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3. 01:27ㆍ아시아 소식/버마소식
현재 미얀마 버마족 쿠데타 군사 정부 내전 상황
새로운 무역 경로에 수백만 달러 투자했는데…
미얀마 내전으로 곤란해진 중국
Xiqing Wang/ BBC 사진 설명,한때 번성했던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은 이제 엄격하게 감시된다
- 로라 비커
- 기자,BBC 중국 특파원
- Reporting from윈난성 루일리(중국-미얀마 국경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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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0일
“하나의 마을, 두 개의 나라”는 중국 남서부 인징 지역의 슬로건과도 같았다.
오래된 관광객용 안내판은 이곳이 “대나무 울타리와 도랑, 흙으로 쌓은 이랑”으로만 이루어진 미얀마와의 국경 지역이라고 자랑한다. 이는 중국이 접경국 미얀마와 구축하고자 했던 원활한 경제 관계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BBC가 방문한 이곳 지역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윈난성 루일리시를 가로질러 높다란 금속 울타리가 설치됐다.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로 가득한 이 철조망은 한때 연결됐던 도로와 논밭을 갈라놓고 있다.
이곳이 갈라지기 시작한 첫 계기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후 2021년 유혈 쿠데타로 촉발된 미얀마의 지긋지긋한 내전으로 인해 이 같은 분리는 더욱더 공고해졌다.
현재 미얀마를 장악한 군사 정권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가장 큰 패배를 기록한 샨 주를 포함한 미얀마 전역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고자 싸우고 있다.
미얀마 내전이 이제 중국의 문 앞, 즉 거의 2000km에 달하는 국경지대까지 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미얀마를 주요 무역 회랑으로 삼고자 수백만달러를 투자한 중국으로서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중국은 남서부 내륙 지역을 미얀마를 거쳐 인도양까지 연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회랑 역할을 해 줄 미얀마가 반군과 정규군 간 전쟁터로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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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얀마 반군과 정규군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중국이 중재한 휴전은 깨져버렸고, 이제 중국은 국경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펼치며 강경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 미얀마 수도 네피도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미얀마를 다스리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에게 경고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빈곤한 이곳 샨 주의 주민들에게 분쟁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샨은 전 세계 아편 및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의 주요 공급지이자, 오랫동안 중앙집권적인 통치에 반대하는 소수민족 반군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의 투자로 경제 특구가 생겨나고 도시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다 내전이 터진 것이다.
한편 현재 루일리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주민들에게 울타리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경고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한 중국인 관광객은 셀카를 찍고자 철문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두 소녀는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철문 창살 사이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철문 반대편, 맨발의 한 노인은 소녀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듯하다가 이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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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일리로의 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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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 BBC
사진 설명,미얀마에서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리 미엔젠에게 루일리는 마지막 희망이다
루일리에서 만난 리 미엔젠은 “버마인들은 마치 개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리는 현재 루일리 시내 국경 검문소 인근 작은 시장에서 밀크티 등 미얀마식 식음료를 팔고 있다.
60대로 보이는 리는 원래 중국-미얀마의 주요 교역지였던 샨 주 무세 지역에서 국경 넘어 중국산 옷을 팔곤 했다. 그러나 이제 고향 무세 지역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고 한다.
미얀마 군사 정권은 샨 주 내 마지막 남은 자신들의 거점 중 하나인 무세 지역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국경 검문소는 반군의 통제 속에 있으며, 무세로 향하는 핵심 교역로도 반군의 손에 넘어갔다.
리는 주민들의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했다. 고작 10위안(약 1800원)을 벌고자 국경을 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돈을 벌어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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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 BBC
사진 설명,국경을 넘어올 수 있는 이들은 팔 수 있는 무엇이든 팔아 돈을 벌고자 한다
내전으로 인해 미얀마 국내외 이동이 엄격히 제한됐고, 이에 따라 미얀마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은 리처럼 국경을 넘나들 방법을 찾았거나, 미얀마를 도망친 이들이 대부분이다.
