은 한국군 항공 통역장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국에서 미 공군기지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정으로 4월19일에도 항공폭격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늘(4월 20일)에 항공폭격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를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는 작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계속 아군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던 말썽거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벌써부터 가슴이 후련해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군 지상포로는 적들의 벙커를 폭파시키기엔 역부족인 것 같았다. 때문에 항공 폭격으로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를 폭파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큰 기대를 걸고 항공 폭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항공폭격에 대한 안전수칙과 함께 상부에서 명령이 하달되었다.
항공 폭격 때, 엄청난 폭발음 소리에 귀고막이 터질 위험이 있으므로 모든 병력은 벙커나 외곽초소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 상부에서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귀를 꽉 틀어막고 엎드려 있으라는 행동요령을 알려주었다.
씨 벌!
고양이 쥐 생각하듯, 귀 고막 터지는 것은 어지간히 걱정해 주는 구 먼 하였다. 그들 모두가 이렇게 한 마디씩 구시렁거렸다. 수색 중대원들은 난생 처음으로 항공 폭격하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다. 항공 폭격은 너무나 신기하였다. 대부분의 중대원들은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벙커 바깥에서 귀를 꽉 틀어막고 숨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벙커 속에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맹 상병을 비롯하여 중대원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월남 참전 이래, 주 월 한국군이 미 공군의 팬텀기를 지원받아 미 공군의 팬텀조종사들에게 직접 폭격 명령을 내린 작전은 이번 앙케 패스 작전이 월남 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앙케 패스 작전은 주 월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작전지역이었다. 때문에, 미 제7전술공군의 팬텀기 조종사들은 당연히 주 월 한국군 앙케 작전 상황실의 작전지휘를 받아야 했다.
미, 제 7전술공군의 팬텀조종사들에게 주 월 한국군의 앙케 작전 상황실에서 내리는 폭격명령을 통역하기 위하여 헬기에 주 월 한국군 항공 통역장교가 동승해서 공중에서 선회 비행을 하였다.
헬기에 동승한 한국군 통역장교가 무전교신을 통해 638고지 상공을 선회 비행하고 있는 L-19(정찰기) 조종사에게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두 개의 벙커 중 제1폭격지점 좌표를 찍어주었다.
L-19(정찰기)에서는 한국군 통역장교가 찍어준 제1폭격지점을 설정해서 흰색 WP탄(지상군에서 사용하는 연막탄과 비슷했다)을 쏘았다. 그러나 미 공군 L-19(정찰기)에서 쏜 흰색 WP탄은 설정된 목표 지점을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다시 한국군 항공 통역장교가 폭격할 목표지점이 얼마쯤 빗나갔다는 좌표를 수정해서 그들에게 또다시 알려주었다.
미, 제7전술 L-19(정찰기)에서 즉시 흰색 WP탄이 떨어진 그 지점에 또다시 붉은색 WP탄을 쏘았다. 이 붉은색 WP탄은 폭격할 목표지점이 빗나갔다는 신호였다. 공중에서 선회하고 팬텀기 조종사에게 이 지점에는 폭격을 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들은 목표지점을 수정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였다.
이렇게 몇 번이나 수정을 해서 정확한 제1 폭격지점인 적들의 벙커 한 곳이 설정되었다.
한국군 통역장교는 주 월 한국군 앙케 작전 상황실의 명령에 따라, 설정된 목표지점을 폭격하라는 미군 L-19(정찰기) 조종사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따라서 미군 L-19(정찰기) 조종사는 팬텀기 조종사에게 638고지 월맹군 진지, 천혜의 요새와 같은 한 개의 벙커에 제1폭격지점이라고 하였다. 흰색 WP탄이 피어오르는 저 곳이 폭격 할 지점이라고 알려 주었다. 정찰기 조종사 그들은, 먼저 제1폭격지점부터 폭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 계속 -
638고지에 융단폭격을 하다 (88)
흰색과 붉은색 WP탄을 쏘아가면서 공중에서 선회비행을 하던 미 제7전술공군의 L-19정찰기)와 한국군 통역장교가 동승한 헬기는 638고지 상공에서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상공으로 물러났다.
그들 팬텀기는 WP탄의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적들의 벙커 제1폭격지점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벙커 파괴용 폭탄을 탑재한 팬텀기 한 대가 제1폭격지점을 향해 독수리가 공중에서 지상에 있는 먹이 감을 낚아채듯이 수직으로 내려박혔다.
수직으로 내려박힌 팬텀기는 엄청나게 큰 폭탄 한 발을 투하한 후, 돌고래가 물속에서 공중으로 솟구치듯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꽝! ~ 과~광 ~ 꽝!” 하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먼지와 연기가 핵폭탄을 투하할 때처럼 버섯구름이 형성되었다. 그 일대는 시뻘건 불바다를 이루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색중대 그들은, 그 대단한 위력 앞에 할 말을 잃고, 연출되는 장관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638고지 벙커 속에 숨어 있던 2-3명의 적들의 시체가 흙먼지에 휩싸여 공중으로 20-30m나 튀어 오르는 광경을 목격되었다.
따라서 수색중대원 그들은 신이 나서 “우와-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연신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장엄한 광경을 어찌 다, 이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정말 그 광경은 통쾌하였다. 그들은 너무나 신기하고 후련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 월 한국군 앙케 작전 상황실의 폭격명령에 따라 공중으로 수직상승한 미 공군 팬텀기는 연기와 먼지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선회 비행에 들어갔다. 먼지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사라져 갔다.
600고지 아군 전술기지 상공으로 물러나 있던 미군 L-19(정찰기)와 통역 장교를 태운 헬기가 638고지 상공으로 진입하여 전과 같이 제2 폭격지점에 흰색 WP탄을 쏘았다. 공중에서 선회하고 있던 팬텀기는 흰색 WP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적의 벙커 목표물을 향해 나머지 폭탄을 투하하였다.
1차 폭격을 끝낸 팬텀기는 곧바로 푸 갓 비행장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638고지에 있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 두 개 중, 한 개는 정확히 명중되었다. 따라서 위쪽에 있는 적들의 벙커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벙커는 완전히 웅덩이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지점인 적들의 벙커는 그만 빗나가고 말았다. 두 번째 폭격은 연기와 먼지로 시야가 흐려진 탓인지?
안타깝게도 두 번째 폭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말 아쉬웠다.
‘벙커 파괴용’ 그 어마어마한 큰 폭탄 두 발을 투하한 팬텀기 한 대는 푸 갓 비행장으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적들의 벙커 목표지점에 흰색 WP탄을 쏘아 팬텀기의 폭격을 유도했던 정찰기와 한국군 항공 통역장교가 동승한 헬기도 푸 갓 비행장 쪽, 미 공군 제7전술단기지로 돌아가 버렸다.
벌써 항공 폭격이 끝난 것이야 뭐야 하였다. 실망스런 표정으로 김 영진 병장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직도 폭격을 하지 않은 팬텀기 한 대는 계속 638고지 상공을 선회비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항공 폭격이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옆에 있던 권 준 병장이 대꾸했다. “그럼! 공격목표도 설정하지 않고, WP탄 유도도 없이 저 흙먼지 속에서 어떻게 폭격을 할 수 있을 건 지?” 김 영진 병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 했다.
“아마! 이번에는 네이팜탄 투하를 할 모양이지?” 네이팜탄 투하는 정찰기에서 공격목표를 설정해 WP탄을 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헬기에서 통역장교가 흰색 WP탄이 목표지점을 빗나갔다고 좌표수정을 해주는 통역의 번거로움도 없을 것이다. 다만, 공중에서 대략 어림잡아 네이팜탄을 투하하기만 하면, 638고지 일대는 완전히 불바다 가 될 테니까. 팬텀기 한 대만으로도 네이팜탄을 충분히 투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 병장이 아는 척을 하였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야” 하며, 옆에서 묵묵히 김 병장과 권 병장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최 지원 병장이 끼어들었다. “네이팜탄 사용은 월남정부의 금기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탄가격도 만만치 않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팬텀기에서 주로 사용하는 범용폭탄 M K-82보다 수십 배 비싼 네이팜탄 투하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막 투하한 벙커 파괴용 폭탄 두 발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두 개의 벙커를 목표물로 삼아 폭격을 실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들의 벙커와 참호사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교통호와 참호를 목표물로 삼아 융단폭격을 실시할 모양이라고 최 지원 병장이 어림짐작으로 말했다.
아니나 달라, 잠시 후 자욱했던 먼지는 동남풍을 타고 사라져갔다.
연기는 638고지 여기저기서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638고지 상공에서 계속 선회비행을 하고 있던 두 번째 팬텀기에서 융단폭격이 마침내 시작 되었다. 이곳 앙케 패스 638고지에 투하된 항공폭탄은 벙커파괴에 사용하는 폭탄과 수십 개의 참호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교통호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융단폭탄 두 가지 종류라고 하였다. 두 번째 팬텀기에 탑재된 폭탄의 종류는 최 병장이 말한 그대로 융단폭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미 제7전술공군의 첫 번째 팬텀기가 한 번에 한 발씩만 투하하는 벙커 파괴용 폭탄과는 달리, 두 번째 팬텀기에서는 정찰기에서 흰색 WP탄을 쏘아 목표물을 유도하는 것도 생략 하였다. 두 번째 팬텀기에서는 공중에서 폭탄 두 발을 한꺼번에 동시 투하하였다. 이 거대한 폭탄 두 발이 지상으로 한참 내려오다가 지상 약 100m쯤 되는 상공에서 다시 폭발하였다. 그 중, 5발씩의 작은 폭탄들이 모두 열 발로 분리가 되어 빨간색의 낙하산에 매달려 바람을 타고 서서히 지상으로 투하되었다.
마치! 공수 특전대원들이 공중에서 낙하산을 타고 638고지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축제 때 공중으로 쏘아올린 불꽃놀이 같기도 하였다. 정말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열 발의 융단폭탄이 높은 능선에 먼저 떨어지고 깊은 계곡에는 늦게 떨어지니까 폭탄이 터지는 소리도, “꽝!~과! 과! 광!~” “꽝!~과! 과! 광!~” “광! 광!” 하는 폭발음 소리가 시차를 두고 폭발하였다.
이 같은 폭탄 터지는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모니 소리와 흡사하였다. 이처럼 융단폭탄은 지상반경 약 500m 이내의 한 고지는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엄청난 위력을 지닌 무서운 폭탄들이었다. 그 위력 앞에서는 월맹군 아니라,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생전 처음 바라보는 공중 쇼에 중대원들은 하나같이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넋을 잃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폭탄을 쏟아 붓고도 바람의 방향을 잘 관측하지 못한 탓인지,
이 융단폭탄은 638고지 9부 능선에 구축되어 있는 월맹군들의 참호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교통호의 목표물을 약간 벗어나 동남풍을 타고 638고지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7부 능선과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고 말았다.
- 계속 -
네이팜탄 작전이 불가능 하면, 화공작전이라도 (89)
때문에 이번 융단폭격도 안타깝게 미완의 쇼로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감행되었던 벙커 파괴를 목적으로 한, 두 번째 폭격과 융단폭격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첫 번째 항공폭격만 성공한 셈이었다.
옆에서 항공폭격을 같이 지켜보고 있던 포병인 덧 한 전우가 지상군에서 사용하는 포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상에서 포병들이 사용하는 포탄은 포탄 뒤에 있는 뇌관이 1차로 폭발하면, 그 충격으로 폭탄 뒷부분에 장착되어 있는 장약이 2차로 폭발하면서 추진력을 얻어 날아갔다고 하였다. 목표지점으로 날아간 그 포탄은 앞부분에 붙어있는 신관이 땅에 떨어질 때, 그 충격으로 1차로 신관이 폭발하면, 또다시 2차 충격으로 포탄 속에 장착된 화약이 2차로 폭발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지상포는 땅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폭발하므로, 땅이 많이 파이지 않아 벙커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보병이기 때문에 포에 대해서는 생소하여 잘 모르고 있었다. 실제 작전지역에서 105mm-155mm 포탄이 떨어진 곳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땅은 많이 파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땅에는 포탄자국이 크게 남아있지 않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오늘 처음으로 지상포와 항공포가 서로 효과 면에서 크게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포병 그들의 설명을 듣고, 포탄에 대해 이렇게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팬텀기에 주로 많이 사용하는 이 항공 폭탄은 크기도 엄청나게 크거니와 무게도 500파운드에서 2000파운드까지 나갔다고 하였다. 이 엄청나게 무거운 폭탄을 공중에서 지상으로 투하하게 되면, 그 무거운 힘의 위력으로 땅속 약 2-3m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폭발하게 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 항공폭탄이 한 번 떨어진 자리는 웅덩이가 생겨버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적 그들의 벙커에 명중되기만 하면, 그들의 벙커는 지상에서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첫 번째 폭격에서 적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638고지에 있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 두 개 중, 위쪽에 위치한 한 개의 벙커에 팬텀기에서 투하한 폭탄이 정확히 명중되었다. 그 엄청난 위력으로 폭발하는 바람에 적들의 벙커는 완전히 파괴되어 웅덩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적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마어한 힘의 위력을 지닌 폭탄이 틀림없었다. 그들 수색중대원들은 그 무서운 벙커 파괴용 폭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비행기 한 대에 폭탄 두 발씩 밖에 매달 수 없다고 하였다. 이 항공 폭탄이 워낙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끝낼 무렵, 그처럼 신비의 공중 쇼를 연출했던 미 제7전술공군의 팬텀기 한 대도 눈 깜빡할 사이 간단히 융단폭격을 끝내고 미 제7전술기지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나 싱겁게 상황이 종결되어 버렸다. 때문에, 한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계속해서 638고지 적진지에, 하루에 10회 정도는 연속적으로 폭격을 해야 하였다. 적 월맹군 그들로 하여금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도록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폭격으로는 그들에게 겁을 주지 못했다. 또 이 같은 감질 나는 작전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적들도 항공폭격이 시작 되면 급히 638고지 넘어 5부 능선, 자신들의 연대 본부가 있는 천연동굴로 피신해 버린다.
때문에 그들은, 네이팜탄 투하작전이 항공폭격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하였다. 최대로 강력한 네이팜탄을 638고지 정상에 한 발과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본부 상황실을 설치한 천연동굴 입구에 한 발, 19번 도로 일대에 한 발, 모두 3발이면 이 지긋지긋한 앙케 전투는 간단히 끝냈을 것이라고 최 지원 병장이 쓴 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이팜탄 투하가 불가능 하다면 화공 작전이라도 전개해야 한다고 그는 열변을 토했다.
