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23:15ㆍ역사의 연구/한국역사
KBS 공사창립특집 고선지루트 1부 – 고구려인,
실크로드를 제패하다 / KBS 20100303 방송
▶ 사라진 나라, 살아남은 유민에게 허락된 하나의 길 - 무사 668년. 요동이 당나라의 지배 아래 들어감으로 인해 고구려 유민의 운명도 뒤바뀌었다. 당나라로 끌려가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 그로 인해 고선지는 당나라에서 태어나 자라게 되었고. 고구려 유민에게 허락된 삶은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노예가 되는 길 뿐이었지만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 스무살 장군, 고선지 – 1,300년 전 흔적을 추적하다 고선지는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을까. 구당서는 고선지의 전기를 ‘고선지 열전’으로 기록해놓았다. 구당서에 따르면 고선지는 스무 살에 장군으로 승진하는 파격적인 이력을 보이는데. 취재진은 구당서를 단서로 고선지의 행적을 추적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우웨이에서 청년기를 보낸 신장위구르 지역 쿠차로. 독립부대를 처음으로 지휘하게 된 첫 부임지 호탄에서 다시 카라샤르로. 1,300년 전의 행적을 뒤쫓는 것은 상당히 숨 가쁜 추적이었는데 그것은 고선지가 끊임없이 발탁되어 승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고선지의 흔적을 찾던 취재진은 의외의 소득을 거둘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구려인의 집단 거주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중국 네이멍구에서 찾은 고려주. 무려 25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성의 흔적도 찾을 수 있었는데 성안에만 천여 명, 성 부근에는 수천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타클라마칸 사막을 누빈, 아름다운 장군 고선지의 부임지는 안서도호부로 지금의 신강위구르지역이다. 쿠차와 호탄, 카라샤르를 오가며 고선지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수없이 지났을 것이다. 타클라마칸은 ‘돌아올 수 없다’는 뜻으로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세계에서 사하라 사막 다음으로 큰 사막이다. 사막의 길을 훤히 꿰며 달렸을 고선지. 그런 고선지를 구당서는 “용모가 곱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다. 고운 용모의 고선지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소발률국 정벌에 나서 대승을 거두며 중국 대륙의 신예로 떠오르는데...
공사창립특집 고선지루트 1부 – 고구려인, 실크로드를 제패하다 (2010.3.3.방송)
"KBS 공사창립특집 고선지루트 2부 – 사상 최고의 작전,
와칸계곡의 혈투 / KBS 20100304 방송"
▶ 아프가니스탄의 지뢰밭, 와칸 계곡을 취재하다 고선지 장군의 가장 큰 승리는 와칸 계곡의 연운보에 있다. 와칸 계곡은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의 남단부에 위치한 너비 2km, 길이 241km에 이르는 좁다란 협곡이다. 곰, 시라소니, 표범이 사는 위험지대로 중국, 파키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과거 구 소련이 매장한 지뢰 제거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하는 위험구역으로, 지뢰를 피하기 위해 일부 지역은 촬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의 저지로 촬영이 중단되기도 하는 어려움 속에, 취재진은 당시 토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연운보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 중국산맥의 제왕 서역수호신, 나폴레옹보다 위대한 원정 고선지가 연운보에 주둔한 토번을 함락시킴으로써 당나라는 토번의 기세를 꺾게 된다. 지금은 티베트로 중국 자치구에 속해있지만 당시 토번은 그 영향력이 대단해 당나라를 위협할 정도였다. 고선지는 전략적 요충지인 연운보를 점령함으로 인해 당나라가 토번의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 그 자신도 명성을 얻게 된다. 이슬람에서는 중국 산맥의 제왕으로, 중국에서는 서역수호신으로 전설적인 인물이 된 것. 그러나 고선지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다르코트 정복에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한 줄기, 해발 4703m의 다르코트. 1만 명의 군사와 말을 데리고 고선지는 다르코트를 넘어 소발률이라는 나라로 향했다. 이 원정을 두고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둔황학자인 오렐 스타인은 나폴레옹보다, 한니발보다 위대한 원정이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중국군대를 이끈 이는 한국인 장군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1,300년전, 고선지는 어떻게 다르코트를 넘었을까. 취재진이 그 길을 답사하며 그 비밀을 풀었다.
