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최초 해외파병 전투 맹호부대와 월남전쟁--"Here Come Fierce Tigers" (맹호들은 간다), '맹호부대 파월 박정희 대통령 환송사 ', '맹호와 청룡', 청룡은 간다 (青龍は行く), 靑龍 Blue Drag..
2023. 4. 21. 13:33ㆍ유용한 정보/군사소식
대한민국 건국 최초 해외파병 전투 맹호부대와 월남전쟁
"Here Come Fierce Tigers" (맹호들은 간다) [Alternative version]
Feb 22, 2017
'맹호부대 파월 박정희 대통령 환송사 '- LP 레코드
1965.10.12.
대한민국 최초 전투병 맹호부대 해외파병에 즈음하여 여의도 비행장에서 월남전 환송 국민대회를 거행했다. 맹호부대를 떠나보내는 박정희 대통령 환송사를 LP 레코드 녹음으로 들어봅니다.
'월남전으로 향하는 맹호부대 환송식'
월남전으로 출발하는 맹호부대 환송식(여의도 공항) 박정희 대통령 및 3부요인, 채명신 주월사령관의 육성환송사
'맹호와 청룡'
1965년 전투부대 월남전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맹호부대와 청룡부대는 파병훈련을 거쳐 국민들의 열렬한 환송속에 월남전으로 장도의 길에 오른다. 이기고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 월남전 다큐멘타리
대한뉴스 제 544호-맹호와 청룡(부산 출발)

아까이브 Nov 13, 2016
제작일: 1965-11-06
맹호 번개부대 월남으로 출발. -맹호 번개부대 부산에서 박정희 대통령, 김성은 국방부장관, 정부요인 환송을 받으면서 출발,장도에 오름 -태극기 흔들며 환송하는 시민들. 캄람만에 주둔한 청룡부대 해병대. -헬리콥터 이용한 상공에서의 수색과 부대 장병들의 밀림속 수색. -맹호부대 장병들, 전투에 대비 진중훈련 베트콩지역에 폭탄을 장치하고 발사.
청룡은 간다 (青龍は行く)
1.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 아래 메아리 치는
귀신잡는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며
삼군의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2.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해병대
얼룩 무늬 번개되어 원수를 친다
자유 월남 짓밟는 붉은 무리들
청룡이 가는 곳에 어찌 맞서랴
온 세계의 곳곳에 평화 심고자
조국의 명예 걸고 청룡은 간다
靑龍 Blue Dragon 이렇게 싸워 이겼다
'컬러로 보는 베트남전- 맹호부대 비호 6호작전'
(1966년 1월 9일)
1966년 퀴논 북방 20km지점, 맹호부대는 첩보를 입수하고 베트남 1개연대를 포위 섬멸한다. 당시 맹호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해당지역에 베트콩이 집결한다는 첩보를 접한 채명신 장군은 맹호부대 1연대와 2연대를 작전에 투입한다. 당시 이 작전은 2일에 덜쳐 진행되었으며 월남 파병 이후 주월 한국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가장 전투 큰 규모의 작전이었다. 해당 지역은 인도차이나 전쟁이후 단 한번도 베트콩 이외의 군대가 점령하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
귀신잡는 해병의 짜빈동 신화
1967년 2월15일
월남전 1967년 2월15일 새벽4시 청룡 3대대 11중대 전술기지에 월맹군 연대병력이 포위하여 야간기습공격을 해 왔다. 야간기습 초기전투에서 3소대가 돌파 당하였으나 청룡대원들은 육탄혈투의 격전으로 적을 격퇴하여 한국군의 강인성을 보여주었고 혁혁한 전과를 올려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게 하였다.
'컬러로 보는 베트남전, 1967년 맹호, 백마부대의 오작교 작전(컬러화)'
1967.5.31
해당 흑백 영상을 발굴하여 올드튜브 채널이 세계 최초로 직접 컬러화 제작하였습니다.
주요 장면은 설명을 위해 자막을 기재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오작교 작전은 전설 속의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하루 칠월칠석 서로 만나기 위해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펴서 놓은 다리를 연결해 그 지점에서 만나게 되다는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전명이다.