폐타이어에 벙커시유를 잔뜩 칠하여 와이어에 약 100m 정도 길게 끼워서, 치누크 대형 헬기에 매달고 가서 적들이 점령하고 있는 638고지에 3줄을 투하하고, 또 그들이 연대본부 상황실로 사용하고 있는 천연동굴 입구에 2줄 투하하고, 그리고 638고지와 천연동굴 사이사이에 2줄씩을 투하하여 불을 질러 놓으면 이 전투는 간단히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정말 기발한 최 병장의 아이디어였다.” 벙커시유가 잔뜩 묻은 폐타이어에 불이 붙으면 고약한 냄새와 더불어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그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화공 작전이 네이팜탄 투하 작전보다야 좀 못하겠다. 하지만, 항공폭격 보다야 훨씬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최 병장의 화공작전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분 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이 같은 화공 작전이야 말로 정말 멋진 발상이라고 모두들 그를 극찬했다. 최 병장 너 가 분대장을 해라. 아니! 분대장보다 이앙케 작전을 총지휘하는 맹호 사단장을 해야겠다고 그는 열변을 토했다. 그 옆에 있던 권 병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최 병장 너 같은 실력이면 맹호 사단장 보다, 더 위에 있는 주 월 사령관 정도는 해야지 하며, 분대장과 함께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19번 도로에는 왜? 화공작전을 전개하라는 말이 없는지? 그에게 물었다. 아! 그건, 아군전술기지에 피해가 있을까봐 그랬다고 하였다. 그는 아군 전술기지 밑에 있는 19번 도로에 화공 작전을 펼치면 그 유독 가스와 고약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아군 전술기로 불어 닥치면 아군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그는, 19번 도로에는 화공작전을 전개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아쉽게 벙커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한편!
1972년 4월13일 오전, 맹호 기갑연대 제2중대 1소대는 중대 전술기지를 출발하였다. 캄보디아 국경 쪽 플레이쿠의 수송도로인 19번 도로상 16번 교량 위, 제2중대 책임 전술기지인 진달래 고개를 넘었다.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 라고 명명된 638고지를 공격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들은 제일먼저 앙케 전투에 투입되어 돌아오지 않는 특공대작전을 수행중인 제1대대의 예비중대인 제3중대에 배속되었다. 그들은 마치! 전설처럼 되어버린 돌아오지 않은 특공대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638고지에서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특공작전’ 과 치열하고 처절했던 638고지 1차 공격작전에 투입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4월13일에서 4월18일까지) 약 6일 동안에 제2중대 1소대 작전인원 30명중 전사자와 전상자를 포함한 17명이란 많은 부하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기적처럼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장렬히 전사하고 전상당한 부하들의 생각에, 소대장 그는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슬픔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계속 -
눈물바다가 된 전술기지 (90)
그들은 아무 의욕도 없이 제2중대 책임 전술기지로 철수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천근만근이나 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앙케 고개 19번 도로 개활지에 도보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중대전술기로 철수하기 위해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상부에서 무전 연락이 날아왔다. “지금 당장 중대 전술기지로의 철수작전을 취소하라는 명령이었다. 귀관 소대와 제일 가깝게 인접해 있는 638고지 3부 능선에 미군 보급헬기가 추락하였다. 헬기주변에 적들이 접근해 올 수 없도록 경계 작전과 헬기조종사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그들은 급히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사고 헬기는 땅에 추락한 것이 아니고, 큰 나무 위에 걸쳐 있었다. 중상을 입은 미군 헬기조종사는, 구조대원들을 요청하여 신속히 구출하였다. 곧 바로 후송조치 하였다. 연이어 전사한 미군 헬기조종사와 주 월 한국군 통역 병 정 운 섭 병장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작전이 무사히 종료되었을 때였다!”
이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어느덧 해는 플레이쿠 쪽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었다. 벌써 앙케 협곡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 깔리고 있었다. 추락한 헬기 전사자와 전상자의 구출작전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상부에 무전으로 타전하여 보고하였다.
상부에서는 오늘은 날이 어두워 헬기지원이 불가능하니, 즉시 위험한 그곳 앙케 협곡에서 빠져나오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상부에 명령에 따라 비교적 안전한 앙케 고개 개활지로 이동하였다. 현지에서 하룻밤 숙영하고 날이 밝는 즉시, 내일 4월19일 헬기를 타고 중대 전술기지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득달같이 내달았다.
그들은 단,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지긋지긋한 앙케 고개 개활지에서 불안과 초조한 심정으로 또다시 하룻밤 숙영에 들어갔다. 그들은 그날 밤을 무사히 지새웠다. 때문에 그들은, 4월19일 새 아침을 맞았다.
맹호 기갑연대 제2중대 1소대는 철수 예정일보다 하루 늦은 중대 전술기지를 출발한 지, 약 일주일 만이었다. 제1소대장 그는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살아남은 13명의 부하들을 인솔하였다. 그들은 헬기로 제1대대 근처에 있는 제2중대전술기지 밑에 랜딩 하였다.
마치! 그들은 패잔병 같은 신세가 되어 힘없이 제2중대 전술기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중대 전술기지에서 앙케 작전에 출동 대기 중이던 중대원들이 많은 전우들을 잃고 힘없이 철수하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와 사기를 진작시키는 의미로 진입도로 양쪽에 도열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좌우로 흔들며, 그 반동에 맞춰 맹호군가를 목이 터져라 힘차게 부르기 시작했다.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 깁 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 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 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 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 의 뒤를 따르리라
맹호 군가 1절이 끝났다. 그리고 맹호 군가 2절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소대 작전인원 30명중, 겨우! 13명의 부하만 인솔하여 중대전술기지로 철수하고 있던 제2중대 1소대장 x xx 중위는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다가 장렬히 전사한 부하들의 모습이 새삼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제 1소대장 그는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는 격해지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또 그는 지휘관과 장교란 자존심도 팽개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수치심과 부끄러움도 망각한 채, 마치!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옆에 따르던 분대장들도 울고, 같이 올라가고 있던 병사들도 따라 울었다. 드디어 맹호 군가를 부르고 있던 중대원들 모두가 함께 통곡하며 오열했다.
갑자기 제2중대 전술기지 입구에는 사나이들의 진하고 진한 뜨거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마침! 그때, 격려와 용기를 주고,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미리 전용헬기로 제2중대 전술기지에 도착해 있던 맹호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단장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는, 패잔병처럼 울면서 올라오고 있는 제2중대 1소대장 x xx 중위 앞으로 다가갔다.
사단장 그는 제1소대장 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장교가 울어!”
“이런 일 가지고 장교가 울어!”
“너, 장교 맞아!”
“너, 지휘관 맞아 하였다!” 그러면서 사단장 그는, 울면서 올라오고 있는 제1소장 그에게 호통과 야단을 쳤다.
“본 지휘관은 6.25 전쟁 때, 이것보다 몇 백배 더 한 슬픔과 아픔도 체험 했어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제1소대장 x xx 중위의 배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리고 사단장 그는, 지휘봉으로 소대장 그의 어깨와 철모를 번갈아 때리고 발로 조인트를 사정없이 깠다.
체면과 부끄러움도 없이 서럽게 울면서 올라오고 있는 그를 사정없이 나무랐다. 이 광경을 지켜본, 울고 있던 소대원들과 맹호군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던 중대원들도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듯 조용하였다. 그들은 사단장의 불호령에 일제히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그들은 정글 복 옷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따라서 그들은, 제2중대 전술기지 작은 연병장에 삼열횡대로 정렬하여 늘어섰다. 맹호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조금 전과는 달리 태도가 돌변하였다. 그도 목이 메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단하게 훈시를 끝내고 도열해있는 소대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였다.
“수고했어!”
“수고했어!”
“정말! 수고 많았어!”
그는 아주 자상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도열해 있는 그들에게 가볍게 어깨까지 두드려 주었다. 맹호 사단장 정 득만 소장은 도열해 있는 그들에게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지휘봉으로 철모와 어깨를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또, 조인트까지 까였다. 제1소대장 그는, 마치! 죄 저지른 강아지와 같이 야단을 맞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의기소침해 있는 제1소대장 x xx 중위 그의 앞으로 다시 다가갔다. 사단장 그는 소대장 그를 살짝 포옹을 하였다.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러면서 사단장 그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귀관도 수고 많아 어 하였다!”
“아무리 슬퍼도 그렇지, 지휘관이 부하들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야 되겠나 하였다.” 그러면서 사단장 자신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 할 수 없었던지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638고지 쪽을 바라보면서 전용헬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단장을 수행해온 일행들도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참으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들은 얼른 헬기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사단장 전용헬기 조종사는 헬기 프로펠러를 서서히 돌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사단장과 그 일행이 전용헬기에 오르자마자, 전용헬기는 귀 고막이 찢어 질 덧 한 굉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세찬 먼지바람을 일으키면서 전용헬기는 힘차게 이륙하였다. 사단장 전용헬기는 앙케 패스 상공을 수직으로 이륙하여 사단사령부가 있는 퀴논 쪽,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 계속 -
638고지 2차 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91)
사단장 전용헬기가 하늘 멀리 사라져 갔다. 중대 전술기지 보금자리로 살아 돌아온 소대원 그들은, 같이 전투를 하다가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에게 한 없이 미안하였다. 마치! 그들은 죄인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곳 전술기지에는 또다시 사나이들의 진하고 진한 뜨거운 눈물로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전우들의 생각에, 그들은 그동안 꾹 참고 참았던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또다시 제2중대 전술기지에는 통곡과 오열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한편!
벙커로 돌아온 수색 중대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그들은 638고지에 항공폭격과 융단폭격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무전기를 통해 638고지 2차 공격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수색중대 그들에게 하달되었다.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와 참호에 벙커파괴용 폭격과 융단폭격을 했으니까. 적들도 미리 겁을 집어먹고, 다 도망갔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상부에서는 만약 도망가지 않은 적들은 그 엄청난 위력의 벙커 파괴용 폭탄과 융단폭격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오늘 (4월20일) 정오를 기해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명령이 긴급 하달되었다. 이제 타작은 웬만큼 했으니, 마지막으로 수확이나 하여, 이 지긋지긋한 이놈의 전쟁을 빨리 끝내자는 속셈이었다. 이번 2차 공격에는 기갑연대 제3중대 대신 제2중대와 같이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3중대는 638고지를 1차 공격 할 때, 아군 포와 안개 속에서 638고지를 정면으로 돌진해 올라가다가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입었다. “그들은 겨우 몇 명만 살아남았다!” 때문에 남은 병력으로는 도저히 중대 재편성이 어려웠다. 이런 관계로 그들은 제1대대 전술기지 위에 있는 제3중대 본부로 철수하고 말았다.
“그 제3중대를 대신하여 제2중대에게 그 임무를 부여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제2중대 전술기지를 경계할 병력이 모자라게 되었다. 때문에 앙케 작전 첫 날 적에게 기습공격을 받아 병력손실이 많고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기갑연대 수색중대 제1소대는, 이번 638고지 2차 공격 작전에서 열외(제외) 시켰다. 그리고 638고지 1차 공격에서 소대 작전인원 30명 중, 17명의 사상자를 내고 13명만 살아 돌아온 제2중대 1소대원들도 638고지 2차 공격 작전에서 열외 하였다. 이렇게 열외 된 수색중대 제1소대와 제2중대 1소대는, 제2중대 전술기지 경계 병력으로 투입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와 제3소대, 작전병력과 제2중대 전술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2소대, 제3소대, 화기소대 등 3개소대병력과 같이 638고지를 다시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또다시 638고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처음 638고지를 1차 공격할 때는 하늘이 도왔거나 운이 좋았던지 같이 공격에 가담했던 2개 중대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수색중대는 천우신조로 피해가 경미하였다!” 때문에 수색중대원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수색 중대원 그들은, 이번 2차 공격에도 과연! 1차 공격 때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라 두려움과 무서운 공포가 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불안과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수색중대원 전원이 전의를 상실한 상태가 되어 짜증만 내고 있었다.
수색 중대원 그들은, 상부에서 명령이 하달되어도 불평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닥쳐온 짓궂은 운명에 마냥 괴로워했다. 지금까지 앙케 작전 지휘부가 무리하게 병력만 투입하였다. 아군의 전술기지보다 약 38m가량 높은 전략상 아주 중요한 지점인 638고지에 매복과 경계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월맹군들에게 638고지를 무단으로 점령당하도록 내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본국으로의 철수 준비관계로 어처구니없게도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미군 보급창과 월남군 제2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19번 도로마저도 적에게 차단되었다. 작전상 대단히 중요한 실수를 저지르고 낭패를 본 셈이었다.
월남군 제2군단은 보급이 전면 중단되었다. 때문에 그들, 월남군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앙케 작전 지휘부는 미군의 압력과 상부의 문책이 두려웠다. 때문에 그들은, 이앙케 작전을 크게 확대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소규모병력과 특공대작전으로 급히 638고지를 탈환하여 19번 도로를 장악하려고 서둘러다. 그러하다보니, 정확한 적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앙케 작전 지휘부 그들은, 전략과 전술작전도 완전히 무시하고 말았다. 아군들의 전술작전과 정보만 노출시킨 꼴이 되었다. 이런 주먹구구식 작전으로 무리하게 병력만 적진에 투입하였다. 때문에, 작전에 실패하였다. 아군은 많은 피해와 희생을 내고 말았다. 주먹구구씩 작전은, 결국 적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638고지 특공대공격작전도 처음에는 분대단위규모, 소대단위규모, 중대단위규모 작전에서 급기야는 연대 수색중대 하루 작전으로 지원 요청했다가 실패하였다. 또, 대대규모작전과 연대규모작전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그들 지휘부는, 사단규모작전을 전개하다가 역부족이란 것으로 판단하였다.
결국은 사단규모작전에서 백마부대병력까지 지원받게 되는 주 월사 작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주 월사 작전에서, 오늘은 미 항공 폭격기까지 참전하게 되었다. 월남 전사에서 단일 전투로는 이앙케 전투가 월남전 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씨 팔!
“처음부터 정확한 첩보와 정보만 미리 입수해서 638고지에 아군 일개 중대 병력만 주둔시켜 방어 작전과 경계만 철저히 했더라면, 월맹군들이 638고지와 19번 도로를 감히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아군은 큰 피해와 희생 없이, 이앙케 전투를 간단히 승리로 끝날 전투였다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루아침 때 꺼리도 안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도 아군 지휘부의 지휘 잘못으로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그는 또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군사 전략가(?)다운 판단을 내리면서 이렇게 아쉬워했다.
그랬다. 추 라이 짜 빈 동 전투에서 청룡 1개 중대가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도, 월맹군과 베트콩 혼합 1개 연대가 어두운 밤을 이용해 총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주 월 한국군 청룡부대가 크게 승리하였다!” 세계전사에서 길이 빛날 업적을 세웠던 전투였다.
