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건축된‘도시’…“거대한 경이" - 미래를 향한 꿈의 도전 / 외계인이 남긴 듯…50년 만에 완성한 '돌의 도시' 50년 동안 진행된 거대한 조각작품 드디어 완성되다_마이..

2022. 8. 30. 14:12지구촌 소식/미국소식

외계인이 남긴 듯…50년 만에 완성한 '돌의 도시'

'대지미술 거장' 마이클 하이저
美 모하비 사막 'City' 공개

537억원 들인 세계 최대 조형작품
기하학적 콘크리트 구조물 등
여의도 3분의 2 면적에 설치
사막의 흙과 돌·모래로만 사용
하루에 6명에게만 관람 기회

"금문교와 경쟁하는 작품 만들 것"
뉴욕서 활동하던 20대 무명 화가
자연에 설치하는 대형 미술에 매력
사막 구덩이 작품으로 '스타' 등극

  • Editor. 아르떼뉴스 
  • 입력 2022.08.25 02:56
  • 수정 2022.08.27 18:31
 
마이클 하이저(의 ‘도시’ 속 조형 작품 ‘45도, 90도, 180도’. 삼각형 모양의 반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땅에 뾰족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 제공 

 미국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는 불가사의한 ‘돌의 도시’가 있다.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길이 2.4㎞, 폭 800m 크기의 움푹 팬 땅에 흙·돌·콘크리트로 된 인공 구조물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ㄱ’자 모양 기둥부터 기념비 모양의 삼각형 돌까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의 흔적은 없다.

 수만 년 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남긴 흔적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실제론 현대미술 작품이다. ‘대지(大地)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설치미술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ㆍ78)의 ‘도시(City)’란 이름의 작품이다. 그가 1972년부터 무려 50년 동안 매만진 작품이 마침내 완성돼 9월 2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하이저는 휴대폰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오지에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든 걸까.

50년간 537억원 쏟아부어

 대지미술은 미국에서 탄생한 설치미술의 한 조류다. 미술관 대신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게 특징이다. 대지미술 작품 중에는 평야나 사막 등 대자연의 광대함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다. 거의 모든 대지미술 작가가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 출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에선 이승택(90) 등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대지미술 작품을 실험적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하이저는 네바다주에서 자랐다. 그는 “항상 마음 한편에 모하비 사막에 대한 동경과 경외심이 있었다”고 했다. 뉴욕의 무명 화가였던 하이저가 1960년대 후반께 주목받기 시작한 대지미술에 홀딱 반한 이유다. 그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금문교와 경쟁하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1969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작품 ‘이중 부정’은 그를 순식간에 세계 미술계의 스타로 올려세웠다. 그는 사막에 깊이 12.2m, 길이 30.5m에 달하는 구덩이 두 개를 파더니 이를 작품이라고 불렀다. 관람객들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구덩이 안과 사막 풍경 등을 보게 된다. 미술계는 “장엄한 자연 풍경과 작품, 관람객이 하나가 되는 작품”이라며 환호했다.

 

 대지미술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부터 그는 틈만 나면 라스베이거스의 관광용 헬기를 타고 사막을 보러 다녔다. ‘도시’를 설치할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인 설계도를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건 1972년. 그는 “중남미 유적지와 미국 원주민들의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유적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작업 계획을 발표하자 전 세계 미술계의 이목은 네바다 사막으로 쏠렸다. 후원금도 쏟아졌다. 지난 50년간 ‘도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4000만달러(약 537억원)로 추산된다. 절반은 모금을 통해 조달했고, 나머지는 하이저가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의 대부분은 수많은 중장비를 사막으로 ‘출퇴근’시키는 데 들어갔다. 재료는 현지에서 조달했다.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그곳의 흙과 돌, 모래로 만든 콘크리트만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도시’ 속 바닥에 설치된 조형물. 

“환상적인 경험”…하루 6명만 관람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형 작품이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두어 시간 동안 경사진 자갈길과 여러 구조물 사이를 마음대로 거닐 수 있다. 하이저는 이곳을 대표하는 구조물로 삼각형 모양의 돌을 모아 놓은 ‘45도, 90도, 180도’와 누워 있는 사다리꼴 기둥 모양의 ‘콤플렉스 원(Complex One)’을 꼽았다. 뉴욕타임스는 “주변의 황폐한 사막과 어우러져 마치 환상 속 세계에 온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도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작품을 관리하는 재단인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관람을 신청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람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하루 6명만 관람객으로 받기 때문이다. 예약에 성공하면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모여 재단이 제공하는 차를 타고 작품을 보러 가게 된다.