리의 다른 가족들은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근로 허가증을 받지 못해 만달레이에 발이 묶였다. 반군이 점점 더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로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리는 “매일 불안감에 죽을 것 같다”면서 “이번 전쟁으로 우리는 너무나도 불행해졌다. 과연 언제쯤 이 모든 게 끝나겠냐”고 호소했다.
한편 진 아웅(가명, 31)은 미얀마를 떠나온 이들 중 하나다. 진은 세계로 수출되는 의류,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는 루일리 시 외곽에 자리한 산업 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진과 같은 노동자들은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미얀마에서 대거 선발해 온 이들이다. 이들 미얀마 노동자는 한 달에 약 2400위안(약 45만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같은 일을 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급여보다 적은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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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 BBC
사진 설명,근로자들이 기거하는 기숙사 단지는 저녁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모이는 저녁 시간에 활기가 돈다
진은 “전쟁으로 인해 미얀마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모든 게 비싸다. 쌀도 식용유도 비싸다. 온 나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부모는 고령으로 인해 달릴 수 없었기에 아들인 진만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쳤다. 진은 그럴 수 있을 때마다 집에 돈을 보낸다.
진과 같은 노동자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루일리 소재 기숙사 단지에서 기거한다. 진은 자신들이 떠나온 곳에 비하면 이곳은 안식처에 가깝다고 했다.
“미얀마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저희는 이곳으로 피난 온 것입니다.”
아울러 진은 이곳으로 탈출해 온 덕에 강제 징집도 피할 수 있었다. 현재 미얀마 군은 탈영 인력 및 전쟁 사상자로 인한 손실을 메우고자 강제 징집을 시행하고 있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던 어느 저녁, 진은 맨발로 비로 젖어 진흙탕이 된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전투가 벌어진다. 바로 축구 경기다.
관중석에서는 버마어, 중국어, 현지 윈난성 방언이 뒤섞여 들렸다. 참가한 이들이 공을 패스하고, 차고, 골을 시도할 때마다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이 골대를 빗나가자 크게 앓는 소리도 들렸다.
생산 라인에서 12시간의 교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노동자들에게 축구 경기는 임시로 마련된 이곳 새 보금자리에서의 일상이 됐다.
노동자 대부분은 샨 주 최대 도시 라시오 혹은 라우카잉 출신이다. 군사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범죄 가문의 근거지인 라우카잉은 올해 1월에 반군의 손에 넘어갔으며, 라시오는 포위된 상태다. 이처럼 샨 주 등을 반군이 장악하면서 내전의 판도가 바뀌게 됐고, 중국의 이해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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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 BBC
사진 설명,축구 경기는 이곳 공장 노동자들의 퇴근 후 일상이 됐다. 미얀마 출신인 이들은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중국이 처한 곤란한 상황
라시오와 라우카잉 모두 중국의 주요 무역 회랑을 따라 자리한 곳으로, 중국이 휴재한 휴전에 따라 라시오는 군사 정권의 손에 넘어갔다. 그러나 최근 몇 주간 반군이 라시오로 밀고 들어와 역대 최대 규모의 승리를 거뒀다.
이에 미얀마 군부는 폭격을 퍼붓고 드론을 동원해 공격하고 있으며, 인터넷과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제한하고 있다.
국제 비정부 기구인 ‘국제 위기 감시 기구’의 미얀마 고문인 리처드 호시는 “라시오의 함락은 미얀마 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호시 고문은 “반군이 무세까지 밀고 들어오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바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싶기 때문”이라면서 “무세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중국이 지난 몇 달간 재개되길 바랐던 투자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군부는 루일리 바로 옆에 자리한 무세 지역을 제외한, 북부 샨 주 대부분 지역에서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무역 특구로 지정된 중국 루일리와 미얀마 무세는 중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중국-미얀마 경제 회랑’으로 알려진 1700km에 달하는 무역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경로를 따라 에너지, 인프라 및 전기차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채굴에 대한 중국 측의 투자도 이뤄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핵심은 윈난성의 주도인 쿤밍 지역과 미얀마 서부 심해 항구 짜육퓨를 연결하는, 중국이 건설 중인 철도 노선이다.