반면에 이번 앙케 전투는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638고지와 19번 도로를 완전 장악하여 방어 작전을 하고 있었다. 638고지와 19번 도로 일대를 주 월 한국군이 공격하였다. 그리고 이앙케 전투는 청룡 짜 빈 동 전투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공격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앙케 작전 방어에 실패한 저 지휘관 새끼들은 총살감이라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열변을 토하였다.
- 계속 -
그 좋은 머리를 이렇게 써 먹는구나 (92)
1972년 4월20일 수색중대는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지난 4월16일 새벽에 특공대로 차출되어 638고지로 올라갈 때,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거추장스럽다고 버렸던 불필요한 보급품과 638고지 1차 공격할 때, 불가항력으로 소모된 보급품을 다시 재 지급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물을 지급받기 위해 물을 공수해 오는 보급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물 보급 헬기는 끝내 오지 않았다. 항공폭격을 638고지에 무지막지하게 하였다. 적들이 점령해 있었던 638고지는 초토화 되었다. 때문에 상부에서는 한시 바삐 638고지를 공격해 올라가서 점령해야 된다고 하였다.
시간이 없다. 빨리 출동하라! 상부에서는 638고지를 빨리 공격하라는 독촉이 득달같았다. 그러면서 상부에서는, “물 보급 없이 그냥 출동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수색중대장 이하 중대원들은 물 보급 없이는 죽어도 출동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물 없이 그냥 출동했다가 638고지에 올라가기 전에, 전투다운 전투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수색중대원 모두가 갈증에 시달리다가 미처 버리거나 죽어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부의 명령을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이지만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하고 매정한 지휘관들, 자신들은 상황실 벙커 안에 햇빛 피해 앉아있으면서 이 무더운 열대야 날씨에 물 보급도 없이 전쟁터로 내 몰다니, 참으로 매몰찬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기 목숨 아니라고 우리를 마치 파리 목숨취급하다니 ……” 수색중대원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앙케 작전 지휘부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한창 원망스런 얼굴로 부어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어디서 물을 구입했는지?’ 상황실에 있는 상황 병이 20리터짜리 물 한통을 가지고 왔다. 이 물은 상황실에 있는 지휘관들이 비상용으로 사용하려고 아껴 두었던 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엄청나게 생색을 내었다. 수색중대장은 어쩔 수 없이 출동준비 명령을 전 중대원들에게 내렸다. 수색중대장 그는 이 물 가지고는 전 중대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첨병 분대에게만 이 물을 지급한다고 하였다.
638고지 1차 공격 당시, 맨 후미에서 두 번째로 나갔던 권 준 병장은 순번에 따라 부 첨병이었다. 그리고 맨 후미에서 포 뜨는 타이밍을 잘 맞추어서 여유롭게 따라왔던 최 지원 병장이, 이번에는 첨병을 설 차례였다. 그런데, 막상 첨병을 서야 하는 최 지원 병장이 첨병을 설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 숨 막히는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 중에서도 언제 준비했는지?’ 위생병의 소견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첨병은 다음 작전으로 미루어 달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 똑똑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 지원 병장은 한때 학생운동에 빠져들어 동지들로부터 배신자와 중정 프락치로 의심을 받고 월남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 치열하고 처절한 앙케 전투에서 살아남아 홀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에서 전사하여 뼛가루로 화장되어 동작동 현 충원 국립묘지에 안장 될지? 그리고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 당시 638고지 큰 바위 밑에서는, 권 병장 그도 눈시울을 적시며 숙연해져, 그를 동정을 하였다.
하지만, 오늘 이 결전의 순간에 미꾸라지처럼 혼자 궁색한 방법으로 모면하려고 하는 비열한 모습을 보니, 메스꺼워져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를 이렇게 비굴한 방법으로 써 먹는구나 생각하니까. 권 병장 그는, 총으로 최 병장 그를 쏴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자, 분대장 김 종일 하사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권 병장이 첨병을 서야 되겠다고 했다. 권 병장 그는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는, 별 도리가 없었다. 권 병장 그는, 너무나 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더욱 더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였다 또, 그는 너무나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 정말 환장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그는, 문득! 어떤 전쟁영화 한 장면이 뇌리에 떠올랐다. 전쟁 속에 한 병사가 손목시계를 손목부터 어깨까지 양 쪽 팔에 꿰어 차고 전사하는 장면이 불쑥 생각났다. 전쟁터에서도 남의 물건에 욕심을 부리거나 비굴하게 혼자만 살려고 꽁무니를 빼면 죽는다는 것이, 교훈처럼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권 병장 그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기로 하였다. 때문에 그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절망감으로 두려움과 공포감이 밀물처럼 엄습해 왔다. 첨병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에 전사하거나 전상당할 위험이 가장 높다. 그리고 정글 속을 헤치고 제일먼저 전진해 나가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첨병의 임무다. 그런 관계로 그는, 피보다 귀한 물, 세 수통을 지급 받았다.
이번 2차 638고지 공격코스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후문과 638고지 사이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638고지로 진격해 들어가서 좌측에 있는 무명고지로 공격해 들어갔던, 1차 공격 때와는 다른 공격코스였다. 이번 2차 638고지 공격코스는,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후문과 638고지 사이에 있는 능선에서 좌측에 있는 깊은 계곡으로 내려간 다음, 다시 무명고지로 올라가서 공격목표지점인 638고지로 올라가는 퍽 고된 공격작전 코스였다.
첨병인 그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좌측에 있는 작은 무명고지 목표지점을 향해 정글 속 가시덤불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 해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작전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 해 내려갔다. 첨병인 권 병장 그는, 계속 앞으로 전진 해 나아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저 밑에 있는 19번 도로 쪽에서 638고지가 있는 곳으로 불길이 타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푸른 울창한 숲이 포탄을 맞고 불이 붙어 저 밑에 있는 19번 도로 쪽에서부터 638고지 쪽으로 화염과 연기를 내 뿜으면서 바람을 타고 불이 계속 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열과 연기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서는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을 태우듯 뜨거웠다. 그 불은 뜨거운 열을 내 뿜으면서 수색 중대원들을 괴롭혔다. 글자 그대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불지옥을 연상케 했다. 권 병장 그는, 물을 아끼지도 않고 단숨에 벌컥벌컥 물 한 수통을 다 마셔 버렸다.
다른 작전지역 같으면 물을 무척이나 아껴 먹는다. 물을 목으로 넘기지 않고 입속에 머금고만 있다. 다음 보급헬기가 보급품을 싣고 올 때까지 물 한 수통은 비상용으로 남겨놓는 것이 철칙인데, 이앙케 전투에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물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계속 -
불속에 고립된 수색중대 (93)
권 병장 그는, 단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리는 전쟁터였기에, 혹시 죽더라도 피보다 더 귀한 물이라도 실컷 마시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가지고 있던 물 세 통을 다 마셔 버리고 말았다. 첨병인 권 병장, 그의 뒤를 따라오는 중대원들은 물 한 모금 못 먹은 상태라 더욱 더 견딜 수 없는 갈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권 병장 그는, 뒤 따라오는 중대원들보다 물을 세 통이나 더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혀 바닥이 굳어 들어가고 입에 침이 다 말라붙고 있었다.
이른바,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라고 불렀던,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638고지 좌측에 있는 무명고지 뒤쪽, 공격 목표지점을 향해 첨병과 첨병분대가 통과하였다. 그 뒤를 따라 첨병소대와 중대 본대가 통과할 무렵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638고지 8부 능선에서 적 월맹군들이 기습공격을 해 왔다.
수색중대 첨병과 첨병분대를 제외한, 수색중대 그들은 침이 말라붙고 혀가 굳어 들어가는 갈증이 아주 심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심한 갈증에 너무나 지치고 기진맥진하였다. 해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 설 힘조차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 채 무아지경 속에서 반사적으로 사격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불속과 적들의 총알이 빗발치는 사격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저 아래쪽으로부터 화염과 연기가 바람을 타고 계속 불이 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638고지 8부 능선 위에서는 월맹군들이 A K-47자동소총을 쏘며 기습공격을 해 오고 있는 터라, 그들은 완전히 사면초가 신세가 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은, 한 가운데서 완전히 포위되다시피 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완전히 퇴로가 막혀버려 진퇴양난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될지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막막한 절망뿐이었다. 이제는 저승사자가 금방이라도 그들의 목덜미를 휘여 잡는 것 같았다. 수색중대원 그들은, 힘이 없어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어 설 힘조차 없었다. 사면초가 된 수색중대원 그들은 기다가 뒹굴면서 이 생지옥 같은, 이곳을 어 떠 게든 벗어나 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다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안간힘을 다 하고 있었다.
한편!
같은 날 14시40분 경, 638고지 상공을 80노트 속력으로 나르는 헬기 밑에서, 시신을 끌고 내려오는 모습이 목격 되었다. 기갑 제2중대 3소대장 임 동춘 중위와 소대원들은 앙케 작전에 기갑 제3중대 대신 처음 투입되고 있었다. 그들은 헬기 아래서 펼쳐지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앙케 전투의 처참함에 치를 떨었다. 헬기 아래에서 처참하게 펼쳐지고 이 같은 상황에 모두들 눈시울을 적시었다.
기갑연대 제2중대장 진 무 웅 대위가 이끄는 그들은, 4월20일 정오를 기해,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들은 제2중대 전술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 2중대 3개 소대는 제3중대 대신 투입하라는 명령이었다. 제 3중대는 1차 공격 때, 피해와 희생이 너무 많았다. 그런 관계로 제3중대 그들은, 중대 재편성이 성립되지 않았다. 때문에, 제 2중대가 제3중대 대신 638고지 2차 공격 작전에 투입 하려고 헬기로 638고지 상공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또, 연대 수색중대와 제1연대 8중대는 또다시 638고지를 재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다만 제2중대 전술기지 자체방어 할 병력은 열외 시켰다. 연대 수색중대 제1소대 병력과 제2중대 1소대 병력은 제2중대 전술기지 자체방어와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에 따라 제2중대 전술기지에 남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기가 왕성한 제 2중대 2소대를 선두로 해서 16번 교량을 지키고 있던 임 동춘 중위가 이끄는 제3소대와 예비소대였던 화기소대를 투입하라는 명령이었다. 이 3개 소대에게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중대 책임 전술기지와 16번 교량 자체 방어 작전과 경계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중대 작전병력은 소대별로 점검을 마치고 마지막 출동준비에 따른 군장검사를 완료하였다.
“그들은 비장한 각오로 승리를 다짐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전의를 다지며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에 온다던 헬기는 오지 않았다. 예정시간 보다 약 2시간이나 늦은 오후 2시 경에야 굉음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헬기가 도착하였다. 늦게 서야 소형 헬기 5대가 제2중대 전술기지 연병장에 착륙했다. 헬기들은 제2중대 작전병력을 638고지로 공수 하 기위해 뿌연 황사 바람을 일으키면서 착륙하고 있었다.
편제상 제1소대는 열외 되었던 관계로, 제2소대부터 제3소대, 화기소대 순으로 헬기 1번 기를 선두로 해서 대당 6명씩을 탑승시켰다. 그리고 헬기는 638고지 목표지점을 향해 바쁘게 갔다 왔다 하며, 이착륙을 반복하였다. 때문에 헬기는, 작전지역으로 오가며 병력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638고지 상공으로 날아오른 헬기는 힘겹다는 듯이 괴로운 듯 굉음소리를 숨 가 푸게 내고 있었다. 숨 가 푸게 날고 있는 헬기는, 앙케 패스 638고지 상공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들은 눈 아래에서 펼쳐지는 앙케 전투 최대격전지 638고지를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저 아래쪽 19번 도로에서부터 불이 시커먼 연기를 내 뿜으면서 바람을 타고 638고지를 향해 무섭게 타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와중에, 638고지 좌측 약 6부 능선에서 시커먼 연기와 화염 속에서도 아군과 월맹군들이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방전을 격렬하게 치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저 아래에서는 화염과 연기 속에 그들이 고립되어 있었다. 또, 위에서는 월맹군들로 부터 기습공격을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앞뒤로 퇴로가 막혀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전투를 하고 있었다. 또 그들은, 화염과 연기 속에 고립되고 위에서는 월맹군들로 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중대는 다름 아닌 기갑연대 최정예 수색중대라고 했다.
그리고 저 아래에서 화염과 연기 속에 고립되어 있는 연대 수색중대도 약 2시간 전, 상부로부터 638고지 2차 공격 명령을 하달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물 20리터짜리 한통만 지급 받아, 무리하게 출동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적들에게 기습공격을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바로, 이때였다. 638고지에 있던 월맹군들이 638고지 상공을 비행중인 헬기를 향해 대공사격을 하 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미군 헬기조종사는 급히 기수를 급선회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80노트로 날던 속력을 100노트로 급상승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헬기 양 쪽 옆에 장착한 M-60경기관총으로 대공사격을 하고 있는 월맹군들을 향해 무차별 총알을 토해내었다. 그 성능 좋은 M-60경기관총에서 무차별 토해내는 총알에 월맹군 그들도 기가 질려 버렸다.
- 계속 -
이 명령은 사단장님의 특별명령이다 (94)
‘그리고 그 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악적으로 쏘아대던 대공사격을 멈추고 말았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는 옛 말이 생각났다.
며칠 전, 동료 헬기조종사들이 적진에 고립되어 있는 제6중대원들에게 물 보급을 하 기 위해 아군 전술기지인 앙케 패스 600고지 상공에서 서서히 기수를 낮추며 638고지 뒤쪽으로 접근하다가 월맹군들의 대공포를 맞고 헬기가 추락하였다. 추락한 헬기 조종사 동료전우가 전사하고 전상을 입었던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헬기조종사들은 무척 당황하고 긴장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이었다. 기체가 기우뚱거리면서 심하게 요동치던 헬기는, 적정이 없는 안전지대로 겨우 빠져나왔다. 그리고 헬기는 정상고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안정을 되찾은 헬기는 638고지 상공을 지나 월맹군들의 대공포 최대 사거리를 벗어난 지점, 앙케 고개 19번 도로 옆 개활지에 무사히 랜딩 했다.
4월20일 16 시경, 무사히 랜딩한 제1소대를 제외한 제2중대 작전병력 86명은 제2중대장 진 무 웅 대위의 명령에 따라 일렬 전술종대작전으로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 우측으로 우회하였다. 그들은 골짜기를 따라 638고지를 향해 숨을 죽여 가며 전진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쯤 전진해 올라가지 않아서였다.
비릿한 물 내 음과 함께 시체 썩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뚝 방 길 우측 논바닥에 월맹군의 시체로 보이는 시커먼 시체 한 구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아주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 시체에는 구더기와 파리 떼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또 좌측 숲 속에서도 월맹군들의 시체 두 구가 더 발견되었다.