 

 마이클 고반 LA카운티미술관(LACMA) 관장은 “고대 유적이나 도시 못지않은 장엄한 작품”이라며 “공간을 만들고 조직하려는 우리의 원초적 충동을 인식하게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Triple Aught Foundation) 웹사이트 바로가기 

 

LA미술관의 대표작 '공중 바위'도 하이저 작품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있는 마이클 하이저의 설치작품 ‘공중에 뜬 바윗덩어리’. 

 

 23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야외 마당은 늦여름 땡볕에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다들 큼지막한 돌덩어리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340t짜리 화강암 덩어리가 자리잡은 곳은 150m 길이의 반지하 경사로 위. 스페인에서 왔다는 알렉스(30)는 “LACMA 대표작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데, 바위가 떨어질까 무서워 그 밑으로는 못 간다”고 했다.

 작품명은 보이는 그대로 ‘공중에 뜬 바윗덩어리(Levitated Mass)’다. 미국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도시(City)’를 세운 대지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78)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그의 대표작이다. 하이저가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실제 설치(2012년)되기 44년 전인 1968년이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2006년 캘리포니아의 한 채석장에서 우연히 거대 바위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크고 무거운 돌을 채석장에서 100㎞나 떨어진 LACMA로 옮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단 돈이 많이 들었다. LACMA와 하이저는 운송비를 마련하기 위해 민간 기부자들로부터 1000만달러(약 134억원)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2012년 2월 특별 제작한 운송 차량에 바위를 실었다. 차량은 교통 정체를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만 운행했다. 운송 도중 돌에 닿을 수 있는 가로수는 모두 뽑아 다른 데 옮겨 심었다. 신호등을 잠시 철거하기도 했다. 돌을 옮기는 길목마다 구경꾼이 구름처럼 몰렸다. 11일간의 운송 과정은 기록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건축된‘도시’…“거대한 경이”

Aug 29 , 2022 | The Korea Times Atlanta |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 건축된‘도시’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초대형 대지예술작품‘도시(City)’는 그 규모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네바다 사막의 아주 외진 곳에 지어진 길이 1.5마일, 넓이 0.5마일의 건축물, 포장도로가 끊기고 한 시간을 더 울퉁불퉁하고 먼지 나는 길을 달려야 나오는 이곳은 총 4,000만달러를 들여 지어졌다. 이름만 도시인‘시티’는 정교하게 손질된 흙더미와 도로, 언덕, 마른 호수바닥처럼 움푹 들어간 분지가 특별한 순서 없이 여러 방향으로 펼쳐져있다. 그리고 양쪽 끝에는 고대 유적같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세워져있다. 하이저가 첫 삽을 뜬 지 반세기만에‘시티’가 마침내 방문객들에게 개방된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광경일 테지만 작가는 아직도‘시티’가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대지예술가 마이클 하이저가 50년 바친 역작

길이 1.5마일, 넓이 0.5마일 장대한 스케일

내셔널 모뉴먼트 지정…“기념비적 건축물”

                                                                            <Noah Throop/뉴욕타임스>

“난 바보예요, 혼자이구요. 내가 죽고 나면 이곳을 기프트샵과 모텔로 바꿔버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걸작입니다. 혹은 그 비슷한 거죠. 이걸 실제 완성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어요.” 77세로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하이저가 지난봄에 한 말이다.

‘시티’는 수풀이 우거진 가든 밸리 산으로 둘러싸여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은 코네티컷의 두배 크기인 링컨 카운티로, 목장 주와 은퇴노인들, 근처 공군기지로 출퇴근하는 몰몬교도 가족들 및 하이웨이 주변의 주유소 직원 등 5,177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하이저를 제외하고는 5,177명의 사람들 중 아무도 가든 밸리에 살지 않는다. 라스베가스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 거리를 달리는 동안 마주치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은 ‘시티’의 서곡일 뿐이다.