▶72개국이 항복하다. 무공불극 고선지 다르코트를 넘은 뒤, 소발률을 정복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연운보를 함락시킨 고선지에게 제압당한 소발률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을 해온 것이다. 이 소문이 이웃 나라에 차차 퍼져나가며 무려 72개국의 나라가 스스로 항복을 자처해 왔다. 이에 고선지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 이는 없었다고, 당나라 시인 왕유는 왕우승집에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상관 부몽영찰은 고선지에게 ‘고구려 노예놈’이라고 욕을 퍼부었는데... 하지만 고선지는 당 현종의 총애로 부몽영찰을 제치고 안서절도사에 승진됨으로써 실크로드를 제패하는 서역의 주인이 된다.
공사창립특집 고선지루트 2부 – 사상 최고의 작전, 와칸계곡의 혈투 (2010.3.4.방송)
"KBS 공사창립특집 고선지루트 3부 – 중국산맥의 제왕,
탈라스에 서다 / KBS 20100305 방송"
"KBS 한국사전 – 대륙 속의 고구려 왕국, 제왕 이정기"
중국을 뒤흔든 고구려 유민, 고선지와 이정기
#고선지 #이정기 #고구려유민 중국을 흔든 고구려 유민, 고선지와 이정기 이야기입니다.
한니발 보다 더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은 고구려 유민 고선지장군과 제나라의 시조가 된 고구려유민 이정기장군. 이들은 삶이 어떠했기에 이런 칭송을 받고 있는 걸까요?
KBS 역사스페셜 – 만주대탐사 1편,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
KBS 2009.8.29 방송
-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요하문명은 이들 4대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1,000년 이상 빠르다. BC 6천 년, 요하문명의 새벽을 열었던 사해·흥륭와 유적에선 빗살무늬 토기와 옥귀걸이가 출토됐다. 그런데 이 옥귀걸이와 똑같은 모양의 옥귀걸이가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에서도 출토됐다. 대륙을 건너온 같은 모양의 옥귀걸이. 우리 민족의 시원을 밝혀줄 단서는 아닐까? - 요하문명의 꽃, 홍산문화 요하문명은 홍산에서 그 꽃을 피운다.
홍산인들의 성도인 우하량에서 여신묘가 발견됐다. 그곳에선 두 눈을 푸른 옥으로 장식한 여신상도 함께 발굴됐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체의 조각들로 봐서 사람 크기의 2배, 3배의 여신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우하량 각지에선 수많은 적석총이 발견됐다. 한 변이 60m가 넘는 거대한 피라미드형이다. 제단,신전,무덤이라는 정신문명의 삼위일체의 유적들과 정교한 옥기의 대량생산 등은 홍산인들이 이미 ‘초기국가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홍산문화의 발견은 중국으로선 커다란 충격이었다.
- 흔들리는 중화사상, 중국의 새로운 국가 전략 중국은 예로부터 황하문명을 자신들의 시원으로 삼고 만리장성 이남을 중원이라 믿었다. 그러나 오랑캐의 땅이라 여겨왔던 만리장성 이북의 요하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 빠르고 이미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한 요하문명이 속속 발굴되자 수 천 년간 지속되어온 중화사상은 크게 흔들린다. 중국은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내세웠다.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예로부터 중화민족이며 그들의 역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국가 주도의 역사공정에 착수했고 그 핵심은 요하문명을 중국 문명의 시원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요하문명이 중국 문명의 시원일까?
-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은 누구인가? BC 2천 년 경, 홍산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진다.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견되는 치를 갖춘 석성, 비파형 동검 등이 발견되는데 이는 중원의 것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은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이 중화민족과는 다른 집단이라는 것이다. 치를 갖춘 석성은 고구려 성의 특징을 보여주며 비파형 동검도 그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요하유역과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완전한 국가단계라고 평가되는데 기원전 2천 년 경 요하유역에 있을 수 있는 국가는 모든 사서를 뒤져봐도 고조선 외에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홍산문화 우하량의 여신묘에서 곰의 턱뼈와 진흙으로 만든 곰의 발도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제사장으로 보이는 인골은 곰의 얼굴을 형상화한 웅룡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이는 홍산인들이 여신과 함께 곰을 숭배하는 곰 토템족이었다는 증거다. 우리 민족의 기원 신화인 단군 신화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주류학계에서는 단군신화를 신화로서만 인정할 뿐, 단군 조선이라는 역사적 실체는 부정해 왔다. 이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단군조선의 실체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할 때이다.
신역사스페셜 8회 – 만주대탐사 1편,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2009.8.29.) http://history.kbs.co.kr/
"KBS 역사스페셜 – 만주대탐사 2편, 금태조 아골타 신라인의 후예였다 /
KBS 20090905 방송"