한편!
맹호 제1연대 8중대는 상부의 명에 의해서 기갑연대 제1대대대로 배속되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 탈환작전을 지원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1972년 4월17일 새벽 05시경에 기갑 최정예 수색중대, 기갑 제3중대와 같이 638고지를 공격하였다. 그들 3개 중대는 공격에 실패하였다. 그중 2개 중대, 기갑 제3중대와 제1연대 8중대원들은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입고 말았다.
때문에 제1연대 8중대 그들은, 638고지 서북(플레이쿠)쪽 하단 개활지로 후퇴하여, 내려와 있었다.
앙케 작전 상황실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에게 무전기로 호출하였다. 앙케 작전 지휘부에서는 제1연대 8중대장 그에게 638고지 공격작전에 대한 실패의 책임을 물었다. 때문에 제 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는 기갑연대 제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으로부터 혼쭐이 났다. 그리고 그는, 앙케 작전 지휘부로부터 아주 심한 지적과 문책을 당했다.
그리고 함께 638고지를 공격했던 기갑 제3중대는 중대 재편성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제2중대 전술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기왕성한 기갑 제2중대로 교체된다는 정보를 그는 입수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이제 우리 제8중대도 배속이 해제되어 곧 기갑 제3중대처럼 중대본부로 철수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 그는, 며칠 동안 마음 졸이며 상부의 철수 명령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638고지 공격작전을 총지휘했던 기갑연대 제 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은 고심하고 있었다. 기갑연대 제1대대로 배속된 제 1연대 8중대를 배속을 해제시켜 제1연대 8중대본부로 철수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또다시 638고지 재공격을 명해야 할지? 그는 무척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1연대 8중대 병력을 대체할 마땅한 병력이 없었다. 그게 더 큰 문제로 대두 되고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제1연대 8중대를 기갑연대로 배속을 명한 맹호 사단사령부 상황실에 문의하였다. 기갑연대 수색중대와 함께 638고지를 재공격하라는 사단장의 특별명령이 하달되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번에는 638고지를 꼭 탈환하라는 맹호 사단장의 특별명령이 하달 되었던 것이다.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는, 금일(4월20일) 정오를 기하여 638고지를 재차 공격하라는 사단장의 특별명령이 하달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기갑연대 제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으로부터 사단장의 특별명령을 하달 받고,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기갑연대 제3중대와 같이 638고지를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발생하였다. 중대 재편성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은 피차 마찬 가지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기갑연대 제3중대는 중대본부로 철수작전을 명하는 반면, 제1연대 8중대는 또다시 638고지를 재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던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왜? 우리 제1연대 8중대만 또다시 638고지를 재공격하라는 건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작전 명령은 형평성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그들 제1연대 8중대원들은 이 같은 명령은 말도 되지 않은 부당한 조치라고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제1연대 8중대장 그는, 이 병력 가지고는 도저히 638고지 재공격이 불가능하다고 항의하였다. 또 그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그러나 제 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의 명령이 빗발같이 쏟아졌다. “명령이다!” “이 명령은 사단장님의 특별명령이다!” 지금 막 항공폭격이 끝났다. 적들이 점령해 있었던 638고지는 초토화 되었다. 때문에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급히 638고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1차 공격 때 638고지를 같이 공격했던 기갑 수색중대도 지금 곧, 638고지 좌측에서 공격해 올라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갑 제2중대도 출동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였다. 제1연대 8중대는 우측에서 638고지를 향해 공격해 올라가라는 명령이 추상같았다.
기갑연대 수색중대도 638고지 재공격을 한다는 제1대대장 한 규 현 중령의 명령에,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 강 대위는 더 이상 항의와 반발을 하지 못하였다. 하는 수 없이 그는, 1972년 4월20일 오전 11시20분 경, 비교적 몸 상태가 조금 나은 중대원들 중에서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직한 특공대를 인솔하여 일렬 전술종대작전으로 638고지 8부 능선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는, 638고지 1차 공격작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이 부패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그들의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시신에는 파리 떼와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참상을 목격하였다. 이 같은 참상을 목격한 특공대원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중대장 김 용 강 대위는 용감하게 특공대 선봉에 서서 “내 뒤를 따르라” 고 소리쳤다. 그는 용감하게 638고지 정상을 향해 진격해 올라갔다. 바로 이때였다. “딱~콩!”하는 A K-47총소리가 요란하게 들여왔다.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는 이마에, 그들의 총을 맞고 “억!”하는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폭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638고지 9부 능선 우측 참호 속에 매복해 있던 월맹군 저격수의 조준경(테러리스터들이 사용하는 총에 망원경을 부착한 것)을 부착한 A K-47자동소총에 철모 밑 이마를 맞고 쓸어 졌던 것이다.
- 계속 -
정말 불가사의한 기적 같은 일이야 (95)
때문에 제1연대 제8중대장 김 용강 대위는 이마에 붉은 선혈이 낭자하였다. 또 그는, 횐 골수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는, 붉은 선혈과 횐 골수가 뒤범벅이 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겨우! 기어들어 덧 한, 모기 소리만한 소리로 말했다. 그는 선임 소대장인, 제1소대장 신 중위에게 대신 중대장을 맡아 달라고 유언처럼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안타깝고 아깝게도 서른 살의 꽃다운 젊은 청춘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또, 그는 앞날의 찬란한 꿈도 이루어보지도 못한 채, 이역만리 월남전선 앙케 패스 638고지 9부 능선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는, 특별히 한국군 장교들만 타 깃을 삼아 노리는 월맹군 저격수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옆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광경을 지켜본 김 익 한 전령은 중대장 김 용강 대위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며, 그는 울부짖으며 한참을 통곡하며 오열하였다. 살아남은 특공대원들의 전령인 그를 엄호 사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붉은 선혈이 낭자하고 흰 골수가 밖으로 튀어나온 중대장 시신을 간신히 수습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수습한 중대장의 시신을 끌어안고, 638고지 9부 능선에서 638고지 아래로 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덧 작열하던 뜨거운 태양은 플레이쿠 쪽 서산으로 기울었다. 기갑 제 2중대 첨병분대와 첨병이 638고지 하단 부 약 100m 쯤 접근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638고지 쪽으로부터 적 월맹군들의 82mm 박격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꽝!~과 광! 쉬~쉬익! 꽝!~과 광!~” 하는 월맹군 82mm 박격 포탄이 계속 비 오듯 떨어지고 있었다. 적 월맹군들은 아군들이 박격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 올 때까지 관망을 하면서 기다렸다가 집중사격을 한 모양이었다.
당황한 제2중대장 진 무 웅 대위 그는, 중대원들에 신속히 산개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또, 지형지물을 이용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은폐 엄폐하여 적들의 포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는 지점까지 뒤로 물러서라고 소리쳤다. 때문에 기갑연대 제2중대 3개 소대는 사기도 왕성하게 작전에 투입된 지 두 시간여 만에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르고 말았다.
그리고 제1연대 8중대는 638고지 2차 공격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또, 기갑 제2중대도 사기왕성하게 작전에 투입된 지 두 시간여 만에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르고 나서, 그들도 전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들 2개 중대는 638고지 탈환 작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기갑연대 수색중대 그들도 앙케 패스 638고지 6부 능선에서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속에 고립된 상황에서 적 월맹군들에게 기습공격을 받았다. 기갑연대 수색중대 그들은 완전히 퇴로가 막혀버린 상황이었다. 그들은 고립된 상황에서 그래도 죽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대응사격을 하였다. 때문에 월맹군들은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습공격을 해 온 적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화염이었다. 불은 아래쪽에서 부터 계속 바람을 타고 시커먼 연기를 내 뿜으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색중대 본대는 더 이상 피 할 곳도 없고 피할 힘조차 없었다. 그들은 여기서 이렇게 꼼짝없이,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자포자기 상태에서 하나님과 각자가 섬기는 신들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적들도 아군의 본대가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전의를 상실했다고 판단했는지?” 지금까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하던 사격을 멈추었다. 월맹군 그들은 처음에는 아군의 본대를 공격하기 위해 첨병과 첨병분대를 전략상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전략상 통과 시켰던 첨병과 첨병분대에게 집중사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집중포화를 뚫고 첨병과 첨병분대는 638고지 밑에 있는 무명고지를 막 넘어와서 수색중대 본대와도 조금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화염과 연기는 겨우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첨병과 첨병분대는 적들과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도록 쏘아대는 적들의 집중사격에 첨병인 권 병장이 큰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권 병장! 위험해!” “더 올라가면 위험해!” “돌아와!” “돌아와!” 하고, 분대장 그는 소리쳤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 그는, 첨병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뒤에서 엄호사격을 할 테니, 빨리 돌아오라고, 첨병인 권 병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첨병인 그는,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리며 다급하게 부르짖는 분대장의 목소리를 듣고, 분 대원들이 있는 아래쪽으로 뒤돌아 내려가려는 순간이었다. “따다닥!” “딱콩! 딱콩!~” 하는, 적들의 A K-47총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권 병장이 그만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부 첨병으로 뒤따라가던 김 영진 병장이 큰 소리로 울먹이었다.
“권 병장이 총에 맞았어!”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는 소리 내어 엉엉 울기만 할뿐, 어쩔 줄 몰라 했다.
바로, 이때였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갑자기 바람 방향이 뒤바뀌었다. 아군의 본대가 있는 무명고지 좌측으로 불던 바람이 638고지 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제갈공명의 화공작전을 방불케 하듯, 화염과 연기에 고립되어 있던 아군의 본대를 아슬아슬하게 우회하여 지나갔다.
그 바람은 적들이 있는 638고지 쪽으로 휘몰아쳐 올라갔다. 638고지 8부 능선에 있던 적들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적 월맹군 그들도 638고지 너머로 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김 종일 하사는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권 병장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겨우 기어 올라갔다.
“김 병장 너는, 울지만 말고, 권 병장이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얼른 확인해 봐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권 병장의 상처를 빨리 찾아내어 압박붕대로 지혈을 시켜야지 하였다.” 그리고 그는 권 병장 옆에서 울고만 있는 김 병장을 얼른 옆으로 밀어내었다.
그러면서 그는, 쓰러져있는 권 병장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어디에 총상을 입었는지 상처부위를 찾아내려고 샅샅이 그의 몸을 뒤적여보았다. 그러나 권 병장 그의 몸, 그 어디에도 총상을 입은 흔적과 핏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던 김 종일 하사가 권병장이 착용하고 있는 탄띠에 매달린 빈 수통에서 월맹군들의 A K-47소총 탄환 흔적을 발견하였다.
분대장 그는, 얼른 권 병장의 탄띠를 끌러 자세히 살펴보았다. 약 200m 지점에서 월맹군들이 쏜 A K-47총알이 권 병장의 수통 집과 수통을 통과해서 탄띠에 박혀 있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고 기절한 모양이야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독백 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불가사의한 기적 같은 일이야 하였다.
그리고 그는 권 병장을 깨우기 시작했다. “권 병장! 정신 차려!” “권 병장! 정신 차려!” 분대장 그가 권 병장을 마구 흔들어 깨우자, 그는 그때서야 부스스 깨어났다.
계속 -
그 누가 인생사 새옹지마라 해 던 가 (96)
“살아났어!”
“정말! 살아났구나.”
“권 병장 너는 죽지 않고 틀림없이 살아날 줄 알았다고 하였다.” 조금 전까지 엉엉 울고만 있던 김 병장이 안도의 긴 한 숨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기뻐 날뛰었다. 그러면서 그도, 독백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하늘이 도왔어!” “천우신조로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이런 믿기지 않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하였다!”
바로, 이 때였다. 박 병장이 그들과 권 병장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기어 올라왔다. 그는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분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부 분장대장님 최 지원 병장이 전사 했습니다.”
조금 전 분대장님이 첨병인 권 병장에게 위험하다며 더 이상 전진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소리를 듣고, 최 병장님이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벌떡 일어서는 순간, 약 250m 거리에서 쏜 월맹군들의 A K-47총알을 우측 귀밑에 맞고 피가 낭자한 채, 그만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누가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탄탄대로의 앞날이 촉망되던 그 총명한 최 지원 병장이 전사했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차라리 첨병이라도 섰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 네 잎 클로버 구경하느라고 고개 숙이는 순간, 머리위로 지나가는 총알을 피하는 행운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는데,
그 둘은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시간대에 적들의 총을 맞아 운명을 달리 했다. 그 둘은 참으로 기막힌 운명이었다. 그 둘의 운명은 너무나 옛말과 맞아 떨어지는 우연이라 해도 너무 기막힌 우연이었다. 최 병장 대신 첨병임무를 수행하느라 적과 더 가까이에 있었던 권 병장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몸이 많이 아프다는 이유로 첨병 임무에서 벗어났던 그는 오히려 전사하고 말았다. 최 병장 그는, 적과의 거리는 권 병장보다는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도 다 일어났다.
그런데도 이처럼 운명이 뒤바뀐 일이 벌어진 데 대해 모두들 이상야릇한 일도 다 벌어졌다고 하였다. 권 병장은 행운의 전화위복에 일면 안심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최 병장의 장렬한 전사를 두고 모두 가슴 아파했다.
권 병장과 최 병장은, 생과 사의 희비가 이렇게 엇갈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숨 막히는 와중에서 제2소대 1분대 소속 김홍일 일병이 다리에 A K-47총을 맞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전우가 없었다. 수색중대 본대는 극도로 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화염과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은 생지옥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정신을 차릴 경황도 없었다. 중대원 모두들 정신까지 몽롱해져 꼭 악몽을 꾸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첨병과 첨병 분대를 제외한 중대원 모두들 탈진하여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할 형편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부상당한 전우를 도울 힘이 없었다. 또 그들은, 그럴 겨를도 없었다.
다급해진 수색중대 제2소대 1분대장 송 세열 하사가 기진맥진해 있는 중대장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보고 하였다. “중대장 그도 이 상황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중대장 그도 이 처절하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달리 손을 쓸 방도가 없다고 난감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생과 사가 결판나는 암울한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운명의 귀결로 받아들이면 십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천만 다행으로 월맹군들은 화염과 연기를 피해 638고지 뒤로 똥줄이 빠져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전 중대원이 고립된 상황에서 적들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았다. 첨병과 첨병분대를 제외한 모두가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다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제2소대 1분대장 송 하사도 거의 포기상태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김 일병에게 이렇게 소리 쳤다. “김 일병!” “김 일병!” “기어서라도 빨리 내려오라!” 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김홍일 일병은 피를 흘리면서도 초인적인 힘을 다해 반죽음이 되어 제1분대장 송 하사가 있는 곳까지 겨우 기어 내려왔다. 송 하사 그는, 압박붕대로 급히 지혈을 시켰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겨우! 몸을 추슬러서, 보급품과 물을 가지고 온 제1중대 전우들의 도움으로 그를 후송을 보냈다.