 

‘시티’는 묘사가 쉽지 않다. 두 개의 큰 기념물 중 하나인 ‘컴플렉스 원’은 하이저가 맨 처음 건설한 부분으로 거대한 분묘 또는 제단을 떠올리게 한다. ‘45도, 90도, 180도’라고 불리는 또 다른 기념물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삼각형과 직사각형의 여러 선이 모이는 콘크리트 광장으로 구성돼있다. 마치 퍼즐조각과 같아서 결합하면 하나의 거대한 쐐기를 형성한다.

 

모양과 그림자를 파악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하이저가 특히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전체 모습을 인스타그램 셀카로는 담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동에 따라, 또 빛이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나 지도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단지 공중에서만 우아한 상형문자 같은 전체 레이아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시티’를 위에서 찍은 사진이나 드론 영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발로 직접 걷고 탐험하며 눈높이에서 체험해야한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출신의 하이저는 공학자와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가주 광산부의 수장이었고 친조부는 1880년대 네바다로 이주해 최대의 텅스텐 광산을 운영했다. 부친은 UC버클리 고고학자로서 이집트, 볼리비아, 멕시코 등지의 고대 거석 발굴 전문가였다.

 

학업성적은 모두 F였지만 광산과 암석학, 고고학적 배경에다 예술적 기질이 뛰어났던 하이저는 1960년대의 다른 뜨내기 대지예술가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는 1969년 네바다의 메사 언덕에 ‘더블 네거티브’(Double Negative)란 대지예술작품을 창조해 일약 유명해졌다. 무려 24만톤의 바위와 흙을 파헤쳐 만든 길이 457미터, 폭 9.1미터, 깊이 15.2미터의 참호 두 개는 ‘네거티브 스페이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칭송받으며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의 다음번 작업은 더 대담한 ‘시티’였다.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 탐험에 동행했던 그는 피라미드의 비전을 품고 아트딜러에게서 돈을 빌려 가든 밸리의 땅을 구입했고, 이후 트레일러에서 살면서 ‘컴플렉스 원’의 건축을 시작했다. 그때가 1972년, 하이저 나이 27세 때다.

 

그때 이후 사회적 활동은 점점 줄었고 때로 LA의 모카(MOCA)와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에서 전시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인생은 ‘시티’에 올인 했다. 겨울이면 도로가 끊겨 몇주 동안 트레일러에 갇히기도 하고, 가끔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결국은 모두 떠나고 작업은 그 혼자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1990년 무렵 ‘시티’는 절반도 지어지지 않았다. 하이저는 근근이 이어지는 작품 수주로 낡고 오래된 장비를 수리해가며 이미 지어진 부분을 보강했는데 대부분 짓자마자 곧 침식되기 때문이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은 작업이었다.

 

80년대에 잠깐 뉴욕의 디아 센터(Dia Center for the Arts)가 펀드를 대준 적이 있으나 곧 바닥이 났고, 극심한 신경질환으로 작품 수주도 불가능해진 90년대 중반 즈음 하이저는 ‘시티’를 해체하려는 생각도 했다. 바로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디아의 새 관장 마이클 고반이었다. 하이저를 추앙해온 고반은 문화자선가 J. 패트릭 라난 주니어를 ‘시티’의 후원자로 끌어들였고, 덕분에 하이저는 새로 장비를 구입하고 사람들을 고용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다.

 

2015년 이 지역은 내셔널 모뉴먼트로 지정되었다. 바로 이곳을 통과해 핵쓰레기를 운반하려던 계획이 추진됐었으나 하이저와 고반이 네바다 상원의원 해리 라이드를 설득해 오히려 70만4,000에이커를 보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내셔널 모뉴먼트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시티’는 일반 방문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는 9월초 소프트 오프닝을 앞두고 하이저는 그가 빚진 모든 사람들, 후원자들, 재단들에 감사를 표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 고반은 2006년 디아를 떠나 LA카운티 뮤지엄(LACMA)의 관장이 된 후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2012년 하이저의 야외 설치작품 ‘공중에 뜬 돌’(Levitated Mass)을 라크마에 유치함으로써 그를 서포트했으며 현재는 ‘시티’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트리플 오트 재단(Triple Aught Foundation)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50년 동안 사용된 4,000만 달러라는 큰 예산은 다른 작품들의 제작비와 쉽게 비교할 수 없다. ‘시티’는 건물 콤플렉스도, 공원도, 인프라 프로젝트도, 혹은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도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1969년작 세폭 제단화는 2013년에 그보다 네 배의 금액이 팔리기도 했다. 그 돈은 주로 기부금들이었는데 절반은 패트릭 라난에게서 나왔고, 상당부분이 작가 자신의 돈과 노동력으로 충당되었다. 트리플 오트는 최근 3,000만 달러의 새로운 기부금을 약정했다. 이 기금은 링컨 카운티의 수십가지 건설 관계 잡을 제공하게 되고 오프닝을 앞두고 새로운 일자리들을 창출하게 된다.

