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원(麗元) 혹은 려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담긴 비밀-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1편-6편 - 1편 남벌의 발단과 과정 그리고 출정 / 2편-쓰시마와 이키노시마 / 3편 - 왜구의 본진 마츠우라 / 4편 ..

2023. 2. 18. 16:37역사의 연구/전쟁역사

려원(麗元) 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담긴 비밀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1편 - 남벌의 발단과 과정 그리고 출정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숨겨진 우리의 역사-

Dec 20, 2022 고려의 전쟁사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 우리도 잘 모르는 역사가 있습니다.

 

1274년에 진행되었던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도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의 역사 교과서들은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대해 일본을 정벌하러 두 차례 나섰다가 태풍을 만나서 실패하고 말았다는 식으로 아주 짧고 가볍게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채널 붉은 전장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우리의 역사,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대해 발단과 시작, 그리고 과정과 결말까지 상세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설정은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꾸욱

 

~ 눌러주시면 더 좋은 영상과 내용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붉은 전장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274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1편의 개요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 칸은 강남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남송을 정벌하여 완전한 중원의 통일을 이루길 원했지만 마치 바다와 같이 거대한 양자강에 막혀 40년 동안 남송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여러 외국어에 능숙하여 쿠빌라이 칸의 쓰임을 받고 있는 고려인 조이가 쿠빌라이 칸에게 일본을 회유하여 원나라 진영에 서도록 한 뒤, 원나라와 고려 그리고 일본이 삼면에서 남송을 압박하며 공격하면 남송을 좀 더 수월하게 정벌할 수 있을 것이란 계책을 제시하고 쿠빌라이 칸은 그의 계책을 마음에 들어하며 이를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원나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일본과 통교를 할 수 있도록 중재를 서도록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당시 고려의 재상인 이장용은 원나라 일부 황족과 황실 주변 고려인들을 통해 원나라 조정의 동향을 꾸준하게 살피고 있던 터라 원나라가 일본을 초유(불러서 타이름)하여 일본을 원나라 진영에 서도록 할 것임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장용은 당시 일본의 통치세력인 가마쿠라 막부에서 원나라의 초유를 거부할 것이며 그 경우, 원나라는 고려와 함께 일본을 무력으로 복속시키려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 예측합니다.

 

그래서 이장용은 원나라 사신이 일본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원나라와 일본의 통교가 이뤄지지 않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나라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려에 사신을 보내 일본과 통교를 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하라는 압박을 가하게 되고 결국 고려는 일본에 두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쿠빌라이 칸의 국서를 전달하지만 일본은 쿠빌라이 칸의 국서 수령을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쿠빌라이 칸은 일본의 이런 외교적 태도에 분노하게 되고 일본을 회유하기 보단 무력으로 정벌해야겠다는 마음이 점차 커지게 됩니다.

 

결국 쿠빌라이 칸의 뜻대로 일본 원정이 결정되면서 원나라는 군량미 마련을 위해 고려의 황해도 봉주와 경상도 금주에서 둔전을 운영하기 시작하고 고려에겐 농우(농사짓는 소)와 우마용 사료, 군선 900척의 건조와 많은 양의 군수 물자 비축, 그리고 4만의 전투 병력을 파병하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고려는 여몽 전쟁이 끝나고 십 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고려의 재건과 민생 회복을 위해 내치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기였기에 원정 준비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려는 원나라에게 사신을 보내 원정 준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분담해야 하는 군수물자의 양을 조절하고 4만 병력을 1만 4천 7백(노젓는 수부 포함)으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고려는 원나라에게 원활한 원정 준비를 위해 삼별초의 난을 함께 토벌할 것을 요청하며 쿠빌라이 칸의 동의를 이끌어 냅니다. 마침내 여원연합군은 두 차례에 걸쳐 삼별초를 완전히 제압하고 경상도 합포에 집결한 뒤, 1274년 10월 3일 일본을 향해 출정하게 됩니다.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2편 - 쓰시마와 이키노시마

https://youtu.be/_d7-vNFKi-A

Dec 17, 2022
 
1274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2편의 개요 4만 병력의 여원연합군 함대는 먼저 일본 본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쓰시마와 이키노시마를 점령하기 위해 1274년 10월 3일 경상도 합포에서 출정합니다. 당시 쓰시마는 68세의 무사이자 도주인 소 스케쿠니가 다스리고 있었으나 소 스케쿠니는 여원연합군이 쓰시마를 공격해서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군수조달을 위해 온 것이라 오판을 합니다. 결국 쓰시마에서 가동할 수 있는 전 병력인 기병 80기를 이끌고 여원연합군과 맞서지만 개전 두 시간만에 전멸을 당하고 맙니다.
쓰시마에서 10일간 머무르며 재정비를 한 여원연합군은 이어서 이키노시마를 향해 출발을 합니다. 당시 이키노시마의 도주인 타이라노 카게타카는 역시 이키노시마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 병력인 기병 100기를 이끌고 신조하라의 히즈메성 인근에서 여원연합군과 전투를 벌이지만 대패한 뒤 히즈메성으로 후퇴하여 농성전을 벌이지만 다음 날 오전에 시작된 여원연합군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전멸을 당합니다. 쓰시마와 이키노시마를 점령한 여원연합군은 이제 마츠우라 지역을 향해 출진합니다.. 전쟁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채널 붉은 전장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우리의 역사,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대해 발단과 시작, 그리고 과정과 결말까지 상세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3편 - 왜구의 본진 마츠우라