그런데, 김 홍 일 일병은 후송 간지, 약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는 한 쪽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면서 중대본부에 찾아왔다. 그는 몇 겹으로 싼 종이를 풀어서 A K-47소총 탄환을 수색중대 제2소대원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탄환은 자신의 다리에 박혀있던 A K-47소총 탄환이라고 하였다!”
그때, 자신은 기어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현장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거나, 운 좋게 살았더라도 적에게 생포되어 포로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려주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신의 수당이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그 일 때문에, 중대본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중대 서무계가 김 일병이 전사한 줄로 착각하고, 김 일병의 가족에게는 한 달 전에 전사했다고 통보하고는 그 한 달 치 차익의 생명수당을 슬쩍 가로채갔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김홍일 일병이 살아났기 때문에 밝혀졌다고 하였다. 만약 김홍일 일병만 전사 하였더라면 영원히 묻혀 질 번했던 사건이었다.
큰 불길은 수색중대 본대가 고립되어 있던 곳을 아슬아슬하게 우회해서 638고지 쪽으로 힘차게 타 올라갔다. 적들도 불길을 피해 638고지 너머로 도망쳤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바람 방향이 바뀌어 조금 전과 같이 수색 중대원들이 쓰러져 있는 정글 속으로 불길이 들이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적들도 언제 또다시 공격해 올지 몰라,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바로, 때였다. 상부로 부터 새로운 명령이 하달되었다. 큰 불길이 지나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빨리 대피하라는 명령이었다. 큰 불길이 한번 지나간 곳은, 다시는 큰불은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들이 또다시 공격해 오더라도 은폐엄폐가 용이한 제1중대 소도산 전술 기지 쪽, 638고지 5부 능선 큰 바위가 있는 지점으로 빨리 철수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큰 불은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잔불이 여기저기에 남아서 연기와 함께 엄청난 열을 내 뿜고 있었다. 중대원 모두가 한 발짝도 제대로 내딛을 수 없는 처지라 다른 지점으로 철수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큰 불이 들이닥치기 전에 이 숲속을 빨리 빠져 나가야 했다.
그리고 적들과 제일 가까이 근접해 있는 첨병 분대는 한 사람은 천우신조로 살아나는 기적을 맞기도 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살아 돌아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동료를 잃고 말았다. 그 운명의 순간들을 다시는 생각 하 기 조차도 싫은 악몽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부스스 깨어나는 권 병장을 본, 분 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계속 -
그는 울었다 (97)
그들은 그동안 겪었던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일 초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을 탈출하기 위해 연기와 잔불이 엄청난 열을 내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맨 위 첨병과 함께 있었던 부 첨병인 김 영진 병장과 첨병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적들의 A K-47총을 맞고 기절했던 수색중대 첨병인 권 준 병장을 부축을 하였다. 그리고 그 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638고지 5부 능선 큰 바위가 있는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엄청나게 내뿜는 열 속을 이리저리 겨우! 피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638고지 5부 능선 큰 바위가 있는 곳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권 병장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는 큰 바위 밑에서 바위에다 등을 붙이고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그의 입에다 수통을 물려주며 물을 먹여주는 전우가 있었다. 그는 살며시 눈을 떠 보니, 김태식 전우였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 음 리 파월장병들에게 훈련을 시키는 훈련소에서부터 형제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작전 없고 교랑 경계근무만 선다며 자랑해대던 기갑연대 제7중대로 전출 되었던 김태식이란 전우의 모습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권 병장 그는 꼭,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의 앞에 나타난 김태식 전우의 모습이, 마치 천사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는 물을 받아 넘기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김태식 상병이 구세주와 같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권 병장 그에게 정신이 좀 드니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권 병장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권 병장의 탄띠에 꽂혀있던 A K-47총알이 통과한 그 빈 수통을 빼내고 자기가 가지고온 물 한 수통을 권 병장의 빈 수통 집에 꽂아주는 것이었다. 권 병장 그는, 그가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핑 돌았다.
권 병장 그는, 피보다 더 귀한 물을 얻어먹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그는 김태식 그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고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화염방사기 사수로 차출되어 왔다고 하였다. 권 병장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떻게 이곳까지 나를 찾아오게 되었냐고 김태식 상병에게 자세히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매복과 수색작전이 없는, 교랑 경계근무만 한다는 제7중대에서 4명이 화염방사기 사수로 차출되어 왔다고 하였다. 그 들은 638고지 뒤쪽에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에 화염방사기로 불대포를 쏘는 임무를 부여받고 투입 되었다는 것이다. 권 병장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뜻하지 않게 김 상병을 만나게 되니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일면 반갑기도 하였다.
그는 김태식 전우의 말을 들으니, 일면 반갑기도 하고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신기하였다. 권 병장 그는, 연신 고맙다며 울먹였다. 여기 와서 소문을 들으니까, 바로 옆에서 연대 수색중대원들이 작전을 하고 있다기에, 권 병장 너를 찾아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도 울먹였다.
권 병장 그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또, 그의 초췌하고 야윈 얼굴에는 시커먼 숯검정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땀과 땟자국으로 뒤범벅되어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같은 모습을 본 태식이 그는, 권 병장 그가 너무나 불쌍하고 가엾어 보였다. 때문에 그 모습을 본 그는, 마음 아파 울먹이던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일 뿐, 할 말을 잊고 목이 메어 제대로 울지도 못하였다. 권 병장 그는, 지금까지 양치질은 물론, 세수 한 번 못 한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그는 김태식 전우가 화염방사기를 메고 천혜의 요새와 같은 적들의 벙커 앞으로 올라가면 그는 도저히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지역인지 상황을 잘 모르고 있는 태식이 그를, 그는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권 병장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태식아!”
“너는 적들의 벙커 정면으로 올라가면 죽는다!” 그러면서 그는, 638고지를 1차 공격하였을 때, 그가 체험했던 대로 적들의 벙커 정면을 피해서 될 수 있으면 좌측 8부 능선을 따라 들어가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그리고 그는, 태식이 그에게 이런 당부를 하는 걸 잊지 않았다. 태식아! 부디!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들은 목이 메었다. 그리고 그들, 둘이서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바로, 이때였다. 김태식 상병은 제7중대에서 같이 올라 온 전우들과 행동을 같이 해야 된다고 하며 급히 돌아가 버렸다. 권 병장 그는, 태식이 그가 돌아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는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부첨병인 김 영진 병장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권 병장은 김태식 전우가 주고 간 피보다 귀한 물을 두 사람 입에 수통을 물려, 물을 먹여주었다. 물을 얻어 마신 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두 사람은 물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반색을 하며 물었다. 권 병장 그는, 김태식 전우가 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김태식이란 그 전우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 음 리 훈련소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계급은, 권준은 병장이고 김태식은 상병이었다. 하지만 군번은, 권 병장보다 김 상병이 조금 빨랐다. 그리고 그 둘은 마음도 잘 맞아 의기 상통하는 막역한 사이로 지내기로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계급 따지지 않고 서로가 터놓고 다정한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고 대충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김태식 상병은 아는 게 많고 매우 똑똑한 전우였다. 그들은 저녁 일석점호 마치고 나면, 둘이서 개울가로 나와 개울 옆, 이동주부들한테 막걸리 사먹던 추억이 그의 뇌리에 환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오 음 리 훈련소에서 훈련마치고 월남 전쟁터로 출국할 때도, 그와 함께 선발대에 차출되었다.
그와 함께 하루 먼저 부산 제3부두에 도착 하였다. 내일 본대를 싣고 월남으로 떠날 천 이백톤급의 바 레트 호에 승선하였다. 그 둘은 식당일에 대한 도우미 교육받고 월남 도착할 때까지 식당 조리 조에 편성되어 도우미 일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배안에 있는 미군 승무원을 찾아가서 서툰 영어 써가며 손짓 발짓해서 배 멀미약을 타다 같이 나눠먹고 나서, 그 두 사람은 배 멀미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들은 배 멀미 약을 먹은 탓인지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처음 배를 타는 대부분의 전우들이 심한 배 멀미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 멀미에서 해방된 그 둘은 새벽 05시에 식당 조리 조 도우미 하러 엘리베이터 타고 식당 조리실로 내려가곤 했다. 그들은 조리시간에는 한시적으로 식품창고를 개방해 놓았다. 계속 식품 창고로 식품을 식당 조리실로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 둘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식품창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식품 포장지에 쓰여 있는 영어를 잘 몰라 닥치는 대로 두 개씩 골라가지고 엘리베이터 타고 8층 위에 있는 배 갑판위에 올라가서 맛 한번 보고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바다에 던져 버렸다.
- 계속 -
그 금반지 가지고 짜 웅 하였다 (98)
그 철딱서니 없는 짓들이 새삼 권 병장 그의 뇌리에 클로즈업 되어 왔다. 권 준 병장 그는, 월남에 대한 요령을 잘 몰랐다. 하지만, 김태식 상병 그는, 요령 있고 재치도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월남에 도착하면, 우리(한국) 돈은 필요 없고, 달러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달러 구하기가 힘드니까 각자 금반지 3돈짜리 1개씩 구입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 금반지로 짜 웅 하면 우리 둘은 정글 기는 것은 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때문에 그 들은 이동 주부에게 부탁하여 금반지 3돈짜리 각자 1개씩 구입하였다.
그들은 월남에 도착하여 또다시 현지 전투에서 필수 훈련 과정인,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랜딩 훈련과 클레모아 설치와 분리하는 방법 및 레 콘도 교육과 훈련을 2주간 받던 중이었다. 이날이 훈련병 그들에게 일주간 교육이 끝나는 날이었다. 권 병장과 김 상병은 이 날 저녁을 이용하여 연대 인사과에 짜 웅을 하러 가기로 작정 하였다.
일석점호를 마친 그들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정보사령부소속 MIG와 헌병들과 보안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위장을 하였다. 정 걸복 상의를 벗어 버렸다. 정걸화도 벗어 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기관병으로 위장을 하였다. 때문에 그들의 감시를 교묘히 피해서 장교식당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연대 인사과 홍 하사를 은밀히 찾아갔다.
그 들은 고국에서 구입해 간 금반지를 건네주고 짜 웅을 하 기 위해서였다. 딴에는 멋진 뇌물 공세로 톡톡히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권 병장 그는, 그렇게 기대하고 반지를 건네 주고 짜 웅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짜 웅한 보람도 없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권 병장 그는 보병중대 보다 두 배 이상 매복과 수색작전이 많은 정글만 빡빡 기는 수색중대에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에 김 상병 그는, 짜 웅한 보람이 있었는지? 그가 희망했던 대로, 작전 없고 매복 없는 교량 경계근무만 하는 제7중대에 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김태식 상병과 권 병장은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태식이 그와 권 병장 그는, 이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월남 전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에서 극적으로 이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권 병장 그는, 첨병임무까지 수행하느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기고 있는 중이다. 과연! 생지옥 같은 이앙케 전투에서 살아서 저 친구 김태식 전우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회한에 젖었다. 또 그는, 착잡한 심정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그는,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태식이가 사라져간 그 곳을 바라보며 한 없이 울었다.
그 둘은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단,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만났다. 그 들은 이 험준한 고비 길에서 서로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부첨병인 김 병장과 첨병분대장 김 하사는 초인적인 힘으로 첨병인 권 병장을 부축을 하여, 638고지 5부 능선으로 겨우겨우 내려갔다. 그들은 나머지 남아있는 기력을 다해 바위 밑으로 내려가서 김태식 전우로부터 피보다 귀한 물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그들은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분 대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밀려오는 불안감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한편,
적들도 불길을 피해 638고지 너머로 물러갔다. 그 작열하던 태양도 서산마루에 겨우! 걸쳐 있었다. 때문에 더위는 참을 만하였다. 불길이 지나간 대지에서 내 뿜던 열기도 점점 식어서 수그러들었다. 아래 쪽 콩 강에서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왔다.
살아남은 중대원들이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바로, 때였다.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드럼통과 물을 가지고 왔다. 저 승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수색 중대원들은, 그들이 가지고 온, 그 물을 받아먹고 갈증이 말끔히 해소 되었다. 갈증이 해소 되니까 좀 살만 하였다. 계속 콩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모처럼 여유를 찾은 중대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상부에서는 638고지 5부 능선 큰 바위가 있는 지점으로 빨리 철수하라는 작전명령은 취소하였다. 때문에 앙케 작전 지휘부는 또다시 작전 명령을 변경하였다. 그때 638고지 1차 공격하기 전, 7부 능선에 구축해 놓았던 참호를 빨리 점령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죽음의 사선을 뚫고 638고지 5부 능선 바위 밑으로 무작정 이동했던 권 병장과 김 병장, 분대장 김 하사는 지칠 대로 지친 천근만근이나 되는 몸을 이끌고 참호가 구축되어 있는 7부 능선으로 또다시 기어 올라갔다.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은 분 대원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월맹군들에게 집중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전사자와 전상자가 속출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까지도 전사자는 손도 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 전상자들만 물을 운반해 온 전우들이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로 부축을 하였다. 그리고 전상자 그들을 106병원으로 급히 후송 조치하였다.
지금까지 수색중대 지휘관 장교들 중에서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은 제3소대장 정 종 태 중위마저도 안타깝게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었다. 때문에 그를, 106후송 병원으로 급히 후송 조치하였다.
그리고 수색중대 제2소대 임시 소대장 조 만행 중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제1연대 8중대장 김 용강 대위가 월맹군 저격수의 총에, 이마를 맞고 허연 골수가 쏟아져 나온 것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때문에 그는, 그 엄청난 충격에 정신적 공황에 빠져 전쟁스트레스 중 후군에 걸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그를, 638고지 2차 공격작전에서 열외(제외) 시켰다. 그는 귀국을 약 20일 정도 남겨놓고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에 갑자기 투입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수색중대 제 1소대장은 소대원들과 함께 기갑 제2중대 전술기지를 경계하러 가고 없었다. 때문에 이제부터는 수색중대를 지휘할 장교는 5일전에 부임한 중대장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수색중대는 또다시 중대장을 제외한 지휘관들을 다 잃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은 638고지 7부 능선 참호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638고지 2차 공격을 하 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적 월맹군 그들은 사격술이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적 월맹군 그들은 A K-47자동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한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월맹군 그들의 저격수는 한국군 장교들만 노렸다!”
‘따!~콩!’하는 적의 저격수 A K-47소총 한 발이면 한국군 위관 급 장교 한 명이 어김없이 쓰러졌다. 그 당시 영관급 이상 장교들은 최전방 전투현장에 있지 않고 상황실 벙커에만 있었다. 때문에 영관급 장교 그들은, 그 같은 큰 위협을 실감하지 못 하였을 것이다.