벵골만을 따라 건설되는 이 항구를 통해 루일리 안팎의 산업계는 인도양은 물론 앞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이 항구는 미얀마를 거쳐 윈난성까지 에너지를 수송할 석유 및 천연가스 이프라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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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계획에 위기가 도래했다.
미얀마의 선출 지도자인 아 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이 쫓겨났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원이 풍부한 이웃국인 미얀마와 이미 수년간 관계 발전에 힘써오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 쿠데타가 발생했고, 시 주석은 쿠데타를 비난하는 대신 군에 계속 무기를 판매했다. 그러나 동시에 민 아웅 흘라잉을 국가 원수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를 중국으로 초청하지도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내전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으나,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새롭게 확대된 전선에서도 싸워야만 하는 미얀마 군은 반군에 밀려 미얀마의 절반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을 잃었다.
그리고 중국은 난관에 봉착했다.
호시 고문은 중국이 “현 상황을 좋아하지 않으며”, 미얀마 군부의 통치자인 민 아웅 흘라잉을 “무능한” 인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적인 통치 체제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닌, 선거를 추진해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선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 당국이 저울질하며 양쪽 모두의 편을 들고 있다고 의심한다. 겉으로는 군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샨 주의 소수민족 무장 단체와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반군 단체가 중국제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최근 벌어진 전투는 소수민족 무장 단체 3곳이 결성한 자칭 ‘형제 동맹’이 지난해 시작한 운동의 부활이기도 하다. ‘형제 동맹’이 중국의 암묵적 승인 없이 이처럼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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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 BBC
사진 설명,이 국경 검문소는 루일리와 무세 사이를 오가는 교역과 인력 이동을 통제한다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중국인 수천 명을 끌어들여 사기 공장을 운영했던 악명 높은 범죄 가문들은 종말을 맞이하게 됐다. 국경 지역이 무법 지대인 것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었던 중국 당국은 이들 가문의 몰락을 환영했다. 그리고 반군으로부터 사기 공장을 운영한 용의자 수만 명을 넘겨받았다.
중국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얀마 내전이 수년간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 정권이 붕괴할 경우 더 큰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
중국이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양측이 평화 회담에 임하도록 압박하는 것 외에 중국이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중단된 계획
이렇듯 중국이 처한 곤란한 상황은 루일리 지역 내 수 km에 걸쳐 문을 닫은 상점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때 국경 근처라는 지리적 혜택을 누렸던 이 도시는 미얀마와 가깝다는 이유로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가장 엄격한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타격을 입은 이곳의 상권은 국경 간 통행 및 교역이 이후로도 재개되지 않으면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미얀마인들의 취업을 돕는 여러 인력 알선업체에 따르면 이 지역은 미얀마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이 또한 인력 공급이 끊겼다고 한다. 업체들은 중국이 국경 반대편 노동자 고용에 대한 제한을 강화했으며,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자 수백 명은 추방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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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Xiqing Wang/BBC
사진 설명,줄줄이 문을 닫은 루일리의 상점가는 도시의 암울한 미래를 잘 보여준다
신원을 밝히길 원치 않은 어느 소규모 공장 주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자 추방 정책으로 인해 “내 사업은 갈 길을 잃었다 …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검문소 옆 광장에는 아기를 데리고 온 여성 등 젊은 노동자들이 그늘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왔다. 합격한 이들에게는 최대 1주일 동안 일할 수 있고, 리처럼 양국 국경을 오갈 수 있는 허가증이 주어진다.