https://youtu.be/x7EiOsO1av4

Dec 21, 2022 고려의 전쟁사

 

조선 태종 시절 박무가 이끄는 조선군이 쓰시마 정벌에 나선 것이 최초의 왜구 본진 토벌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1223년부터 여원연합군이 1차 일본정벌을 떠나는 1274년까지 약 50년 동안 11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가 일본 본토를 향하는 중간에 왜구의 본진인 마츠우라 지역으로 가서 왜구의 중심 세력인 마츠우라토를 토벌한 것이 최초의 왜구 본진 토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시마와 이키노시마를 점령한 여원연합군 함대는 히가시마츠우라 반도의 마츠우라 지역으로 출정하여 왜구의 중심세력인 마츠우라토의 본진 마츠우라 지역과 인근 영지들을 완전히 초토화합니다.

 

이때 마츠우라 지역을 토벌한 결과, 1350년 경인년이 될 때까지 약 80여년 동안 고려에는 왜구가 출몰하지 않게 됩니다. 마츠우라 지역을 토벌한 여원연합군은 이제 다자이후가 위치한 하카타만을 향해 출발합니다.. . . 전쟁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채널 붉은 전장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우리의 역사,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대해 발단과 시작, 그리고 과정과 결말까지 상세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4편 - 하카타만 상륙

Dec 25, 2022 고려의 전쟁사

 

1274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4편의 개요 왜구의 본진인 마츠우라 지역을 토벌한 여원연합군은 10월 19일 하카타만 서부에 위치한 이마쓰 해안에 진영을 설치하고 정박합니다. 이어서 홍다구가 이끄는 원나라 동군은 다음날 10월 20일 오전에 모모지바루에 상륙할 고려군을 엄호하기 위해 먼저 육로로 출발하여 메이노하마 해변을 확보한 뒤, 하라다 가문과 마츠우라토(3편의 그 마츠우라토 맞습니다..) 연합군과 교전하여 이들을 패퇴시키고 모모지바루 남쪽에 위치한 소하라산을 점거합니다.

 

다음날 동틀 무렵 김방경 장군이 지휘하는 고려군 중군은 모모지바루에 상륙을 시도하고 일본 진서군의 야전사령관 쇼니 가게스케는 키쿠치 다케후사의 부대를 급파하여 이를 저지하고자 하지만 이때 소하라산에 주둔하던 원나라 동군이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고려군을 엄호하고 그 사이에 고려군은 모모지바루에 성공적으로 상륙하게 됩니다.. 고려군 중군과 원나라 동군은 모모지바루에서 키쿠치 다케후사의 부대를 패퇴시키면서 벳푸와 토리카이를 돌파하여 아카사카를 강습하여 점령합니다..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5편 - 진격의 고려

https://youtu.be/9-iZy4lwk-I

Jan 2, 2023 고려의 전쟁사

 

1274년 10월 20일 정오 무렵, 아카사카까지 진주한 고려군과 원나라 동군, 아카사카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는 키쿠치 다케후사와 여러 고케닌들, 하카타에서 전황을 살피며 일본 진서군의 전 병력을 규합하여 여원연합군에 대한 일격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쇼니 가게스케 사이에서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때 일본 진서군 본진의 뒷마당인 오키노하마와 하코자키 인근 해안에 여원연합군의 또 다른 두 개 제대가 상륙하면서 전세와 전황은 일본 진서군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 .

 

 

 

1274 려원연합군의 일본정벌 6편 - 7년 뒤에 다시 보자

https://youtu.be/vyFEpDEEMUM

Jan 26, 2023 고려의 전쟁사

 

1274년 10월 20일 늦은 밤, 여원연합군의 군사작전회의에서 원나라군 지휘관들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갑작스럽게 조기 철군을 언급합니다.. 반면 고려군 지휘관들은 조기 철군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병력과 군수물자를 점령지인 하카타로 옮겨 숙영한 뒤 다음날 다자이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지만 결국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로 인해 피치못하게 조기 철군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여원연합군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철군을 하는 와중에 겐카이나다에서 강력한 푹풍우를 만나 군선 2백 척을 잃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