 

‘시티’의 방문 티켓은 곧 트리플 오트의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링컨, 화이트파인, 나이 카운티 주민들은 공짜이지만 나머지는 일인당 150달러다. 입장 수입은 연 130만 달러의 유지비로 사용된다. 사람이 많으면 그 특별한 경험이 희석될까봐 하루에 6장의 티켓만 판매할 예정인데, 그것도 연중 일정 기간 동안에만 허용된다니 엄청나게 기다려야할 것이 분명하다.

 

방문객들은 네바다주 알라모에 머물면서 주최측의 픽업을 통해 ‘시티’에 들어가 두 세시간 구경할 수 있다. 전기도 없고 셀폰도 터지지 않는 지역이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므로 가장 멋진 시간인 일출이나 일몰의 광경은 볼 수가 없다. 기프트샵이 없는 것은 물론, 앉아서 쉴 벤치조차 없다.

 

‘시티’는 무섭고 자유로우며 중독적인 곳이다. 마운트 러시모아와 후버댐에 견줄 수 있는 거대한 경이, 미국 특유의 ‘할 수 있다’ 주의가 발현된 도시다. 열린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곳, 특히 돈과 소유물을 넘어서 가치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50년 동안 진행된 거대한 조각작품 드디어 완성되다_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영구적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53)

https://youtu.be/hOA5ilemzRY

50년 동안 진행된 거대한 조각작품 드디어 완성되다

 

 

 

 

 

두산백과

마이클 하이저

[ Michael Heizer ]

요약 미국의 조각가이며 대지미술 작가. 그의 대표작으로는 네바다주에 있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평지에 제각기 약 10m 깊이의 도랑을 길게 파고 수만 톤에 이르는 흙을 이동시킨 《이중 부정 Double Negative》을 들 수 있다.
출생-사망국적활동분야출생지주요작품

 

1944. 11. 4 ~
미국
조각, 대지미술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이중 부정 Double Negative》(1969), 《치환-대치된 덩어리 Displaced-Replaced Mass》(1969), 《집합체 1 Complex 1》(1972)

 

194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네바다에서 자랐다.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고,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칼 안드레(Carl Andre), 댄 플레빈(Dan Flavin), 토니 스미스(Tony Smith),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등과 교류하며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

하이저는 1960년대 후반 영국의 리처드 롱(Richard Long)과 미국의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 크리스토(Christo Javacheff) 등과 함께 대지미술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미술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거부와 당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환경운동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기존의 인습적 표현 소재에서 탈피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화랑이나 미술관에 국한된 작품 제작에서 벗어나 사막과 초원, 고지, 해변 등과 같은 광활한 야외에서 자연물을 소재로 작업을 하였다.

하이저의 작품 《이중 부정 Double Negative》은 1969년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만든 것으로 깊이 40피트, 길이 100피트의 두 개의 구덩이로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의 대지미술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작품 '안'에 있게 된 관람자는 깊은 계곡 속에 함몰된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면서 작품과 직접적으로 호응하게 된다. 작품이 신체의 연장이고 신체는 또다시 작품의 일부가 되는 그의 대지미술은 작품과 감상하는 주체가 분리되지 않고 환경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의 주요 작품에는 《이중 부정 Double Negative》(1969), 《치환-대치된 덩어리 Displaced-Replaced Mass》(1969), 《집합체 1 Complex 1》(1972)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이클 하이저 [Michael Heiz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