리는 “사람들이 양쪽에 다툼을 멈추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면서 “세상에 아무도 우리를 위해 말해주는 이가 없다면 정말 비극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는 중국과 너무 가까운 지역에서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지인들과 달리 자신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루일리는 리와 진에게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지다. 리와 진은 자신들의 미래가 중국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모양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관광객은 미얀마 출신 옥 판매 상인을 향해 “당신들의 나라는 전쟁 중”이라면서 “내가 주는 대로 값을 받으라”고 흥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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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얀마 버마족 군부...정권 지지하는
버마족 승려들도 등 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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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은 지난 2021년 쿠데타로 합법 정부를 전복한 뒤 줄곧 미얀마를 통치하고 있다기사 관련 정보
- 기자,조나단 헤드
- 기자,BBC 동남아시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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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5일
지난 16일(현지시간), 미얀마 중부의 유명 구릉 도시인 핀우린의 작은 중앙 광장엔 시민 수백 명이 시끌벅적하게 모여들었다. 안경을 쓴 어느 승려의 깜짝 놀랄 발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 승려는 민 아웅 라잉(67) 현 미얀마의 군 총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소 윈 부사령관이 그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흘라잉은 지난 2021년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선출 정부를 몰아내며 미얀마에 재앙과도 같은 내전 사태를 일으킨 인물이다. 현재 그는 국제 사회로부터 여러 비난을 받고 있으며, 미얀마 국민 다수도 그를 끔찍이 싫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 발언의 주체가 조금 특이했다. ‘파욱 코 타우’라는 이름의 이 승려는 불교 승려 중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띤 인물로, 지금껏 군사 정권을 굳건히 지지해오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주간 군부가 소수민족 반군에 맥을 못 추고 연달아 대패하면서 흘라잉의 지지자들은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등 돌리는 지지자들
파욱 코 타우는 시민들을 향해 “소 윈의 얼굴을 봐라”면서 “그게 바로 진짜 군인의 얼굴이다. 흘라웅은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않다. 그는 민간인의 역할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욱 코 타우가 군부 내에서 어떤 지지를 받는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다른 군부 지지자들도 비슷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반대파에 맞서 전세를 역전하지 못하는 듯한 상황이 펼쳐지며 점점 더 걱정되기 때문이다.
파욱 코 타우는 BBC 미얀마어 서비스와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아울러 파욱 코 타우가 연설 장소로 핀우린 지역을 골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여름철 피서지였던 이곳은 이제 미얀마의 명문 ‘국방 사관학교’가 자리한 곳으로, 고위 육군 간부들이 훈련받는 곳이다.
육군 입장에선 이 은근한 경고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바로 지지자들이 미얀마 군부로부터 하나둘 등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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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FACEBOOK
사진 설명,파우 코 토우와 친군부 성향의 ‘민주 카렌 불교도군’ 대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
사실 군부와 승려 간 결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얀마의 승려들은 1930년대의 식민 지배 저항 운동부터 1988년과 2007년 군부 통치 반대 봉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종종 반권위주의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을 해왔다.
지난 2021년 쿠데타에도 많은 승려들이 반대했으며, 심지어 일부는 승려복을 벗으면서까지 군사정권에 대항했다.
그러나 일부 승려들은 불교와 미얀마의 문화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공통된 믿음 아래 군 고위층과 결탁했다.
지난 2012년 라킨주에서의 지역 불교도들과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 간 폭력 사태 이후 ‘위라투’라는 이름의 어느 호전적인 승려는 ‘마 바 타(인종 및 종교 보호 협회)’ 운동을 시작했다.
마 바 타는 미얀마의 불교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설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며 이슬람교도 소유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는 미얀마 전체 인구의 8%에 불과하다.
마 바 타는 2017년 공식적으로 해체됐으나, 이후로도 계속 군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인종 분쟁을 선동한 혐의로 수감된 바 있는 승려 위라투는 2020년 다시 한번 투옥됐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군부에 의해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흘라잉은 그에게 각종 포상 및 금전적 보상도 수여했다.