작전명과 같이 베트남 1번 국도의 퀴논 지역과 투이 보아, 파랑까지의 해안선 도로를 점령해 중간 지점인 모아다에서 맹호와 백마가 해당 국도와 주변의 베트콩을 섬멸하고 남 베트남의 핵심도로를 개통하는 작전으로 1번 국도 자체가 남베트남의 핵심 교통로였음에도 베트콩의 준동으로 원활하지 못해 1966년부터 미 제101공정 강습 보병사단이 개통 작전을 전개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빈번하게 베트콩들에 의해 도로가 차단 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한국군으로서도 수도사단과 백마 사단 간의 작전 연계와 보급로 확보, 지역 안정을 위해서는 약 400km 구간의 1번 국도 장악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었다. 미군 역시 1번 국도의 원활한 개통과 장악은 물류 수송, 군사 작전에 반드시 필요한 도로였다.
그러나 그간 미군의 노력에도 번번이 1번 국도의 장악에 실패하였음에도 한국군이 이러한 작전을 개시한다는 것에 대한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주월 한국군은 이러한 미군의 우려를 일축하고 작전을 개시한다. 먼저 1967년 3월 8일 제9사단 28연대가 후방 지역에서의 베트콩 소탕 작전을 시작하고 같은 해 3월 15일부터는 수도 사단이 송꺼우 남단 3km 지점부터 대규모 베트콩 소탕 작전을 전개한다.
3월 17일부터는 제9사단이 1번 국도로 계속 북진하면서 수도사단과의 연계를 위한 소탕 작전을 시행했다. 전과는 4월 18일까지 수도 사단은 적 608명 사살 272명 생포, 아군 16명 전사 80명의 부상, 제9사단은 적 265명 사살 145명 생포, 아군 19명 전사 57명 부상의 피해와 전과를 올리게 된다.
1967년 5월 31일 작전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으며 베트콩의 섬멸로 도로가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민간 차량들이 안전하게 왕래하게 되었고 한국군은 이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 봉선에서 파랑까지 총 6,800㎢로 작전 반경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이 작전으로 남베트남의 통치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당시 북베트남과 베트콩들에게는 매우 큰 타격이 된 작전이었다. 또한 이 작전은 주월사령부가 수행한 최대의 군단급 작전으로 기록된다.
'컬러로 보는 베트남전 1969년 9월의 맹호부대 실제 작전 영상-군가포함'
1969년 9월
1969년 9월 맹호부대의 실제 작전 모습과 수도(맹호)사단가등의 군가를 삽입하였다.
국군 수도기계화사단의 별칭. 1965년 6월 월남정부의 국군 파월 요청에 따라 파병부대로 선정되었으며, 그 해 10월 중부 월남의 요충지인 퀴논에 상륙하여 최초 해외 파병 전투사단의 사명을 수행했다. 1965년 2월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 이후,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친 전투부대 파병요청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8월 15일 제52회 임시국회 제11차 본회의에 전투부대 파병안을 상정하여 동의를 얻었으며, 수도사단을 제1진으로 선정하여, 동년 10월 12일 여의도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함으로써, 건국 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파병부대로 지정된 수도사단은 국본 일반명령(육) 제30호(1965.8.28)에 의거 부대편성에 착수하는 한편, 4주간의 교육훈련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 15일에는 계획단이, 9월 25일에는 선발대가 출국하고, 10월 16일에는 1개 연대를 결한 본대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10월 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인 퀴논(Qui Nhon)에 상륙하였다. 한편 후속부대인 제26연대는 1966년 4월 6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동년 4월 16일 퀴논에 상륙함으로써, 수도사단은 완전 편성된 사단편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수도사단은 1965년 11월 15일부로 미 제101공수사단(제101공중강습사단) 및 미 제7해병연대로부터 1,200㎢의 전술 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동년 10월 29일 풍손마을에서 서전을 장식한 이래 대대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해오다가, 1966년 3월에는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최초의 사단급 규모의 작전인 ‘맹호5호 작전’을 실시하였다. 수도사단은 이 작전에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집중 운용하여 포위망을 형성한 후, ‘토끼몰이식 작전’으로 지대 내의 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사단의 전술책임지역을 북으로 200㎢ 확장하는데 성공하여, 고보이 평야지대를 사단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기갑연대 제3대대는 1966년 7월 9일 미군의 ‘폴 리비어(Paul Revere)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으로 이동하였으며, 미군의 통제 하에 두코를 비롯한 국경선 부근의 일대 지역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두코 전투에 투입된 적의 병력은 북베트남 정규군 제88연대 제5대대 예하의 400여 명과 공병특공대 등 증원병력 300여 명으로 총 7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의 전사상자는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 제3대대는 책임지역을 미 제3여단에 인계하고, 원대로 복귀하였다.