- 계속 -
적들은 한국군 장교들만 노렸다 (99)
하지만, 위관 급 장교 그들은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위관 급 장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장교표시’ 을 다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계급장은 물론이고 양어깨위에 있는 푸른 지휘관 견장도 다 떼버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치열하고 처절한 앙케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소모품으로 전락한 위관 급 장교 그들은 엄청난 공포에 질렸다. 때문에 그들은 선두에 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병사들에게 공격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이런 이유로, “자기 직속상관이 아니면, 장교인지 병사인지 도무지 식별이 되지 않았다. 어떤 병사는 다른 소속 중대장한테, “저기수류탄 빨리 좀 전달해 줘” 하는 등, 야!, 자! 반말하는 웃지 못 할 헤 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야!, 자! 반말하는 그 병사한테 무어라고 탓하는 장교들은 한 분도 없었다. 또 그럴 겨 을도 없었다.
이런 관계로 적들은, 아군의 장교인지? 병사인지? 식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아군 무전병의 움직임을 보고 아군 장교를 식별해 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군 무전병의 동태를 철저히 관측해서 장교들을 찾아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국군 장교들만 표적을 삼았다. 그러므로 위관 급 장교들은 겁에 질려 무전병을 옆에 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하지만, 앙케 전투 상황실에서는 걸핏하면 무전병에게 지휘관을 바꾸라고 독촉을 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무전병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감한 입장에 처한 무전병도 재송, 재송, 하며 무전기 감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었다. 그러다가 그도, 더 이상 핑계를 될 수 없게 대면, 어쩔 수 없이 무전기 전원을 꺼 버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앙케 작전 상황실과 전투 현장과의 큰 괴리가 생기고 말았다. 이 같은 작전상 괴리는 큰 방해요소로 작용하였다. 때문에 앙케 작전 지휘부의 명령이 전투현장에 잘 먹혀들지 않았다. 앙케 전투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했다는 작전 명령이 상부로부터 하달되었다. 적들이 A K-47자동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하여 한국군 장교들만 노리고 있다. 그들 저격수의 사격술이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때문에, 드럼통 전술작전을 전개 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같은 드럼통 작전을 전술이라 할지, 전략이라 할지?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내었던 것이 드럼통 전술작전이었다. 드럼통에 흙을 가득 채워서 2인1조로 밀고 올라가면서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 얼른 듣기에는 그럴싸해서 한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조금 전 제1중대원들이 물과 함께 가지고온 드럼통으로 시범적으로 한 번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들은, 638고지 7부 능선, 전투현장에서 우선 드럼통 한 개에, 상부의 지시대로 흙을 담으려고 해보았으나 드럼통 입구가 너무 좁아 야전삽으로는 흙을 퍼 담을 수가 없었다.
기름통으로만 사용하게 설계된 드럼통은 주유기로 기름 채우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흙은 담는 것은 불가능 하였다.
하는 수없이 그들은, 차고 있는 대금으로 드럼통 입구를 약 20-30cm 정도 찢어서 흙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은, 상부에서 지시한대로 산 밑에서 병사 2명이 산위로 밀어 올려 보았다!” 그 드럼통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다시 병사 5명이 엎드려서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온갖 나무뿌리와 폭격을 맞아 울퉁불퉁한 구덩이 장애물에다 급경사로 인해 이 전술 작전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급경사에 드럼통을 밀어 올리다가 잘못하면 안전사고가 날 것 같기도 하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찢어진 구멍에서는 드럼통을 움직일 때마다 흙이 다시 밖으로 흘러나왔다. 앙케 전투에 참전했다는 어떤 전우는 이렇게 무용지물인 드럼통에 흙을 가득 채워서 2인1조로 밀고 올라가면서 공격을 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시험해본 결과 이 드럼통 전술작전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전술 작전은 더 이상 신빙성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렇지. 무게가 거의 450-500Kg 정도 나가는 흙을 가득채운 드럼통을 엎드려서 병사 둘이서 경사진 곳을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 밀어 올린다는 것은 헤라클레스라면 몰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전술작전이었다.” 그리고 빈 드럼통만 가지고도 실험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불가능했다. 설령, 빈 드럼통을 밀어 올린다 치더라도 적들의 B-40 적 탄통 한 방이면 그대로 날아 갈 것 같았다.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이런 방법은 어쩌면 쥐덫을 걸머지고 산등성이를 오르는 들쥐의 신세와 견주어도 전혀 잘못된 비유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드럼통 색깔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빨간색 드럼통은 확연히 눈에 들어가게 마련이라 적들의 공격목포로서 안성맞춤의 타 깃이 될 것 같았다.
때문에 실제 638고지 2차 공격작전 때 수색 중대에서는 이 드럼통 전술작전은 사용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중대도 이 드럼통 전술작전은 사용하지 않았다. 또 사용 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앙케 전투에서는 드럼통 전술작전으로 638고지를 공격 했다는 것은 왜곡된 역사이다.
1972년 4월 21일, 638고지 7부 능선 참호 속에서, 수색중대 그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지루한 밤을 지새우며 새 아침을 맞았다. 그들은 또다시 638고지 2차 공격을 하 기 위해서 공격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앙케 작전 지휘부는, 어제(4월 20일) 정오를 기해 638고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은 일단 취소시켰다. 예상외로 적들의 저항이 완강했다.
때문에 그들은, 다른 전술작전으로 변경하기 위함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특공작전,’ 638고지 1차 공격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피의 능선에서 우리는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전술기지에 있는 제61 포대에서 105mm-155mm 포탄을 638고지 정상에 무자비하게 쏟아 붓고 있었다.
포사격이 끝나자마자, 연이어서 로켓포와 M-60경기관총을 장착한 무장헬기 두 대가 638고지에 폭격을 끝내고 돌아가고 나면, 또다시 로켓포와 케 레 바-50 중기관총을 장착한 무장헬기 두 대가 교대로 폭격과 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든지 포사격도 뚝 멎은 상태였다.
때문에 아군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와 638고지 사이에 안전통로가 확보되었다. 아군은물과 전투식량과 보급품 조달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주 월 한국군도 계속 반복되는 소규모 특공작전과 축차적으로 무모하게 공격하던 전술작전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캄캄한 밤이나 안개가 앞을 식별할 수 없는 새벽 시간대는 피하여, 밝은 대 낮 시간대로 작전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또, 포병 그들과 하던 콤비네이션 전술작전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 계속 -
두더지 전술작전으로 전환하다 (100)
때문에 수색중대 그들은, 미군 무장헬기와 함께, 지상과 공중에서 콤비네이션 전술작전으로 변경 하 기로 하였다. 그리고 “전투에서 벙커나 참호 구축작전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참호 구축작전은, 아군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적들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때문에 그들은, 참호를 구축하여 조금 씩 조금 씩 전진하는 두더지 전술작전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수색중대 그들은, 1차 공격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공격작전은, 미 공군 팬텀기와 또, 미군 무장헬기와 함께 지상과 공중에서 합동 작전을 하 기로 하였다. 먼저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와 교통호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참호에, 미 공군 팬텀기로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가한 다음 …….
공중에 있는 미군무장헬기의 로켓포와 M-60 경기관총을 지원 받아, 지상에 있는 아군은 638고지 7부 능선에 구축해 놓은 참호를 발판으로 삼아, 야금야금 전진해 올라가서 또다시 참호를 구축하여 두더지처럼 들어가서, 지상과 공중에서 합동작전으로 공격하는 두더지 전술작전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상과 공중에서 콤비네이션 전술작전으로 압박을 가하면 아무리 끈질긴 적들도 638고지 1차 공격 때처럼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때문에 이 전술작전이 아주 주효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앙케 작전 지휘부에서는 곧 항공폭격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1차 공격 때 구축해 놓은 참호를 밑으로 더 파 내려가서 다시 ㄴ자형으로 638고지 쪽으로 깊숙이 파들어 가 땅굴처럼 신속히 구축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2~3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땅굴 같은 참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마대를 가지고 왔다. 때문에 그들에게 처음으로 마대(흙을 담는 자루 : 샌드백)가 지급되었다. 수색 중대원들은 638고지 7부 능선 참호 앞에다 마대를 쌓아서 오후 늦게까지 참호 구축 작업만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두들 허리를 펴고 참호를 살펴보았다.
이건 참호가 아니라 완전히 땅굴 같았다.
수색중대가 638고지를 1차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후퇴할 때, 미리 이 참호를 구축해 놓은 덕으로 수색 중대원들은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이 공격에 가담했던 다른 2개 중대는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멸되다시피 했다. 때문에 그들은, 참호를 구축하여, 두더지 전술작전으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1972년 4월 21일 오후 4시경, 참호구축 작업이 막 끝났을 무렵이었다. 그들은 638고지에 참호 구축작전이 완료되었다고 무전기로 통해 앙케 작전 상황실에 보고를 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상부에서는 곧 항공 폭격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죽음의 고지로 불렀던 638고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월맹군들의 벙커와 교통호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참호에 2차 항공폭격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수색중대원 모두는 땅굴처럼 구축해 놓은 참호 속에 들어가서, 입을 크게 벌리고, 그리고 귀를 꽉 틀어막고 엎드려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들은 1차 항공폭격 때처럼,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항공폭격 하는 장면을 숨어서 구경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구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수색중대 그들은 참호 양 쪽 끝에다 대공포판(지상부대 또는 함정과 비행중인 우군 항공기 간에 신호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약속되어 있는 기호)을 펼쳐 놓고 땅굴 같은 참호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항공폭격이 빨리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항공 폭격이 시작되었다. 팬텀기에서 폭탄을 투하 할 때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 위력은 대단했다. 그 위력은 마치! 부산에서 출항하여 남지나 해협을 통과할 때, 심한 풍랑에 미 해군 수송 함 바 레트 호, 큰 배가 기우뚱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638고지가 아주 심하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정말, 항공폭격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재차 실감하게 되었다.
미 제7전술 공군 팬텀기 두 대는 싣고 온 폭탄을 순식간에 638고지 적진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WP탄으로 폭격지점을 유도하던 정찰기와 한국군 통역장교가 동승한 헬기가 먼저 돌아갔다. 그런 다음, 그 뒤를 이어 638고지에 폭격을 끝 낸 팬텀기도 푸 갓 비행장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그 뒤를 이어 또다시 미군 무장헬기 두 대가 번갈아가면서 계속 638고지에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항공 폭격이 끝나고 팬텀기가 다 돌아갔다는 전달을 받고, 수색중대 그들은 참호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 들은 참호 바깥에서 항공폭격에 대한 잡담을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러쿵저러쿵 신나게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후에 있을 638고지 2차 공격을 위해서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 그들은 보급품도 원활하게 조달되어 물을 부족함 없이 마셨다. 그리고 전투식량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기진맥진했던 몸도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이제야말로 그들은 사람대접을 받는 것 같아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 로 명명된 638고지를 또다시 공격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수색중대 그들 모두가 걱정을 하였다. 그들은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두렵기만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휴식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계속 638고지에 있는 월맹군의 벙커와 포진지에 한국군이 105mm-155mm포와 미군 항공폭격과 무장헬기 로켓포와 M-60경기관총으로 번갈아 가며 폭탄과 총알을 쏟아 부었다.
바야흐로 전투는 끝장을 보려는 듯 치열했다.
그동안 미군 헬기를 향해 맞대응하던 대공포와 아군 보급로에 집중 포사격을 하던 월맹포병들은 포신은 그들의 벙커 속에 숨겨놓고, 638고지 너머 자신들의 연대본부 상황실이 설치되어 있는 천연동굴로 물러가 은신하였다. 때문에 아군들에게 그렇게 위협하고 괴롭히던 적들의 포성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폭탄으로 638고지를 폭격을 하던 미 공군 팬텀기들도 미 공군 제7전술기지로 돌아갔다. 또, 귀가 따가울 정도로 굉음소리를 내며 폭격을 하던 미군 무장헬기들도 돌아갔다.
어느덧 4월 하순의 긴 태양이 월남의 서쪽 하늘로 넘어가려고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1972년 4월21일 오후 6시 경, 앙케 패스 638고지에 나뭇가지 부비는 바람소리와 어지러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만 요란 할뿐 정적이 찾아와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푸 갓 비행장 상공 쪽에서 정찰기 한 대가 638고지 상공으로 진입하였다. 그 정찰기는 638고지 상공을 저공으로 선회 비행을 하였다. 그리고 정찰기에서는 이 미자의 ‘동백아가씨’ 와 ‘그리움은 가슴마다’ 노래가 대형스피커를 통해 감미롭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끝 -
여기서 제2부는 종결합니다.
여기서부터 제3부가 이어집니다.
이미자의 노래와 군가를 들려주었다 (101)
수색 중대원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국의 향수를 달래는 감상에 젖었다. 또 그들은, 고국의 향수에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리고 ‘얼마 만에 들어보는 고국의 아름다운 노래였던가?’ 때문에 그들은, 갑자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때문에 그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터에서 매일같이 들려오는 소리는,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폭음소리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 나 좀 살려줘!” 하며 죽어가는 전우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만이 들여오고 있었다. 이 같은 전우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에 그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슬픔에 젖어 통곡하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 울려 퍼지는 국민가수 이미자 씨의 노래가, 전쟁터에 있는 그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그리고 동백아가씨의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밤을 얼마나 울었던가?’ 하는 구절에 이르자, 그들 모두는 넋을 잃고 아련한 추억을 더듬고 있는 듯, 말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역만리 월남 땅 앙케 전투에서, 수많은 밤낮을 얼마나 울었던가를 생각 하니,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이미자 씨의 동백 아가씨 노래에 이어서, 그리움은 가슴마다 노래가 공중에 있는 정찰기에서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따라서 전선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장병들은 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애타도록 보고파도 찾을 길 없네.
오늘도 그려보는 그리운 얼굴
그리움만 쌓이는데,
밤하늘에 잔별같이 수많은 사연
꽃이 피고지고 세월이 가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 네
그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애절한 동백아가씨 노래가 끝나고 ‘그리움은 가슴마다’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노래 가사가, 마치!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전우들이 처해 있는 심정을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때문에 수색중대원 그들은 숙연해지면서 고국에 두고 온 아내와 애인의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없이 소리 없이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638고지 주변에는 장렬히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들과 적 월맹군들의 시체들이 여기저기에 아무르 게나 널 부러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널 부러져 있는 적들과 아군의 시신에는 파리 떼와 구더기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신 썩는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가 앙케 전선, 온 산천에 진동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정찰기에서는 안개 같은 뿌연 액체를 살포하고 있었다. 아마도 시신 썩는 고약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전염병 예방을 하 기 위해서인지? 정체불명의 약품을 공중에서 살포하고 있었다. “약품 냄새가 온 전선에 진동했다!” 어쩌면 울창한 숲을 제거하기 위해 다이옥신 고엽제를 뿌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찰기에서는 안개 같은 뿌연 액체를 계속 공중에서 살포하고 있었다. 동시에 정찰기에서는 계속 이미자 씨의 아름답고 간드러지는 노래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미자 씨의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며 정체불명의 액체를 살포하던 정찰기는 수색 중대 그들의 심금만 울려놓았다. 그리고 그 정찰기는 연대전술기지 쪽 상공으로 사라져 가 버렸다.