한편 2021년 2월 발발한 흘라잉의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 및 대중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그 이후 흘라잉은 자신이 불교 수호자라고 주장하며 합법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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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모바일 게임2023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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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산 수치 아들 BBC 인터뷰서 모친 석방 촉구2023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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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내전: 민간인 겨냥한 군부의 파괴적인 공습 전술2023년 2월 1일
이에 관영 언론에선 자그마한 체구의 이 독재자가 불교 사원에 선물을 갖다 바치고, 원로 수도원장들의 장례식에서 직접 운구 작업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 등이 계속 보도되고 있다.
아울러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선 군부의 재정 지원으로 세계 최대 좌불상을 건설했는데, 흘라잉이 그 초석을 놓는 장면도 공개됐다.
한편 미얀마의 최고 종교단체인 ‘불교평의회’는 민 아웅 라잉의 쿠데타에 대해 거의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고 있다. 일부 평의회 회원들만이 조용히 군부에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의 원로 승려 중 하나인 시타구 사야도우는 공개적으로 군부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흘라웅의 무기 구매를 위해 러시아에 동행하기까지 했다.
이보다 더 한발 나아간 버마족 승려들도 있다. 위라투의 추종자 중 한 명인 와타와는 자신의 고향인 사가잉주에서 버마족 무장 민병대 창설에 협력하고 있다. 군사 정권에 맞서고자 사가잉주 전역에서 버마족이 자진해서 일어난 ‘인민방위군’을 막기 위해서다. SNS에 올라온 사프란색 승려복 차림의 버마족 승려들이 소총을 쏘는 방법을 배우는 사진에선 부조화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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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2020년 위라투가 체포되자 다른 극단적인 민족주의 승려들이 시위를 벌였다
미얀마의 전설적인 왕의 이름을 따 ‘피우사우티’라는 이름을 붙인 이 민병대는 현지 남성 주민들을 강제로 모집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러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피우사우티’는 군부 정당이 역사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소수의 일부 지역에서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광범위해지고 조직적인 모습으로 바뀐 반군부 운동엔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BBC가 접촉한 한 남성에 따르면 와타와가 2022년 초부터 파우사우티의 대원을 모집했던 지역에선 마을마다 최대 10~15명만 모집됐다면서, 그조차도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해야 겨우 데려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남성에 따르면 이렇게 모집해도 이후 많은 신병들이 탈출했으며, 다른 주민들도 이들을 와타와와 무장한 승려 대원들로부터 숨겨줬다고 한다.
고전하는 미얀마 버마족 군부
최근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과의 전투에서 미얀마 군이 보여준 엉망진창의 성과는 군부 지지자들의 머리에 의심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한 유명 블로거는 민 아웅 라잉이 “무능하다”면서 민 아웅 라잉의 지도하에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상실감과 수치심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에 민 아웅 라잉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비난했다.
중국과 국경 지역인 미얀마 북부 샨주의 대부분 영토가 ‘형제 동맹’에 점령된 상황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소수민족 무장 단체 3곳이 결성한 ‘형제 동맹’은 현재 중국과의 국경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미얀마 버마족 군부는 지난해 10월 이들에 맞서 작전을 개시했으나, 군인 수천 명과 군사 장비를 내주는 결과를 맞았다.
각종 장비로 잘 무장한 군대와 군사정권에 맞서고자 봉기해 민족주의 저항 세력과 합류한 민병대 수백 명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2년간의 교착 상태가 깨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얀마군은 올해 첫 주에도 계속 후퇴를 거듭했다.
한편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을 맞댄 미얀마 서부에선 ‘형제 동맹’을 구성한 소수민족 무장단체 중 하나인 ‘아라칸군(AA)’이 군 기지 몇 곳을 장악하고 친주와 라킨 주 일대를 장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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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미얀마 전역의 무장 충돌 지역
AA는 너덜너덜한 군복을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군인들이 케이블타이에 손이 묶인 채 끌려가는 모습과 획득한 무기 및 탄약이 가득 담긴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매복 공격으로 인해 도로 확보가 안 된 군부는 그나마도 수량이 한정된 헬리콥터에 의존해 주변 기지에 보급품을 조달하고 있으며, 이들을 방어하고자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민간인 희생자가 엄청난 상황이다.