이 같은 두코전투를 계기로 연합군측에서는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 실효성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종전의 태도를 바꾸고, 그 타당성과 효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중대급 전술기지의 명칭을 ‘Fire Base’라고 명명하고, 그 전술적 운용에 대한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맹호6호 작전은 당시의 시점에서 파월 국군의 최장기, 최대규모의 작전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 특히 우기에 전개된 산악전이면서, 유난히 많은 동굴을 소탕한 전투였다. 이로써 파월 국군의 작전 기량은 연합군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맹호6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사단은 푸캇 산악지대를 기지로 하여 출몰하던 빈딩 성 베트콩, E-2B 대대와 대소의 무장병력을 일망타진하고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맹호 안케패스 전승전우회 50주년 전사자 추모식과 전장터에서
전사한 영웅들의 못다한 삶이야기'
2부 00;32~ 08;14 안케영웅들 이야기 임동춘중위 중대장김용강대위와 전령이야기 전쟁포로로 잡혔다 귀환한 유종철일병이야기 첩보대장 박순유 중령이야기
3부 08;15~ 09;30 638고지를 지키는 전승비 이야기 0931~10;30 638고지에 대혈전이 벌어진장소에 거대한 비목을 맹호가 기념으로 보관하다 철수시 귀국시켜 육사교장에서 다시 살아나 후배 장교들에게 산교육물이 되다
4부 10;31~11;47 638고지 탈환작전은 대규모 월맹정규군과 교전이 이루어진 사단급 대규모 대작전이었다
5부 11;48~ 12;59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두 소대장 영웅 고 임동춘중위와 이무표중위 이야기
6부 13;00~14;36 첩보대장 박순유 중령 적진깊숙히 침투 첩보 작전활동하다가 전사 14;37~15;44 첩보대장 박순유 중령에 강인한 군인 가족 모친과 부인이야기
15;45~16;32 박순유 중령 아들 박민식 국가 보훈처장으로 임명 최고의 보훈처장으로 활동중
7부 16;33~17;21 조국이 부르면 맹호는 간다 맹호 안케패스 작전에 참여한 부대원들은 국가에 충성 월남전 최대전투 안케패스 작전에서 적들을 용감하게 무찌르고 살아 돌아온 전우들은 전사한 전우들 173위 추모행사를 매년 엄숙히 추모식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월맹군이 기습 점령중인 638고지 공격하다 전사한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임동춘 대위와 이무표 이야기
총각중대장 김용강대위 와 같이 전투를 하다 중대장전사에 전령 김익환이 이를 못잊어 국립묘지 묘비앞에서 자결하여 중대장곁으로 간 애닯은 이야기
안케패스의 역사를 갖고 묵묵히 지키는 거대한 비목 육사교육장에 영원히 세워져 후배장교들에게 월남전 교육표상이 되고있다 전쟁포로후 330일만에 귀환 유종철 이야기
맹호 첩보대장 박순유 중령의 학창시절 애국활동과 첩보대 활동중 적지에서 전사한 이야기와 그의 아들 박무식이 훌륭히 자라 국회의원을 하였고 보훈처장이 되어 국가에 헌신하고 있는 이야기
본 영상은 안케패스 전승전우회 운영위원장 이필영님과 이송도 위원님등에 각고에 노력으로 자료수집과 편집을 하여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안케패스 전투의 시작 638고지로 침투하는 최초의 적을 발견
교전한 소대장의 이야기
197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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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케패스 대혈전 전투로 적사살 705명 개인화기 70정 공용화기 13문을 획득 아군피해는 전사 73명 부상 109명
0113~0640 박태균 소대장의 무용담
월남전선 - 맹호부대 안케패스 전투
197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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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K subscribers
Aug 7, 2015
월남전 1972년 4월 월맹군의 대공세에 의하여 월남 전역이 풍전등화의 위험을 고할 때 한국군 맹호사단은 안케패스에 침공해 온 월맹 정규군 3사단 12연대 주력에 대항하여 638고지에서 15일간 악전고투끝에 적을 물리쳤으나 아군의 피해도 컸다.
'살아있는 월남 맹호부대 안케패스 승전 영웅 이무표 인터뷰'
1972년 4월
• 안케패스 맹호부대 영웅들 추모... 안케패스전투 https://kimssine51.tistory.com/427
'월남전 기록필름 '65 파월부터 '73 개선까지'
월남전 기록필름으로 보는 파월 1965년 부터 개선 1973년 끼지 한국군 파월장병들의 소식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