그 뒤를 이어서 퀴논 쪽 상공에서 지휘관용 작은 헬기 한 대가 땅거미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638고지 상공으로 접근해왔다. 그 헬기는 638고지 상공을 선회비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헬기에서는, ‘보병의노래’, ‘진짜사나이’, 맹호군가 등, 씩씩하고 우렁찬 군가 세 곡을 번갈아 반복하여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선무방송을 하 기 시작했다.”
“주 월 한국군 장병 여러분!” “낯도 설고 물도 설은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우리의 우방인 월남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조국의 명예를 걸고 피 흘려 싸워 이김으로써 월남 전사에 길이 빛날 전승의 금자탑을 세우기 위해 연일 계속되는 전투를 수행하느라 그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여자 아나운서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멘트가 이렇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같은 선무방송을 듣고 있던 박 병장이 눈물을 글 성 거리며 이렇게 흥얼거렸다. ‘자유통일 위해서 님 들이 뽑혔으니,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 그는 또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맹호 군가를 이렇게 흥얼거렸다.
박 병장 그는, 부산 제3부두 환송식장에서 군악대의 맹호군가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내의 노래’ 가사와 함께 편지를 건네주던 아내와 애들이 보고 싶다고 울먹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쏟아내고 있었다. 때문에, 그를 지켜보는 전우들의 마음을 더욱 더 그리움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정말! “전쟁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었다.” 저 말없는 638고지가 무엇이기에 적 월맹군들은 이 고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어 작전을 하고 있다. 반면에 주 월 한국군은 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축차적으로 수많은 공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 월맹군들과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그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가?
귀신 잡는다는 청룡부대만 철수하지 않았더라도 저놈들이 감히 여기까지는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인데, 월남전에서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던 청룡부대가 철수하고 없는 틈을 타서, 추계 대 공세를 감행하여, 파죽지세로 여기까지 쳐 내려 왔다. 그래서 이곳 앙케 패스 지역이 주 월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 중에서 최전방이 되고 말았다.
새삼 청룡전우들이 월남에서 고국(한국)으로 철수하고 없다는 것이 한없이 아쉬웠다. 청룡 그들의 막강한 전력과 용맹성을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었다.
“수색 중대 그들은 갑자기 밀려오는 무력감으로 전신에 힘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공중에서 계속 선회비행을 하며 삐라도 뿌리고 군가와 선무방송을 하던 지휘관용 작은 헬기도 퀴논 쪽 사단사령부가 있는 상공으로 사라져 갔다.
정찰기와 헬기에서는, 638고지를 공격하기 위한, 아군 사기를 진작시키는 선무방송을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구경 하느라, 저녁 늦게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적과 아군들 시신이 썩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옆에서 전투식량 (C-레이선)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서산마루에 반쯤 걸쳐있던 해도 플레이쿠 쪽 산속으로 기울어 숨어버렸다. 피 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앙케 전선에는 또다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 덮이고 있었다. 따라서 전선의 밤은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이렇게 앙케 전선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1972년 4월22일, 태양은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짙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동쪽하늘에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 시각 정각 08시 경, 앞으로 정확히 2시간 후, 정각 10시에 638고지 2차 공격을 할 예정이니, 만반의 공격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 계속 -
생명에 대한 대단한 애착심 (102)
수색중대 그들은, 사기가 왕성했던 1차 공격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공격에서는 사기도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들 모두가 지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그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라 다가올 공격 개시 명령이 두렵기만 하였다.” 이제는 그들 앞에 있는 적들이 생각만 해도 무섭고 겁이 났다. 그리고 소름이 쫙 끼쳐왔다.
뿐만 아니라,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에서 물 보급도 없이 제2차 공격작전에 투입되던 그 악몽 같던 그 날, 그 뜨거웠던 화염과 자연의 악조건 속에서 천우신조로 겨우 살아남았다. 그 당시, 맨 앞장서서 일렬 전술종대로 앞으로 전진 해 나가던 첨병과 첨병분대를 제외한 나머지 수색중대원 모두가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다 쓰러졌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바람 방향이 바뀌는 바람에 겨우 목숨만 부지하게 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아직까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엉망이었다.
어제, 드럼통에 흙을 가득 담아서 2인1조로 밀고 올라가면서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수색중대는 실제로 실현 가능한지? 제3소대 선임하사 안 희 백 중사가 솔선수범해서 드럼통에 흙을 가득 담아서 직접 실험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전투현장에서 직접 실험해 본 결과, 이 드럼통 전술작전은 도저히 무모하고 불가능한 작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그는, “드럼통작전 보다 가스탄작전이 훨씬 주효할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와 건의를 하였다!”
상부에서도 그의 건의가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때문에 그의 건의에 따라, 드럼통 전술작전은 취소하고 말았다. 그리고 상부에서는 수색중대에 가스통을 긴급 지급 하였다. 안 중사 그는, 자신이 건의한 가스탄작전을 상부에서 받아드린 것에 대해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수색중대에 지급된 가스통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색중대 그들은, 638고지를 공격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가스탄 공격작전 준비를 끝마친 안 중사는 피의능선이라 불리는 638고지에 2차 공격 명령이 하달되기 이전에 아침부터 바람의 방향이 638고지 적들이 있는 벙커와 참호 쪽으로 잘 불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통했는지, 자연의 조화로 때마침 바람 방향이 638고지, 적들이 있는 벙커와 참호 쪽으로 적당히 잘 불어주고 있었다. 그 절호의 찬스를 놓칠 새라 안 중사는 638고지 7부 능선 현 위치에서 다 연발, 가스 10발이 들어있는 가스탄 한 통을 다 터뜨렸다. 가스는 바람을 타고 638고지 적들의 벙커와 참호가 있는 곳으로 퍼져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안 중사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이번 가스탄작전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약 10m정도 더 전진하여 또다시 가스탄 한 통을 터트리자, 가스는 바람을 타고 638고지 쪽으로 안개처럼 퍼져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에 고무된 그는, 그 뒤를 따라 올라 가기 시작했다. 그는 위험한 것도 아량 곳 하지 않고 용감하게 다 연발, 가스 10발 들이 가스통을 직접 등에 메고서 638고지로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쩌!~정~콰!~광!~” 638고지 9부 능선 참호 속에서 적들의 방망이 수류탄이 제3소대 선임하사 안 중사가 있는 약 20m 앞에 날아와서 폭발하였다. 그는 불시에 날아든 폭발음에 정신을 잃을 번하였다. 그러나 그는, 천만다행으로 무사했다. 밑에서 이 같은 상황을 마음 졸이며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수색 중대원들은 너무 위험하다고 소리쳤다. “모두들 그에게 어서 빨리 그냥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들은 둥, 만 둥 하였다. 그는 오직 적들의 벙커 속에 가스탄을 쏘아 넣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또, 그는, 중대원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의 방향이 638고지 정상 쪽으로 잘 불고 있다는 것에 고무되었다, 때문에 그는, 이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여 가스탄을 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과!~쾅!~” 하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월맹군들의 B-40적 탄통이 날아왔다. 제 3소대 선임하사 바로 앞에서 폭발했다. 가스통을 메고 638고지 8부 능선을 향해 용감하게 올라가던 그는 적들이 쏜 B-40적 탄통을 맞고 그 자리에서 그만 푹 쓰러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수색 중대원들은 일제히 “악!~”하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선임하사 전령은 발을 동동 굴었다. 그는 “선임하사님이 전사한 것 같다고 울먹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 “어쩌면 좋아!” 하고, 전령인 그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그가 울음을 그치면서 선임하사를 다시 바라보았다.
선임하사 그는, 다행히 죽음은 면했는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전령이 소리쳤다. “선임하사님이 움직이고 있어 하고 소리쳤다.” “선임하사님이 움직이는 것을 봐서, 전사하지 않고 무사한 것 같다고 그는 흥분하였다.” 전령이 소리를 질러대며 극도로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 어린애와 같이 너무 가련해 보였다.
적들의 B-40적 탄통을 맞고 쓰러져 있는 제3소대 선임하사 안 중사를 구출하기 위해 수색 중대원들은 일제히 엄호사격을 하였다. 제3소대 소대원 몇 명과 함께 중대 위생병이 급히 선임하사 곁으로 다가갔다. 아주 큰 중상을 입은 것 같은 선임하사 그를 구출해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따다닥 따 콩!~” 하는 적들의 A K-47총소리와 함께, 권 준 병장과 월남 더블백 동기인 양 상병이 등에서 분수처럼 피를 내 뿜으면서 쓰러졌다. 그는 온 몸이 피범벅이 된 채,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그만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수색중대 모두들 숙연해 지며 망연자실 하였다.
“결국 안 중사 그는, 가스탄도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큰 중상을 입고 말았다.”
안 중사 그를, 수색 중대원들이 땅굴처럼 구축해 놓은 638고지 7부 능선까지 부축해 끌고 내려왔다. “중대 위생병이 그를 응급조치를 하 기 위해 상처 부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양쪽 다리가 절단되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또, 그의 두 눈은 실명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팔과 온 몸에는 B-40적 탄통 파편에 피범벅 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처참한 중상을 입었는데도, 그는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겨우! 기어 들어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아주 고통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부상상태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위생병을 불렀다.” “위생병!” “나, 살아날 수 있겠나?” 하고, 자신의 부상 상태를 위생병에게 확인 하듯 물었다. “선임하사님!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그를 위로 하였다.” 위생병 그는, 이런 위로하는 말로 선임하사 그를 일단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는 독백 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 하였다.” “내가 조금만 더 올라 갔으면 죽을 뻔 했네 하였다.”
- 계속 –
인간적 고뇌와 갈등 (103)
이런 와중에서도 ‘나, 죽을 뻔 했네’ 하는 선임하사 그의 말을 들은, 위생병 그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웃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선임하사 그는, 아픈 고통을 참지 못해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면서도 그는, 살아야 한다는 생명에 대한, 대단한 애착심을 보였다.
선임하사 안 중사 그는, 드럼통 전술작전이 실전에 유효한 방법인지, 아닌지,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앙케 작전지휘부에서도 이 드럼통 전술작전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문제점이 있는지, 없는지, 실험해보라는 명령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발적으로 확인 실험을 함으로서 문제점을 발견해 내었던 것이다.
그는 부하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집념의 군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중대원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였다. 때문에 그는, 드럼통 전술작전을 실험을 해 보이는 아주 치밀하고 용기 있는 군인이기도 하였다.
앙케 작전 첫 날, 19번 도로 Q-커브 작전에서 수색 중대장도 전상을 입고 후송 가버린 상태에서 제1소대장과 제2소대장도 전사하고,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은 제3소대장조차도 어제 화염과 연기에 질식되어 106후송병원으로 후송되어 갔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 제3소대를 지휘할 선임하사마저 오늘 아침에 안타깝게 큰 전상을 입고 말았다. 때문에 수색중대 제3소대를 지휘할 지휘관이 한 명도 없었다.
수색중대 그들은, 오늘 아침 드럼통 작전대신 가스탄 작전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 가스탄 작전도 그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적들의 B-40적 탄통을 맞은 안 중사를 구출하러 들어갔던 양 상병이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선수범해서 드럼통 공격작전에 대한 실험을 해 보았던 침착하고 유능한 제3소대 선임하사 안 희 백 중사마저 큰 중상을 입고 후송 가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본 수색중대원 모두가 허탈해 하였다.”
그들은 마치! 땅굴처럼 구축해 놓은 참호 속으로 들어가 죽은 듯이 대기하고 있었다. 1972년 4월22일 오전 10시 정각이었다. 따라서 ‘피의능선 죽음의 고지’라고 불리던 638고지 2차 공격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들은 사기왕성 했던 1차 공격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공격작전에는 아무도 공격해 올라가지 않았다.
수색 중대장은 638고지 7부 능선에 땅굴처럼 구축해 놓은 참호 속에 들어 가 있는 수색중대원 그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공격에 나서는 중대원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휘관인 중대장은 앞장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공격하라고 명령만 내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비굴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의 공격명령이 잘 먹혀들지 않았다.
“수색 중대에서 장교로 혼자 살아남은 중대장은 첨병을 불렀다” 첨병인 권 병장 그는, 못들은 척 하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중대장 그는, 첨병분대장 김 종일 하사를 불러서 공격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첨병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권 병장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는, 첨병인 권 병장 그에게 앞으로 전진 하라고 재촉했다.
권 병장 그는, 절규했다. 왜? 하필이면 638고지 공격할 때, 재수 없게도 첨병에 걸려가지고 이제 첨병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또 그는, 이제, 공격하라는 말만 들어도,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몸서리가 쳐졌다. 때문에 그는, 온 전신에 식은땀이 줄줄 흘려 내렸다. 이런 속도 모르고, 중대장 그는 자꾸만 첨병만 찾으면서, 첨병부터 먼저 전진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좋단 말인가?”
권 병장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중대장, 저 개새끼는 죽지도 않고 명줄 하나는 고래 힘줄만큼 질기 구 먼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고지 공격작전에서 첨병 혼자만 앞으로 전진 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하며, 투덜거렸다.’
“그는 계속 아무 말도 못들은 척 하고 참호 속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밑에 있는 중대원들도 첨병부터 먼저 전진해야 그들도 전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첨병인 권 병장은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아니! 밀림 속에서 일렬 전술종대로 게릴라 소탕작전을 할 때는 첨병이 먼저 전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건 게릴라 작전도 아니고 정규전에서 고지 공격작전에서는 일렬 전술횡대로 서서 고지를 향해 각개 전투자세로 공격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첨병은 무의미하며 모두들 책임을 첨병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중대장 그도 첨병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수작 같았다. 때문에 첨병인 그는 강력히 반발 하였다. 그리고 그는, 중대장의 이 같은 공격명령은 부당한 명령이라고 생각하였다.
군 교범에서도 훈련과 교육을 받을 때는, ‘고지를 공격할 때, 638고지 1차 공격 때처럼 일렬 전술횡대로 각개 전투자세로 엎드려서 첨병부터 순서대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산발적으로 지그재그로 공격을 해야 적들의 조준사격을 피할 수 있다고 그렇게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중대장 저-어 새끼는 첨병혼자만 앞으로 먼저 공격하라는 부당한 명령만 내리고 있다.