미얀마 북부 카친주 독립군(반군)들은 자신들이 이번 달에 군부의 헬리콥터 1대와 전투기 1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항복한 군인 중엔 전투 경험이 거의 전무한 이들도 섞인 부대 출신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많은 군인들이 가족과 함께 기지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이들이 사실상 전투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수백 명이 국경을 넘어 인도로 도망쳤으며,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한 이들도 수 천명에 달한다. 샨주에선 장군 6명이 자신들을 붙잡은 이들과 건배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이들은 굴욕감을 느끼기보단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이후 미얀마군은 돌아온 이들 6명 중 3명에겐 사형선고를, 다른 3명에겐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는 다른 장군들의 항복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미얀마 버마족 군부의 이러한 모습은 미얀마 군의 75년에 걸친 반군 소탕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로, 군의 사기 또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 병력 모집은 무척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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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된 버마족 아군?
그렇다면 미얀마의 쿠데타 지도자는 이러한 불만에 우려해야하는 상황일까.
지난주 승려 파욱 코 타우가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자신을 비판한 상황이 분명 그의 신경을 건드린 건 맞아 보인다. 파욱 코 타우는 해당 발언 이후 군인들에 의해 구금돼 심문받았지만 이후 바로 풀려났는데, 이는 그를 향한 지지가 만만찮음을 의미한다.
또한 파욱 코 타우의 집회는 국영 언론에 보도됐으나, 흘라잉에 대한 발언은 편집됐다.
파욱 코 타우가 민 아웅 라잉 대신 군 지휘권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소 윈 부사령관은 군의 저조한 성과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은 상사인 흘라잉의 자리를 찬탈할 준비가 됐다는 조짐은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 바뀔 것 같진 않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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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2021년 승려들 또한 쿠데타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아울러 민 아웅 라잉은 잠재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인물을 우선 띄워준 다음 내치는 데 능숙하기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례로 지난해 9월, 한때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알려졌던 모 민 툰 장군은 갑자기 체포돼 이후 부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군부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군부의 사기를 회복해줄,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등장하리라는 꿈을 꾸고 있지만, 눈에 띄는 후계자는 없는 상황이다.
한편 계속해서 전투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흘라잉은 군 통수권자보단 마치 국왕처럼 공식 행사를 주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행보가 그의 자신감 때문인지, 혹은 현실에서 괴리돼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미얀마 군부가 지난 3개월간 입은 엄청난 손실을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버마족 군부는 현재 포위된 북부 샨주의 주요 도시인 라시오에서도, 서부의 라킨주에서도, 태국과 접경 지역인 카렌니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카렌니주에선 반군이 주도 로이코를 점령하기 직전으로, 이렇게 되면 군의 사기는 더욱더 땅에 떨어질 것이며, 결국 군부 정권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붕괴 위기에 처한 미얀마 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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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윈 버드(Miemie Winn Byrd) 박사
미얀마 군부의 붕괴가 임박했다. 이는 민주주의 회복을 기치로 건 무장 저항이 시작될 당시 군부의 세력이 ‘너무 거대해서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이라던 다수 분석가들의 판단과 상반되는 결과다. 군부는 2021년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으나 반군연합이 공격 개시 날짜(2023년 10월 27일)를 따 ‘1027 작전’이라고 명명한 공격을 전개하면서 그 세력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약화하였다고 분석가들은 설명한다.
최근 산악지대인 샨(Shan) 주에 위치한 인구 15만여 명의 라시오(Lashio) 마을에서 미얀마군 북동사령부 본부가 함락당한 사건은 현재 수세에 밀리고 있는 군부의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 반군연합은 75개의 마을과 도시를 해방시켰고, 또 다른 75개 도시를 탈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105개의 마을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 진영인 국민통합정부(NUG) 산하 국방부에 따르면 2024년 8월 중순 현재 전국 352개 마을 중 군부의 통제 하에 남아 있는 마을은 100개 미만(전국의 28%)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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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에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태국 등 과거 반군 세력을 과소평가했던 이웃 국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들 국가는 10여 년에 걸쳐 민주화 과정을 밟아갔던 미얀마의 저력을 오판한 채 군부의 힘을 과대평가한 기존의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쟁이 진행되면서 군부의 힘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한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군부는 보유한 자원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방위군(PDF)과 소수민족 무장단체(EAO)의 공세에 확연히 밀리고 있는 중이다.
반군이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섯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역사적인 연대: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국민통합정부가 전례 없는 동맹을 맺은 결과 전투 경험과 전략적 통찰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탈영자: 수많은 군대 및 공공기관 탈영자들로 인해 반군은 중요 내부 정보를 손에 넣었고, 반면 군부의 작전 역량은 약화되었다.
대중의 지지: 사회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지지는 반군이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외동포 동원: 재외동포가 조직한 지원과 자원 덕에 저항 세력의 힘이 더욱 강화되었다.
여성의 참여: 반군의 약 60%를 차지한 여성은 저항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중국은 다른 이웃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미얀마 군부가 우월한 화력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중국은 미얀마 군부 편에 서서 북부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중국 국경 근처 미얀마를 거점으로 군부의 지원을 받는 사기 조직이 활동하며 관련 범죄가 성행하자 중국의 입장이 바뀌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사기 조직에 인질로 잡혀 인터넷 범죄 행각에 강제로 동원된 것이다.
해당 범죄 활동으로 인해 자국의 이익이 위태로워지자 그전까지 반군연합인 삼형제동맹을 압박해 미얀마-중국 국경 근처의 군부 전초기지를 표적으로 한 ‘1027 작전’이 개시되지 못하도록 막던 중국은 이러한 노력을 중단했다. 결국 ‘1027 작전’은 수천 명의 인신매매 피해자를 해방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다른 반군 단체들 역시 투쟁에 동참하게 되면서 민주화 연합군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세가 뒤집히는 동시에 군부 정권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중국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러나 2024년 1월 중국은 삼형제 동맹에 대한 압박을 재개해 휴전 동의안을 이끌어냈다. 미얀마 군부는 즉시 합의를 위반했으나 중국은 군부의 합의 준수를 강제하지는 못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군부와의 휴전 협정은 평화를 위한 진정한 노력이 아닌, 전술적 후퇴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미얀마 국민들은 이러한 압박 전술을 쓰는 중국을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현재 군부의 승리 가능성을 의심하는 듯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민주화 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꺼리는 눈치다. 중국은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장군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미얀마의 2008년 헌법에 따른 군 주도 선거를 출구 전략으로 계속 주장하는 중이다.
쿠데타가 시작될 당시 미얀마 국민들은 군에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한다는 요지의 2008년 헌법을 거부했다. 또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 이상이 군을 정치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지지하고 있다.
군부는 라시오의 사령부 본부가 함락되자 중국이 삼형제동맹에 무기를 지원했다고 비난했으며, 삼형제동맹의 일원이자 주로 중국계 코캉족으로 구성된 미얀마 민족민주 동맹군을 중국의 대리 침략군으로 묘사하며 반중 정서를 더욱 부추기도 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는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반중 시위를 조직했다.
한편 민주화를 바라는 미얀마의 재외동포들은 중국이 2008년에 제정된 친군부 헌법과 독재 정권을 계속해서 지지하는 것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만일 중국이 군부 주도의 선거로 미얀마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미얀마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도리어 모두와 껄끄러운 사이로 만들어 미얀마 국민들의 반중 정서만 악화시킬 수 있다.
미얀마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며, 민주주의에 보다 열린 입장을 취하고, 장기화된 분쟁 해결을 위해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일 것이다.
미국 육군 예비역 중령인 미에미에 윈 버드(Miemie Winn Byrd)는 하와이 소재 다니엘 K 이노우에 아시아 태평양 안보 연구소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