정말! 그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 병장 그는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영락없이 죽을 것만 같았다. 조금 전, 수색중대 제3소대 선임하사 안 희 백 중사가 적 벙커에 가스탄을 쏘기 위해서 가스통을 메고서 앞으로 전진 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그는 적의 B-40적 탄통을 맞고, 큰 중상을 입었다. 또, 단말마와 같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파월 더블백 동기생인 양 상병이 등에서 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권 병장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때문에 그도, 앞으로 한 발짝만 더 나가기만하면 제3소대 선임하사 안 중사처럼 적들의 B-40적 탄통을 맞고 큰 전상을 입을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월남 더블백 동기생 양 상병처럼 적들의 A K-47소총을 맞고 피를 분수처럼 내 뿜으며, 꼭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이 같은 상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었다.”
보다 못한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권 병장 옆에 바짝 다가왔다. “전쟁터에서 명령 불복종은 즉결 총살형이란 것을 알고 있느냐?”며 권 병장 그에게 잔뜩 겁을 주었다. “뭐! 씨 발! 중대원 전원이 명령 불복종인데, 왜? 나만 가지고 개지랄을 떠는 거야 개새끼들!” “씨 팔!” 새끼들, 그는 연신 걸쭉한 욕설을 퍼부어대며 요지부동으로 엎드려 있었다.
“명령 불복으로 총살 하려면 총살 해 봐, 중대원 모두가 명령불복종인데, 중대원 모두를 총살하려면 해봐, 씨 팔!” “김 하사 당신도 마찬가지야!” “만일, 명령 불복종으로 처형한다면 중대원 전원을 다 똑같이 공정하게 처형해야지, 첨병한테만 그 책임을 물어 처형한다면 나도 가만히는 있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길길이 날뛰며 강력히 반발했다.
정말! 이 같은 상황에서는 분대장이고, 중대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 계속 -
가엽고 불쌍한 우리 엄마 (104)
권 병장 그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여차했다하면 같이 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권 병장 그는 특등사수였다. 때문에 그는,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각오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M-16자동소총 방아쇠 잠금장치도 풀어놓은 상태였다.
예상치도 않았던 권 병장의 강력한 반발에 분대장 그도 무척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또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권 병장을 위로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첨병인 권 병장을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면서 꼬드겼다. 바로 저 앞에는 항공폭격으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155mm 포탄을 맞아 생긴 것인지? 구덩이 하나가 생겨 있었다. 분대장 그는 첨병인 권 병장 그에게 “저 구덩이에 먼저 가 있으면, 곧바로 뒤따라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권 병장 그는 앞으로 나나기만하면 양 상병처럼 틀림없이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섭고 겁이 났다. 때문에 그는, 꼼짝도 하 기도 싫었다. “분대장님! 꼭 저만 가야 합니까?” “분대장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그는 이렇게 애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서는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양 상병처럼 죽습니다.” 그는 급기야는, 앞으로 전진 해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 그는, 끝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권 병장 그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먼저 1차 공격 할 때는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나서 “바로 올라가면 안 돼!” “바로 올라가면 죽어!” 부르짖으며 간절하고도 애타게 만류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권 준 병장 뇌리에 떠올랐다.
때문에 그는, 고국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는 문득! 어머니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불쌍하고 가여운 우리 어머니! 장남인 내가 13살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대구 계산병원에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시고, 일 년 동안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병원 측에서, “이제,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병원 측에서는, 퇴원하라는 권고에 따라, 그의 아버지는 퇴원하여 시골집으로 돌아오셨다. 그의 아버지는 암 투병으로 극심한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고육지책으로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고난의 암 투병생활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진통제 약효만 떨어지면 너무나 심한 통증과 고통을 견딜 수가 없으셨는지!
“아이고 나, 죽어!” “아이고 나, 죽네!” 그의 아버지는 신음소리를 토하며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리시면서, “의사 빨리 불러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시곤 했었다. 벌써 밤은 깊었다. 밤 열두시가 다 되었다는 벽시계의 종이 땡! 땡! 열두 번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깥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 깔려 있었다. 늦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을씨년스럽게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대고 있었다.
“진료비 미수금이 밀려있고, 진통제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 가까이에 있는 의사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며 불러도 오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어쩔 수없이 수 십리나 더 먼 곳에 계시는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가야 했다. 동네 어르신들과 청년들조차도 밤에는 무서워서 못 다닌다는 귀신과 도깨비가 자주 출몰한다는 홀 개 산모퉁이를 돌아서 울며불며 진료소가 있는 잠 미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는 의사 선생님께 아버지께서 고통과 통증이 너무 심하여 모시러 왔다고 간청하였다. 그는 의사 선생님께 “빨리! 같이 좀 가달라” 애원하였다. 잠에서 막 깨어난 의사 선생님 그는, 준이의 모습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어린것이 바람 불고 비가 오는 이 한 밤중에 무서워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고 하였다, 그는 날이 새면 내일 아침에 같이 가자 고 하였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준이를 이렇게 달래며 설득하였다.
준이 그는, 울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애원했다. 제 아버지 좀 살려 주십시오 하며, 애원했다. 그렇게 그는, 몇 시간을 울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매달리며 간곡히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도, ‘비가 멈추고 날이 밝은 새벽녘에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때문에 의사 선생님은 주섬주섬 진료 가방을 챙겨서 자전거 뒤에 싣고 길을 떠났다.
준이는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가며 무서워서 도저히 못가시겠다는 의사선생님을 간신히 모셔왔던 그 때의 기억이 새삼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처럼 바람 불고 비오는 캄캄한 한 밤중에 귀신과 도깨비가 자주 출몰한다는 홀 개 산모퉁이를 어린 준이 혼자 지날 때보다, 지금! 이 같은 밝은 대낮에 M-16총을 들고 사선에 엎드려 있는 것이 더 무섭고 겁이 난다.
결국, 준이 아버지는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연세 높으신 시어머님과 어린 자식들만 남겨 놓고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거운 짐을 어머니 혼자에게만 다 지워 놓으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 가셨다. 그리고 전 재산을 병수발에 다 탕진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가시고 말았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아버지를 원망 한 마디 하시지 않았다.
“불쌍하고 가엾은 우리 어머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재물부터 먼저 다 가져가고 왜? 사람까지 데려 가느냐고 망연자실하며 오열하시는 준이 할머니, 그 시절에는 의료보험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준이네 전 재산이었던 문전옥답을 다 팔고 자식들 학비밑천 황소까지 팔아서 병원비로 다 날려버렸다.
“재산이란 재산은 준이 아버지 병원비로 다 탕진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청상에 홀로 되시어 연세 높으신 시어머니 모시고 어린 6남매를 키우시느라고 허리가 휘어지시도록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 어릴 적에 어머니의 속을 너무나도 많이 썩힌 이 못난 자식을 한 번 나무라지도 않으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던 우리 어머니!
“복도 지지리도 없는 가엾고 불쌍한 우리 어머니!”
종구와 준이는 짓궂게도 자라[거북이]등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자라는 놀라서 그 불길을 짊어지고 바깥마당에 쌓아둔 땔감나무 더미로 기어들어 갔다. 종구 네가 일 년 동안 사용할 땔감나무를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불을 끄기 위해 모여든 온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준이를 못 쓸 놈이라고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준이 어머님에게,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마을에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거야? 하고 비아냥거렸다.” 마을에서 욕쟁이로 유명한 종구 할머니는 입을 삐죽거렸다. “준이 저 놈은 애시 당초 인간되기는 다 틀린 놈이야” 라고, 그는 욕지거리를 마구 퍼부었다.
“종구 저 놈도 준이 저 놈한테 못 된 물이 들어서 그렇다고, 자신의 손자는 두둔하였다.”
종구 할머니는 아직도 화가 덜 풀려는지, 계속 씩씩거리며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 집 깃발 댁이 이사 오기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였다.
- 계속 –
자라 등에 불을 질렀다 (105)
그러면서 그는, 준이 어머니를 원망했다. 준이 어머님은 종구 할머니 그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다 들어 먹었다. 그러면서도 준이 어머님은, 준이 저 아이가 철이 덜 들어서 그렇다고 극구 사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볼 낯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손발이 다 닭 도록 싹싹 빌었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못난 제 자식 놈을 한 번만 용서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또 그는, 자식 하나 잘못 둔 죄로, 손과 발이 다 불어 터지도록 빌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시던 나의 어머니 …….
준이는 외양간 속에 숨어서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준이 어머님은 준이에게, “울지 마라 하였다.” “그까짓! 나무는 너희 아버지가 해다 주면 되지 뭐!” 하였다. 그래도 나의 어머님은 매 초리 한 번 들지 않고,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 이처럼 너그럽고 인자하신 나의 어머님이, 지금! 한 없이 보고 싶어진다.
준이가 살고 있었던 창동 마을 앞에는 큰 늪이 하나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큰 산이 엄청난 큰 산사태로 인해 그 큰 산이 무너져 내렸다. 때문에, 창동 마을 앞을 흐르던 낙동강 물줄기가 다른 곳으로 뒤 바꿔 버렸다. 원래 낙동강이었던 창동 마을 앞에는 자연적으로 큰 늪이 생기게 되었다.
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 날, 일요일 해거름 때였다. 마을 앞 큰 늪에 대구에서 온 낚시꾼이 낚시를 하였다. 그의 낚시에 솥뚜껑만한 자라 한 마리가 걸렸다. 그 낚시꾼은 몇 시간째 그 자라를 끌어 올리려고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그 낚시꾼은 자라를 끌어 올리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는, 자라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낚시 줄을 끊어 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에이!” “오늘은 재수가 더럽게 없네.” 하였다. 그리고 그는, 허탕을 치고는 낚시도구를 챙겨서 대구로 가 버렸다.
그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종구와 준이는 쾌재를 부렸다. 그 둘은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던 낚시 도구를 이제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그 둘은, 망 서림 없이 옷을 홀랑 벗고 물속에 뛰어 들어갔다. 그들은 그 낚시꾼이 몇 시간째 끌어 올리려고 사투를 벌렸던 가마솥뚜껑 만한 자라를 잡아 물 바깥으로 나왔다.
“그 둘은 자라뱃속에 있는 낚시 추와 낚시 바늘을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다.” 그 둘이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라 뱃속에 있는 낚시 바늘을 빼내려고 무수히 노력 했다.
하지만, 자라가 삼켜버린 낚시 바늘을 빼 낼 도리가 없었다. 종구와 준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자라가 아니었다. 그 둘은 자라가 배속으로 삼켜버린 낚시 바늘과 낚시 추였다. 때문에 그 둘은 자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로 기울려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가지고 싶어 하던 낚시 바늘과 낚시 추는 자라 뱃속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자라를 꼴망태에 집어넣어 종구네 바깥마당에 갖다놓고서 자라뱃속에 있는 낚시 바늘을 빼내기 위하여 지개작대기로 자라를 두들겨 패보기도 하고 돌로 내려쳐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라 등이 워낙 딱딱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개구쟁이 짓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종구 어머님께서는 어서 빨리! 소죽은 끓이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종구 어머님의 호통에 종구와 준이는 마음이 조급해 졌다. 그 둘은 급한 마음에 앞 뒤 생각하지 않고 자라 등에 불을 지르기로 하였다. 그 둘은 불을 질러 자라를 태워 죽여 버리면 뱃속으로 삼켜버린 낚시 바늘과 낚시 추를 빼 낼 수 있겠다는 궁리를 하게 되었다. 또, 그 둘의 좁은 소견에 자라가 다 타고 나면 낚시 바늘과 낚시 추는 고스란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그 둘은, 종구 집 아래채 추녀 밑에 매달아 놓은 종구 아버지가 지포라이터에 기름으로 쓰시던 휘발유를 자라 등에 통째로 들어부었다. 그 둘은 “휘발유를 부은 자라 등에다 성냥불을 켜, 갖다 대었다.”
그 순간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순식간에 자라 등에 확 달라붙었다. 놀란 자라는 그 불길을 짊어진 채, 눈 깜박할 사이 종구네 바깥마당에 쌓아둔 땔감나무 더미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때문에, 바짝 마른 땔감나무에 불 이 옮겨 붙어 버렸다. 삽시간에 종구 네가 일 년 동안 사용할 땔감나무가 홀랑 다 타버리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사태에 그 둘은 무척 당황하였다. 또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났다.” 그리고 그 둘은 눈썹과 머리카락을 반쯤이나 태워버린 생쥐 같은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준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 둘은 준이네 소외양간 속에 숨어서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때 마침, 종구와 준이네 마을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점잖으신 훈장선생님이 준이네 집으로 찾아오셨다. 훈장선생님께서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준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꼴 났네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불 낸 놈들 너무 심하게 혼내지 말라고 하였다. 또 그는, 불낸 놈들을 너무 심하게 나무라고 혼내면 미쳐버릴 수 도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불을 낸 그 놈들을 너무 심하게 나무라고 혼내지 마시게” 당부를 하시고는 서당으로 돌아가셨다.
이 훈장선생님은 준이 마을뿐만 아니라 준이가 살고 있는 개진면내에서도 대단히 유명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풍수지리학에도 식견이 아주 높아, 덕망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 당시 그는, 영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일 년에 약 40-50명 정도 모집하여, 혼자서 한문을 위주로 가르치시고 영어도 가끔 가르쳐주시는 아주 존경스럽고 고마운 분이었다.
공납금은 현금대신, 여름철에는 보리로, 가을철이면 벼를, 현물로 대신 받았다. 준이의 어린 마음에 그 훈장 선생님이 한 없이 고맙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그 훈장 선생님의 덕분에 준이 아버지의 노여움은 겨우 사그라져 간신히 모면하였다. 하지만, 종구 아버지한테 불려가서 귀 방망이 얻어맞고 온갖 욕 다 얻어먹었다.
또 그 둘은, 종구 아버지에게 온갖 체벌도 다 받았다. 그런데도 종구 아버지 그는, 화가 덜 풀려는지? “이유 없다.”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불에 타서 없어진 그 만큼의 나무를 무조건 해 놓으라.”고, 윽 박 질었다. 그 둘은 종구 아버지의 이 같은 억지 성화에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났다. 나이 어린 그 둘은 먼 산에는 갈 수 없고, 가까운 야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때문에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두 짐 정도 베었을 때였다!”
이 사실이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지자, 마을 유지 어른들은 “앞으로 큰 재앙이 마을에 닥쳐올 것이라고 탈기를 하였다. 그들은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긴 한숨을 토해내며 탄식을 하였다.” 때문에 이 일로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혀졌다. 온 마을 사람들은 정말 큰일 났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던 종구 어머니가 우연찮게 몸이 편찮았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